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78화 (7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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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決戰)

난을 닦아주는 정성스런 손길이 하나 있었다.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며 정성스레 난을 가꾸던 노인은 천천히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철마성의 태상성주 철마풍(鐵魔風) 독고청.

독고청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난을 바라보았다. 독고청의 피부는 나이와 걸맞지 않게 고왔다. 독고청의 눈은

예전보다 더욱 깊어졌다. 마기라고는 한점 찾아 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독고청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기척도

없이 서 있는 죽립인을 바라보았다.

“언제 왔는가?”

“지금 막 왔습니다.”

죽립인은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대성하신 것을 감축 드립니다.”

독고청은 죽립인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닐세. 아직 멀었어.”

독고청의 말에 죽립인은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이미 심검을 이루셔서 초마(超魔)의 경지에 드시지 않았습니까?”

“하긴 고작 극마(剋魔)의 경지에서 몇 십 년을 넘어서지 못하던 내게 이정도면 대단하긴 한거지.”

독고청은 가만히 태상각의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약속을 들어주었건만 나는 아직 내 약속을 다 지키지 못했군.”

“아닙니다. 이미 창천궁의 귀주지부까지 무너뜨리지 않으셨습니까?”

“허허허. 이미 알고 있었나?”

죽립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강호에 소문이 자자하게 나 있더군요.”

죽립인의 대답을 들은 독고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자리에 앉게나.”

죽립인은 독고청의 말을 따라 의자에 앉았다. 독고청은 걸음을 옮겨 차를 데우기 시작했다. 독고청은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 죽립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예전이라면 저자를 당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어떨까?’

독고청은 차를 다 데우자 차 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탁자로 다가갔다. 찻잔에 차를 따라서 죽립인에게 건네주었다.

죽립인은 찻잔을 받아들고는 말없이 차의 향을 맡았다.

“예전의 그 용정차로군요.”

독고청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역시 자네가 차를 조금 아는군.”

죽립인은 웃음을 짓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을 감도는 깊고도 부드러운 향에 고개를 끄덕이던 죽립인이 미소

지었다.

“이제는 태상성주님의 성취를 제가 한눈에 알아볼 수가 없군요.”

“허허허. 그런가?”

“환골탈태(換骨奪胎)도 하신 것 같군요.”

“허허허. 그렇게 되었네.”

죽립인의 말을 듣던 독고청의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뻗어 나왔다. 독고청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도 철마성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가?”

“예.”

주저 없이 대답하는 죽립인을 바라보던 독고청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죽립인은 말없이 자신의 차를 음미하며 마시고

있었다. 죽립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독고청을 바라보았다.

“혈천문과의 연계는 잘하신 겁니다.”

“허허허. 그런 말은 말게나. 누가 뭐래도 강남무림은 우리가 재패해 줄 테니 말일세.”

“물론입니다. 저희도 태상성주님만 믿고 있습니다.”

독고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죽립인을 바라보며 등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었다.

‘대체 저 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그닥. 다그닥.

타고 있는 말이 모두 준마(駿馬)인지라 며칠을 제대로 쉬지 않고 달리고 있음에도 말들은 아직 견딜만한 듯 했다.

유세운은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먼지들을 손으로 걷어내며 투덜거렸다.

“이놈의 먼지 때문에 제대로 숨도 못 쉬겠네.”

투덜거리는 유세운을 보며 유주란이 핀잔을 주었다.

“아직도 먼지 타령이냐?”

유세운은 이미 입 주위를 비단 손수건으로 막아서 먼지를 막고 있는 유주란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수건 하나만 줘봐.”

“시끄러. 하나 밖에 안가지고 왔어.”

“쳇!”

유세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비장한 표정을 지은 체 말을 몰고 있었다. 장강을 건너고서는 쉬지 않고

귀주지부가 있는 귀양을 향해 말을 몰고 있었다. 하후패의 말을 따라 축시(丑時)에서 인시(寅時)까지 잠깐 눈을

붙이는 것 빼고는 먹는 것도 거의 마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며 안장의 주머니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육포를 입에 물고 천천히 씹으며 유세운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창명백검수였다. 모두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것만 봐도 눈에 띄었지만 그들의 기세는 단연

으뜸이었다. 모두들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흐트러짐 하나 없이 말을 몰고 있었다. 유세운은 그중 가장 자신에게

시선을 많이 주던 거열을 바라보았다. 창명백검수의 제 일대의 대장이자 이미 검강에 든 고수였다. 눈을 붙이려고

모인 자리면 한번씩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유세운은 시선을 돌려 백연혜를 찾았다. 창천백검수의 대장인 여운과 함께 말을 몰고 있는 백연혜의 면사가 어지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백연혜의 고개가 돌려지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보고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백연혜도 눈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말을 모는데 집중했다. 유세운은 어깨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고는 하후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후패의 기세 또한 처음과 하나 다름없이 여전히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의 뒤를 따르는

명천십이검 또한 잘 벼려진 검같은 기세를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며 유세운은 혀를 내둘렀다.

며칠 전에 척후조로 먼저 앞서간 창검백영대의 일조와 이조의 인물들은 아직 소식이 없었다. 귀주성에 들어 선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창천궁으로 향하는 최단거리를 따라 내려가고 있지만 아직 생존자들을 만나지 못했다.

척후조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이대로 귀양까지 달려가야 할지도 몰랐다. 유세운은 말을 타고

가면서 기지개를 폈다.

“에구구. 이렇게 달리기만 하다가는 완전히 몸이 굳어 버리겠다.”

유주란은 유세운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벌써 며칠째 이렇게 달리고 있으니 이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 같아.”

유세운은 유주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봐. 이 상태로 상대를 만나면 검도 못 뽑아보고 당하는 거 아냐?”

“설마 그러기야 하겠니?”

“그건 아무도 모르지.”

유세운은 마상에서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일주일도 채 안 걸려서 귀양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상대가 될만한 녀석들은 없을지라도 만약이란 것을 생각해서 몸의 상태를 최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유주란도 말없이 말을 모는데 지쳤는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세운아.”

“응?”

“저번에 익힌 변검은 이번에 쓰지 않는게 좋을까?”

“응.”

주저 없이 대답하는 유세운을 쏘아보며 유주란이 다시 물었다.

“너 너무 주저 없이 대답하는 거 아냐?”

“어쩔 수 없어. 아마도 이번에 그런 것을 썼다가는 목숨이 열개라도 부족할 거야.”

“뭐?”

유세운은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생각을 해봐. 이번에 만나는 녀석들은 적어도 다 철탑백마인 정도 되는 녀석들일 거야. 그런 녀석 앞에서 그동안

수련한 산검도 아니고 갑작스레 급조된 변검을 휘두른다는 것은 안 될 말이야. 정말 죽을지도 몰라.”

“그래?”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유주란을 보며 유세운은 말을 바짝 그녀 옆에서 몰며 웃음 지었다.

“그럼 일단 마음으로 검을 떠올려봐.”

“검을?”

“그래. 지금 이렇게 말을 타고 가고 있는데 진짜 검을 뽑을 수는 없잖아.”

“그건 그러네.”

“일단 눈을 감아.”

“눈을 감고 어떻게 말을 몰아?”

“내가 몰아 줄 테니 일단 눈을 감아봐.”

“그래?”

유세운은 유주란이 눈을 감는 것을 보고는 한 손을 내밀어 말고삐를 넘겨받았다.

“그럼 천천히 검을 떠올려봐.”

“잠깐만…”

유주란은 유세운의 말을 따라 천천히 마음속으로 검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검로나 검식은 떠올랐지만 검은

떠오르지 않았다.

“검로나 검식은 떠오르는데 검은 떠오르지가 않아.”

“쯧쯧. 거봐. 검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어떻게 검을 휘두르겠다는 거야?”

“그런가?”

“떠오를 때까지 눈을 감고 있어.”

“응.”

유세운은 저 멀리서 달려오는 인물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척후조의 인물인가?”

“응?”

눈을 감고 있던 유주란이 물어보자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눈을 떠야 될 것 같아.”

“무슨 일 있어?”

“응. 창검백영대 이조의 인물인 것 같아.”

“뭐야? 척후대로 갔던 인물이 왔단 말야?”

유주란은 눈을 뜨고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말을 몰아오고 있는 인물을 확인했다. 창검백영대의 복장을 한 인물이

다급히 말을 몰아오고 있었다. 하후패는 자신을 향해 말을 몰아오는 창검백영대의 인물을 향해 말을 마주 몰아갔다.

창검백영대의 인물은 하후패에게 다가오더니 거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인가?”

“십리 앞에 창천척마대 인물 이십여 명을 만났습니다.”

“오. 아직 살아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뒤를 바짝 뒤쫓아 철마성의 인물들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모두들 말을 멈추고 정열 한 채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 하후패는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철마성의 인물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 되나?”

“대략 백 오십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그럼 이조의 조장이 그곳에 남았느냐?”

“예. 저에게는 보고하라고 말 하고서는 나머지 조원들이 모두 시간을 끌겠다며 막아섰습니다.”

하후패는 시선을 돌려 정열 해 있는 창천궁의 무사들을 향해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지금 십리 밖에서 철마성의 무리들이 창천척마대의 형제들을 쫓고 있다.”

하후패가 잠시 말을 끊자 창천궁의 무사들에게서 살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하후패는 창천궁의 무사들의

기세를 온몸으로 느끼며 사자후를 터트렸다.

“가자! 적들이 코앞에 있다.”

“와아!”

창천궁의 무사들은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하후패의 뒤를 따라 맹렬히 말을 몰았다.

결전(決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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