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창명백검수蒼明百劍手)를 맡아주게.
똑. 똑.
유세운은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누구시죠?”
“세운아. 들어가도 되겠느냐?”
“무슨 일이에요?”
유세운은 문을 열며 유청운을 맞이했다. 유청운은 단정하게 무복을 차려 입고 허리에 검을 찬 채로 문앞에
서있었다. 유세운의 눈에 의혹이 깃들자 유청운은 헛기침을 했다.
“흠. 흠. 검법을 수련하려고 하는데 조금 도움을 얻을까 해서…”
유청운의 말에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거 하나 부탁하려고 그렇게 주저한거에요? 에이. 안 그래도 되요. 연무장으로 가죠.”
유세운은 바로 문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서는 유청운의 소매를 잡고 끌었다. 유청운은 앞장서 가는 유세운의 뒷모습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연무장으로 향하던 유세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세운아. 어디가?”
유주란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유주란의 눈에는 잔뜩 호기심이 가득했다.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어쩐 일이야?”
“뭐? 너 말투가 이상하다?”
유세운은 유주란의 등장에 속으로 투덜대며 고개를 내저었다.
“연무장에 가는 길이야.”
“연무장? 거기는 왜?”
유세운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대체 연무장에 뭐 하러 간다고 생각하는 거야?”
“연무장에 가면 왜 수련이라도 하게?”
“응. 당연하지.”
“그래?”
유주란은 말을 끌다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 나도 갈레.”
“누나. 참아 주면 안 될까?”
“뭐!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유세운은 가만히 한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아냐. 가서 준비나 해와.”
“호호호. 알았어. 가서 기다려.”
유세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유주란을 보며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 무공 수련을 할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유세운의 생각은 유청운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뭘 그렇게 고민해? 연무장으로 가자.”
“아! 맞다. 어서 가요.”
유세운은 앞장서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가장의 식구들이 언제라도 마음 놓고 수련 할
수 있도록 별궁의 책임자인 왕전이 신경을 써준 덕이었다. 유세운은 연무장의 중앙으로 가서 몸을 풀며 물었다.
“영호형님에게 얼마나 배웠어요?”
“영호대협에게 배운 것은 검에 의지와 의념을 담는 법이었다.”
“엑? 고작 일주일동안 그걸 배웠다고요?”
“응.”
“하하하. 이거 영호형님의 실력이 굉장한 것은 알았지만 정말 놀랍군요.”
유세운은 팔을 들어 하늘로 향하며 몸의 근육을 이완시켰다. 유세운은 자세를 단정히 하고 유청운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한번 보여 주세요. 형님의 지금 성취를 확실히 아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래.”
유청운은 허리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들어 중단을 향한 유청운은 천천히 의념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세운은 유청운의 기세가 점점 날카로워 지는 것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 이 정도라면 검강은 우습겠는데?’
유청운의 검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서서히 유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감도는 검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청운의 눈이 떠지는 것을 본 유세운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어디 저를 한 번 공격해 봐요.”
잠시 주저하던 유청운은 곧 검을 휘둘렀다. 현류십삼검의 검식이 뻗어왔다. 부드러운 기운을 담은 검강을 보고
유세운은 혀를 찼다. 유세운은 벼락처럼 앞으로 달려왔다. 유청운의 검강이 다가오는 찰나 앞발에 중심을 실으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위로 지나가는 검강을 뒤로하고 더욱 유청운에게 다가갔다. 유청운은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검강을 거두었다. 유세운은 양손에 강기를 모으고는 더욱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핫! 현룡출검(玄龍出劍)!”
유청운의 품에서 검은 용이 뛰쳐나오듯 검강을 감싼 검은 기운이 달려들었다. 검은 용이 입을 벌리고 덤벼드는 듯한
현상이었다. 유세운은 양손에 모은 강기로 검은 용의 옆구리를 두들겼다.
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 용은 산산이 흩어졌고 유세운은 더욱 바짝 다가들었다. 유청운은 뒤로 물러나며 검을
천천히 내밀었다. 유세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호! 이젠 정말 검강을 잘 다루는데?’
유세운은 육감을 열었다. 유청운의 검극을 따라 한 가닥 검강이 날카롭게 덮쳐 오는 것이 느껴졌다.
유세운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강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고개를 흔들어 검강을 피한 유세운은 더욱 접근했다. 유청운은 검을 품으로 거두며 한 발 앞으로 달려 나왔다.
순식간에 거릴 좁힌 유청운은 주저 없이 검으로 밑에서부터 위로 찔러 들어갔다.
“현룡승천(玄龍昇天)!”
검강을 실은 검은 용이 승천하듯 치솟자 유세운은 왼손에 무상진기를 끌어올렸다. 와선형의 강기가 형성되자 검강을
와해하고 검지와 중지사이에 검을 잡았다. 유세운은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유청운은 유세운의 손에 잡혀있는 자신의 검을 보고 씁쓸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정말 대단하구나.”
유세운은 유청운의 검을 손에서 놓으며 말했다.
“형. 솔직히 놀랐어. 그 짧은 시간에 검강까지 익히다니.”
유청운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의념을 싣는 것은 배웠지만 아직 많이 미숙한 것 같다.”
유세운은 손으로 턱을 괴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현류십삼검의 흐름을 완전히 꿰뚫지 못한 탓인 것 같아요. 아직 마음이 이는 곳에 진기가 이르는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 탓이에요.”
“마음이 이는 곳에 진기가 이르는 경지?”
“응.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검이 나갈 수 있는 경지이지. 초식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지기도 하는 경지야. 그리고
일단 현류십삼검의 흐름을 꿰뚫는 것이 우선이야. 뭘 알아야 잊어버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알아야 잊을 수 있다라.”
유청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류십삼검의 흐름을 꿰뚫어야 만이 그것을 잊고 마음이 이는 곳에 진기가 이르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유청운은 천천히 검을 들어 현류십삼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유세운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다가 연무장으로 다가오는 유주란을 보고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누나. 미안한데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는데…”
“뭐!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죽고…읍!”
유세운은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는 유주란의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 지금 형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란 말야. 방해하면 안 되니까 누나는 내일 같이 하자.”
“읍! 읍!”
유주란은 유청운이 천천히 펼치는 현류십삼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천천히 유주란의 입을 막았던 손을
내리며 웃음 지었다.
“중요한 순간이야.”
유청운은 이미 현류십삼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서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부드러움이 깃털만 같았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류십삼검의 오의인 부드러움을 거의 깨닫는 중이군.”
“그래?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 보인다.”
“그럼. 잘하면 현류십삼검의 오의를 완전히 터득할 지도 모르는데…”
“흐음. 역시 오빠는 대단하군.”
고개를 끄덕이던 유주란은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보았다. 높이 날던 새의 깃털 하나가 팔랑이며 떨어져
내렸다. 유주란은 가만히 떨어져 내리는 깃털을 바라보았다. 팔랑이며 불규칙하게 떨어져 내리는 깃털을 바라보던
유주란은 검을 뽑아 들었다. 유세운은 갑자기 검을 뽑아드는 유주란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유주란은 천천히 깃털의
떨어지는 모습을 따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깃털의 모습을 검에 담으려고
휘두르는 유주란을 보며 유세운은 혀를 내둘렀다.
‘떨어지는 깃털을 보고 변검을 익히는 건가? 아직 무리일 텐데…’
유세운의 걱정처럼 유주란의 검은 이곳저곳 빈틈이 많았다. 그저 무언가의 영감이 떠올라 휘두르기 시작한 검에
떨어지던 깃털이 닿았다.
스윽-
반으로 갈라지며 떨어져 내리는 깃털을 바라보던 유주란의 시선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이 이렇게 아쉽게 끝났다는 것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반으로 갈라진 깃털의 조각은 불규칙하게
흔들리며 유주란의 코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에? 에…에취!”
유주란은 코끝을 간질이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했다.
유청운은 부드럽고 끊이지 않는 검로에 몸을 싣고 흐름을 깨달아가다가 문득 들려오는 재채기 소리에 감각이
돌아왔다. 유청운은 나아가던 검과 검로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져 멈춰 섰다. 유청운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검을
거두어 들였다. 유청운은 고개를 돌리다가 유주란의 풀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왜 그러고 있는 거냐?”
“오빠. 죄송해요…”
“무슨 소리냐?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오빠에게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유청운은 천천히 다가가 이제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 유주란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말했다.
“걱정마라. 그보다 괜찮은 거냐? 잘못하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니 조심해라.”
“그게. 새의 깃털이 코에 떨어지는 바람에 그만…”
유청운은 유주란의 말에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유세운을 돌아보았다. 유세운의 얼굴가득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유청운은 밝게 웃음지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일찍부터 수련을 했더니 피곤하구나. 먼저 들어가마.”
“그래요.”
유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유청운은 다시 한번 유주란을 달래주고는 연무장을 벗어났다. 유세운은 유주란을
쏘아보며 말했다.
“중요한 순간이라고 했잖아.”
“흥!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는줄 알아!”
버럭 화를 내는 유주란을 보고 유세운은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그보다 뭔가 얻은 게 있어? 떨어지는 깃털을 보고 검을 휘두르던데?”
유세운의 물음에 유주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깃털이 베어 지기 전까지의 순간과 베어지던 순간의 아쉬움이 다시 찾아
왔다. 유세운은 혀를 차며 말했다.
“아쉽네. 그럼 내일부터 새의 깃털을 모아와.”
“새의 깃털?”
“그래 내가 위에서 떨어트려 줄 테니 뭔가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그럼 뭔가 얻을 수 있을까?”
유세운은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누나가 깜빡했나본데 내가 바로 광오문의 이대 문주야. 나와 무언가를 하면서 얻을 게 없을 거라는 걱정은
버려.”
“그래…”
말끝을 흐리며 유주란은 다시 한번 연무장을 벗어나 별궁으로 향한 유청운의 뒷모습을 찾았다.
창명백검수蒼明百劍手)를 맡아주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