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58화 (5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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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낯선 방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세운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고

창밖을 보며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인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뿌연 안개가 가득한 새벽의 모습이었다.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는군.”

유세운은 저절로 눈이 떠지는 자신의 습관을 한탄하며 방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아직 새벽이라 주변에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렸지만 유세운은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어제 저녁 시비에게 물어서 연무장의 위치를 확인해 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제대로 몸을 풀어본 적이 없었다. 배로 오는 길이나 마차를 타고 움직일 동안

항상 몸이 찌뿌듯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아직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시기이니 가서 몸을 풀어야 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별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자리 잡고 있던 연무장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유세운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안개가 가득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런 거는 상관없었다. 연무장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긴 유세운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새벽의 시원한 공기가 몸 전체로 퍼지면서 머리를 맑게 했다. 유세운은 손을 들어 우측 일권을

내뻗어 보았다.

팡!

짧게 끊어 친 유세운의 주먹이 돌아오면서 몸을 틀어 진각을 내딛었다.

쿵-

진각에 이은 좌측 팔꿈치가 뻗어 나가고 곧장 이어지는 발차기. 유세운은 마음이 가는대로 팔각연환권을 펼쳤다.

비록 상대는 없었지만 그의 권로(拳路)에는 자유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무아지경에 접어들며 유세운의 일권

일각에서는 은색의 빛이 서서히 뿜어져 나왔다. 와선형으로 내뻗어지는 진기의 영역에 들어오는 새벽안개들은

흩어졌다. 유세운의 왼발이 진각을 내딛었다.

쿠웅-

쩌적!

바닥에 깔린 청석에 금이 가고 유세운의 일권이 내뻗어졌다.

슈아악-

유세운의 일권에 시야를 가리던 전방의 안개가 와선형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역시 몸을 조금 움직여 줘야 해.”

유세운은 흩어진 안개가 서서히 다시 뭉쳐지는 모습 사이로 연무장으로 다가오는 인영을 보았다.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하하하. 잘 잤어?”

유세운의 인사에 연무장을 향해 다가오던 인영은 웃음을 지었다.

“그럼요. 유오라버니는요?”

말을 하며 다가오는 백연혜를 보고 유세운은 잠시 말을 잊었다. 서서히 떠오르는 여명이 안개 사이로 스며들었고 그

빛은 면사를 벗은 백연혜의 얼굴에서 곱게 스며들었다. 백연혜의 얼굴을 잠시 말을 잊고 보던 유세운은 곧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물론이지. 밥도 맛있게 잘하더라고. 그리고 침대도 아주 좋던데? 아주 오랜만에 편히 잠을 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웃음 짓는 백연혜를 바라보던 유세운은 마주 웃으며 물었다.

“장강삼검중 막히는 부분이 있어?”

백연혜는 얼굴을 약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백연혜는 곧 말을 이었다.

“첫번째 초식부터 이해가 안가요.”

“장강불진이?”

“예. 어떻게 앞을 가로막는데도 뚫을 수가 있는 거죠?”

“흠.”

유세운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확실히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말로

설명해주려니 막막했다.

‘역시 사부님이군. 말로 가르쳐 주기 힘드니까 그렇게 무식하게 가르쳐 준 거였어.’

유세운은 속으로 은태정을 생각하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백연혜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혜가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 초식을 펼쳐 보여줄래?”

“최대한의 방어 초식이요?”

“응. 연혜가 아는 최대한의 방어 초식.”

“예,”

백연혜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검을 뽑아들었다.

차앙-

맑은 검명을 울리며 뽑힌 검을 보며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천궁의 금지옥엽이라 그런지 가지고 있는 검이

예사롭지 않았다. 백연혜는 검을 세우더니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유세운의 눈에 이채가 띄어졌다. 백연혜의

자세가 의외로 허점이 거의 없어보였다. 백연혜의 낭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신검막(護身劍膜)!”

스파파팟-

백연혜의 주변을 검기(劍氣)가 촘촘히 막을 만들며 그녀를 가렸다. 유세운은 감탄한 듯이 말했다.

“아주 좋아. 그럼 장강불진(長江不進)을 펼쳐 볼게.”

유세운은 말과 함께 주먹을 내 뻗었다. 백연혜는 호신검막을 펼치며 유세운의 주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유세운의

주먹은 검막의 앞에서 잠시 가볍게 흔들리더니 바로 검막을 헤치며 코앞까지 들이 닥쳤다. 백연혜는 코앞에서 멈춰진

주먹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세운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상대의 공격이나 방어를 뚫는 방어는 두 가지야. 힘으로 뚫는 것과 이것처럼 자신의 예봉(銳鋒)으로 공격을

흘리며 공격하는 것이 있지.”

“예봉으로요?”

“그래. 흠. 장강에서 본 것처럼 어디든 스며 들 수 있다는 것이 물의 특징이야. 그걸 극도로 살린 거지.

자신의 기운을 날카롭게 만들어서 흐름을 파고 들어가는 거야. 적의 기운을 옆으로 흘리며 파고 들어가는 거지.”

“아! 그렇군요.”

백연혜는 이제야 제대로 파악이 된 듯 밝게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나도 이것을 보기 전까지는 힘으로 뚫었겠지만 장강불진을 보고는 이렇게 뚫는 방법도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유세운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좋아. 그럼 내가 수비식을 펼칠테니 뚫어봐.”

“알았어요.”

백연혜는 유세운의 말에 뭔가 깨달음을 얻어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금세 후회를 했다. 유세운이 가볍게

팔을 벌리고는 그 사이로 은빛의 강기가 모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연혜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자신의 검 끝으로

정신을 모으자 푸른 검기가 일렁이며 뻗어 나왔다. 백연혜는 주저 없이 검을 유세운이 만든 강기를 향해 찔렀다.

치익-

“꺄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백연혜의 검이 일척 정도 파고들었다가 튕겨나갔다. 유세운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쫓아오며

물었다.

“괜찮아?”

백연혜는 팔에 아직도 은은히 밀려오는 통증을 억누르며 간신히 웃음을 지었다.

“유오라버니의 강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군요.”

“쩝. 그건 그렇지만 하하하. 괜찮은 거야?”

유세운은 백연혜의 칭찬에 어색하게 웃음 짓고는 걱정스레 다시 한번 물었다. 백연혜는 팔로 진기를 한번 돌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아요. 다시 한번해요.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괜찮겠어?”

“예.”

백연혜의 표정을 살피던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다시 팔을 벌리고 그 사이로 강기를 만들었다.

백연혜는 주저 없이 검을 찔러 들어왔다. 검기가 강기 막에 닿는 순간 정신을 집중했다. 강기 막의 흐름을 헤치며

조금씩 파고 들어갔지만 아까보다 조금 더 들어갔다가 다시 튕겨져 날아갔다. 유세운은 다가가려다가 금세 일어나는

백연혜의 눈빛을 보고는 차분히 다시 강기를 일으켰다. 백연혜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본 유세운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다시 검을 찔러 들어왔다.

치익-

백연혜는 다시 튕겨져 날아갔다.

유청운은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유세운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아침은 그렇다 쳐도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다.

걱정이 되서 밖으로 걸어 나온 유청운은 결국 연무장으로 향했다. 혹시나 했지만 거기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련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연무장으로 다가가던 유청운은 유세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걸음을 멈췄다.

“하하하. 이거 이거 우리 연혜 실력이 장난이 아닌걸?”

“하아. 하아. 고마워요. 다 오라버니 덕이에요.”

유세운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아냐. 이렇게 빨리 터득하다니 말야. 대단해. 솔직히 이정도의 강기막을 뚫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백연혜는 상기된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다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몇 번이나 실패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더욱이

이런 식의 무공수련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지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두번째 초식인 장강붕파(長江崩波)는 명상이 도움이 될 거야. 왜냐하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아야 펼칠 수

있을 테니까.”

“장강붕파는 검강으로 펼치는 검식이었죠?”

“응.”

“하루아침에 익힐 수는 없겠군요.”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그건 정말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 마음을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한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 볼 수 있어야해. 운기랑은 조금 다른 개념인데 자신 내면의 우주를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백연혜는 유세운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 넣었다.

“예. 오라버니 고마워요.”

백연혜의 밝은 웃음에 유세운도 밝게 웃었다. 백연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는 놀라며 말했다.

“어머! 벌써 점심이네. 어쩌죠? 아침도 못 드신 거 아네요?”

“하하. 내가 뭐한 게 있다고 고생하고 아침도 못 먹은 연혜가 힘든 거지.”

백연혜는 유세운의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고마워요. 그럼 전 가볼게요. 고마워요.”

“그래. 수련과 명상은 안 빼먹는 게 제일 빨리 실력이 느는거야.”

“알았어요.”

백연혜는 웃음 짓고는 총총히 연무장을 벗어났다. 백연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유세운은 웃음 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만 나와요. 뭐 볼게 있다고 그래요.”

유세운의 말에 유청운은 모습을 나타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훗. 하긴 너의 이목을 속일 수는 없지. 그래 백소저와 두시진 동안이나 무얼 한 것이냐?”

“무공 수련이요.”

“그래? 하긴 너 정도의 고수에게 배운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되겠구나.”

“하하. 형도 쑥스럽게 무슨…”

유청운은 유세운에게 다가가더니 웃음 지으며 물었다.

“그럼 내게도 가르쳐 줄 것이 혹 없느냐?”

“에이 형! 전 권법가라고요. 그리고 형은 영호형님한테 일주일이나 배웠잖아요.”

“그건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유청운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웃음 지었다.

“혹 나중에 무언가 가르쳐 드릴게 생각나면 말할게요.”

“그래. 고맙다. 아침도 못 먹었지? 가서 점심이나 먹자.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예.”

유세운은 유청운을 따라 별궁으로 걸음을 향하며 아까 백연혜와의 수련시간을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창천궁주와의 첫만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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