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다그닥. 다그닥.
별궁을 책임지고 있는 왕전이 내다 준 말들은 모두 다 명마였다. 유세운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몰고 있었다. 결국 보다 못 참은 유주란이 말을 걸었다.
“야! 너 귀찮다면서 왜 그렇게 실실거리는 거야?”
“응? 무슨 말이야? 무림에 대혈란이 일어나는데 내 일신의 안위가 무슨 필요해.”
“응? 그…그렇지.”
당황하는 유주란을 보며 유세운은 속으로 더욱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을 몰고 가던 유세운은 시선을 들어 앞을 보았다. 유가장의 식구가 가는 방향을 막고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느낌의 사내는 이마에 영웅건을 두르고 있었다. 사내의 푸른 무복에 가슴에 명(明)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유세운은 사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내는 유태청에게 포권을 취했다.
“유장주님이십니까?”
“그렀네만 자네는 누군가?”
“창명백검수의 제 일대의 대장인 거열이라고 합니다.”
“흐음 그런가? 그런데 이곳에는 웬일인가?”
“혹시 일권무적이라 불리 우는 유세운이라는 분을 뵐 수 있을까하고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유세운은 자신을 지목하는 거열에게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을 걸었다.
“내가 유세운인데 무슨 일이시오?”
거열은 유세운을 바라보더니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봐도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자신들의 수장의 자리를 거절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기도 차지 않았다. 십년동안의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온 창명백검수는 이미 일류고수는 모두 넘어섰다. 특히 자신 같은 경우만 해도 이제 나이 스물 둘에 벌써 검강에 이르렀다. 모든 교관들조차 놀라게 했던 자신들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소문에 의하면 검환의 경지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창천궁주가 이미 검환의 경지에 오른 것을 알고 있건만 유세운에게서는 그런 존재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유세운은 자신을 탐색하듯 바라보는 거열에게 말을 걸었다.
“나를 찾아온 일이 별일 아니라면 좀 비켜주겠소? 정오까지 모여야 하니 말이오.”
유세운의 말에 거열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럼 저를 따라 오시죠.”
말머리를 돌려 일행의 앞에서 걸음을 옮기는 거열의 등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어깨를 들썩였다. 유주란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너를 어떻게 아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는데?”
유주란은 거열의 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주란이 유세운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네가 보기에 어느 정도의 경지인 것 같아?)
유세운은 거열을 한번 슬쩍 보고는 작게 속삭였다.
“검강의 경지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정말?”
앞에서 말을 몰고 있던 거열은 유세운의 태연한 말에 흠칫했다. 자신은 그의 경지를 알아보지 못했건만 저렇게 간단하게 자신의 경지를 알아봤다. 들리는 소문이 거짓만은 아닌 것 같았다. 거열은 마음을 다잡으며 계속 말을 몰았다.
‘어차피 이번에 나가면 알게 된다. 조급해 하지 말자.’
거열은 본궁으로 가는 문에 도착해 말을 멈추었다. 옥빛의 장삼을 입은 무사들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 도열해 있는 무사들이 보였다. 유세운은 도열해 있는 무사들을 보며 입을 벌렸다.
도열해 있는 무사들은 삼엄한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유세운은 여운을 발견하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운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문 안으로 들어선 거열은 자신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일행에게 다가갔다. 거열은 백연문을 보고 포권을 취해보였다. 백연문은 거열을 보며 웃음 지었다.
“자네가 직접 본 소감은 어떤가?”
“아직 어떤 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보기에도 그런가?”
백연문은 문 안으로 들어서서 무상에게 다가가는 유세운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걸세.”
“이번에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다시 한번 볼 수 있을 걸세.”
“예.”
거열은 눈을 들어 유세운의 모습을 찾았다. 유세운은 태연하게 마상에서 도열해 있는 무사들을 감상이라도 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거열은 자신의 자리로 말을 몰고 가서는 도열했다. 거열은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패도적인 창명백검수들의 기세를 전신으로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앞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유태청은 하후패에게 물었다.
“이들이 이번에 출전하는 인물들입니까?”
하후패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면 충분하오. 창명백검수와 창천백검수, 그리고 창검백영대라면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거요.”
하후패는 자신의 뒤에 말을 타고 있는 열두 명의 중년의 검사들을 소개했다.
“내궁의 명천십이검이오. 인사들 나누시오.”
“안녕하십니까. 유태청이라고 합니다.”
“유장주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명천십이검 중 가장 앞에 있던 중년의 검사가 포권을 하며 마주 인사했다. 유세운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명천십이검 하나하나가 모두 이미 검풍의 경지에 도달해있었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일은 어쩌면 자신이 할일은 별로 없을 것도 같았다. 유세운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말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리다가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백연혜가 흰색의 무복에 머리에는 봉황비를 꽂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백연혜는 유태청에게 포권을 취했다. 유태청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백연혜에게 물었다.
“언제 출발하는 거야?”
“이제 곧 출발이에요.”
“그래? 음.”
유세운은 다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말발자국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첫눈에 보기에도 보기 드문 명마임을 자랑하는 갈색의 말이 다가왔다. 마상에는 백선후가 앉아 있었다. 그의 뒤로는 좌우호법이 흑마를 탄 채 그의 뒤를 호위하고 있었다. 백선후는 여태껏 보여주지 않던 기백이 넘치는 시선으로 말을 몰아 도열해 있는 무리의 가장 앞으로 갔다. 백선후는 말을 멈추고 도열해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백선후의 시선을 받은 무사들은 삼엄한 기세를 더욱 피워 올렸다. 백선후의 시선이 도열해 있는 무사들을 한번 훑고서는 무상 금무신장 하후패에게 멈춰 섰다. 백선후는 내력을 담아 입을 열었다.
“무상에게 이번 귀주탈환에 관한 무사들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주겠소.”
“존명.”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일을 성공시키시오.”
“존명.”
백선후는 시선을 돌려 도열해 있는 무사들을 향하고서는 사자후(獅子吼)를 터트렸다.
“귀주지부에 있던 본궁의 형제들이 죽임을 당했다.”
백선후는 자신의 검을 뽑아들며 다시 한번 사자후를 터트렸다.
“가라! 가서 형제들의 복수를 해주라!”
“존명!”
삼백여명이 내력을 담아 외치는 소리에 지축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백선후가 옆으로 물러서며 문이 열리고 하후패의 손이 높이 쳐들렸다. 하후패는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출전!”
하후패의 말이 먼저 앞으로 내달렸고 뒤를 따라 먼지를 날리며 삼백기의 무사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유세운도 같이 말을 몰다가 귀에 들려오는 전음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혜아가 자네 얘기를 하더군. 자네가 가니 같이 가도 좋으냐고. 그래서 그러라고 했네. 자네만 믿어도 되겠는가?)
유세운은 말을 몰고 지나쳐 가다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선후는 삼백기의 무사가 빠져나가고 나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어둠에 휩싸인 숲에서 손이 하나가 들어올려졌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작게 말했지만 원청음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각자 옆의 나무에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원청음은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도 등을 기대었다. 좌측 어깨에 박힌 화살이 거치적거렸다. 뽑아버리려고 손을 가져가는 찰나 한명의 부대장이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제가 뽑아 드리겠습니다.”
“그래주겠나?”
부대장은 작은 소도를 꺼내 피에 젖은 옷을 잘라내고는 화살이 박힌 부분에 칼을 내리 그었다.
“크윽!”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찰나 부대장은 순간적으로 화살을 뽑아내었다.
“큭!”
부대장은 원청음의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손으로 눌러 지혈을 시키며 품에서 금창약을 꺼냈다. 이빨로 뚜껑을 열고는 금창약을 뿌려 피를 지혈했다. 부대장은 자신의 소매를 찢어 원청음의 좌측 어깨를 단단히 묶었다. 부대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독은 바르지 않았군요.”
“그렇군.”
원청음은 씁쓸하게 웃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백에 달하던 창천척마대가 이제는 고작 팔십 명이 남았다. 그나마 성한 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원영극이 십방쌍강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나자 전세는 순식간에 결정지어졌다. 그나마 창천척마대의 백인부대장들이 목숨을 걸고 혈로를 뚫어서 이나마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백인부대장이라고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부대장뿐이었다. 원청음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네만…”
부대장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을 본 원청음은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의 진로에 문제가 있다고 보네.”
“문제라 하시면…”
원청음은 머리를 나무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지쳤고 창천궁에서 구원군이 와도 만나기 전에 저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네.”
부대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원청음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인원을 둘로 나누세.”
“둘이라 하시면?”
“내가 적들을 유인하지. 자네는 최대한 창천궁을 향해 이들을 인도하게.”
“안됩니다. 제가 적들을 유인하겠습니다.”
“자네 날 끝가지 부끄럽게 할 텐가?”
원청음의 시선을 받은 부대장은 말없이 그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창천척마대는 대장님이 없으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유인하겠습니다.”
“아닐세. 내가 적들을 유인하겠네.”
부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저희가 왜 목숨을 바쳤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장님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원청음은 말없이 부대장을 바라보았다. 원청음은 피식 웃고는 손을 들어 부대장의 어깨를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내가 깜빡 잊었군.”
원청음의 손은 빠르게 부대장의 견정혈(肩井穴)을 점혈 했다. 부대장의 두 눈이 부릅떠지자 원청음은 그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들겨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청음이 일어나자 창천척마대 인원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원청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인원을 둘로 나누겠다.”
원청음의 말이 시작되자 창천척마대 전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원청음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적들을 유인할 인원과 창천궁의 구원군을 만나러 가는 인원 이렇게 나누겠다. 나를 따라 적들을 유인할 자는 손을 들어라.”
원청음의 말이 끝나자 주저 없이 전원이 손을 들었다. 원청음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시야에 잡혔다.
‘어째서 이런 형제들을 죽이려 하시는 겁니까?’
원청음은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고개를 내리고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좋다. 자네들의 뜻은 알았다. 하지만 유인하는 인원들은 몸 상태가 최상이어야 한다. 그러니 그 인원은 내가 뽑겠다. 불만있나?”
“없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창천척마대 인원들을 보고 원청음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 길이 마지막일지라도 결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아라.”
“예.”
원청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총 스무 명의 무사들을 뽑았다. 원청음은 그들을 준비시키고서는 부대장에게 다가갔다. 부대장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원청음은 가볍게 그를 안아주고서 입을 열었다.
“자네를 잊지 못할 걸세. 절대 죽지 말게나.”
원청음은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자신이 뽑은 스무 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며 입을 열었다.
“끝까지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저희가 영광입니다.”
“좋아. 우리가 얼마나 시간을 끄느냐에 형제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가자.”
“예.”
원청음이 신형을 날리자 그의 뒤를 따라 스무 명의 인영들이 몸을 날렸다. 원청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부대장의 눈에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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