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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仲秋節) [1]
유청운은 유세운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정자에서 백소저가 혼자 있더구나.”
“예? 오는 길의 정자라면…?”
“그래. 별궁에 지어져 있던 정자인 향원정(香元亭) 말이다.”
유세운은 유청운의 말을 듣고는 유주란을 쳐다보았다. 또 다시 검을 잡고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고 갈등을 하고
있자 유청운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있으니 걱정 말고 가 보거라. 네가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어 못 온 것 같더구나.”
“음. 알았어요. 저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유세운은 유청운에게 웃음 지어 보이고는 신형을 날려 연무장을 벗어났다. 유주란은 슬며시 눈을 뜨며 물었다.
“오빠가 만났나 봐요?”
유청운은 유주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백소저가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구나.”
“흐음.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유주란을 보며 유청운이 웃음 지어보였다.
“일단 검의 의념을 느끼는 것부터 하자꾸나.”
“예.”
유주란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향원정(香元亭).
별궁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 곳으로 사방에 꽃이 만개한 곳으로 사시사철 꽃이 시들지 않게 관리를 하는 곳이었다.
가을인지라 향원정 주변에는 국화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위에 세워진 향원정에는 국화향이
가득했다. 향원정에서 한숨을 내쉬는 백연혜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무슨 한숨이야?”
유세운의 물음에 백연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유세운은 백연혜의 옆으로 가서 정자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유세운은 약간은 어두운 백연혜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막히는 곳이 있어? 표정이 어두워 보여.”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주저하는 백연혜를 보며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연혜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유세운을 마주보며 물었다.
“운오라버니. 왜 창명백검수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나요?”
“아! 그거?”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름대로 고민해서 물어본 백연혜가 얼굴을 약간 붉히자 유세운은 서둘러 말을
꺼냈다.
“나도 일문의 문주잖아.”
“예.”
“일문의 문주로서 다른 문에서 심혈을 키운 사람들을 그냥 받는 것은 안 될 말이야.”
“…예.”
“더욱이 만약 받는다고 해도 그렇다면 내가 빚을 지게 되는 거잖아.”
“그렇군요.”
“창천궁을 돕는 게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가요?”
백연혜가 눈을 빛내며 묻자 유세운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난 혼자서도 충분해.”
백연혜는 자신감에 찬 유세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쩝. 호의는 고맙지만 어쩔 수 없지.”
“후훗.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어때? 막히는 곳은 없어?”
“아 그거요? 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어요.”
“그래. 장강붕파부터는 그게 중요한 거니까. 그리고 검의(劍意)는 검도의 고수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누가 뭐라고해도 나는 역시 권법가니까 말야.”
“예.”
백연혜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떠올랐다. 유세운도 마주 웃음을 보여주었다. 백연혜는 살며시 걸음을 옮겨 유세운의
옆 난간에 같이 기대었다. 가만히 숨을 들이 마시며 주변에 만개한 국화향을 맡았다. 가슴 가득 느껴지는 향기를
맡은 백연혜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저녁에 뭐 하실 건가요?”
“저녁에?”
유세운은 잠시 고민해보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특별히 생각한 건 없는데… 왜?”
백연혜는 유세운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이 중추절(仲秋節)이에요.”
“뭐? 벌써?”
유세운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백연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특별히 할 일 없으시면 저랑 같이 나가실래요?”
“어디로 나가? 궁 밖으로?”
유세운의 물음에 백연혜는 가볍게 고개를 내 저었다.
“내궁와 외궁 사이에 마을이 있어요. 궁이 크다보니 자급자족에는 무리가 있어서 생긴 마을이죠. 궁내 무사들의
가족들이 대부분 살지 만요.”
“정말?”
유세운은 작게 중얼거렸다.
“거리도 멀지 않고 좋겠는데?”
백연혜는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멀면 안가겠다는 것처럼 들리는 데요?”
“응? 아냐. 멀어도 가야지. 무슨 소리하는 거야.”
백연혜의 투덜거림에 유세운은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변명했다. 백연혜는 그런 유세운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희 궁의 무사들이 펼치는 금룡비무(金龍飛舞)가 얼마나 멋진데요.”
“금룡비무?”
“예. 비록 북경에서 펼치는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궁내의 무사들이 펼치기에 정말 날아다니는 것
같아요.”
“오~ 정말 구경 가야겠는데?”
“호호. 그럼 저녁에 올게요.”
“응. 알았어.”
“그럼 저녁에 찾아 갈게요.”
유세운은 향원정을 벗어나는 백연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 중추절의 금룡비무라 말로만 들었었는데 그걸 보게 되었단 말이지.”
창주궁의 칠층의 대청에는 예전의 오인(五人)이 모여 있었다.
백선후는 침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상황은 어떤가?”
백선후의 물음에 천엽수 초평은 몇 장에 달하는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들 중 하나를 가져와 펼치며 입을 열었다.
“철마성에서 나온 세력은 삼마대중 흑마천살대를 제외한 홍마철시대(紅魔鐵矢隊)와 황마철웅대(黃魔鐵熊隊)가 나선 것
같습니다. 대략 오백 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아직 정확한 구성비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이군.”
백선후는 침음성을 삼켰다. 철마성 외성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삼마대중 흑마천살대를 생포했다지만 그들은 삼마대중
가장 약한 세력이었다. 홍마철시대와 황마철웅대는 철탑백마인들보다도 더욱 강한 세력들이었다. 그들이 오백 명이나
나섰다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금무신장 하후패는 가만히 팔짱을 낀 채로 물었다.
“초평 자네가 보기에 귀주지부의 병력은 어떻게 되나?”
초평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귀주지부에는 귀주지부장을 비롯해서 무사 삼백에 이번에 파견한 창천척마대 오백이 있네.”
“그렇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
하후패의 물음에 초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지키는 입장이고 병력도 더욱 많으니 유리하기는 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네.”
“쉽지 않다니?”
“철마성 내성에서도 고수들이 나왔다는데 그들이 아직 파악이 안 되고 있네.”
“내성의 인물들이?”
하후패의 인상이 구겨졌다. 초평은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성의 누가 나왔는지를 안다면 나으련만 아직 확실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어.”
하후패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하지만 귀주지부장인 마멸극(魔滅戟) 원영극이라면 어지간한 내성의 고수보다 강하지 않나?”
“물론 개인의 능력만으로 본다면 원영극은 충분히 우리 창천궁의 내궁에서도 십위 안에 들 만한 고수이긴 하지만…”
“설마 철마성 내성에서 그 이상의 고수가 나왔을까?”
하후패의 말에 백선후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일세.”
하후패는 백선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초평은 백선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백선후는 침중히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진행속도 대로라면 이미 늦었을 지도 몰랐다. 백선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초평도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저들의 속도가 예상을 훨씬 웃돌아서 저희 내궁의 인물들이 움직일 시간 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긴 예상보다 거의 십 일이나 줄이다니… 대체 얼마나 강행군을 하고 있는 거지?”
하후패도 지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백선후는 초평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가? 현재 이 상황은 원지부장도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그라면 믿을만합니다.”
하후패의 말에 백선후는 다시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철마성의 무리들의 진행속도 대도라면 늦어도 내일이면
격돌이 이루어 질 것이었다. 창천척마대를 미리 보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손도 못써보고 귀주지부를
내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아직껏 단 한번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던 내성의 인물들을 내보냈다는 것은 솔직히
예상외였다. 더군다나 미처 다른 방안을 구할 틈도 주지 않을 이동속도라니 그들의 의지가 결코 가볍지 않음이
느껴졌다. 백선후의 입에서 한숨이 베어 나왔다.
“독고황. 대체 무슨 생각인거냐…”
백선후는 들릴 리 없는 상대에게 한마디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원지부장을 믿도록 하세.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리도 내궁에 일러 명천십이검(明天十二劍)을 준비시키게.
언제라도 귀주지부로 떠날 수 있게 말일세.”
“존명.”
초평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백선후는 시선을 돌려 하후패에게 말했다.
“자네도 준비해주게. 아무래도 자네가 이번에 나서줘야 할 것 같네.”
하후패는 백선후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존명.”
백선후는 칠층 전각의 창으로 석양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작게 독백했다.
“독고황. 독고황.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구나.”
중추절(仲秋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