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창천궁주와의 첫만남.”
대청으로 들어오는 중년인은 백연문이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중후한 인상에 젊었을 때 꽤나
많은 여자를 울렸을 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눈가의 잔주름만 아니었다면 아직도 서른 살 정도로 봐줄만한
인물이었다. 고급 천으로 만들어진 듯한 푸른 장삼을 입고 허리춤에는 한 자루 검을 매고 있었다. 그의 뒤에
따라오는 두 노인은 쌍둥이였다.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들어오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유세운은 신기해했다.
‘쌍둥이는 처음 보는군. 어떻게 저렇게 똑 같을 수 있지?’
중년인은 대청으로 들어오더니 시선을 돌리다 유세운에게 눈길이 멈춰졌다. 마치 무언가를 탐색하듯 스쳐 바라보는
눈길에 유세운은 안색을 굳혔다.
‘뭐야? 불쾌하게 쳐다보는군.’
중년인은 시선을 돌려 유태청을 바라보고는 인사했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백선후라 하오.”
백선후라는 중년인의 말에 유태청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창천궁주님이시군요. 이렇게까지 유가장을 위해 신경 써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허허. 유장주의 협의지도는 모든 무림인이 동경하는 것이니 당연한거 아니겠소?”
“과찬의 말입니다.”
유세운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백선후를 바라보았다. 말하는 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도 유태청과 비슷해
보였는데 처음부터 하대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유주란은 유세운의 안색을 살펴보고는 슬며시
전음을 보냈다.
(표정이 왜 그러냐?)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신 답하고 백선후를 쏘아 보았다. 백선후는 유세운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태연하게 유청운을 돌아보았다. 백선후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쳐갔다.
“자네가 현영검 유청운인가?”
“예. 유청운이라고 합니다.”
“허허. 이거 이제 강호의 삼룡삼봉도 교체 될 때가 된 것 같군. 이렇게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나오니 말야.”
“과찬이십니다.”
유청운은 깊이 읍을 하며 대답했다. 백선후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시선을 돌려 유주란을 바라보았다.
“산검낭자 유소저인가?”
“예. 유주란이라 합니다.”
“허허허. 이번에 고생이 많았겠군.”
“신경써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백선후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백선후는 의외로 자신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유세운을
보며 의아해 했다.
“자네가 일권무적(一拳無敵)이라 불리우는 유세운인가?”
유세운은 난생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제가 유세운은 맞습니다만 일권무적은 누구를 칭하는 건지?”
유세운의 말에 백선후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요즘 강호에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으로 일권무적 유세운을 꼽고 있다네. 자네의 무위는 정협련주와 십강호법에
의해서 이미 강호에 소문이 났네.”
“흠. 그랬군.”
유세운은 나름대로 일권무적이라는 별호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처럼 무광이라던가 그런 별호가 아니라는 것이
나름대로 만족스러워 속으로 웃음 지었다. 백선후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건넸다.
“만나서 반갑네.”
유세운은 백선후를 빤히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알기로 제가 배분이 더 높다고 들었습니다만…”
유세운의 갑작스런 말에 백선후는 당황해서 차분한 인상이 무너질 뻔 했다. 백선후의 뒤에 서 있던 쌍둥이 노인도
기가 막힌 듯 실소를 터트렸고 유청운은 이마를 감싸 안았다. 유태청과 유주란의 표정에도 당황함이 가득했다.
백선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흠. 허허. 그건 그렇지…허허.”
“흠. 그렇군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유세운은 이정도로 놀려 줬으면 됐다 싶어서 읍을 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한 백선후는 잠시 안색을 붉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공력을 일으켜 유세운을 내리 눌렀다.
유세운은 자신을 누르는 백선후의 공력을 느끼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유세운은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켰고 그
여파로 백선후의 어깨가 휘청하는 듯싶더니 금세 몸을 가다듬었다. 백선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에 대한 소문이 워낙 황당해서 과장이 심한 듯 했는데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군.”
“제 소문이요?”
“일수에 철탑백마인들 서넛을 날려버렸다더니 오히려 부족한 감이 있군.”
“하하하. 그거야 뭐 워낙 수가 많아서 어쩔 수 없었죠. 운도 조금 따른 것 같고요.”
“아닐세. 아니야. 자네는 나보다도 뛰어난 것 같군.”
“과찬의 말씀입니다.”
백선후의 말에 좌중은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고 그의 뒤에 서 있던 쌍둥이 노인은 강렬한 눈빛으로 유세운을
쏘아보았다.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시니까 다들 오해하지 않습니까?”
유세운의 말에 백선후는 좌중의 분위기를 읽고는 태연하게 헛기침을 했다.
“흠. 흠. 그런가? 내가 실수했군.”
백선후의 말에 좌중은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들 어색하게 웃었다. 백선후는 웃음 짓고 있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전음을 보냈다.
(그런데 솔직히 자네가 나보다 뛰어나 보이기는 하네.)
유세운은 그저 웃음으로만 대답을 했다.
‘윽! 정말 불편하군. 전음을 어서 배우던지 해야지.’
백선후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 집처럼 생각하게나.”
“앞으로 신세를 지겠습니다.”
유세운은 백선후의 말에 읍을 하며 대답했다. 백선후는 고개를 돌려 유태청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유대협도 조금 힘들더라도 편히 지내주시기 바라오.”
“별 말씀을. 신세를 지겠습니다.”
백선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청을 나갔다. 유세운은 백선후를 따라 나가는 백연혜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장강삼검중 뭔가 막히는 게 있으면 찾아와요. 가르쳐 줄게요.”
백연혜는 유세운의 말에 밝게 웃음 지으며 전음을 보냈다.
(호호. 오라버니. 편히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왜 그러세요?)
백연혜의 물음에 유세운은 가볍게 볼을 긁었다. 그런 유세운의 모습을 보고 백연혜는 웃음을 짓고는 유태청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음에 올게요. 수련하다 막히면요.)
유세운은 다시 한번 전음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백연혜마저 물러나자 유세운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유세운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보자 가족들이 모두 자신을 쏘아 보는 것을 알았다. 유태청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리에 앉거라.”
“예.”
유세운은 분위기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의아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유태청은 유세운이 자리에 앉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말 버릇이냐.”
“예?”
유세운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다. 하지만 유태청은 표정하나 안 바꾸고 똑 같은 말을 다시 했다.
“무슨 말 버릇이냐고 물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배분의 얘기를 꺼낸 것 말이다.”
유세운은 유태청과 유청운, 유주란의 분위기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고는 실소했다.
“하지만 그 백가 아저씨가 먼저 아버지에게 말을 하대했잖아요."
"백가 아저씨?“
유세운의 말에 유주란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반문했다. 유세운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
“천하에 창천궁주를 보고 그렇게 부르는 녀석은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다.”
“아무렴 어때.”
유세운은 다시 시선을 돌려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유태청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는 이미 정파의 하늘이 된 사람이다.”
유세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나이도 아버지와 비슷해 보이는데 자신이 가진 권력을 믿고 그런 식으로 말한 것부터가
실례라고요.”
유세운은 열변에 유태청은 가만히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유세운도 지지 않고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유청운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한테 무슨 말 버릇이냐.”
유청운의 말에 유세운은 치밀어 오르던 울화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유세운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유세운은 다시 고개를 들어 유태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누구도 아버지에게 함부로 하대 할 수 없어요.”
유태청은 말없이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한번 말했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제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겠어요.”
유세운은 말없이 자신을 보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유세운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유태청은 자신의 방으로 가는 유세운의
뒷모습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유청운은 그런 유태청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그래도 세운이가 생각 없이 한 행동은 아니니 그만 잊으시죠.”
“그래요. 세운이도 아버지를 생각한 거니 그만 화 푸세요.”
유주란까지 거들고 나서자 유태청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유청운과 유주란의 눈을 바라보며 유태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되는 구나. 저렇게 살아가기에 강호는 너무 험난한 곳이니 말이다.”
유청운은 유태청의 말에 웃음 지었다.
“아니에요. 세운이는 이런 강호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겁니다.”
유청운의 말에 유주란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충분할거에요.”
유태청은 고개를 끄덕이고 유청운과 유주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강호란 험난한 곳이니 너희가 세운이를 조금 더 신경 써다오.”
“예.”
“걱정마세요.”
유태청은 유주란과 유청운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손을 살며시 토닥여 주었다.
창천궁주와의 첫만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