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67화 (6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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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仲秋節) [3]

창천루에 도착한 유세운과 위지청은 백연혜와 위지평을 찾아 사층까지 올라갔다. 사층 창가에서 백연혜와 위지평이

국화주를 시킨 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위지청은 서둘러 위지평의 옆자리에 앉으며 손목을 내밀었다.

“오빠 이것 봐봐.”

“너 돈이 어디 있어서 그걸 사온 것이냐?”

“응? 이거 있잖아…”

“설마 훔친 건 아니겠지?”

위지평의 말에 위지청이 버럭 화를 냈다.

“무슨 소리야! 이거 세운 오빠가 사줬어.”

“유소제가 말야? 이런 고맙네. 동생이 어려서 아직도 이런 걸 사달라고 조른다네.”

“피~ 내가 어디가 어려!”

유세운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대는 위지청을 보고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예전에 제 생명을 구해 줬잖습니까.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십니까.”

“하하 아니네. 그 땐 자네 덕에 우리가 살았던 거지.”

인사를 나누는 유세운에게 위지청이 눈짓을 하며 말했다.

“앉아요. 서서 뭐하는 거예요?”

“응? 알았어.”

위지청이 위지평의 옆에 앉아 자리는 백연혜의 옆자리 밖에 없었다. 유세운은 흘끔 위지청을 바라보았다. 위지청은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유세운도 같이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백연혜의 옆에 앉았다. 하지만 백연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위지평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상을 뵈러 오셨다고요?”

“예.”

유세운은 서운함을 느끼며 백연혜의 옆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서 저 멀리 금룡비무를 추며 다가오는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백연혜를 부르려던 유세운은 귀를 파고 드는 전음에 멈칫했다.

(기쁘겠군요. 선물을 해줄 분을 이리도 빨리 만났으니…)

“에? 연혜 그건…”

전음을 미처 또 배우지 않은 유세운은 안절부절 못했고, 백연혜는 태연하게 위지평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무상께서는 이번 일로 많이 바쁘셔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아! 저희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참 난감하군요.”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고는 둘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무상이라면 그 하후패님 말씀하는 겁니까?”

“자네도 아는가? 그분이 우리 사부님의 형님 되시는 분이시라네.”

“그랬군요.”

위지평과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지만 백연혜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 백연혜는 유세운을

쳐다보지도 않고 위지평에게 물었다.

“위지공자는 어디서 묵으실 생각이신가요?”

“그게 사실 오늘 뵈려고 했는데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유세운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저랑 같이 가시는 게 어때요? 지금 별궁에 지내고 있는데 방이 많이 남더라고요.”

“그렇군. 유가장의 식구가 다 와 계시다고 했지. 잘됐군. 안 그래도 유장주님과 현영검과 산검낭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하하 오시면 다 반기실 거예요.”

백연혜는 유세운의 얘기를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위지공자께서는 유공자를 따라 가시면 될 터이니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에? 왜 더 있지 않고?”

유세운의 말에 백연혜는 매몰차게 대답했다.

“아니요. 이미 밤이 늦었으니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백연혜는 위지평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향해 차분히 걸어갔다. 유세운은 백연혜의 뒷모습을 안절부절

못하고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저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게.”

위지평의 대답을 듣자마자 유세운은 서둘러 백연혜를 따라갔다. 일층에 내려오자 벌써 말고삐를 받아들고 말에 오르는

백연혜의 모습이 보였다. 유세운은 숨을 급히 들이키더니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유세운은 사람들을 뛰어넘어

백연혜의 앞을 막아섰다. 유세운은 백연혜가 말을 세우고는 내려다보자 다급하게 숨을 내뱉고는 말을 꺼냈다.

“연혜. 잠깐만 멈춰봐.”

“흥. 왜 저를 따라 오셨죠?”

“에? 무슨 말이야?”

“위지소저랑 같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건 오해야!”

“흥 뭐가 오해죠? 제 앞에서 선물을 자랑까지 하던 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비켜주세요. 가 봐야 해요.”

“아니 그게…”

백연혜가 말을 몰아 지나가려고 하자 유세운은 다급하게 말을 다시 막아섰다.

“청아는 선물을 사는 걸 도와줘서 선물 한거야.”

“선물을 사는 걸 도와줬다고요?”

“그래. 사실… 사실은…”

“뭐죠? 변명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차가운 백연혜의 말을 들은 유세운은 두 눈을 감고는 소리쳤다.

“사실은 연혜 주려고 선물을 고르려 간 거란 말야!”

백연혜는 말을 멈추고는 유세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유세운의 얼굴은 붉은 홍시처럼 익어갔다. 유세운은 가만히

눈을 떠 백연혜를 바라보았다. 면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던 유세운은 품에서 봉황비를 꺼내들었다.

“이걸 고르려고 간 거였어.”

유세운의 손에 들린 봉황비가 주변의 불빛에 붉게 변했다. 백연혜는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룡비무를 구경하러 나와 있었지만 둘의 눈에는 다른 어떤 사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백연혜는 유세운의 손에 들린

봉황비를 받아 들고는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있었다. 등불에 비춰 붉게 물드는

이슬을 바라보던 유세운도 눈시울이 붉어 질 것만 같았다. 백연혜는 봉황비를 머리에 꽂더니 활짝 웃음 지었다.

“고마워요. 어울려요?”

“으응. 정말 잘 어울려.”

유세운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서둘러 대답했고 백연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백연혜는 유세운의 소매를 잡고는 작게

말했다.

“미안해요.”

“응?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백연혜는 고개를 들어 유세운을 바라보다가 활짝 웃음 지으며 말했다.

“운오라버니 지금 금룡비무를 하고 있으니 그리로 가요.”

“그…그래.”

유세운은 자신의 소매를 잡아끄는 백연혜를 따르며 창천루에서 기다리고 있을 위지남매를 걱정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곧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창천루의 사층에서 위지청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었다.

유세운은 가벼운 마음으로 백연혜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챙챙챙-

삐이이-

파파파파팡-

요란한 폭죽소리와 악기들 소리에 파묻힌 유세운과 백연혜는 사람들을 해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금룡비무를 추는

인물들이 창천궁의 인물들이라 그런지 용의 머리가 일장 이상씩 뛰어 오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힘이 넘치는

금룡비무를 보며 유세운은 아직도 자신의 소매를 잡고 있는 백연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오해가 풀린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어느새 금룡은 사람들을 헤치고 백연혜의 앞까지 왔다. 용두를 맡았던 창천궁의 무사는 백연혜의 앞에서 더욱

요란하게 용두를 흔들었다. 백연혜는 미소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주었다. 금룡은 다시금 뛰어올라 인파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유세운은 살아 움직이듯 나아가는 금룡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백연혜는 유세운의 소매를

다시 잡아끌었다.

“운오라버니 우리 저기로 가요.”

“응.”

유세운은 미소 띤 얼굴로 백연혜의 뒤를 따라갔다. 백연혜를 따라 간 곳은 월병을 만들어 파는 노인의 가게였다.

백연혜는 웃음지으며 노인에게 인사했다.

“할아버지. 월병 좀 주시겠어요.”

노인은 눈을 들어 백연혜를 보고는 웃음 지으며 물었다.

“어떤 월병을 찾으시오?”

“어떤 것들이 있나요?”

“으음. 우리집에는 없는 월병이 없지. 천진식 월병도 있고, 광동식 월병도 있고, 소주(蘇州)식 월병도 있다네.

헐헐 노부가 젊어서부터 이곳 저곳 많이 돌아다니며 익힌 것이지.”

“어디가 제일 맛있나요?”

“흐음. 다 특징이 있어 뭐라고 할말이 없구먼.”

노인이 주저하자 유세운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럼 일단 모두 두 개씩 담아 주세요.”

“허허. 자네 보기보다 똑똑하구먼.”

유세운을 향해 칭찬 아닌 칭찬을 한 노인은 월병들을 두개씩 기름종이에 담아주었다. 유세운은 은자 열냥짜리 전표를

내었다. 노인은 놀란 눈으로 손사래를 쳤다.

“이런 큰돈을 주면 잔돈이 없네. 잔돈으로 주게나.”

유세운은 빙긋이 웃으며 노인의 손에 전표를 쥐어주고는 월병을 담은 기름종이를 가져갔다.

“잔돈은 손주들에게 옷이라도 해주세요.”

“허허허. 이것 참…”

유세운은 한손에 월병을 들고 백연혜의 손을 잡아끌었다. 백연혜는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은 유세운을 향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한바퀴 시선을 돌려 보았지만 창천루 보다 높은 건물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연혜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오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월병을 샀으니 먹어야 되지 않겠어?”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냐고요.”

유세운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달에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자. 중추절의 월광아래 먹는 월병이 제 맛일 것 같아.”

“달에 가장 가까운 곳이요?”

백연혜의 의문은 금세 해결 됐다. 유세운은 창천루의 처마 밑까지 오자 가볍게 발을 굴렀다. 소리 없이 창천루의

이층 처마까지 뛰어오른 유세운은 살며시 발을 굴러 창천루의 사층 지붕까지 몸을 날렸다. 백연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지금 제정신이에요? 이곳 루주님이 아버지의 사제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여기 앉자.”

유세운은 태연하게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의 먼지를 불어 주었다. 백연혜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유세운의 옆에

앉았다. 유세운은 기름종이에 싼 월병을 꺼내들었다. 유세운은 그 중 하나를 백연혜에게 건네주고는 자신도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유세운은 월병을 한입 베어 물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맛 좋은데? 기름기도 적고 달아.”

“그러게요. 광동식 월병인가봐요.”

“에? 광동에 가본 적 있어?”

“아뇨. 저도 듣기만 한걸요.”

백연혜는 해맑게 웃음을 지었다. 유세운은 월병을 먹으려고 면사를 벗은 백연혜의 얼굴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월광을 받으며 하얗게 빛이 나는 것만 같은 백연혜에게 계속 시선을 둘 자신이 없어 월병만 우물거리며 먹었다.

“사부님도 이걸 드시고 계시려나…”

“은노선배님 말씀이신가요?”

“응. 중추절이면 월병을 사 오셔서 기분은 내셨었는데 어찌하고 계실지…”

“걱정하지 마세요. 잘 지내실 거예요.”

“그럼 물론이지. 솔직히 걱정은 안하는데 보고 싶기는 하네.”

백연혜는 말없이 유세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말없이 월병을 우물거리며 중추절의 만월을 올려다 보았다.

유세운의 모습을 바라보던 백연혜가 웃음 지으며 슬며시 다가갔다. 살며시 눈을 감고 유세운의 볼을 향해 입술을

내밀었다. 유세운은 갑작스레 느껴지는 숨결에 고개를 돌렸다.

“응?”

“읍!”

고개를 돌리던 유세운은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놀라 떠진 눈에 놀란 눈을 한 체 자신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백연혜의 눈이 보였다. 유세운과 백연혜는 말없이 서로 경직된 체 서로를 마주보았다.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백연혜는 뒤로 급히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유세운은 멍한 표정을 지은 체 그녀의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백연혜는 작게 미소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세운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백연혜는 면사를 쓰고 지붕 아래로

몸을 날렸다. 유세운이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백연혜의 전음성이 들려왔다.

(선물 정말 고마워요. 운오라버니.)

유세운은 어느새 창천루를 다 내려가 자신의 말에 타고 급히 내궁으로 향하는 백연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만월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크크크”

유세운의 숙여진 고개가 들려지며 창천루의 기와가 들썩일 정도로 웃어 제꼈다.

“파하하하하하하-”

유세운은 미친 듯이 웃다가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향해지자 머쓱해져서는 창천루의 사층 창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유세운이 창문으로 들어오자 위지청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방금 웃음소리 오빠 웃음소리에요?”

“응? 응!”

“잘 됐어요? 선물은 줬구요?”

“응? 하하하. 그럼 하하하.”

“오빠 뭐가 그리 좋아요? 실실 웃기만 하고.”

“응. 아냐. 아냐. 그건 그렇고 어서 별궁으로 가자.”

지켜보던 위지평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많이 어두워져서 가봐야 할 것 같구나.”

“그럼 가죠. 별궁으로…”

앞서가는 유세운의 뒷모습을 보며 위지청이 위지평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죠?”

“표정을 보니 좋은 일인 것 같구나.”

“흐음. 무슨 일일까?”

“좋은 일이면 됐지. 굳이 궁금해 할 필요 있겠니?”

“그래도요.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중추절(仲秋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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