소설리스트

광오문-94화 (94/194)

(94)

어린회(魚鱗會)

아침 해가 떠오르며 창천궁의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유세운과 식구들이 모두 나왔다. 하후패도 아픈 몸을 이끌고

같이 자리했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아침부터 이렇게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유세운의 말에 유주란이 쏘아보며 손을 들어올렸다.

“이게 진짜!”

“윽! 왜 그래!”

유세운은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웃음 지었다.

“걱정 하지마. 조금 멀기는 하지만 길어도 넉 달이면 충분하다구.”

유세운의 태연한 모습에 유청운이 웃음 지으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 다녀 오거라.”

“하하하. 걱정하지 말아요.”

유세운의 여유 있는 모습에 하후패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정말 전 강호를 다 뒤져도 유문주만큼 광오한 사람은 없을 거요.”

“하하. 당연하죠.”

유세운은 하후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유주란은 유세운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용서 안 할테니 무사히 돌아와.”

“아무 걱정하지말구 기다려. 새해가 되기 전에 돌아올게.”

“그래. 그럼 다녀와.”

유주란은 그 말을 마치고 뒤로 물러났다. 유태청이 한걸음 유세운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는 철마성과의 싸움만이 아니다. 황금 일만 냥이라면 살수 문파나 현상금 사냥꾼들도 많이 모일 것이다. 항시

조심하도록 하거라.”

“예.”

유태청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살수와 싸우게 된다면 그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거라.”

유세운은 유태청이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이 알기로 유태청은 강호에 나와 열명의

악인만을 죽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항상 손속에 사정을 두라고 가르쳤던 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이번

여정에서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모습에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유세운은 아침에 왕전이 직접 내준 갈색의 준마(駿馬)에 가볍게 올라탔다. 하후패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철마성에 가는 길은 알고 있소?”

“하하하.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이 중원에 철마성이 어딘 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하후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조금만 내려가면 포구가 나올 거요. 장사(長沙)까지 가는 배를 잡아타시오. 장사에서 철마성까지 가는 길이 가장

빨리 가는 길이오.”

유세운은 하후패의 말에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길로 가도록 하지요.”

유세운은 말의 고삐를 잡아채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거라.”

유청운의 말과 유주란의 눈빛과 유태청의 웃음을 뒤로 한 채 유세운은 포구를 향해 말을 달렸다.

사천성의 무산에 가장 가까운 포구인 유천(柳川).

유천에는 창천궁으로 들어가는 물건들이 배로 오기 때문에 포구치고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풍족하게 살수 있었다.

유세운은 포구로 천천히 말을 몰아갔다.

배가 언제쯤 출발하는지를 알아야 했기에 객잔들을 지나치며 포구로 향했다. 백연혜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서두르며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까지 간 유세운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포구 옆에서 국수를 팔고 있는

노파가 눈에 띄었다. 유세운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쥔 채로 노파에게 다가갔다.

“장사까지 가려고 하는데 어떤 배를 타면 될까요?”

노파는 이마로 내려온 하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 먼 곳까지 가려고?”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좀 볼 일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면 빠르다고 해서요.”

“에구. 어디보자. 장사라면 음.”

노파는 고개를 돌려 포구에 정박 중인 배들을 바라보았다. 노파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흘흘. 저기 있었군. 저 커다란 배를 타면 될 걸세.”

유세운은 노파가 가리키는 배를 바라보았다. 다른 배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물건들을 싣고 있는게 보였다. 노파는

유세운이 배를 의아하게 바라보자 옆에서 웃음 지었다.

“저건 상선이야. 상인들이 많이 타지. 그래도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 줄걸세.”

“아.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유세운은 말고삐를 잡아 채 배로 다가갔다. 배로 다가가자 광대뼈가 유달리 튀어나온 사내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서어서 실어라!”

유세운은 하인들이 커다란 짐을 싣고 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둘러보았다. 배 삯을 치를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뭐하는 거요?”

유세운은 광대뼈가 튀어나온 자가 자신을 보고 물어오자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장사까지 가려고 하는데 배가 있나?”

유세운은 가볍게 하대를 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사내는 유세운의 갑작스런 하대에 눈썹을

치켜떴다.

“지금 뭐라고 했소?”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일이나 보는 총관한테는 볼일 없다. 주인이 어디 계시냐?”

“크윽!”

광대뼈의 사내가 화를 터트리려는 찰나 배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 이거 아주 멋진 분이시군요.”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배에서 웃음을 터트린 인물을 바라보았다. 삼십대의 중반에 이른 듯한 중년인이 자신의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배 삯은 안 받을 테니 일단 오르시지요.”

“고맙소.”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말고삐를 잡아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박과 이어져 있는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 올라간 유세운은 중년인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호탕한 분을 뵙다니 반갑군요. 저는 이충열이라 합니다. 존성대명이 어찌 되십니까?”

“유세운이라고 하오.”

유세운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중년인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혹시 요즘 강호를 온통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광오문의 문주님은 아니시겠지요?”

유세운은 의외라는 듯이 중년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맞소. 내가 광오문의 문주인 유세운이오.”

“헉! 정말 광오문의 문주님이시란 말입니까?”

“그렇소만…….”

유세운의 대답에 중년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득해졌다. 유세운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가 그리 좋소?”

유세운의 물음에 이충열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대답했다.

“솔직히 이번에 저희 전장으로 이동하는 물건이 온통 비싼 물건이라 걱정을 많이 했소만 유대협과 같이 배를 타게

되다니 그런 걱정은 없어도 되겠소.”

유세운은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 적어도 내가 탄 이상 배에서 난동을 부릴 일은 없을 것이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충열은 유세운의 소매를 잡아끌며 총관에게 소리쳤다.

“여기 두강주를 내오거라.”

이충열의 말에 총관은 낯빛을 굳히며 물었다.

“지금 두강주라고 하셨습니까?”

이충열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어서 두강주를 내오거라. 마음에 맞는 벗을 만났는데 그깟 술이 무슨 대수냐.”

“하지만 그것은 저희도 낙양에 들러 한독 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충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래서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총관은 깊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 종종걸음으로 배에 올라 사라졌다. 이충열은 유세운의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일단 선실로 오르시지요.”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충열이 끄는 대로 선실에 들어섰다. 이미 선실에는 요리가 한상 가득

차려있었다. 이충열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혼자라도 술을 마시려고 했지요.”

유세운은 흔쾌히 웃으며 대답했다.

“술은 같이 마셔야 제 맛이지.”

“하하하. 역시 주도를 아시는 분이시군요.”

유세운은 이충열의 앞자리에 앉았다. 유세운은 이충열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두강주가 무엇인데 총관이 저리 당황하는 것이오?”

“하하 유대협께서는 두강주가 무엇인지 모르신단 말입니까?”

“아직 들어보지 못했소.”

이충열은 자리에 편히 앉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낙양에서 남쪽으로 수십리, 이수(伊水)와 합쳐지는 작은 강이 있는데 이강을 두강하(杜康河)라고 하지요.

두강주는 이 두강하 근처에 있는 이천(伊川)에서 생산하는 술로 소량만 만든답니다.”

“왜 소량으로 만드는 것이오?”

“너무 독하다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적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이 마시고 싶어 하는 술이 되기도 하지요.”

“흐음. 그렇군.”

유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게 느껴졌다. 유세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누군가 선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선실 문이 열리고 적삼을 입은 여인이 술잔과 병을 들고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새하얀 얼굴이 적삼에 대비돼 눈을 끌었다. 붉은 입술도 사람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는 듯했다.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삼의 여인이 유세운의 앞에 잔을 내려놓고 이충열의 앞에 잔을 내려놓는 것을

기다리던 유세운이 불쑥 물었다.

“혹시 나와 만난 적이 있소?”

적삼의 여인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이충열이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

“하하하. 이거 오해가 있으신 거 아닙니까? 제 여동생은 아직 제 곁을 잠시도 떠나 본적이 없습니다.”

“아! 그렇소? 이거 실례했소이다.”

이충열은 호탕하게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제 여동생 같은 아이를 대협께서 잘 봐주신다면 고마운 일이지요.”

“하하하. 그런 뜻이 아니었소.”

유세운은 술잔을 들어 이충열이 따라주는 두강주를 받았다. 유세운도 술병을 받아 이충열에게 따라주었다. 이충열은

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이렇게 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찬이오.”

유세운도 이충열을 향해 잔을 들어보이고는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수수의 향이 단맛을 내기는 했지만 화끈한 열기가

단숨에 토해져 나왔다. 유세운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술기운을 밖으로 뿜어냈다.

이충열은 잔을 내려놓으며 유세운을 향해 웃음 지었다.

“두강주를 마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흐음. 좋군. 이정도의 열기를 느끼게 하다니……”

“하하하. 다행입니다.”

유세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게 있소이다.”

“뭐든지 물어 보시죠.”

유세운은 이충열의 자세에서 자신감이 넘쳐 나오는 것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건지 물어봐도 되겠소?”

이충열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그려졌다.

“무슨 일인고 하니 유세운 네가 산공독(散功毒)에 당한 것이지.”

“산공독?”

“하하하. 그렇지. 심검에 들어선 고수를 아무 생각 없이 공격하겠느냐? 이미 너의 잔에 산공독을 바르고 두강주를

부어 흔적을 없앤 것이지.”

유세운은 태연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적삼의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알려주면 좋겠군. 이상하게 그녀의 기운이 낯이 익은데 누구지?”

유세운의 물음에 적삼의 여인이 입가를 가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흘흘. 나한테 배를 물어보지 않았었나?”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국수를 팔던 노파였나?”

“그렇지. 아까 솔직히 네가 물어볼 때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역시 쉽게 넘어가더군.”

유세운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황금 일만 냥 때문인가?”

유세운의 물음에 이충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돈이면 우리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유세운은 고개를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심하군.”

어린회(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