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곡칠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소리쳤다.
“일대와 이대의 대장은 철시연환진을 펼쳐라!”
“존명!”
곡칠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걸음 더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오늘 이곳이 정협련이 사라지는 곳이다.”
“헛소리 마라!”
앞으로 쏘아져 오는 호강현을 보며 곡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용기는 인정해주마! 패력풍우(覇力風雨)!”
호강현은 자신의 시야를 온통 가리는 강기를 보고 빠르게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를 펼쳤다.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며 몇 개의 공격은 피해냈지만 두 번의 공격은 검으로 막아 낼 수 밖에 없었다.
콰쾅!
“크헉!”
뒤로 주륵 밀려나가며 입가에서 선혈을 쏟는 모습을 보고 곡칠은 철구를 들어 자신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정도 밖에 안 된다면 실망인데? 적어도 저기 뻗어있는 원청음은 사가 녀석을 조금은 곤란하게 했던 것 같은데 말야.”
슈슈슝-
곡칠은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하는 철시들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결국 아무도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을 확신했다. 아무리 무림이괴가 뛰어나다해도 철마십영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더욱이 이곳에 있는 인물들은 자신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곡칠은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며 호강현에게 다가갔다. 호강현은 간신히 검을 지탱해서 선 채로 곡칠을 쏘아 보았다. 홍마철시대의 포위망을 뚫으며 쌓인 피로가 갑작스레 밀려와 눈이 감겨왔다. 호강현은 고개를 한번 흔들고는 검을 딛고 일어섰다. 자세를 바로 한 체 검을 겨누는 모습을 본 곡칠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발악인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
호강현은 전신의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자색의 기운이 뻗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검신을 타고 미려하게 뻗어 올라갔다. 곡칠은 싱겁게 웃었다.
“아까 확인해 보지 않았나? 아무리 자하진기가 뛰어나도 고작 검기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한수에 끝을 보자는 건가?”
“끝을 볼 수 있다면.”
호강현은 주저 없이 암향표(暗香飄)를 시전하며 곡칠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곡칠은 애병인 패력구를 강기로 둘러싸고는 호강현을 쏘아보았다. 섬전처럼 쏘아져 오던 호강현의 검에서 매화가 수려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자색의 매화가 열두 송이가 화려하게 피어났다. 곡칠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매화검인가?”
곡칠의 패력구가 밑에서부터 위로 쳐올려졌다.
“패력승천(覇力昇天)!”
강기를 몰고 하늘 높이 치켜 올라가는 패력구의 앞에서 열두 송이의 매화가 사그라졌다. 호강현은 주저 없이 옆으로 신형을 움직이며 다시 검화(劍花)를 피워냈다. 곡칠은 높이 치켜들었던 패력구를 다시 내려쳤다.
“패력진천(覇力震天)!”
다시금 강기를 머금고 내리쳐지는 패력구에 의해 검화가 스러지는 틈을 타 일검을 찔러 넣었다. 곡칠은 순간적으로 쏘아져 오는 검의 기세에 고개를 틀어 피해냈다.
슈각!
“크윽!”
고개를 틀며 간신히 검을 피해내며 패력구를 횡으로 휘둘렀다. 호강현은 다시 한번 검을 펼치려다가 패력구를 막기 위해 검을 틀어 몸을 보호했다.
콰쾅!
“커헉!”
신음성과 함께 뒤로 날아가는 호강현을 보며 곡칠은 이를 갈았다. 곡칠은 턱부터 왼쪽 이마까지 그어진 상처에서 베어 나오는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깊이 베이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왼쪽 눈을 실명할 뻔했다. 곡칠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뇌전검(雷電劍)까지 익히고 있을 줄은 몰랐군.”
“쿨럭! …어때 선물이 맘에 드나?”
호강현은 더 이상 손끝하나 움직일 힘이 없자 자포자기식으로 농을 건넸다. 호강현의 말에 곡칠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물론. 아주 맘에 들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군. 너 같은 애송이에게 일검을 내주다니 말이야.”
“후후후. 칭찬인가?”
호강현은 땅을 짚고 서 있는 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곡칠은 호강현의 일장 앞에서 멈춰 서서는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호강현은 얼굴의 반쪽이 온통 피범벅이 된 상황에서 그렇게 묻는 곡칠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인가?’
호강현은 가만히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는 아직도 별들과 만월이 떠있었다. 가만히 숨을 들이마신 호강현은 두발로 강하게 땅을 딛고서는 검을 들어 곡칠을 겨누었다.
“당신과 같은 무인과 겨루게 되어 영광이었소.”
호강현의 마지막에 발하는 기세에 곡칠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왼쪽 눈의 시야를 가리는 핏물에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좋아. 마지막 말은 잘 들었다. 그럼 이만 마무리 짓도록 하지.”
곡칠은 자신의 패력구를 들어 올려 호강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여줄 이 초식은 패력난강(覇力亂罡)이라는 초식일세.”
“좋소.”
“하앗! 패력난강!”
곡칠이 내뻗는 패력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가 어지럽게 얽히며 뻗어 나왔다. 호강현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무공이었다.
“헛!”
호강현은 갑작스레 자신의 뒷덜미를 강하게 잡아채는 손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그 손길에 의해 뒤로 신형이 던져지며 자신의 앞을 막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동부련주!”
동철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패력난강의 강기들을 바라보다가 반개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지럽게 얽히며 날아오는 강기의 기세들이 하나씩 느껴졌다. 동철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장내의 상황을 보고 다급히 몸을 날려서 호강현을 구했다. 위험한 기세로 들이 닥치는 강기들을 바라보고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곡칠의 패력난강이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동철의 검이 서서히 태극을 그리기 시작했다. 현요진인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사량발천근의 묘리(妙理)를 떠올리며 작은 태극으로 시작해서 어지럽게 얽혀있는 강기를 하나하나 비켜냈다. 동철의 검이 여섯 번의 태극을 그릴 때쯤 곡칠의 강기는 모두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호강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저토록 쏟아져오는 강기를 흘려내는 태극혜검은 본 적이 없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듯 보였다. 호강현은 자신의 몸을 받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현무당주!”
복상은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거렸다.
“고작 도망 간곳이 이곳 밖에 안 된단 말이오?”
“…”
말문이 막힌 호강현을 보고 복상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복상은 혜오에게 호강현을 넘기며 말했다.
“잠시만 맡아 주시오. 우리도 이곳을 벗어나야겠소.”
“알겠소.”
복상은 정협련의 정예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한 곳으로 모여라! 그렇게 흩어져서 적의 철시가 떨어지길 기다릴 것이냐!”
복상의 일갈에 정협련의 정예들은 빠르게 한곳으로 모였다. 그 수를 바라본 복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백여 명에 이르던 인물들이 이제는 고작 육십여 명 밖에 남지 않았다. 복상은 좌우로 나눠져 철시연환진을 펼치고 있는 인물들을 쏘아보고는 소리쳤다.
“나를 따르라!”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복상을 향해 일대의 대장이 소리쳤다.
“저 놈을 먼저 잡아라!”
복상도 이미 자신의 내력이 많이 고갈 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코 이곳을 벗어 날 수 없음을 알기에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일시에 쏘아져 오는 화살을 보고 소리쳤다.
“십강호법은 앞으로 나와라!”
“예!”
복상의 손에서 항룡유회가 펼쳐졌다. 전력을 다한 장력에 밀려 철시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 사이로 날아오는 철시들은 십강호법의 손에 의해 튕겨져 나갔다. 다시금 철시를 먹이는 홍마철시대원을 향해 복상은 연쌍비(燕雙飛)를 펼치며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복상을 향해 홍마철시대원들의 철시가 쏟아졌다. 복상의 손에서 화려하게 용음십이수(龍吟十二手)가 펼쳐졌다. 코앞에 들이닥친 철시들을 대부분 잡아내었지만 결국 왼쪽 어깨에 하나를 맞아 신형이 비틀거렸다. 복상은 멈추지 않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며 다시 한번 항룡유회를 펼쳤다. 눈앞의 홍마철시대원이 철궁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콰쾅!
“크악!”
홍마철시대원이 날아가자 그의 양 옆에 있던 두 명이 철궁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복상은 몸을 돌려 좌측의 인물을 바라본 채로 신룡파미(神龍婆尾)를 펼쳤다.
“크억!”
비명성을 토하며 쓰러지는 뒤의 인물을 돌아보지도 않고 복상은 취팔선보(醉八仙步)를 펼쳤다. 어지럽게 얽히는 보법으로 철궁을 피한 복상은 용음십이수로 홍마철시대원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끄억!”
복상이 나서서 해치우는 동안 십강호법도 다가와 홍마철시대원들을 하나씩 해치우기 시작했다.
곡칠은 잠시 장내를 훑어보고는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제법 쓸만한 놈이 아직도 있었군.”
동철은 말없이 검을 들어 곡칠을 겨누었다. 아직도 방금 전에 느껴졌던 느낌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곡칠은 천천히 패력구를 들어 올리고는 동철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태극혜검은 정말 감명 깊게 봤다.”
“고맙소.”
“어디 다시 한번 받아보아라!”
곡칠의 패력구가 위협적인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동철은 강기를 머금은 채 쏟아져 오는 패력구를 보고는 강기를 일으키며 검으로 자그마한 태극을 그렸다. 패력구의 측면에 대고 옆으로 내력을 불어 넣어 흘려낸 동철의 검이 곧장 곡칠의 목을 향해 뻗어갔다. 곡칠은 다급하게 이형환위(移形換位)를 펼쳐 좌측으로 일척 정도 움직였다. 동철의 검이 허공을 가르자 곡칠의 패력구가 다시 강기를 머금은 채 치켜 올라왔다.
“패력승천!”
동철은 제운종을 펼쳐 뒤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곡칠은 곧장 따라오며 패력구를 휘두르려 했다. 순간 동철의 몸이 허공에 뜬 채로 강기로 태극을 그렸다. 곡칠은 동철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강기의 기세를 보고는 주저 없이 패력구를 내뻗었다.
“패력난강!”
난마처럼 얽히며 뻗어나가는 강기를 향해 동철의 검에서 태극 문양의 검강이 뻗어 나왔다.
콰쾅!
“크윽!”
“큭!”
곡칠은 자신의 발이 땅에 한 치나 박힌 것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은은한 내상도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동철을 살피려던 곡칠은 혀를 찼다.
“젠장!”
동철은 그 여파를 타고 신형을 뽑아 올려 어느새 정협련의 정예들과 합류해 있었다. 이미 홍마철시대의 일대는 거의 괴멸 상태였고 정협련의 정예들은 포위망을 뚫고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곡칠은 옆에 있던 이대의 대장의 철궁을 빼앗아 들었다.
“곱게 도망 갈 수 있을 줄 아는 거냐? 내가 바로 홍마철시대의 대주다!”
철궁이 부러질 듯 휘어지며 세 개의 철시가 매겨졌다. 곡칠의 손이 놓여지며 세 개의 철시가 어둠을 가르며 쏘아져 갔다.
슈아앙-
순식간에 십장을 넘는 거리를 가르고 날아간 화살은 세 명의 정협련의 정예의 등에 꽂혔다.
“으악!”
“컥!”
비명성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인물들을 다급하게 챙겨서 경공을 펼치는 정협련의 정예들을 향해 곡칠은 다시 패력구를 들고 신형을 날렸다.
“놓치지 마라!”
도주(逃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