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복상은 자신의 옆에서 달리고 있는 동철을 보며 웃음 지었다.
“헉헉! 이놈의 강룡십팔장은 다 좋은데 내력소모가 너무 심해!”
“그런가?”
동철은 달리면서도 뒤를 바라보았다. 홍마철시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자신들의 뒤를 쫓는 것이 느껴졌다. 그중 가장 선두에서 쫓아오는 곡칠의 눈에서는 살기가 번뜩였다. 가장 후미를 달리던 동철은 주저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말들을 묶어 놓은 곳까지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복상은 동철을 바라보더니 투덜거렸다.
“조금만 더 가보고 결정하자.”
“응?”
복상은 고개를 뒤로 돌려 달려오고 있는 곡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조금만 더 가보자.”
“그래.”
동철은 복상을 향해 한번 웃어주고는 계속 경공을 펼쳤다. 복상은 앞에서 달리고 있는 혜오를 보며 물었다.
“련주의 상세는 어떻소?”
“내상이 극심한 듯 하오.”
“자하진기로도 안되는 상대였나?”
복상이 투덜거리는 것을 들은 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솔직히 철마성의 위력을 확실히 느꼈소이다.”
“외성의 대주가 저 정도로 강하다니…”
복상이 말을 잇지 못하자 동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강호에 고수는 모래알처럼 많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렇지.”
복상은 옆에서 계속 달리면서 뒤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아오던 곡칠이 보이지 않았다. 복상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이 녀석이 어딜 간 거지?”
동철도 달려가다가 복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복상의 말대로 곡칠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지 보이지 않았다. 복상은 동철의 소매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멈추지 말자. 조금만 더 가면 말을 탈 수 있어.”
“그래.”
동철은 주저하며 복상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곡칠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앞을 막은 철마일영을 쏘아보았다.
“왜 갑자기 추격을 멈추라고 하시는 겁니까?”
철마일영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곡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라고 그 무림이괴를 잡기 싫어서 이러고 있겠나?”
곡칠은 손을 들어 홍마철시대의 추격을 멈추고서는 패력구로 땅을 짚었다. 곡칠은 철마일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철마일영은 품에서 자그마한 종이를 꺼내 곡칠에게 내밀었다. 곡칠은 철마일영이 건네는 종이를 받아 읽어보다가 인상을 구겼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홍마철시대의 부대주가 남은 인원들을 데리고 온다니요.”
곡칠의 말에 철마일영은 하늘을 올려보며 대답했다.
“성주님의 뜻을 내 어찌 알겠는가?”
곡칠은 종이의 하단에 찍혀있는 인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주님의 허가가 떨어진 일이군요.”
“그래. 흑응(黑鷹)을 통해서 온 연락이네.”
“급전입니까?”
“이런 격전장으로 날아올 정도라면 급전이라고 봐야겠지.”
곡칠은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그럼 저희는 그들을 어디서 만나야 하는 겁니까?”
“그거에 대한 이야기는 적혀 있지 않으니 알 수 없지.”
철마일영의 말을 들은 곡칠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일대와 이대의 대장을 향해 명령했다.
“일단 이곳을 정리하고 물러날 준비를 해라.”
“존명!”
곡칠은 동철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반드시 네놈의 숨통은 내가 끊어주마.”
철마일영은 홍소를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철마십영들을 보고 물었다.
“놓쳤나?”
“빌어먹을 놈이 도망가는 재주 하나는 비상하더군요.”
“하긴 현요라는 녀석도 도망가는 솜씨가 여간 비상한게 아니더군. 여덟째도 쫒다가 포기할 정도였다.”
“젠장! 이곳으로 와서 얻은 게 아무것도 없군.”
철마일영은 투덜거리는 철마칠영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
곡칠은 철마십영들의 얘기를 듣다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럼 저희도 일단 물러나도록 하지요. 귀주까지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뭐야!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부대주가 저희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위치를 알 수 없으니 말이죠. 운이 좋으면 가는 길에 만나서 다시 돌아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마일영은 곡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서 서두르지. 그래야 창천궁의 무리들을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 말일세.”
“예.”
동철은 말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말을 타기만 하면 지친 몸을 조금은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쫓아오던 자들도 왜인지 모르지만 추격을 멈추었다. 동철은 장내를 돌아보았다. 백여 명의 정협련의 정예가 오십 명도 채 남지 않았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복상이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어때? 놈들이 계속 추격하고 있나?”
“아니. 아까 그 뒤로는 모두 물러난 것 같아.”
“그래. 다행이군.”
복상은 걸음을 옮겨 혜오의 등에 업혀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호강현을 바라보았다. 복상은 품에서 작은 옥병을 꺼내들었다. 옥병의 마개를 열고 갈색의 단환을 꺼내드는 복상을 보고 동철이 그의 어깨를 짚었다. 복상은 가만히 동철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일단은 련주를 살리고 보자고.”
“하지만 취구환 방내에서도 몇 개 없을 텐데…”
“지금 먹이지 않으면 련주는 정협련으로 돌아가기 전에 죽을지도 몰라.”
복상은 취구환을 호강현의 입에 집어넣고는 내력을 불어넣어 삼키게 했다. 복상은 십강호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련주를 보호해라.”
“예.”
십강호법도 두 명은 당했는지 여덟 명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복상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원청음을 살펴보러 갔다. 원청음도 기식이 엄엄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더 이상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복상은 한숨을 내쉬며 창천척마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어느새 열명으로 줄어있었다.
“일단 우리랑 같이 정협련으로 가세.”
“알겠습니다.”
복상은 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빈 말이 많으니 아무거나 잡아타게.”
“예.”
복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혜오에게 말을 건넸다.
“정협련으로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알겠소.”
혜오는 자리에 일어나며 복상과 동철을 바라보았다. 동철은 아무 말 없이 간신히 벗어난 숲을 바라보고 있었고 복상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사부님은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말을 네 마리만 남겨주시구려.”
“알겠소.”
혜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내의 인원들을 준비시켰다.
“한시라도 빨리 련으로 돌아가야 하니 어서 준비들 하게.”
“예.”
복상은 가만히 서서 숲을 바라보고 있는 동철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일단 앉아서 기다리자.”
“응.”
동철은 복상의 손길을 따라 숲 옆에 서 있는 바위에 앉았다. 복상은 동철을 앉혀 놓고는 자신이 타고 온 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말안장에 매어져 있는 술병을 흔들어보고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동철이 앉아 있는 바위로 다가갔다. 복상은 동철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술병을 건넸다. 동철은 복상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준비는 역시 철저하군.”
“그럼. 어서 한 모금 마시고 넘기라고 나도 갈증이 나 미칠 지경이니.”
“알았어.”
동철은 복상이 건넨 술병을 한 모금 들이켰다. 가만히 있을 때는 몰랐지만 술이 들어가자 그제야 갈증이 느껴졌다.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킨 동철은 복상에게 술병을 건넸다. 복상은 술병을 받아들고는 바로 목에 털어 넣었다. 타는 듯한 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느낌에 복상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거 정말 죽이는군.”
동철은 전신에 온통 피를 뒤집어쓴 복상을 보고 소매를 들어서 얼굴을 닦아 주었다. 복상은 피식 웃고는 가만히 동철의 손을 잡았다.
“이봐. 이봐. 어차피 안 씻기로 유명한 거 알잖아. 옷만 더러워지니 그만해.”
“하지만…”
동철이 뭐라 하려할 때 혜오가 천천히 말을 타고 다가왔다. 복상은 시선을 돌려 혜오를 바라보았다. 혜오는 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준비는 끝났으니 움직이도록 하겠소.”
“먼저 가서 기다리시구려.”
복상의 말에 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철도 고개를 들어 혜오를 바라보았다. 혜오는 동철과 복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럼 무사히 돌아오시오.”
“련주를 부탁하오.”
복상의 말에 혜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몰고 정협련의 정예들이 정열 해 있는 곳으로 가서 소리쳤다.
“돌아가자!”
“예!”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정협련의 정예들을 바라보며 복상은 바위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았다. 등을 바위에 기댄 복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조금은 무리였나 봐.”
“우리가 철마성을 너무 쉽게 본 탓도 있는 것 같아.”
동철의 말에 복상은 피식 웃었다.
“하긴 그들과 언제 부딪쳐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요즘 강호에서 그들과 대적해 본 무인들이 몇이나 있겠어? 그들 서로 견제하기 바빴는데.”
“그래.”
동철은 복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을 내쉬던 동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복상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누가 다가온다.”
“이런 젠장!”
복상은 빠르게 일어나 동철의 옆에 서서는 전방의 숲을 바라보았다. 얼핏 지친 걸음으로 숲의 그림자에서 나오는 인영이 보였다. 동철은 다가오는 인영을 보고 소리쳤다.
“사부님!”
동철은 현요진인에게 다가가다가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현요진인의 왼팔이 뼈가 없는 것처럼 흐느적 거리는 것을 본 탓이었다. 현요진인은 동철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뭐냐? 너희들 기다린 거냐?”
“예. 사부님 하지만 그 왼팔은…”
“이거?”
현요진인은 자신의 왼팔을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철마십영 중 다섯 명에게 쫓기면서 이정도 내줬으면 성공한 거지.”
동철은 두 눈에서 불같은 노화를 뿜어내며 신형을 날리려 했다. 현요진인은 혀를 차며 손을 내저었다.
“멈춰라. 뭐하는 거냐? 그들은 이미 이 숲을 완전히 벗어났다.”
“예?”
복상이 물어보자 현요진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바위로 다가갔다. 동철이 다급히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현요진인은 바위위에 앉아 복상을 바라보았다. 복상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현요진인을 보다가 피식 웃고는 손에 들린 술병을 건넸다. 현요진인은 웃음을 지었다.
“역시 네 녀석은 눈치 하나는 끝내준단 말야.”
현요진인은 입으로 마개를 따고는 술병의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크아! 죽이는 군.”
“이놈아! 내 몫은 남겨 놔라!”
현요진인은 자신의 뒤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뭐냐? 너도 왼팔이냐?”
“젠장! 어쩔 수 없었다.”
홍소는 현요진인과는 다르게 왼팔이 팔꿈치부터 잘려나가 있었다. 지혈과 모든 응급처치는 마쳤는지 더 이상 피는 흘리지 않고 있었다. 홍소는 천천히 다가와 현요진인의 손에서 술병을 낚아채서 남은 술을 몽땅 털어 넣었다. 홍소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현요진인을 바라보았다.
“어째 다쳐도 같은 곳을 다쳤냐?”
현요진인은 오른 손에 들린 불진으로 홍소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럼 너는 이 오른손을 어떻게 버린단 말이냐?”
“크크크. 역시 생각하는 수준이 같다니깐.”
복상은 가만히 홍소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그렇게 다치시고도 입심은 여전하십니다.”
“엥? 뭐야? 너 이놈 그게 사부에게 할 소리냐?”
복상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일단 말에 오르시죠. 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홍소는 가만히 복상이 내민 손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오른 손을 뻗어 그 손을 잡았다. 복상은 홍소를 부축하고서는 말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동철도 현요진인을 부축했다. 현요진인은 동철의 부축을 받으며 웃음 지었다.
“이런 날이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몰랐구나. 내가 네 녀석의 부축을 다 받다니.”
동철은 말없이 씁쓸한 웃음만을 지었다. 저 앞에서 벌써 말에 탄 복상이 소리쳤다.
“서둘러라. 혹시라도 녀석들이 돌아올지 모르니까.”
현요진인은 복상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물러갔다고 말해줘도 믿지를 않는군.”
“어서 말에 오르시죠. 련으로 돌아가 상세를 살펴봐야겠습니다.”
“그래. 어서 돌아가자. 에구.”
결전(決戰)(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