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유세운은 인상을 구기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치사한 녀석들!”
앞으로 튀어 나가던 유세운은 저 뒤에서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여섯 명의 노인들을 보고는 멈춰섰다.
상황을 보아하니 비록 하후패가 다치긴 했지만 명천십이검이라면 쉽게 당하진 않을 것 같았다.
유세운은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는 자신을 향해 날아온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흑마일령은 유세운의 앞에 내려서서 웃음을 지었다.
“유세운이라는 아이가 너냐?”
유세운은 한쪽 눈썹을 치켜 뜨더니 피식 웃었다.
“아이? 이 노친네가 내가 누군지 알고 묻는 거야?”
“노친네?”
유세운의 말에 흑마일령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흑마일령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화를 삭혔다. 유세운은
흑마일령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봐 노친네. 선배님을 뵀으면 인사를 해야지. 그 뻗뻗한 자세는 뭐야? 내가 머리를 눌러줘야 할꺼야?”
유세운의 말에 흑마일령은 자신의 수염을 쥐어뜯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흐흐흐. 네놈의 사부가 누구길래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냐?”
유세운은 그의 물음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부님 이름을 들으면 감히 고개도 못들고 있을거면서 시끄럽군.”
“그러니까 그녀석이 누구냔 말이다!”
유세운은 가볍게 손가락을 흔들며 비웃었다.
“과연 사부님의 이름을 들을만한 녀석들인지는 한번 붙어보면 알게 되겠지. 덤벼라.”
흑마일령은 기가 막혀 고갯짓으로 형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유세운은 자신을 둘러싸는 흑마육령을 바라보며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어서 시작하지. 빨리 끝내고 도와줘야 될 것 같아.”
“그 버릇없는 입은 우리가 직접 비틀어 주마.”
유세운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하후패는 상처가 얕지 않음을 보고 안색을 찌푸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명천십이검 덕에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이대로 싸우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명천일검이 걱정스레 물었다.
“어떠십니까?”
“저들이 누군지 알겠는가?”
명천일검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강기를 쳐내며 대답했다.
“스물네 명으로 이루어진 자들이라면 아무래도 멸천이십사검인 듯 합니다.”
“그런가?”
하후패는 주변을 살피며 진기를 운용해 봤다. 단전에서 뻗어나오던 진기는 좌측 허리에 남긴 자상 근처에서 막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하후패는 그곳을 제외한 곳으로 진기를 돌리며 돌아보았다.
멸천이십사진의 진력(陣力)에 의해 주변 상황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밀려오는 강기들과 그것을 힘겹게 받아내는
명천십이검만이 보였다. 하후패는 숨을 들이마시고는 명천십이검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틈을 만들테니 그때 진을 파괴하게.)
(알겠습니다.)
명천일검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본 하후패는 진기를 끌어 모았다. 그의 장심에서 피어나기 시작하는 강기의
덩어리는 곧 둥글게 모여 강환(罡環)이 되어갔다.
하후패는 극심한 진기 소모로 인해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유세운은 자신의 주위 여섯 방위를 선점한 흑포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노친네들 이름이 뭐야?”
“갈! 우리 흑마육령에게 걸린 이상 네놈은 이곳에서 뼈를 묻을 것이다!”
“흑마육령? 흠. 좋아 이제 시작하지?”
유세운은 자신의 정면을 막고 있는 흑마일령의 등 뒤로 달려오는 황색의 거한들을 바라보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정도의 인원이라면 창천궁의 무사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창천궁의 무사들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다가와 있었다.
흑마일령은 진기를 일으키며 괴소를 흘렸다.
“크크크. 육합천마진(六合天魔陣)이다. 어디 그 여유 어디까지 가나 보도록 하지.”
유세운은 말없이 흑마육령이 일으키는 기세를 살펴보았다. 전신을 칭칭 옭아매는 듯한 진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좋아! 서로 준비는 끝난 거 같군.”
유세운의 왼발이 진각을 밟으며 힘차게 일권을 내뻗었다.
후웅-
강맹한 권력(拳力)이 와선형으로 뻗어나갔다.
“응?”
유세운은 자신의 내뻗은 권력이 망망대해에 빠진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잠시 안색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흑마일령의 입에서 다시 한번 괴소가 흘러 나왔다.
“크크크 이제 시작일 뿐이다.”
흑마육령이 좌우로 현란하게 보법을 밟기 시작하자 그들의 신형이 점점 흐려지며 주위가 어두워졌다.
유세운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젠장 사부한테 진법에 대한 것도 좀 배울걸 그랬나? 하나하나는 형편없는 것들이 뭉치니까 제법이네.’
“크크크. 한번 받아봐라!”
흑마일령의 괴소와 함께 사방에서 강기가 밀려왔다.
유세운은 자신에게 밀려오는 강기를 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가중되는 진력에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좋아 한번 해보자구!”
유세운의 손에서 와선파천지가 진세를 향해 뻗어나갔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유세운을 향해 좁혀져 오던 진세가 넓어졌다. 흐릿한 진세 밖으로 창천궁의 무사들과 황색의 거한들이
격돌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세운은 백연혜가 검을 뽑아들고 선두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딜 보는 거냐?”
흑마일령의 일갈과 함께 진세가 다시 한층 강해졌다. 다시 주변이 어두워지자 유세운이 인상을 구겼다.
“오! 그래? 이것들이 진짜!”
유세운의 주먹에서 강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백연혜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황마철웅대원의 권력을 피하며 일검을 내뻗었다. 황마철웅대원의 권력을 헤치며 올라간
장강불진 일초에 거한은 목을 내주었다. 백연혜의 옆에 나타난 여운은 황마철웅대의 권력을 쳐내며 일검을 내리
그었다.
“크억!”
여운은 백연혜의 옆에 서서 차분하게 말했다.
“위험합니다. 이러다가는 저희가 포위되고 맙니다.”
“흐흐흐. 그러게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군.”
여운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보고 침음성을 삼켰다.
“흑웅마 사적?”
“크크크. 요즘 한창 철마성에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여운이 자네인가 보군.”
백연혜는 말없이 사적을 쏘아보았다.
사적은 백연혜의 눈빛을 받더니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고맙군. 이렇게 내 앞으로 달려와 주다니 말이야. 솔직히 고민이었다고.”
“고민이라니 무슨 말이죠?”
백연혜의 질문에 사적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솔직히 쉽지 않은 싸움이거든. 금무신장과 명천십이검이야 잡을 수 있지만 남은 우리만으로 너희 전부를 막기가
쉽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사적은 내력을 담아 일갈했다.
“주위를 막아라!”
“존명!”
백연혜는 자신을 중심으로 원형을 짜는 황마철웅대를 보며 앞으로 나선 것을 휘회했다. 장강삼검중 이검의 요채를
어렴풋이 알게되자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과 창천척마대의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선두에서 검을 휘두르게
했다.
사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말해주지. 내기를 해도 좋아.”
“무슨 말이냐?”
여운의 물음에 사적은 느긋하게 말했다.
“이 포위망을 뚫기 전에 반드시 너를 죽이고 백연혜를 인질로 잡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사적은 음침하게 웃으며 천천히 뒷짐을 풀었다.
명천십이검의 급박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진세의 위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하후패는 자신의 장심에 모인 강환을 바라보았다. 평상시에 만들어 내는 것에 비하면 형편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후패는 씁쓸히 웃으며 명천일검의 옆에 섰다.
“멸천이십사검. 비겁한 암수 따위로 무너질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마.”
“크크크. 아까 베인 상처가 얕았나 보군. 헛소리나 하는 것을 보니.”
진세 속에서 들려오는 멸천이십사검의 목소리에 하후패는 가볍게 웃어 주는 것으로 대답했다. 하후패의 손이 머리
위로 치켜 올려지며 그의 장심에 모였던 강환이 빛을 발했다.
멸천이십사검의 다급한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환?”
“아니 어떻게 저정도의 상처를 입고?”
하후패의 입가에 고소가 그려졌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내가 바로 창천궁의 무상 금무신장이다!”
하후패의 손에서 쏘아진 강환이 멸천이십사진의 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멸천파멸강(滅天破滅罡)을 펼쳐라!”
하후패가 날린 강환을 향해 멸천이십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기들이 쏘아져 나갔다. 한점으로 모이는 강기들이
강환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콰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조금씩 힘이 약해지는 강환을 보며 하후패가 전음을 보냈다.
(지금이오!)
명천일검의 고개가 끄덕여지며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이다! 진을 깨트리자!”
명천일검을 시작으로 명천십이검의 검에서 강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사적은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크크크. 이거 어쩌면 좋을까?”
백연혜의 눈매가 파르르 떨려왔다. 여운에게 황마철웅대원의 세 명이 공격을 시작했고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사적의 모습이 악몽처럼 느껴졌다. 백연혜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장강삼검중 이검까지 밖에는 펼치지 못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겨룰만해. 이자만 죽이면 돼.’
백연혜의 차분한 신색을 바라보던 사적은 자세를 낮추었다.
“그럼 선수를 양보하지.”
백연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장강삼검의 일초인 장강불진을 펼쳤다. 물이 흐르듯 뻗어오는 검을 보며 사적은
안색을 굳혔다.
“좋은 검법이군.”
사적의 주먹에서 노도와 같은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백연혜의 검은 마치 물이 스며들 듯 강기의 흐름을
헤쳐 올라갔다. 사적은 대경실색하며 좌로 이보 움직이며 쌍권을 내뻗었다.
“어딜!”
사적의 쌍권에서 뻗어 나오는 강기를 보며 백연혜는 다시 장강불진을 펼쳤다. 백연혜는 사적의 강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검이 그의 가슴을 향하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사적은 백연혜의 검이 자신의 양팔사이로 찔러오는 것을 보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좋아. 안기려는 건가?”
“헛소리!”
백연혜의 검이 더욱 빠르게 찔러가는 찰나 사적의 양팔 사이에서 강력한 흡인력이 생겼다.
“이것은?”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이지. 크하하하하.”
백연혜의 검은 사적의 가슴 두 치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졌다. 점점 강인해진 흡인력에 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적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그려졌다.
“죽진 않을 거야.”
사적의 양손이 검을 잡는 순간 검은 산산조각이 났다. 사적은 주저 없이 일권을 날렸다.
백연혜는 힘껏 뒤로 몸을 날렸지만 사적의 강기를 좌측 어깨에 맞고 말았다.
“꺄악!”
창운산장(蒼雲山莊)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