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61화 (6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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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운의 뒷모습을 찾던 유주란의 눈에 연무장으로 다가오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창검무영 왕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왕전이 다가오는 것을 본 유세운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유공자. 궁주께서 지금 뵙고 싶어 하시오.”

별궁을 책임지고 있는 왕전을 보낸 것을 보면 가벼운 이야기는 아닐 듯싶었다. 유세운은 유주란을 한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내해 주세요.”

“그럼 따라 오시오.”

왕전은 뒤로 돌아 연무장을 벗어났다. 유세운은 유주란을 보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잊지 말고 내일까지 깃털들을 왕창 모아와.”

“그래. 잘 다녀와.”

유세운은 한 번 웃어보이고는 왕전의 뒤를 따라갔다. 왕전은 은연중에 경공을 발휘했다. 멀뚱히 뒤를 쫓아가던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창검무영이란 별호에 걸맞게 그의 발걸음은 상당한 속도였다. 유세운은 산보하는

듯한 자세로 그의 옆에 바짝 붙어서 물었다.

“궁주님이 사는 곳이 어디죠?”

왕전은 유세운의 느긋한 표정을 보고는 서서히 걸음을 늦추며 대답했다.

“일단 별궁을 벗어나야 되오.”

“그렇군요.”

왕전이 경공을 발휘한 덕에 순식간에 별궁의 정문까지 온 유세운은 문지기들의 절차를 통해 별궁 밖으로 나왔다.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왕전이 발걸음을 옮기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구층의 전각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유세운은 왕전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저 곳인가요?”

“그렇소. 저곳이 궁주님이 계신 창주궁(蒼主宮)이오.”

“음. 그렇군요.”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왕전의 뒤를 따라 창주궁으로 향했다. 창주궁에 다가간 유세운은 그곳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무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적어도 일류고수 이상이군. 그런데 문지기나 하고 있다니.’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왕전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왕전은 유세운을 데리고 창주궁 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 보이는 위용뿐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간 유세운은 혀를 내둘렀다. 별실로 가는 길목에만 사방에

숨어 있는 자들이 느껴졌다. 기척을 숨기고 있다지만 그들의 실력을 가늠해본 결과 결코 철탑백마인 이하가

아니었다. 유세운은 고개를 슬며시 끄덕이고는 왕전이 안내해준 별실로 들어갔다. 고급 탁자에 의자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워 보이는 곳이었다. 유세운이 의자에 앉자 왕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궁주님에게 전언이 들어갔으니 곧 연락이 올 거요.”

“흠. 그럼 여기서 잠깐 기다리죠. 뭐.”

“그럼 먼저 물러가겠소.”

“그러세요.”

유세운이 웃으며 답하자 왕전도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별실에서 물러났다. 유세운은 가만히 손을 휘저으며 생각에

잠겼다. 백연혜를 가르쳐 주면서 장강삼검의 절초들을 손으로 펼쳐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도(手刀)로 펼치면

충분히 그 위력을 십분 발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만히 손을 휘두르며 장강삼검의 심득을 이해하던 유세운은

방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방밖에 한명의 무사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궁주님이 대청에서 찾으십니다.”

“그래요? 어서 가죠.”

유세운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사는 뒤로 돌아 안내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전각을 올라가는 무사를 보며 유세운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거참 되게 머네. 무슨 생각으로 대청을 이렇게 높은데다가 만든 거야?’

유세운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올라가다가 무사가 멈추어 서자 고개를 들었다. 대청을 바라보는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 십장이 넘는 대청에 거대한 자단목으로 된 탁자의 길이가 몇 장에 달했다. 그리고 탁자의 가장 끝에 앉아

있는 백선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뒤로 본 적이 있는 쌍둥이 노인이 서 있었다. 유세운은 대청 안으로

들어서다가 백선후의 양 옆으로 앉아 있는 두 명의 낯선 인물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흠. 일단 거기 앉게나.”

유세운은 백선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유세운은 자리에 앉아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 본 유세운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안 오셨군요.”

“오늘은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불렀네.”

“저한테요?”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묻는 유세운의 표정에 백선후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백선후는 자신의 왼쪽에 앉아 있는

날카로운 눈빛에 문사차림의 중년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인사하게. 천엽수(千葉手) 초평일세. 창천궁의 문상(文上)이지. 창천궁의 두뇌라고 봐주면 되겠군,”

백선후의 소개를 받은 천엽수 초평이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숙였다.

“초평이라 하오.”

“유세운이라고 합니다.”

유세운은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초평은 날카로운 안광으로 유세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권무적(一拳無敵)이라고 불리시더군요. 철탑백마인을 단신으로 제압 하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운이 따랐을 뿐이죠.”

초평은 잠시 유세운을 탐색하듯 유세운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 웃기지도 않는군. 지금 날 실험하는 건가?’

백선후는 유세운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그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엄청난 거구의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창천궁의 무상(武上)인 금무신장(金武神將) 하후패라고하네. 창천궁의 무력을 상징하지."

유세운은 백선후의 말에 금무신장 하후패를 바라보았다. 보는 이의 기가 죽을 만한 거구에 굵은 눈썹. 각진 턱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눈은 정광이 번뜩이고 있었고 그의 자세 또한 곧았다. 하후패는 유세운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공자의 명성이 벌써 강호에 떠들썩하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하후패가 입가에 믿음직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철탑백마인을 단신으로 제압할 인물이 강호에 몇이나 되겠소? 당연히 강호에 소문이 파다할 수밖에.”

“그런가요?”

유세운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그런 유세운의 표정을 보고 하후패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거 자네 정말 대단하군. 멋져. 아주 멋져.”

“하하하. 뭐 이정도 가지고.”

하후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유세운이 백선후를 바라보자 그의 뒤에 서 있는 쌍둥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두 분은 좌우호법(左右護法)이시지. 아버지 때부터의 호법이신데 지금도 고생해 주시고 계시 다네."

유세운은 쌍둥이 노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 정도의 고수라면 충분했다. 둘의 연수합격이라면 아마

백선후도 승부를 장담 못할 것 같았다. 유세운은 다시 백선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그렇군요. 충분히 호법에 어울릴 만한 분들이군요. 그런데 저를 부르신 이유가 이분들을 소개시켜 주시기

위함인가요?”

백선후는 유세운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닐세. 문상 얘기하지.”

“예.”

초평은 백선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유공자는 지금 강호의 정세에 대해 잘 아십니까?”

“아니오. 잘 모릅니다.”

유세운의 말에 초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도를 짚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강호에는 일궁(一宮)이성(二成)삼문(三門)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궁이란 우리 창천궁을 말하지요.

저희는 이곳 사천성을 비롯해서 귀주성 호남성 강서성까지 저희의 지부를 두고 있습니다. 이성은 철마성과

수라성(修羅成)이 있습니다. 철마성은 강남의 광서성, 광동성, 복건성, 절강성에 지부를 두고 있고 수라성은

청해성을 기준으로 옥문관 너머의 신강과 서장까지 그 세력이 펼쳐져 있습니다. 삼문으로는 천룡문과 혈천문, 그리고

청의문이 있습니다. 천룡문은 산동성, 하북성, 강소성, 안휘성에 지부를 두고 있고, 혈천문은 산서성, 하남성,

호북성이 있습니다. 청의문은 수라성과 혈천문 사이에 끼인 듯한 곳인 감숙성과 섬서성에 지부를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힘이 가장 잘 펴지는 곳이죠. 여섯의 힘이 비슷비슷하여 서로의 무림쟁패를 막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흠 그렇군요.”

유세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초평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중에 철마성이 몇 년 전부터 갑작스레 강남무림의 군소방파들을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견제하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솔직히 그들이 자신들의 지부가 있는 곳의 군소방파를 흡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전언을 보냈었지만 모두

무시했습니다.”

“흐음.”

유세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서로 견제하고 있었다하더라도 그것을 무시하고 실력행사를 했을 때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다. 서로를 견제하다보니 쉽사리 서로를 공격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지경까지 온 것

같았다. 초평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그들은 비밀리에 혈천문과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강남무림에 국한 된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전 무림의 일이란 말이 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공자의 유가장을 흡수하려고 한 것도 의도 된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의 반응을 살피려고

한 것이죠.”

“허. 그래요? 감히?”

유세운의 말에 하후패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초평은 안색을 굳혔다. 아직 철부지처럼만 보이는 것을 보고는 절로

한숨이 베어 나왔다. 하지만 유세운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 중얼 거렸다.

“건방진 녀석들. 언제 한번 손을 봐줘야 겠는데?”

유세운의 말을 들은 좌중은 모두 실소했다. 유세운이 바라보자 다들 헛기침을 했고 초평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철마성에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공자의 존재를 말이죠. 공자의 신위神威)덕에 철마성의 인물들이 속이

탔던 모양입니다. 며칠 전에 철마성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아직 정확히 이번에 나온 인물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목표가 귀주성일 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창천궁을 노리는 거죠?”

“지금 장강을 포함하여 그들의 북진을 가로막을 위치에 본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음. 그렇군요.”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러고보니 제게 왜 이런 말들을 해주시는 겁니까?”

유세운이 눈을 빛내며 백선후를 바라보자 그도 마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언제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십 년 전부터 본궁은 비밀리에 영재들을 모아 키웠네. 백명의

무인들이지. 이제 그들의 출관(出官)도 삼일이 남았네.”

“아니 그러니까 그런 말을 왜 제게 하시는 거죠?”

유세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체 백선후는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창명백검수蒼明百劍手)라고 한다네. 사실 연문이에게 맡기려고 했었네.”

유세운은 어차피 물어도 대답을 안 해주리라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백선후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유세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유세운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자 그의 입이 열렸다.

“그들을 맡아 우리를 도와주게.”

“안됩니다.”

재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주저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좌중은 놀랐다. 특히 가장 놀란 백선후가 물었다.

“아니 왜 그런가?”

“잊으셨나 본데 저 또한 일문의 문주. 당연히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왜 다른 방파의 사람들을 받는단

말입니까?”

“흠. 그…그런가?”

“물론이죠. 그리고 저희 문파는 절대로 남의 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유세운의 강경한 말에 백선후의 안색이 약간 굳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백선후는 결국 한숨을 내쉬어T다.

“알겠네. 미안하게 됐군. 내 실수였어. 그만 가보게나.”

“그럼.”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읍을 하고는 그곳을 빠져 나갔다. 백선후는 멀어지는 유세운의 뒷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아깝군. 저 정도의 고수만 도와준다면 철마성의 발호도 막을 수 있을 텐데. 아직 아버님의 폐관이 끝나지도

않으셨거늘 문제가 커지지 않기만을 바래야 겠군.”

초평은 백선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후패도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아쉽군요. 솔직히 어느 정도 수준의 고수인지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자네도 그런가? 내 욕심이 과했나보오.”

그 자리에 있던 인물들은 모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창명백검수蒼明百劍手)를 맡아주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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