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육대장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옆에 있던 칠, 팔대장에게 눈짓을 했다. 칠, 팔대장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 각각 세 대의 화살을 준비한 육, 칠, 팔대장은 침착하게 기다렸다.
“크아악!”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자가 날아가고는 그 자리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순간 육, 칠, 팔대장의 화살이 다른
화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쏘아졌다.
슈아악-
나타난 인영은 쏘아진 화살이 다가오자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을 했다.
“이런!”
백연문이 놀라는 사이 장내에 나타난 인영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헉헉! 뭐야 이건?”
장내에 나타난 인물은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백연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공자.”
“응? 아! 소궁주는 왜 여기 나와 있는 거요?”
유세운은 산보를 나오다 마주친 것처럼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백연문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거열이 대신 대답했다.
“적들이 쳐 들어왔는데 가만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소!”
유세운은 쓰러져 있는 거열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가만 앉아 있었으면 다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
유세운은 거열에게 핀잔을 주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활을 쏜 자들을 찾았다. 아직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자들을 발견한 유세운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이거 나한테 준거… 너희냐?”
“네…네놈은 누구냐?”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일단 받은 거는 돌려주고 얘기하지.”
“뭐?”
유세운의 손에서 섬전처럼 아홉 개의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헛!”
헛바람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세 명의 대장은 황급히 보법을 밟아 나갔다.
현란하게 움직이던 세 명의 대장은 멈춰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던 화살에 아무도 상처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서로 웃음 지었다. 육대장이 유세운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크크크. 뭐냐? 한가락 하는 녀석인줄 알았는데.”
“뭐? 웃기고 있군.”
“응?”
육대장이 의아해 하는 사이 옆에 서 있던 칠대장이 신음성을 터트렸다.
“제길! 당했어.”
“무슨 소리야?”
칠대장은 자신의 철궁을 들어 보였다. 시위가 끊어져 있는.
팡!
“크억!”
한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화살들을 소매로 감아 밖으로 뿌린 문정선의 손에서 다시 한번 유성장이 터져 나왔다.
흐르듯이 뻗어가는 강기 앞에 두 명의 홍마철시대원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홍마철시대원들 사이에 우뚝 선 문정선의 전신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세어 나왔다. 문정선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장이 누구냐?”
문정선의 기세에 눌린 홍마철시대원들 사이로 등에 하나의 커다란 철구를 맨 자가 나타났다. 가냘파 보이는 몸매와
비교 돼 철구가 더욱 흉폭해 보였다. 태양혈이 불쑥 튀어나온 사내가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창운산장주인가?”
문정선은 나타난 사내를 보고 한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패력구 곡칠?”
“후후후. 다행이군. 나를 알아봐주다니. 그렇다면 자네가 유성장 문정선이겠군.”
“알아봐줘 고맙네.”
문정선을 바라보던 곡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거 이거 아무리 철마성에서 나올 일이 드물었다지만 이렇게 나를 우습게 기억하고 있다니 의외군.”
“그래? 우습게 기억한 적은 없지만 상대 못할 것도 없지.”
문정선은 자세를 바로하고 곡칠을 쏘아보았다. 곡칠은 문정선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보더니 등에 매고
있던 철구를 들어 올렸다.
“크크크.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군. 유성장 문정선의 명성을 말이야.”
“이제라도 기억해주니 다행이군.”
“크크크.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어.”
문정선은 고개를 돌려 창운산장을 돌아보았다. 문정선의 얼굴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창운산장을 불태운 대가를 치루게 해주겠네.”
“기대해보지.”
유세운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나오지.”
“크크크. 이제 도망가는 것을 포기한 거냐?”
장내에 나타나며 괴소를 터트리는 인물을 보며 유세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까부터 날 쫓아오던데 누구냐?”
“크크크. 살다 살다 이렇게 버릇없는 녀석은 처음이군.”
유세운은 자신을 비웃는 노인을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그러게 말이야. 까마득한 후배 녀석이 선배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꼴이라니…상당히 불쾌해.”
“그게 무슨 말이냐?”
유세운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자! 후배가 먼저 이름을 밝혀야지. 너흰 뭐하는 놈이냐?”
“크크크. 어차피 죽을 놈. 자길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염라대왕 앞에서 할말이 있을 터. 우리는
철마십영이다.”
“철마십영?”
유세운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백연문과 거열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백연문의 탁한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철마십영!”
“응? 유명한 가요?”
유세운의 질문에 백연문과 거열이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철마십영은 뒷짐을 풀며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견문이 짧은 놈이 더 이상 견문을 넓혀 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한다니 마음이 아프군.”
유세운은 귀를 파면서 딴청을 부렸다.
“한 가지만 말해주지.”
“뭘 말이냐?”
철마일영의 물음에 유세운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내가 평상시 같지 않아서 심하게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거 말야.”
“갈!”
분노한 철마일영의 일갈을 들으며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던지며 손짓했다.
“어서 시작하자고.”
“크크크. 좋아. 어디 입심만큼 실력도 뛰어난지 보도록 하지.”
유세운은 갑자기 생각난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아! 너희가 그 흑마육령인가 뭐시기 하는 놈들보다 강했으면 좋겠군. 그 늙은이들 형편없더라고.”
유세운의 말에 철마십영은 급속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무리 헛소리를 하고 있다해도 단신으로 육합천마진을 깬
상대라는 것이 기억이 났다.
“받아라! 패력진천(覇力震天)!”
곡칠의 철구가 하늘 높이 치켜 올려 졌다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강기를 머금고 떨어져 내리는 철구의 기세를
보고 문정선의 안색이 굳어졌다.
문정선의 신형이 되레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우측으로 몸을 틀며 일장을 뻗어냈다. 비스듬히 내질러낸 일장에 곡철의
철구가 바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찌직-
강기의 여력에 옷이 찢어졌지만 문정선의 몸은 더욱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일장을 내질렀다.
문정선의 성명절기인 유성장 제 이초식 유성삼절(流星三絶)이 펼쳐졌다.
곡칠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제법이군!”
곡칠은 뒤로 물러나며 재빠르게 철구를 횡으로 그었다.
팡! 팡! 팡!
문정선의 유성삼절이 세 번에 걸쳐 짧게 끊어 치자 곡칠은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나서야 장력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곡칠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이 초식의 이름이 뭐지?”
“유성삼절이라고 하지.”
곡칠은 문정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크. 이름에 딱 어울리는 무공이군. 좋은 견식이었다.”
“고맙군.”
문정선은 절호의 기회를 잡고도 상대를 세 걸음 물러나게 한 것 밖에 없자 입맛이 썼다. 문정선은 자세를 바로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
“크크크. 좋아. 나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곡칠의 철구에서 패력풍우(覇力風雨)가 쏟아져 나왔다. 시야를 온통 가리는 강기를 보고
문정선의 안색이 굳어졌다.
유세운은 자신의 주변을 일 장 간격으로 둘러싼 철마십영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너희도 진법이냐?”
“크크크. 물론이다. 십방무영진(十方無影陣)이라고 하지.”
“좋아. 귀찮으니 어서 덤벼라.”
“받아봐라!”
철마일영과 철마삼영, 철마칠영이 동시에 장력을 내뻗었다. 유세운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팔각연환권을 펼치기
시작했다.
퍼퍼펑!
유세운은 일장을 나눠보고 절로 안색이 찌푸려졌다. 상세가 완치되지 않아서인지 세 명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첫 번째 공세를 막아내기 무섭게 철마십영의 다른 인물들이 장력을 날렸다.
“차륜전(車輪戰)인가?”
유세운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삼 초식까지 막아냈을 때 은은히 단전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길게 끌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좋아! 각오해랏!”
유세운의 십지에서 와선파천지가 뿜어져 나왔다.
철마십영은 동시에 자신을 공격해오는 유세운의 지력에 장력을날렸다.
퍼퍼펑!
유세운은 그 틈을 노려 단숨에 철마일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마일영은 갑작스레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유세운을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유세운의 입가에 승리에 찬 미소가 그려졌다.
“한번 받아봐라!”
유세운의 일 권이 질풍처럼 뻗어나가자 철마일영은 쌍장을 뻗어냈다.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강기를 보며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잡았어!”
유세운의 일 권에 실린 와선형의 강기가 철마일영의 장력과 부딪치는 찰나 한걸음 더 나아가며 철마일영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세찬 경력에 옷이 찢어질 듯 펄럭였지만 아랑 곳 않고 어깨로 들이 받았다.
“젠장!”
한마디 욕설을 내뱉으며 철마일영은 좌장을 내뻗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좌장은 미쳐 반도 뻗기 전에 유세운의
어깨에 부딪쳤다.
“크악!”
단숨에 조각난 좌측 손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나는 철마일영의 일그러진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유세운은 자신의 등
뒤에서 밀려오는 경력을 느끼고 철마일영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웃기지마!”
유세운은 좌측 발을 중심으로 빠르게 몸을 회전하며 쌍권을 내질렀다.
퍼펑!
유세운은 두 명의 장력을 쳐내는 순간 다시 옆구리로 공격해 들어오는 두 명의 장력을 느꼈다. 유세운의 양쪽
팔꿈치가 두 방향의 장력을 막아냈다.
“크윽!”
진기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야 하건만 도중에 끊어져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내상이 더 깊어진 것을
느낀 유세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철마일영은 그런 유세운을 보며 웃음 지었다.
“크욱! 크크. 난 비록 팔 하나…를 잃었지만 너는 이 자리에서 …큭! 목숨을 잃을 것 같군.”
유세운은 철마일영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고작 이정도 실력으로 나를?”
“크크크.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나? 이제 진정한 우리의 힘을 보여주마.”
유세운은 좌측 팔을 감싸 쥔 채 소리치는 철마일영을 보다가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크크. 하하하. 하하하하!”
갑자기 터져 나온 앙천광소(仰天狂笑)에 그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홍마철시대원과 철마십영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백연문과 거열은 유세운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웃음을 멈춘 유세운은 철마십영을 차례로 쳐다보며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좋아. 길게 싸우기 지겹다. 한 수에 승부를 가리자.”
“한 수에?”
철마일영의 물음에 유세운은 가벼운 코웃음으로 대답했다. 철마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게 소원이라면 단 한 수에 저승으로 보내주마.”
유세운의 입가에 그려진 장난끼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은광천세(銀光天勢)(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