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도주(逃走)
원청음은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원청음은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그림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거. 이거 장난 아닌데? 게다가 뭐야? 적왕환까지 먹은 거야?”
한번 원청음의 상태를 훑어본 복상은 머리를 긁적였다. 왼쪽 어깨는 뜯겨져나가 있었고 잠력은 격발 되서 이미 손을 쓰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적어도 무림인으로서의 생명은 완전히 끝나있었다. 복상은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긁적이더니 원청음의 어깨 혈도를 막았다.
“으윽!”
원청음은 가벼운 비명과 함께 눈을 떴다. 복상은 원청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봐!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적왕환을 먹다니 무림인으로서 삶은 포기한거야?”
“크크크. 부하들을 다 죽이고 나하나 살아남으란 말인가?”
“그래? 그렇다면 죽겠다는 말인가?”
“크윽! 이미 죽어가고 있는데 무슨 소린가?”
“하긴 무림인으로서는 이미 죽었지.”
복상의 말에 원청음의 뒤에 서 있던 창천척마대원들이 발끈했다.
“대장님에게 무슨 말이냐!”
복상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는 적왕환이 뭔지 모르나?”
“그건 그렇지만…”
“그걸 먹었다는 것은 이미 무림인으로서의 생명은 물론 목숨까지 내놓았다는 뜻이지.”
복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천척마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너희 대장은 이제 죽어가고 있다. 무림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말로 죽어가고 있지. 지금 그를 살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거야!”
복상의 말에 창천척마대원들은 주춤했다. 복상은 고개를 돌려 원청음을 바라보았다. 이미 핏기가 가신체로 기절해 있는 것이 보였다. 복상은 한숨을 내쉬며 창천척마대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살릴 수 있는 겁니까?”
복상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솔직히 확답은 못하겠군. 하지만 결정이 늦어지면 손도 써보지 못해!”
복상의 말에 창천척마대원 전원이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시오!”
“좋아.”
복상은 손을 들어 원청음의 혈도를 빠르게 짚어갔다.
“일단은 경맥을 폐쇄해야해! 잠력이 격발된 그 여운이 남아있어.”
어느새 복상의 뒤로 동철이 다가와 원청음의 상태를 내려보았다. 이미 안색이 파랗게 질린 것이 보통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동철은 복상에게 물었다.
“어때? 괜찮겠어?”
“글쎄. 시간이 도와준다면.”
동철의 물음에 복상은 일어나서 현무당의 인원을 손짓으로 불렀다. 현무당에서 나온 개방의 거지 하나가 다가왔다. 복상은 그의 등에 원청음을 업어주면서 말했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살리는데 주력해라. 이번 전장에 너의 무력은 필요 없으니까.”
“예.”
복상은 고개를 돌려 철마십영과 마주 서 있는 사부를 바라보았다. 철마십영이라면 아무리 사부라해도 상대하기 힘든 상대였다. 더욱이 저들의 뒤에는 홍마철시대까지 있어 길보다는 흉이 많을 것 같았다. 복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홍소의 옆으로 가서 섰다. 홍소는 뒤를 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물러나 있거라.”
“저도 돕겠습니다.”
홍소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건 늙은이들의 싸움이다. 물러가 있어라.”
“사부님!”
복상이 소리치자 홍소는 철마십영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호련주. 어서 이들을 데리고 피하시오.”
“어이하여 피하란 말입니까?”
호강현의 물음에 현요진인이 불진을 휘저으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철마십영이 나왔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소. 어서 이들을 데리고 피할 생각이나 하시오.)
“그 정도란 말입니까?”
호강현의 물음에 철마일영이 웃음 지었다.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건가? 오늘 이 자리가 눈에 가시였던 정협련의 무덤이 될 자리다.”
“크크크.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자네 너무 자신을 과신하는군.”
현요진인의 말에 철마일영은 작게 키득였다.
“크크. 좋아. 좋아. 어디 그 잘난 입심만큼 능력이 되는지 보겠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철마일영은 일장을 날렸다. 뻗어오는 강기를 보고 현요진인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불진을 휘둘렀다. 불진이 비스듬히 원을 그리며 철마일영의 강기를 튕겨냈다. 현요진인은 내친 김에 앞으로 몸을 쏘아나가며 불진을 휘둘렀다. 불진이 태극을 그리려하자 철마십영이 동시에 덤벼들며 장력을 내뿜었다. 홍소도 뒤에서 지켜보다 다급하게 강룡십팔장중 항룡유회(亢龍有悔)를 뿌려냈다. 홍소의 왼손이 크게 원을 그리고 그 사이로 내뻗어지는 우장에서 노도와 같이 장력이 뻗어나갔다.
콰콰쾅!
강력한 경력의 충돌에 모두 눈을 가렸다. 사방으로 비산한 돌멩이들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자 철마일영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홍소와 현요진인은 다섯 걸음을 물러난 채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철마일영은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았다. 열명이 합한지라 자신들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철마일영의 입에 미소가 어렸다.
“이제 확실해 졌군. 너희는 반드시 이곳에서 죽는다.”
현요진인은 자신의 불진을 한번 털어내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명성이 헛된 건 아니군. 그렇다고 너희가 이긴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까? 솔직히 우리 중 셋만 있어도 너희 중 한명은 충분할 것 같은데?”
“헛소리!”
홍소의 외침이 우습다는 듯이 철마십영은 세 명씩 나눠서 그들의 앞에 섰다. 철마일영은 홍소의 맞은편에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과연 너희가 도망갈 수 있을까?”
현요진인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호강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서 물러나시오. 자칫 잘못하면 정말 저자의 말대로 이곳이 우리의 무덤이 될 수도 있소.)
호강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으로 정협련의 정예들을 모았다. 그것을 바라보던 곡칠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협련주 무리하지 마시오. 절대로 이곳에서 빠져 나가지 못할 거요.”
곡칠의 수신호를 따라 정협련이 들어왔던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호강현이 두 눈을 빛내며 곡칠을 쏘아보자 곡칠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철마십영중 남은 네 명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 다가왔다. 현요진인이 한걸음 그들을 향해 움직이려하자 대뜸 장력이 날아왔다. 현요진인은 불진을 이용해 장력을 흩어버리고서는 침음성을 삼켰다. 정협련 일행에게 다가온 철마칠영은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이제 재미 좀 볼까?”
동철은 가만히 철마칠영을 바라보다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동철이 앞으로 나서자 철마칠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크크크. 넌 뭐하는 놈이냐?”
동철은 말없이 철마칠영을 쏘아보며 호강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련주! 어서 이곳에서 피하시오. 이들은 내가 맡겠소.)
(그건 무리요!)
동철은 반개한 눈으로 호강현을 한번 돌아보고는 피식 웃었다.
(알고 있소. 하지만 시간은 끌 수 있을 거요.)
동철의 말에 호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강현은 힘껏 소리쳤다.
“모두 포위망을 뚫는다!”
호강현은 뒤로 몸을 날리며 포위하고 있던 홍마철시대원을 베며 나아갔다. 철마칠영은 코웃음을 치며 동철을 뛰어넘어 가려했다. 동철은 검을 뽑아들어 철마칠영을 향해 태극을 그렸다. 동철의 검에서 일어난 기운을 느낀 철마칠영은 장력을 내뻗었다.
콰쾅!
철마칠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는 동철을 바라보았다. 동철은 한 걸음 물러난 채로 철마칠영을 쏘아 보고 있었다. 철마칠영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제법 용감하군. 내 앞을 가로막다니. 하지만 고작 나밖에 더 막겠느냐?”
동철은 말없이 검극을 철마칠영을 향해 겨누었다. 철마칠영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 내가 너와 놀아주마.”
“그럼 형님 수고하시구려. 우리가 먼저 가보겠소.”
철마팔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동철의 검은 다시 한번 태극을 그렸다. 철마팔영과 나머지 두 명의 장력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동철은 가만히 눈을 감고 뻗어오는 장력의 흐름을 읽었다. 세 방향에서 뻗어오는 강력한 장력의 기세를 읽은 동철의 검이 부드럽게 태극을 그렸다. 태극으로 부드럽게 강력하게 뻗어오던 세 가닥의 경력을 흘려낸 동철은 그 여력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동철은 올라오는 핏물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철마칠영을 바라보았다. 철마칠영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동철을 바라보았다. 철마칠영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정말 혼자 힘으로 우리를 막을 생각이냐?”
“아니. 솔직히 혼자 힘으로 너희를 막는다는 것은 무리지.”
동철은 자신의 왼쪽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복상이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복상은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동철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했다.
“괜찮아. 한 명 정도는 어떻게 될 거야.”
“크하하하하. 정말이냐? 이거. 이거 우리가 너무 오랜만에 강호에 나왔나 보구나. 이렇게 어린 녀석들이 우리를 우습게 알다니…”
“그런 것 같소.”
동철은 자신의 우측에서 들려온 대답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의 우측에는 혜오가 미소를 지은 채 서있었다. 혜오는 동철을 향해 웃음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혼자서 너무 무리하지 마시오.”
동철은 혜오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철마칠영은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쏘아져 나왔다.
“버르장머리를 가르쳐주마!”
철마칠영의 장력이 노도와 같이 덮쳐오자 동철은 앞으로 한걸음 나가며 검으로 태극을 그렸다. 철마칠영의 장력을 흘려보낸 동철은 앞으로 몸을 내뻗으며 검을 찔러 넣었다. 철마칠영은 연속으로 삼장을 내뻗었다. 동철은 찔러가던 검을 거두며 제운종(梯雲從)을 펼쳐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허공에서 한바퀴 선회한 동철은 다시 태극혜검을 펼쳤다. 철마칠영은 이형환위(移形換位)를 펼쳐 동철의 검을 피해냈다. 동철이 바닥에 내려서며 검을 찌르자 철마칠영은 좌측으로 피하며 장력을 내뻗었다. 동철은 태극혜검을 펼쳐 철마칠영의 장력을 흘려보내다가 뒤에서 덮쳐오는 장력을 느꼈다.
콰쾅!
동철은 뒤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혜오가 창백한 안색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혜오의 앞에는 철마팔영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소림의 땡중이었구나.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라. 흐흐흐.”
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 안목이 대단하시군요.”
“크크크. 안목이라. 좋아. 좋아.”
철마팔영이 웃음을 지었고 동철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철마칠영을 바라보았다. 철마칠영도 혜오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웃음 지었다.
“굉장하군. 역시 소림인가?”
동철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철마칠영은 현요진인과 홍소가 결전을 치르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이미 철마십영측이 유리해 보였다. 철마칠영은 곡칠이 나서서 정협련의 뒤를 쫓는 것을 보며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철마칠영은 동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들은 살린다고 치지만 너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 하나 희생해서 백 명이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소.”
“크크크. 과연 그럴까? 오랜만에 강호에 나오니 신기한 녀석을 다 만나는군.”
동철은 말없이 검을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철마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쌍장을 들어올렸다.
“그럼 계속해 볼까?”
“좋소.”
도주(逃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