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창운산장에서 삼대 제자들과 함께 진화작업을 도와주던 백연혜는 은색의 광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뭐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같이 보았던 창운산장 삼대 제자의 말에 백연혜는 잠시 고민하더니 신형을 날렸다. 단숨에 담을 넘어 은색의
광구가 있던 곳으로 향하는 백연혜는 작은 목소리로 되뇌었다.
“무사해야 해요.”
어쩐지 유세운과 연관이 있을 것만 같은 은색의 광구가 생겼던 곳으로 향하는 백연혜의 마음은 다급하기만 했다.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간 일대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뭐냐? 저 흔적은 폭약을 쓴 것인가?”
일대장의 작은 중얼거림은 창명백검수들의 귀에 들렸다. 창명백검수들 중 세 명이 일대장이 있는 나무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일대장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창명백검수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제는 별 것들이 다 덤비는군.”
일대장은 어깨에 걸쳤던 철궁을 들어 시위에 살을 먹였다. 세 명을 향해 차례로 화살을 쏘아내는 일대장의 시선은
화구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 향했다.
태연한 신색으로 주변을 돌아보던 사내의 시선이 일대장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일대장은 부하가 말한 초마의
경지에 든 자가 있다면 바로 저자 일거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일대장의 화살을 막아내느라 나무 위에 오르지 못한 창명백검수는 나무 밑을 포위했다.
유세운은 갑자기 나무 위에 나타나서 소란을 피는 녀석을 향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장내가 거의 정리가 다 되어
이제 곧 쉬려는데 팔팔한 녀석이 하나 나타나서 초를 치고 있는 것에 심기가 뒤틀렸다.
일대장은 사내의 감정이 격변하는 것을 느꼈다.
‘저 자는 진정 초마의 경지에 든 자다. 이정도 거리를 격하고 감정을 전할 수 있다니…’
유세운은 갑자기 일그러지는 일대장을 보고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뭐하는 놈이냐?”
일대장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벌써 이백오십이 넘던 육, 칠, 팔대의 대원들은 모두 혈도가 제압된 채 쓰러져
있었다. 숫자도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렇게 됐다는 것은 전의를 상실했다는 말 밖에 되지 않았다. 일대장은 결심한
듯 입을 열어 힘들게 물었다.
“초마의 경지에 들었소?”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홍마철시대원들과 같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마?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저 놈들이 그런 소리를 지껄여 대더군.”
유세운이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을 본 일대장의 안색은 더욱 굳어졌다. 육, 칠, 팔대장이 모두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혈도가 제압 되어 있는 것을 본 까닭이었다. 일대장은 주저 없이 경공을 전개해 장내를 벗어났다.
일대장을 쫓아가려는 창명백검수들을 유세운이 막았다.
“가게 내버려둬.”
“무슨 말씀이신지……”
묻는 창명백검수들을 향해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흔드는 것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운오라버니!”
장내에 나타난 백연혜를 보고 유세운은 힘들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백연혜는 다가오다가 아직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백연문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라버니. 왜 그러세요?”
“응?”
백연문이 어이없게 되묻자 백연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연혜는 유세운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이쪽에서 생겨난 엄청난 크기의 은색 광구는 뭐였죠?”
백연혜의 질문에 유세운은 그저 미소만 지어보였다.
‘크윽! 이거 벌써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데?’
말없이 웃다가 얼굴을 찡그리는 유세운을 보며 백연혜는 한걸음 더 다가오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내상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괜찮아요?”
‘그러게 말야. 그래도 걱정해주는 건 연혜 뿐이군.’
유세운은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백연혜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걸음을 옮기는 순간 쓰러질 것 같아 웃음만 지어
보였다. 아직 이곳은 위험하기에 자신이 쓰러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백연혜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직경 십장에 달하는 화구(火丘)를 보고 입을 벌렸다.
“뭐…뭐죠 이건?”
정신을 차리고 다가온 백연문이 대신 설명했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아! 오라버니도 보셨어요?”
백연혜의 질문에 백연문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았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 것이 맞구나.”
“무슨 말이 그래요?”
백연혜는 도통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곡칠은 전력을 다해 다가오는 일대장을 보고 철구를 들어올렸다.
“보고해라.”
헛소리를 하면 단숨에 내려칠 기세를 하고 있었지만 일대장은 표정하나 변화 없이 보고했다.
“초마의 경지에 든 자가 있습니다.”
“웃기지 마라! 초마의 경지에 든 자가 무림에 나타나지 않은지 벌써 백년이 지났다!”
“초마의 경지가 맞습니다.”
일대장의 흔들림 없는 보고를 듣던 곡칠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
초마의 경지에 든 자가 적에 있다면 이건 아예 싸움 자체가 안된다. 병력의 차이는 단지 그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니 말이다.
곡칠은 문정선을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
“운이 좋군. 문장주.”
“누가 들어야 될 말인지 모르겠군.”
태연하게 말하는 문정선을 보며 곡칠은 철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 신세 진 것은 내 평생 기억하도록 하지.”
문정선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답했다.
“얼마든지……”
곡칠은 손을 들어올려 소리쳤다.
“모두 후퇴해라!”
곡칠의 명령에 이대장은 품에서 죽통을 하나 꺼내들었다. 죽통에 달린 끈을 잡아당기자 하늘로 푸른색의 신호탄이
올라갔다. 곡칠이 뒤로 물러날수록 문정선과 그 둘 사이를 가로막는 홍마철시대원들이 늘어났다. 곡칠은 물러나면서
문정선을 향해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허튼 수작은 부리지마라.”
문정선은 아무 말 없이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는 곡칠을 쏘아보았다. 문정선은 문득 생각이 나 유청운에게 다가갔다.
안색이 파리하게 변한 채 무리하고 서 있는 유청운을 향해 다가간 문정선이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 말게.”
유청운은 힘겹게 미소 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허허허. 아닐세. 이대로 무리하다간 나을 내상도 낫지 않는 법일세.”
“문장주님도 내상을 입지 않으셨습니까?”
“허허허. 괜찮네. 나는 어차피 이곳을 완전히 정리할 때까지 쉬지 못할 몸이지 않은가?”
“그러시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유청운을 바라보던 문정선은 일대제자 두 명을 불렀다.
“철우. 철호. 유공자를 산장으로 모셔라.”
“예.”
두 명의 일대제자가 앞으로 나와 유청운의 옆으로 다가갔다. 유청운은 포권을 취해보였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시게.”
문정선은 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정선은 일대제자 두 명의 부축을 받은 유청운이 장내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크윽!”
억지로 누르고 있던 내상의 통증에 문정선은 휘청거렸다. 일대제자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본 문정선은 손을 내밀어
그들을 제지했다.
“지금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
문정선의 말에 일대제자들을 모두 자리에 멈춰 섰다. 문정선은 곧장 지시하기 시작했다.
“홍마철시대원이 어디까지 물러나는 지 확인하고 부상자들을 모두 산장으로 옮겨라. 산장의 진화작업도 어서 마무리
짓도록 해라.”
“예.”
일대제자들은 이대제자들을 데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창천궁의 무사들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저희가 호법을 서겠습니다. 잠시라도 내상을 다스리시지요.”
문정선은 창천궁 무사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것 없네. 지금은 그럴 틈이 없어.”
백연문은 푸른색의 신호탄이 터진 후에 정찰을 보냈던 창명백검수들이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창명백검수들은 그의
앞에 부복하며 보고했다.
“홍마철시대원 전원이 후퇴했습니다.”
“정말인가?”
“예. 이미 산장 주변에는 이곳에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홍마철시대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삼인 일조로 산장 주변을 순찰하라.”
“알겠습니다.”
백연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솔직히 오늘의 야습에서도 상처가 다 낫지 못한 창천궁의 무사들이 나와 태반이 죽을
뻔했다. 아니 어쩌면 완전히 몰살당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연문은 고개를 돌려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그가 있었기에 두 번의 전투 모두 승리할 수 있었다. 철마성의 과감한 용병술에 손도 제대로 못써보고 당할 뻔한
것이 그 덕에 위기를 두 번이나 모면했다.
“운오라버니.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백연혜가 다가가 말을 거는 모습을 보고 백연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라면 너한테 충분하구나. 아니 어쩌면 과분할 지도 모르겠구나.’
백연혜는 조심스럽게 유세운에게 다가갔다.
유세운은 입만 벌리면 선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크윽! 젠장! 입안도 너무 비리고 죽을 맛이군.’
유세운은 백연문에게 보고하는 창명백검수들의 말을 들은 터라 마음이 놓이자 다리가 풀렸다.
“운오라버니!”
비틀거리며 은광천세로 만들어진 화구로 떨어져 내리는 유세운을 백연혜가 다급하게 손을 내밀어 잡았다. 유세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선혈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연혜. 나 이제 좀 쉴께.”
“운오라버니? 운오라버니!”
백연혜는 유세운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품에 안았다. 유세운은 흐릿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백연혜의 목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웃음 지었다.
아니 웃음을 지으려고 생각했다.
고작 황금 일만냥?(1)
고작 황금 일만냥?
쾅!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현 철마성주 철마멸뢰 독고황은 자신 앞에 부복하고 있는 패력구 곡칠에게 극마(剋魔)의 기운을 숨기지 않고
내뿜었다. 보고를 올렸던 곡칠은 식은땀을 흘렸다.
독고황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의 짙은 검미가 미미하게 떨렸다. 독고황은 자신의 멋들어진 콧수염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화를 삭였다.
“다시 한번 보고하라.”
부복하고 있던 곡칠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보고를 시작했다.
“흑마육령 생포, 철마십영, 멸천이십사검 전멸. 황마철웅대 삼백 생포 및 사망. 홍마철시대 삼백 생포 및 사망,
이백 생환(生還)했습니다.”
독고황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홍마철시대의 대장인 자네의 얘기를 듣고 싶군.”
“죄송합니다.”
“그게 전부인가?”
“예.”
독고황은 자신의 거처인 마제각(魔帝閣) 칠층 밖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게 누구 때문이라고 했나?”
“광오문주 일권무적 유세운이라는 자입니다.”
“유세운…….”
독고황은 유세운의 이름을 입으로 되뇌었다. 단신으로 철마성 세력의 사 할(四割)을 무력화 시킨 자였다. 독고황은
부복하고 있는 곡칠을 바라보았다.
홍마철시대의 대주이자 아직 단 한번도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유능한 인재였다. 독고황은 입맛이 썼다.
“초마(超魔)의 경지라고 했나?”
“예.”
독고황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신이 직접 나선다 해도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절로
헛웃음이 났다.
“무광의 제자라고?”
“예.”
독고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독고황의 갑작스런 질문에 곡칠은 고개를 들어올리며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에 대한 건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곡칠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당대에 초마의 경지에 든 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설혹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유일하게 밖으로 드러난 인물이었다.
독고황은 주저하는 곡칠의 얼굴을 바라보다 가볍게 웃음지었다.
“그만 물러가게.”
“예.”
곡칠은 깊게 고개를 숙인 후 마제각에서 물러났다. 독고황은 자신의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철마성의 태상각(太上閣).
철마풍(鐵魔風) 독고청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넌지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탁자에 앉아 독고청이 차를 따르는 모습을 바라보던 죽립인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글쎄요.”
독고청은 자신의 잔에도 차를 따르고는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독고청은 찻잔을 집어 들며 웃음 지었다.
“재미있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독고청은 죽립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이네.”
죽립인은 찻잔을 들어 향을 맡고는 천천히 한 모금을 마셨다.
“초마의 경지에 든 자를 내 생에 자네 말고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죽립인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의 인물이긴 했습니다.”
독고청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자를 한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아.”
“그러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죽립인도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한번 만나볼까요?”
죽립인의 물음에 독고청은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가 만나면 내가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그건 안 되겠네.”
죽립인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과찬이십니다.”
독고청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주게.”
“알겠습니다.”
“일단 그를 먼저 해결 봐야 겠군.”
죽립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청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성주를 부르게.”
죽립인은 멀어져가는 하나의 기운을 느끼며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처음에 왔을 때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철마오령을 보고 독고청의 야심을 조금은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철마오령의 실력은 내성의 누구 못지않은
실력까지 올라와 있었다.
독고청은 죽립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다음에 보지.”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죽립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독고청은 혀를 찼다.
“쯧쯧. 아직도 저자의 내력을 모르겠다니……”
“어쩐 일이냐?”
마제각에서 갑자기 찾아온 철마일령을 맞이한 독고황은 언짢은 목소리로 물었다,
“태상성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아버님이?”
“예.”
독고황은 철마일령을 바라보며 입맛이 썼다.
예전에는 단순히 독고청을 호위하는 호위무사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자신과도 승부를 장담 못할 만큼 강해져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
철마일령은 아무 대답 없이 서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독고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오직 독고청의 명령만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태상각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독고청이
자신에게 모든 걸 물려주면서 데려간 인물이 철마오령이었다.
독고황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알겠다.”
“그럼.”
철마일령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자리에서 물러갔다. 독고황은 한숨을 내쉬고는 창 밖으로 태상각을
바라보았다.
독고청은 철마일령이 돌아오자 다시 찻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을 때쯤 시녀하나가 독고황의 방문을 알렸다.
“성주님이 오셨습니다.”
“음. 들어오시라 하거라.”
“예. 성주님. 드시지요.”
문이 열리고 독고황이 방안으로 들어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자리에 앉거라.”
“예.”
독고황은 탁자의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독고청은 펄펄 끓은 찻주전자를 들고 탁자로 다가갔다. 독고황의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문을 열었다.
“황아야.”
“예. 아버님.”
독고청은 자신의 찻잔에도 차를 따랐다. 독고황은 말없이 독고청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독고청은 자리에 앉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얘기는 들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재밌는 아이더구나.”
“예.”
독고청은 독고황의 난처한 표정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벌써 이십년이 다되어가는군.”
“예.”
“그래 어떻더냐?”
“아직 천하는 제 마음대로 안 되더군요.”
독고청은 천천히 찻잔을 들어올려 향을 맡았다.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냐?”
“고민 중입니다.”
“초마의 경지에 들었다고?”
“예.”
독고청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를 잡으려면 얼마나 들겠느냐?”
독고황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초마의 경지에 든 고수를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내성의 고수 중 절반은 나서야 피해 없이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성의 고수 중 절반이라……”
독고청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심각한 일이군.”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그렇다고 가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 아니냐.”
“예.”
독고청은 탁자에 팔을 올리며 웃음 지었다.
“내가 만나보마.”
“하지만……”
독고청은 손을 들어올려 독고황의 말을 막았다.
“괜찮다.”
“그게 아니라 성을 나서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독고황은 독고청의 물음에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성을 안 나간지가 벌써 사십년은 된 것 같은데 그 정도의 일로 나간다는 것은 무리가 있구나.”
“하지만 그럼 그자는 어떻게?”
“허허허. 아직 멀었구나.”
“예?”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독고황을 향해 독고청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를 부르면 되지 않겠느냐.”
“그를 부르란 말입니까?”
독고청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독고황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부른다고 이런 사지(死地)로 오진 않을 것 같습니다.”
“보고를 받지 않았느냐.”
“받았습니다만……”
독고청은 어이없어 하는 독고황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재밌는 아이더군.”
“예.”
“그냥 불러도 오겠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독고청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운이 좋으면 손 안대고 코를 풀 수도 있는 일이지.”
“그 말씀은 혹시……”
독고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여기까지 찾아오면 내가 만나볼 것이고 못 찾아 온다해도 강남무림 정복의 걸림돌이 없어지는 거니
우리에게는 손해 볼 것이 없지.”
“그렇군요.”
독고청은 시선을 찻잔으로 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초마의 경지에 든 고수인데 예의는 차려야지.”
“알겠습니다.”
독고황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독고청은 독고황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그 일은 그렇게 처리 하거라.”
“예. 그 건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럼 차나 마저 들고 가거라.”
“예.”
“헌이는 요즘 어떠냐?”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폐관수련에 들어갔습니다.”
독고청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일은 내가 한번 찾아가 봐야 겠구나.”
“그래주시면 헌이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그래. 삼룡삼봉에는 들었다고는 하지만 초마의 경지에든 아이가 나오는 판국이니 많이 노력해야 될 거야.”
“예. 물론입니다.”
독고청은 독고황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고생해야 할 거야. 헌이에게 힘을 실어 주려면 말이지.”
독고황은 독고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철마성의 이름을 욕보이지 말거라.”
“물론입니다.”
독고황은 독고청의 얼굴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자신이 물려준 철마성이 다른 육대세력 어디에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약해져 버렸다.
독고황의 잘못은 없었다. 초마의 경지에 든 고수는 자신이 알기로도 근 백여 년 동안 없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초마의 경지에 든 고수에게 너무나 많은 손실을 입었다.
독고청은 찻잔을 들어 남아 있는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고작 황금 일만냥(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