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71화 (7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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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追擊)

아침 해가 떠오르며 어슴푸레 밝아오기 시작하는 숲에 일단의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가장 앞에서 숲을 살피던 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서 일행을 둘로 나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자는 등에 하나의 커다란 철구를 매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가냘파 보여 무기가 더욱 흉폭해 보였다. 얼굴은 중년의 나이를 속일 수 없다는 듯 가는 주름이 갔지만 태양혈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 상당한 경지의 내공임을 보여주었다.

“곡가야. 언제쯤인지도 알 수 있냐?”

흑웅마 사적은 머리를 긁적이며 하품을 했다. 철구를 매고 있는 사내 패력구(覇力毬) 곡칠은 인상을 찌푸렸다.

“사가야 너만 밤을 세며 쫓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좀 알아라.”

“크크. 알기야 알지만 하품이 나오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곡칠은 차분히 주변의 흔적을 살펴보고는 입을 열었다.

“대략 두시진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두시진?”

“그래. 하지만 그들의 여태껏 진행속도로 미루어 그리 멀지 않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크크크. 그래?”

사적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원가 녀석을 반드시 잡아 목을 비틀어야 할텐데…”

“흐흐흐. 사가야. 녀석한테 호되게 당했나 보구나.”

“헛소리 하지마라!”

사적은 버럭 화를 내고는 고개를 돌렸다.

“녀석을 그 자리에서 못 죽인게 아쉬울 뿐이다.”

“그런가?”

곡칠은 싱긋 웃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쪽으로 서 있는 두 무리의 노인들을 향해 서서는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곡칠의 물음에 철마십영 중 철마일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곤란하군. 이런 곳에서 둘로 갈라지다니 말야.”

철마일영의 말을 들은 흑마일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게 됐군.”

철마일영은 앞으로 나서서 주변을 훑어보며 물었다.

“어떻게 나눠졌는지 알 수 있나?”

“한 무리는 이십여 명이고 또 한 무리는 약 육십여 명 정도 됩니다.”

“그래? 그렇게 들어보니 뻔한 조합이군.”

철마일영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이십여 명은 유인책인가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곡칠의 대답에 철마일영은 흑마일령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십여 명이라고 했나?”

“예.”

흑마일령은 자신의 수염을 한번 쓰다듬고서는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사위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은 보며 흑마일령의 말이 이어졌다.

“방향은 어디로 향했나?”

곡칠은 잠시 숲에 난 흔적들을 보고서는 대답했다.

“스무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는 악양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나머지 인원은 계속 무산을 방향으로 잡고 있습니다.”

“악양?”

“예.”

“악양에는 그들을 도울만한 세력이 있나?”

곡칠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없습니다.”

“하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물론입니다.”

곡칠의 자부심에 찬 목소리를 듣고는 흑마일령이 고개를 돌렸다. 흑마일령은 철마일영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저쪽을 맡게.”

“저희가 유인책을 맡으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곡대주에게 맡겨도 상관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자네들이 같이 가서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게.”

철마일영은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유인책은 유인책일 뿐 더 이상의 재미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창천궁으로 향한 무리를 따라 간다면 아마 반드시 창천궁의 무리들과 부딪칠 수 있을 것이었다. 철마일영은 씁쓸한 입맛을 뒤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맡지요.”

흑마일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곡칠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저희보다 늦게 출발해서 야음을 틈타 움직이고 있다지만 연락 받은 바에 의하면 늦어도 내일이면 조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 쪽으로 불러야겠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흑마일령은 곡칠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곡대주가 철마십영과 함께 가서 유인책들을 해치우게.”

“예.”

“자네라면 우리가 가는 속도나 방향을 금세 알 수 있을 테니 유인책들을 척살하고 우리를 따라오게.”

“예.”

“창천궁에서도 아마 녹록치 않은 자들이 나왔을 테니 빨리 와주는 게 좋을 걸세.”

“예.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곡칠은 철마일영에게 다가갔다. 철마일영은 가볍게 안색을 찌푸리며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나?”

“예?”

“유인책을 따라 잡아 죽이는데 말일세.”

“길어야 이틀이면 됩니다.”

철마일영은 흑마일령을 한번 흘낏 바라보고는 작게 입을 열었다.

“하루 안에 따라 잡게.”

곡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곡대주 자네만 믿지. 바로 출발하세.”

“예.”

곡칠은 몸을 돌려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홍마철시대원들에게 다가갔다. 곡칠은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놈들이 두 부류로 나눠졌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건장한 놈들을 사냥하러 가는 것이니 바로 출발한다.”

“존명.”

일제히 들려오는 대답에 곡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곡칠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사적을 바라보았다. 사적은 하품을 하다 말고 뭘 보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창천궁의 무리들과 만나기 전에 해치우는 게 좋을 걸세.”

“녀석들이 만나도 별 상관이 없을 듯한데? 환자를 돌보며 싸우기가 더 힘들지 않겠어?”

곡칠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군. 그들은 나름대로 정파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있으니 자신들의 부하들을 내치지는 못하겠지.”

“크크크. 그게 녀석들의 한계이지.”

“하지만 만약 그들 중 하후패가 있다면 조심하는게 좋을 걸세.”

“금무신장 말인가?”

“그래. 창천궁의 무상인 그 말일세.”

“크크크. 걱정마. 창천궁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를 내가 상대할 리는 없으니 말야.”

“흑마육령께서 맡으실 동안 자네는 다른 자들을 처리해야 할 걸세.”

사적은 기지개를 피며 대답했다.

“괜찮아. 이번에는 그분들도 오시지 않나.”

“그건 또 그렇군. 알았네.”

“걱정 말고 어서 다녀와. 자네 몫은 안 남겨 놓을지도 몰라.”

“하하하. 기대하지.”

곡칠은 손을 들어 내리그었다.

“출발!”

곡칠이 신형을 날리자 그의 뒤를 이어 이백의 홍마철시대가 적혈색의 잔영을 남기며 몸을 날렸다. 철마십영은 차례대로 몸을 날려 그들의 뒤를 따랐다. 흑마일령이 사적에게 다가왔다.

“사대주. 우리도 움직이지.”

“알겠습니다.”

사적은 돌아서서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삼백이나 있던 부하들이 이제는 백 오십도 채 남지 않았다. 원청음과의 결전 중에 다른 부하들이 반이나 죽어 나갔다. 사적은 다시 한번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가는 곳에 아마 원가 녀석이 있을 것이다.”

사적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창천척마대에게 당한 녀석들이 백오십이다.”

사적은 무리의 중앙에 서서 전방을 향해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피는 피로 갚는다. 녀석들의 목을 가지러 가자!”

“존명!”

사적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지듯 튀어나갔고 그의 뒤를 따라 곰처럼 커다란 덩치의 황마철웅대 백오십이 그림자처럼 따라 움직였다.

흑마일령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형제들을 돌아보았다. 둘째가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형님의 생각에 적극 찬성이오.”

“흐흐흐. 역시 형님이라니깐. 이쪽으로 움직여서 운이 좋으면 하후패도 만날 수 있지 않겠소?”

“흐흐흐. 그럼. 그럼. 역시 큰형님이시지.”

흑마일령은 형제들의 웃음소리에 같이 미소 짓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 운이 좋으면 창천궁의 무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성에서 움직인 것을 알면 아마 하후패가 나왔을 거요.”

“흐흐흐. 그렇다면 우리도 슬슬 가볼까?”

“좋소. 어디 한번 창천궁 녀석들 얼굴이나 보러 갑시다.”

“좋아. 그럼 가자.”

흑마일령의 뒤를 따라 다섯 명이 검은 잔상을 남기며 그 뒤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추격(追擊)(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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