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88화 (8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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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흔들리는 마차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유세운은 연신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내상약을 먹고 운기요상하고

있는 유청운이 보였다. 유세운은 유청운을 바라보다가 마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첫 살인(殺人).

어쩔 수 없었다지만 원치 않는 살인을 하게 됐다. 은광천세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긴 했지만 너무나 쉽게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영 믿기지도 않지만 사실은 사실.

유세운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일이냐?”

유청운의 갑작스런 물음에 유세운은 약간은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은 언제 처음 사람을 죽여 봤어요?”

유청운은 유세운의 물음에 지금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아챘다. 유청운은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지금 네 나이 때쯤이겠구나.”

“정말요?”

“그래. 강호행에 나섰다가 원치 않게 살인을 하게 됐었다.”

“흐음.”

유세운은 유청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유청운은 그때의 생각이 나는지 내상의 통증인지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한 삼 년 정도 전이구나. 객점에서 악명을 떨치던 자를 만났었다.”

“오? 정말요?”

“그래. 당시 옥화산(玉化山)일대에서 강간, 살인을 일삼던 자였다. 옥절마(玉切魔)라고 불리던 자였지. 무공도

이미 검기를 뽑아 낼 수 있었다.”

유세운은 지금 자신의 상황도 잊고 유청운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요?”

“솔직히 그를 새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내 얘기는 듣지를 않더구나.”

“그렇겠죠. 그렇게 살아온 놈일테니.”

“그래. 하지만 그때 느낀 것은 내가 만약 더 강했더라면 그를 죽이지 않고 제압을 했을 거란 거다.”

“더 강했다면이라고요?”

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백중세의 실력을 가진 자였다.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는 없었지.”

“흐음.”

“그 일이 있고나서 바로 돌아와서 수련을 시작했다. 아버지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

“아버지가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유청운은 유세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생명은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악인이라도 개과의 길은 열어줘야 한다고 하셨지.”

“생명은 중요하다……개과의 길……”

“지금은 많은 문파간의 싸움이 없지만 철마성에서 강남무림 통일을 위해 피의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었다.”

“흐음.”

유세운은 유청운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런 문파들 간의 싸움에 말려들면 원하지 않는 살생을 하게 될 수 있다.”

유청운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자신의 의지로 모든 일을 할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하겠지.”

“흐음. 그렇군요.”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유청운은 유세운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운기요상에 들어갔다.

유세운은 철마십영과의 싸움과 흑마육령과의 싸움을 떠올렸다. 단신으로 싸운다면 절대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럿이 합치고 진세의 힘을 빌리자 제법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단순히 강기 공격만으로는 그들을 상대하기 무리가 있었다. 철마십영의 십방쌍강환은 은광천세를 사용해서만 꺾을 수

있었다.

유세운은 입맛을 다셨다.

‘강환이라……그거면 될까?’

은광천세를 제하고서도 상대를 제압할 무공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해결책은 강환을 쓰면 될 것 같았다.

“좋아.”

유세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강환은 의념의 집중이 필요할 것 같았다. 가만히 손을 들어올려 무상진기를

끌어올렸다.

지잉.

유세운의 손앞의 공기가 진동을 일으키며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내상이 낫지 않아 미약한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유세운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천천히 의념을 집중했다. 유세운의 손에서 나온 강기는 점점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운기요상을 하던 유청운은 갑작스레 느껴진 힘에 조식을 멈추고 천천히 눈을 떴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유청운은

놀라서 터져 나오려는 신음성을 삼켰다.

유세운은 눈을 반개한 채 자신의 손앞에 떠 있는 강환에 시선을 두었다. 유세운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강환을 공기

중으로 흩어 보냈다.

“이건 아니야.”

유세운은 다시 한번 강기를 발출했다.

슈욱.

“큭.”

유세운은 가벼운 신음소리를 내며 와선형의 강기를 뿜어냈다. 와선형의 강기는 원형을 이루며 강환을 만들었다.

아까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위력이 느껴졌지만 유세운의 고개는 다시 저어졌다.

“이것도 아니군.”

이정도 위력으로는 내상이 나아서 만들어 낸다 해도 십방쌍강환과 비슷한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유세운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내 내력으로 만들어 내서는 한계가 있어. 그들의 내력이 하나로 합쳐진 거에 비하면 내 내력도 아직 모잘라.’

유세운은 잠시 생각을 접고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라……천형님은 뭐하고 계실까?’

유세운은 영호천을 생각하다가 번뜩 스치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퍽!

“윽!”

마차의 천장에 머리를 박고는 유세운은 머리를 움켜쥔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 그거야!”

“뭐가 그리 좋은 거냐?”

“응?”

유세운은 웃음을 머금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유청운을 보고서는 따라서 웃음 지었다.

“고민하던 문제의 해결점을 쉽게 찾아서요.”

“문제점?”

“아! 이번에 철마십영과 싸울 때 십방쌍강환이라는 것을 봤는데요.”

“철마십영의 십방쌍강환을 말이냐?”

“그놈의 십방쌍강환을 좀더 쉽게 꺾을 방법이 안 떠오르는 거예요.”

“강환을 꺾을 방법이라……”

유청운은 도저히 아무리 생각해도 쉽사리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강호에서 일컬어 초절정이라 불리 우는 자들이

도달하는 경지. 아직 꿈도 못 꿀 경지의 무공을 꺾을 방법이라니. 유세운이 새롭게 보였다.

유세운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해맑게 웃음 지었다.

“내 내력만으로는 여럿이 합친 거를 당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말이죠.”

유청운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강환이라는 것은 최소 이갑자의 내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펼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 유세운의 내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에 절로 질문이 던져졌다.

“세운아. 넌 내력이 얼마나 되는 거냐?”

“예?”

유세운은 유청운의 물음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요즘은 통 수련을 하지 않아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네요. 삼갑자 이후로 통 진전이 없어요.”

“사…삼갑자?”

유청운의 놀란 물음에 유세운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곧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요. 그 문제의 해결점이 뭐냐면……”

“아! 해결점을 찾았다고 했지.”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청운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뭐 아직 실행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영호형님의 장강삼검 중 장강양단풍의 묘리를 이용하면 될 것 같아요.”

“장강양단풍의 묘리?”

유세운은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자연의 진기를 이용하는 거죠. 내 모자란 내력을 채워주고도 남을 만큼의 위력이 나올 거예요.”

“자연의 진기?”

유세운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눈을 감고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받아 들였다. 아니 받아들이려 했다.

“크윽!”

“괜찮으냐?”

걱정스레 부르는 유청운의 목소리에 유세운은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아하하. 이거 제가 너무 무리했나보네요.”

“그래. 아직 내상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무리할 필요는 없다.”

유세운은 유청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너무 성급했어요.”

“일단은 내상을 완전히 낫는게 먼저다.”

“예.”

유세운은 유청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제길! 길은 찾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군.’

유세운은 눈을 감은 채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운기요상을 시작했다.

하후패는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고 마차의 흔들림을 즐기던 하후패는 백연문의

목소리에 생각을 멈췄다.

“귀주 지부에 있던 자들이 모두 철수 한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허허허. 뭐 생각할게 있겠소?”

하후패는 백연문의 물음에 허허롭게 웃음을 터트렸다. 귀주 지부를 치러 나왔던 철마성의 무리 중 홍마철시대를

제외한 전원이 사로잡히거나 죽었다. 일단 철마성은 귀주 지부를 단념하고 다시 성으로 돌아갔다.

백연문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들의 복수는 어떻게 합니까?”

하후패는 백연문의 질문에 눈을 떴다.

“소궁주의 생각은 어떻소?”

백연문은 눈에 결연한 빛을 띄었다.

“피는 피로 갚아야지요.”

하후패는 백연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것은 갚아줘야 하오.”

백연문의 눈에서 희색이 깃드는 것을 본 하후패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나서면 안되오.”

“섣불리?”

하후패는 씁쓸히 웃음을 지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소. 유공자가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상황은 정 반대였을 것이오.”·

하후패의 말에 백연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후패는 그런 백연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결코 작은 준비를 하고 나온 것은 아니오. 하지만 철마성이 사활을 걸만큼 중심인력들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오.”

“알고 있습니다.”

“쉽게 결정하고 결단할 일이 아니오. 복수는 잊어서도 안되지만 만약 한다면 결코 실패해서도 안되오,”

하후패의 숨 막히는 기세에 백연문은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하후패 또한 이번 일이 깊이 가슴에 남았다. 자신이

당하려면 적어도 철마성의 거력마장(巨力魔掌) 염악 정도는 돼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순간의 방심에 입은

상처와 무력하게 되어버린 자신의 실책에 대한 증오는 모두 철마성을 향했다.

가장 복수를 원하는 자를 꼽으라면 주저 않고 자신이라고 말할 만큼 하후패는 분노했다. 하후패는 백연문이 혈기를

인내하길 바랬다. 그리고 더욱 강렬한 일념으로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성주님이랑 의논해 보는게 좋겠소.”

“예. 아버님과 먼저 얘기를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후패는 가볍게 미소 짓고는 자신의 옆에 놓여져 있는 상자를 쓰다듬었다. 상자 안에는 창운산장주 유성장 문정선이

챙겨준 최상급 철관음이 들어 있었다. 그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위급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긴 했지만 철마성의 마수가 다시 그에게 뻗칠까 두려운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후패는 상자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어쩔 수 없이 빨리 철마성 일을 마무리 지어야해. 지금처럼 철마성의 전력이 반 정도나 줄어든 기회는 없을

거야.’

하후패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유세운이 고맙기까지 했다. 강호의 육대세력의 균형을 일시에 무너뜨려 줬다. 지금의

철마성이라면 본성을 공략해도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외상과 내상을 모두 입어 나으려면 앞으로 족히 몇 달은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 철마성이 전력을 회복할

일은 없으니 상처를 치료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하후패는 두 눈을 빛내며 마차의 창밖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철마성! 두고 보자.’

고작 황금 일만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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