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다그닥. 다그닥.
뿌연 먼지를 휘날리며 백여 기의 기마들이 관도 위를 질주하고 있다. 가장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호강현은 고개를 둘려 현무당주인 복상을 찾았다. 복상이 자신의 오른쪽 뒤에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내력을 담아 물었다.
“이 길이 확실한가?”
복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천척마대장이라면 반드시 두 무리로 나눴을 거요. 그렇다면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 무리는 이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거요.”
“그래야 그나마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터인데…”
호강현은 다시 말을 모는데 신경을 집중했다.
동철은 말없이 현요진인의 옆에서 말을 몰며 말의 호흡을 느끼고 있었다. 거칠게 달리는 말안장 위에서 말의 호흡을 느끼기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말의 호흡을 따라 갈수록 몸과 정신은 점점 맑아져 갔다. 주변에서 거칠게 몰아쉬는 말들의 호흡과 그 위에 타고 있는 안정된 정협련의 정예들의 호흡도 느껴졌다. 동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마치 뜬 것처럼 모든 사물이 느껴졌다. 바삐 달리는 와중에도 모든 사물의 흐름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부드러움…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흐름은 이렇게도 부드럽다니.’
말없이 눈을 감고 있던 동철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정도의 유함을 검에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검을 잡아가는 동철의 귀로 현요진인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검을 안 들어도 된다.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동철은 달리는 말위에서 검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철의 아미가 살며시 찌푸려지자 현요진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더욱 멀리가기 위한 것이니라.”
“예.”
동철은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바삐 달려가는 정협련의 정예들의 눈에는 추호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그들의 눈빛에는 정의감이 넘쳐나고 있었다. 동철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체 말의 옆구리를 슬며시 찼다.
“이랴!”
“하아! 하아! 멈춰라.”
손을 들어 창천척마대원들을 세운 원청음은 다급히 숨을 내쉬었다. 이미 입술은 갈라졌고 그 사이로 피가 슬며시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미 내력은 고갈 되었고 다른 창천척마대원들 또한 간신히 따라오고 있었다. 이미 그들도 체력이 모두 바닥이 나 있었다. 원청음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개조로 나눠서 운기를 해라. 조금이라도 내력을 회복해라.”
“예.”
창천척마대원들은 두 개 조로 나눠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원청음은 그들 사이사이를 돌아보면서 대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움직일 수 있는 대원들로 뽑아왔지만 이미 그들도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상처를 입었던 자리는 곪고 있었고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원청음은 서 있는 대원들에게 말을 건넸다.
“일단 상처들을 살펴라.”
“예.”
대원들은 대답과 함께 품에서 금창약등을 꺼내들었다. 자신의 팔에 난 상처를 보기 위해 옷을 찢고서는 곪은 부분을 단도(短刀)로 그어서 고름을 빼는 모습을 보던 원청음은 찢은 옷으로 상처 부위를 질끈 동여매 주었다. 원청음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른 대원들을 생각하자.”
“알고 있습니다.”
대원은 힘든 상황에서도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원청음은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다른 대원들을 돌보러 갔다. 대원들의 상처를 돌보던 원청음은 품에서 옥병을 하나 꺼내들었다.
“청명환(淸明丸)이다. 인원 수 만큼 있으니 일단 이거라도 하나씩 받아라.”
“예.”
대원들에게 청명환을 나눠주는 원청음의 표정은 무척이나 암울했다. 청명환이 기력을 회복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한 효능이 있다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먹어도 많은 효과를 바라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아파왔다. 청명환을 먹은 대원들은 서서 주위를 살피며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한명의 대원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대장님 운기조식이라도 하십시오. 저희가 호법을 서겠습니다.”
“알겠네.”
원청음은 거절할 때가 아님을 알고 청명환 한 알을 먹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공복에 먹어서인지 청명환의 기운이 빠르게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청명환의 기운을 전신에 보냈다. 하지만 좌측어깨에 입은 상처 때문에 그곳은 진기가 계속 막혔다. 원청음은 그곳은 피하고 다른 곳으로 진기를 돌렸다. 천천히 내력이 다시 모이며 몸에 활력이 조금씩 살아났다. 원청음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력의 삼할 정도가 회복이 된 것 같았다. 원청음은 눈을 뜨고 자신의 호법을 서고 있는 대원에게 말을 건넸다.
“어서 운기조식하게.”
“아직 제가 호법을 서도 됩니다.”
“아니야. 이정도면 충분하네. 일단 운기조식을 하게. 시간이 없어.”
“예.”
대원은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청명환을 하나 먹었다. 대원이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는 것을 본 원청음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미 조를 바꿔서 운기조식에 들어가 있었다. 원청음은 자신의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이미 손은 여기저기 많은 상처가 나있었다. 원청음은 가만히 등을 기대며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 들어왔다. 원청음은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벌써?”
원청음은 발을 굴러 옆의 나무 위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조용한 숲이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너무나 조용했다. 알 수 없는 느낌에 원청음은 천천히 나무에서 내려와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기조식을 마쳐라. 지금 이동해야겠다.”
“알겠습니다.”
대원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원청음은 다시 한번 나무위로 올라갔다. 숲에서 동물들의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다니 상황이 훨씬 안 좋은 것 같았다. 원청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살펴보았다. 자신들의 앞쪽 숲에서는 그나마 약간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직 포위는 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원청음은 빠르게 나무에서 내려와서는 입을 열었다.
“모두 동쪽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인다. 잘못하면 포위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
원청음은 나무 사이로 먼저 몸을 날렸다. 그의 뒤를 따라 창천척마대원들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어떻게 된 거냐?”
철마일영의 물음에 곡칠이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요. 아직 포위도 못했는데 눈치 챈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죽여라.”
“예.”
곡칠의 손이 들렸다가 동쪽 방향을 가리키며 내려졌다.
슈슈슈슉-
이백여 개의 화살이 온통 하늘을 매우며 숲의 상공을 날았다. 철시들이 밤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숲 위를 날았다. 곡칠은 곧장 손을 들어 올렸다. 홍마철시대원들은 활에 화살을 메기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곡칠은 첫 번째 공격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홍마철시대에게는 숲이어도 상관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퍼퍼퍼퍽!
나뭇가지들을 부수며 내리꽂히는 화살들을 바라보던 곡칠은 인기척을 숨기지 않은 채 몸을 날리는 창천척마대원들을 보았다. 곡칠의 손이 그들이 향하는 방향을 향해 내려졌다.
슈슈슈슉-
다시 한번 허공을 가득 매우며 날아가는 화살들을 바라본 곡칠은 철마일영에게 말했다.
“철시로는 저들을 다 잡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
“예. 그래서 직접 가서 잡아야 될 것 같습니다.”
“흠. 알았다. 그 정도라면 우리가 할 테니 너희는 어서 저들의 도주로를 막아라.”
“예.”
철마일영이 신형을 날리자 그 뒤를 이어 철마십영이 차례대로 몸을 날렸다. 곡칠은 빠르게 소리쳤다.
“일대와 이대는 최대한 빨리 동쪽을 막고 삼대와 사대는 내 뒤를 따라라.”
“존명!”
홍마철시대의 일대와 이대가 먼저 몸을 날렸다. 곡칠은 곧장 몸을 날려 동북쪽을 향했다.
“멈추지 마라! 여기서 잡히면 먼저 간 형제들을 볼 낯이 없다.”
“예.”
창천척마대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아까 날아온 철시들에 두 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그렇게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다. 마치 쫓기듯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기보다 전력을 다해 동쪽으로 몸을 빼내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고 전력을 다해 달려가던 원청음은 불길한 기운에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마치 열 마리의 야조(夜鳥)인양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그림자들을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철마십영!”
그들의 무위는 자신이 옆에서 지켜봐서 잘 알았다. 저들의 손에 걸리면 절대로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원청음은 등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원청음은 눈앞의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 원청음은 멈춰 서려는 창천척마대원들을 향해 일갈했다.
“멈추지 마라.”
하지만 창천척마대원은 전원이 멈춰 섰다. 원청음은 검을 움켜 쥔 채로 바닥으로 내려왔다.
“뭐하는 짓들인가! 우리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끌어줘야 한다는 것을 잊은 거냐!”
대원중 하나가 검을 뽑아들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을 혼자 남겨 둘 순 없습니다. 차라리 대장님이 피하십시오.”
“지금 나를 욕되게 하겠다는 것인가?”
“대장님이 저희 중 가장 뛰어나십니다. 대장님이 몸을 피하시는 것이 차라리 더욱 시간을 끌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런…”
“대장님. 저희의 처음이자 마지막 항명(抗命)입니다. 저희가 죽을 자리는 저희가 선택하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죽을 자리는 대장님의 옆입니다.”
대원들의 말에 원청음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겠다. 너희의 처음이자 마지막 항명은 받아들이마.”
“감사합니다.”
대원들의 기쁨에 찬 목소리를 들은 원청음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면 내 마지막 명령을 들어라.”
“예.”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어라. 먼저 간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서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어라. 알겠나?”
“예!”
“크크크. 웃기지도 않는군.”
원청음은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뭇가지 위에 마치 평지인양 편안한 얼굴로 서 있는 철마십영을 바라본 원청음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제 발로 찾아와 줘서 고맙군.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해주다니 말이야.”
“크크크. 하하하하. 이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웃기는 이야기군.”
철마일영의 웃음소리가 어둠에 쌓인 숲에 퍼져나갔다. 원청음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검을 들어 철마일영을 가리켰다.
“그 목 내가 받아가겠다.”
“후후후. 좋아. 한번 가져가 보거라. 네가 내 목을 가져간다면 여기 있는 녀석들을 모두 살려주마.”
“진심인가?”
“크크크. 당연하지. 어차피 너희가 멈춰선 순간 너희가 빠져나갈 길은 없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 목 지금 받아가도록 하지.”
원청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자 철마일영도 나무위에서 뛰어내렸다. 나머지 철마십영들은 모두 나무 위에 걸터앉은 채 철마일영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원청음은 심호흡을 하고서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철마일영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고작 사가녀석 만큼도 안 되는 실력을 믿고 덤비다니 우습지도 않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 네가 더 낫다고는 할 수 없겠지. 어차피 너희는 연수합격 밖에 재주가 없지 않느냐?”
“크크크. 그 입심의 반만 실력이 닮아주길 바란다.”
원청음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철마일영을 보고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지금 자신의 상태로는 어떤 수도 무리였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에 승부를 걸어야만 했다. 아버지에게 어려서부터 배우던 무공이 불현듯 떠올랐다. 비록 방천화극으로 펼치는 무공이긴 하지만 마지막은 아버지의 초식을 사용하고 싶었다. 원청음은 전신의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원청음의 신형이 벼락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검을 내리그었다.
“차핫! 마멸참!”
추격(追擊)(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