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생사현관 타통!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던 유세운은 방 문 앞에 서 있는 백연혜를 보고 의아해 했다.
“어쩐 일이야?”
백연혜는 유세운의 말에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못 올 곳을 온건 가요?”
“엑? 그건 아니지만……”
당황하는 유세운을 보며 백연혜는 웃음 지었다.
“몸은 좀 어떤가 해서 와본 거예요.”
“응? 아!”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직 조금 걸릴 것 같아.”
“아프진 않아요?”
“무리하지만 않으면 괜찮아.”
백연혜는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행이네요.”
“뭘. 당연한거지. 그정도로 쓰러지거나 하진 않는다구.”
“피! 벌써 제 앞에서 두 번이나 쓰러지셨다고요.”
“그건……”
유세운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백연혜는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농담이에요.”
백연혜는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오라버니 덕에 몇 번이나 위기를 넘겼는지 몰라요.”
유세운은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느끼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방에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 할까?”
백연혜도 유세운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될까요?”
“하하하. 물론이지.”
유세운은 먼저 문을 열어 백연혜가 들어가게 한 다음 따라 들어갔다. 침대 옆에 놓여진 줄을 잡아당기며 유세운은
투덜거렸다.
‘왜 또 차를 마시자고 한거지? 으윽!’
금세 시녀가 달려와 방문 앞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르셨습니까?”
“차 두잔 만 갖다 줘.”
“예.”
유세운은 백연혜에게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기다려.”
“예.”
백연혜가 자리에 앉자 유세운은 그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장강삼검은 어때?”
백연혜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혀 진전이 없어요. 장강붕파 조차도 제대로 익힌게 아닌 것 같아요.”
“흐음.”
유세운은 탁자를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너무 조급해 하지마. 장강삼검이라면 완전히 익혔을 때 검후(劍后)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검이니까.”
“알아요.”
유세운은 백연혜의 시무룩한 표정에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차를 들고 온 시녀 때문에 그만 뒀다.
“유공자님. 차를 가져 왔습니다.”
“들어와.”
시녀가 두 손에 찻주전자와 찻잔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유세운은 찻잔을 내려놓는 시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백연혜를 바라보았다. 찻잔에 차를 따른 시녀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백연혜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웃음 지었다.
“별궁의 시녀가 차도 더 잘 끓이네요.”
“하하하. 그래?”
“안 드세요?”
유세운은 속으로 뜨끔하면서 찻잔을 들어 올려 입에 살짝 댔다.
‘으윽!’
백연혜는 유세운의 얼굴이 찡그러지는 것을 보고 웃음 지었다.
“호호호.”
“으윽! 뭐가 그리 우스워?”
“아직 차 못 마시나 봐요?”
“무…무슨 소리야?”
“얼굴에 써 있어요.”
백연혜는 유세운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정도도 못 먹을 줄 알고?”
유세운은 주저 없이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백연혜는 유세운의 돌발적인 행동에 미처 말리지도 못하고 손만
내뻗었다.
“크윽!”
유세운은 아직 식지도 않은 차를 단숨에 들이켜 입안에 온통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하지만 백연혜 앞이라
태연하려 애쓰자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백연혜는 그런 유세운의 사정을 짐작하고 안타깝게 물었다.
“괜찮아요?”
“으…음. 괜찮아.”
백연혜는 유세운을 보고 혀를 찼다.
“쯧. 왜 그렇게 급하게 차를 마셔요.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유세운은 한 숨을 내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손을 마주쳤다.
“연혜. 뭐 하나 부탁 좀 해도 돼?”
“부탁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백연혜의 모습에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별거 아니고 호법 좀 서줄 수 있을까?”
“호법이요?”
“응. 운기를 해야겠는데 혹시 몰라서 그래.”
“호호. 알았어요.”
백연혜는 검을 뽑아들며 물었다.
“여기서 지키면 되나요?”
유세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응. 난 침대에서 운기를 할 테니까 차나 마시면서 기다려줘.”
“알았어요.”
유세운은 침대의 휘장을 내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정좌하고 앉았다. 침대의 휘장너머로 차를 마시며 주위를 경계하는
백연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세운은 품에서 옥병을 꺼내 들었다.
‘공청석유라? 영약은 처음 먹어 보는 거라 잘 모르겠군.’
옥병을 열자 청량한 향기가 세어 나왔다. 유세운은 가볍게 손을 내저어 진기로 향기가 휘장을 벗어나지 않게
막았다. 유세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분명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했는데 제길!’
유세운은 표정을 찡그려 보이고는 단숨에 옥병을 들어 켰다. 생각과는 다르게 의외로 입안 가득 청량한 향기가 맴
돌았다. 입안에 났던 화상의 쓰라림도 공청석유와 함께 사라졌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유세운은 공청석유의 기운을 따라 정신을 집중했다. 공청석유의 기운이 느껴지자 주저하지 않고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단전에 머문 기운을 막힌 경맥으로 보냈다.
노도와 같이 밀려간 기운은 막힌 경맥을 단숨에 뚫으며 퍼져나갔다. 기세를 잃지 않은 진기를 천천히 유도하며
막혀있던 경맥을 하나 둘 뚫어나가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백연혜는 시녀가 가져다 준 차를 한 모금 씩 마시며 주위를 경계했다. 호법이라고는 하지만 창천궁 내에서 특별히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백연혜는 휘장까지 치고 운기하는 유세운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휘장이 쳐져 있어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운기조식에 별다른 문제는 없어보였다.
백연혜는 차를 마시며 사적과 겨루던 때를 떠올렸다. 물론 몸 상태가 최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강불진이 그렇게
쉽게 막힐 리가 없었다. 유세운이 만든 강기의 막도 뚫을 수 있었던 검이 막혔다는 것에 문제점이 있어 보였다.
고민하던 백연혜는 유세운의 방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은 절대적으로
유세운에게 어떤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백연혜는 검을 들고는 문으로 다가가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밖을 살펴보았다. 다가오는 인물을 확인한 백연혜는
신형을 움직여 앞을 막아섰다.
“어머? 소공녀님 이곳에는 어쩐 일이시죠?”
“쉿! 소리 내시면 안돼요.”
유세운을 보러오던 유주란은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자신을 가로 막는 백연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백연혜는 유주란의 소매를 붙잡고 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갔다.
“지금 운기요상 중이라 호법을 서 주는 중이었어요.”
“예? 흐음. 큰일 날 뻔 했네요.”
유주란의 말에 백연혜는 미소 지어 보였다.
“아니에요. 전 그럼 다시 가서 호법을 서도록 할게요.”
유주란은 백연혜의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같이 설까요?”
백연혜는 유주란의 말에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혼자서도 충분해요.”
“그럼 부탁할게요.”
유주란은 백연혜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보이고는 걸음을 옮겨 돌아갔다. 백연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방문을 연 백연혜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휘장 안 쪽은 온통 유세운의 정좌하고 있는 신형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빛이었다.
“저…저건 뭐지?”
막힌 진기가 모두 뚫리고 전신 세맥(細脈)까지 뻗어간 기운은 흩어져 있던 진기를 하나로 모았다. 흩어져 있던
진기들이 하나로 모이자 통제하기 힘들만큼의 거력이 느껴졌다.
‘뭐…뭐야? 공청석유의 능력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크기인데?’
은태정의 갖은 구박 속에 평시에도 자연지기를 받아들였던 것이 전신 세맥에 남아 있었다. 공청석유의 진기와 막힌
경맥들을 뚫고 세맥까지 하나하나의 진기를 모으자 그 거력은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제…젠장!’
통제하기 힘든 거력은 거침없이 기경팔맥을 돌아다니며 경맥의 크기를 넓혀갔다.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경맥이 넓어지기는 했지만 내력의 크기는 별 변화가 없었다.
남아있던 내력은 순식간에 유세운의 의지를 넘어서 척추를 타고 회음혈로 치달렸다.
쿵!
‘으악!’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충격에 유세운은 의식이 흔들렸다. 하지만 진기는 회음혈을 뚫은 것에 그치지
않고 척추를 타고 백회혈로 달려갔다.
쿵!
‘크윽!’
회음혈이 뚫리는 것과는 다르게 백회혈은 쉽게 뚫리지 않고 커다란 통증만을 안겨줬다.
‘이 자식이!’
유세운은 은광천세를 펼치듯 자연지기를 힘껏 받아들였다. 백회혈에 막히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던 진기는 더욱 강한
힘을 등에 업고 다시 한번 백회혈에 부딪혔다.
쾅!
머릿속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며 의식은 우주 속으로 빨려가듯 한없이 뻗어갔다. 믿을 수 없는 해방감에 전신이
떨려왔다. 문득 영호천이 보여준 장강삼검이 떠올랐다. 일 초식부터 이어지던 장강삼검의 묘리가 하나같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지금껏 보았던 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장강삼검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백회혈이 열리며
보여준 세상에 한없이 빠져들던 유세운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잠깐!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
자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우주와 하나 된 일치감이 깨지며 빠르게 의식을 되찾아갔다. 의식이 완벽히 제 자리를 찾자
유세운은 무상진기를 운용하며 대주천을 시작했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진 경맥 사이로 진기가
노도와 같이 휘돌았다.
십이 주천을 순식간에 휘돈 진기를 천천히 단전으로 모으며 유세운의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깃들었다.
‘제길! 아까 은광천세나 더 파고 들어볼껄!’
유세운은 입맛을 다시며 눈을 떴다. 아무렇지 않게 눈을 뜬 유세운은 갑작스레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에 고개를 내려
바라보았다.
“윽! 뭐야 이거?”
유세운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이 보이지 조차 않고 피부도 허물을 벗은 듯 깨끗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좌하고 있는
자리를 빙 둘러싼 잔해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참기 쉽지 않은 냄새가 잔해에서 풍겨 나왔다.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이게 사부가 말한 생사현관(生死玄關) 타통인가?”
하지만 유세운은 곧 코를 움켜쥐며 얼굴을 찡그렸다.
“제길! 이게 환골탈태(換骨奪胎)인가 본데… 옷은 왜 없어진 거야!”
“무슨 일 있어요?”
백연혜의 걱정스런 물음에 유세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아무 것도 아니야!”
유세운은 허공섭물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잔해를 모아 삼매진화(三昧眞火)를 일으켜 태워 버렸다. 유세운은 백연혜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는 빠르게 이불을 몸에 둘렀다.
“괜찮아요?”
침대의 휘장을 걷어 올린 백연혜는 유세운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당황했다.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딴청을 피웠다.
“푸훗! 뭐예요? 이불을 둘둘 말아서는.”
“그게 말야. 나라고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유세운은 어색한 변명을 하다가 백연혜가 아직도 자신을 보며 웃고 있자 침대의 구석으로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구경만 할 거야? 어서 뭐라도 걸칠 것 좀 갔다 줘.”
“호호. 알았어요.”
백연혜는 침대 옆의 줄을 당기고는 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죠?”
“응. 아주 좋아. 옷만 있으면……”
유세운의 말을 들은 백연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흔들었다.
“운오라버니.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시녀가 괜히 의심하겠네요.”
“으…응. 호법을 서 줘서 고마워.”
유세운의 말에 백연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부르셨습니까?”
시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백연혜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백연혜는 자신이 할 말만을 남긴 채 창문을 통해 신형을 날렸다. 유세운은 이불을 둘둘 만 채로 창가로 걸어와
멀어지는 백연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유공자님?”
시녀가 문 밖에서 다시 부르자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옷 좀 가져다 줘.”
“예.”
멀어지는 시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심검의 초입을 벗은 것 같은데 대체 사부의 광검은 언제 들 수 있는 거야?”
생사현관 타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