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갑판으로 올라온 유세운과 유청운은 시야를 가득 메우는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옥빛의 장삼을 입은 사내들이 말을 타고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는 마차 두 대가 있었다. 유세운은 백연혜에게 물었다.
“저들은 누구죠?”
백연혜도 같이 그쪽을 바라보다가 유세운의 물음에 웃음 지었다.
“저들은 저희 창천궁의 창천척마대(蒼天斥魔隊)에요. 저희를 마중 나온 것 같군요.”
“창천척마대?”
“예. 창천척마대는 오백의 검사로 이루어져 있어요. 개개인의 무공보다는 집단 전투에 강하죠.”
“음. 집단전투라~”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옥빛의 장삼을 입은 검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두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척마라고 적혀있었다. 유세운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척마라…”
“다 왔으니 내려요.”
백연혜의 말에 고개를 돌린 유세운은 사람들이 내리는 것을 보고는 같이 배에서 내렸다.
창천척마대라고 불린 인원 중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다가왔다. 유세운은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단정하게 쓸어 올린 머리를 두건으로 질끈 동여맨 사내는 등에 한 자루 검을 매고 있었다. 중년의 사내는 날카로운 안광을 뿜으며 다가와 백연문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닐세. 자네가 고생이 많군.”
백연문은 태연하게 대답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선박들에서 흑마천살대와 철탑백마인들이 내리고 있었다. 창운쌍검이 다가오자 중년의 사내는 포권을 취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음. 척마대장이로군. 그래. 자네도 수고 많네.”
창운쌍검중 일검이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척마대장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할 일이라고는 저자들을 옮기는 일 밖에 없는데 제가 무슨…”
“흐음. 그런가? 수고 좀 해주게.”
“예. 그럼 저는 이만…”
중년인은 백연문에게 고개 숙여 보이고는 창천척마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유세운은 멀뚱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백연혜에게 물었다.
“흐음. 조금 무뚝뚝한 거 같은데?”
“아! 워낙 엄하기로 소문난 분이세요.”
“하긴 그래야 대원들을 잘 통솔하겠지.”
“물론이죠. 그의 말이라면 불속이라도 들어갈 만큼 잘 훈련이 돼있어요.”
“흐음.”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리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왜 그러세요?”
유세운은 창천척마대의 뒤로 보이는 마차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저거 우리 타고 가려는 건 아니지?”
백연혜는 마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마차는 저희와 유가장 분들이 타실 거 같은데요?”
“으윽!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왜요?”
“마차는 지긋지긋하단 말이야.”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리는 유세운을 보며 백연혜는 미소 지었다.
“마차가 편하지 않겠나?”
유세운은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영호형님은 모르셔서 그러는데 저거 정말 지루하다고요.”
“후후.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영호천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봐요. 차라리 말을 타고 가거나 뛰어가지.”
유세운의 말을 들은 유주란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너는 뛰어가려무나.”
“엑! 거기가 어딘 줄 알고 뛰어가라는 거야?”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는데 뭐.”
유세운은 유주란의 말에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하여튼 누나라는 사람이 동생 괴롭힐 생각만 하면서 산다니깐…”
유주란은 슬며시 검을 움켜쥐며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한번 더 해 볼까?”
유세운은 슬그머니 영호천의 뒤로 가며 말했다.
“다음에 하자고… 사람 많은데서 창피하지도 않아?”
“흥!”
유주란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검을 움켜쥐었던 손을 놓았다. 영호천은 유세운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인 것 같군.”
“아! 맞다. 영호형님 어디로 가실 거예요?”
유세운의 물음에 영호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는 모르겠군. 어차피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하는 거라 굳이 목적지가 없군.”
“앗! 그러면 어떻게 다시 봐요?”
안타까워하는 유세운의 모습을 보며 영호천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영호천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유세운과의 대화에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영호천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겨뤄보고 싶은 사람들이 몇 명 있군.”
“엑? 형님 정도 되는 분이 대체 누구랑 겨루려는 거죠?”
유세운의 질문에 영호천은 미소로 대답했다.
“예전에 들은 적이 있던 것 같아 낭인천(狼人天)이라고 그곳은 나처럼 무도를 깨달으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분명히 배울만한 것들이 있을 거야.”
“낭인천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세운의 옆에서 백연혜가 설명해 주었다.
“낭인천이라면 지금은 천주는 없고 두 명이 대신 이끌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차피 그들 모두가 무의 극을 찾아 움직이는 자들이니 숨은 기인들이 많을 거예요.”
“오? 그래?”
유세운이 구미가 당기는 듯이 대답하자 영호천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구미가 동해도 어쩔 수 없어. 유소제가 오기 전에 내가 다 겨루어 볼테니까…”
“엑? 그런게 어디 있어요!”
투덜거리는 유세운을 보며 영호천은 가볍게 웃음만 지어 보였다. 영호천은 유태청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유장주님. 그럼 저는 이만 목적지가 달라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청운이를 신경 써 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네.”
“유공자의 자질이 너무 뛰어나 괜한 간섭을 한 게 아닌가하고 후회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하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일주일간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하건만…”
“과찬이십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영호천을 보며 유태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라도 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탤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게.”
“예.”
영호천은 대답을 하고는 유청운을 돌아보았다. 영호천은 유청운에게 다가가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유소제를 잘 부탁하네.”
“걱정 마시오. 그리고 내 수소문 해 보리다.”
“후후후. 어쩌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소.”
“후후후. 그러게 말이오. 하지만 이렇게 빚만 지고는 못사니 기다리시오. 내 반드시 좋은 소식을 전해 주겠소.”
“좋소. 좋아. 그러면 유공자만 믿겠소.”
“걱정 마시오.”
영호천은 미소를 지은 체 백연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언제 한번 백공자의 검도 견식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구료.”
백연문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마시오. 영호대협 정도의 고수를 내 어찌 상대하겠소.”
“창천궁의 검을 견식 할 기회가 나중에라도 있겠지요.”
“내 나중에 검에 자신이 붙으면 하기 싫어도 하시게 될 거요. 영호대협은 정말 한번쯤 검을 섞어보고 싶게 만드는 무인이니까 말이오.”
“기대하겠소.”
영호천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은 체 고개를 끄덕였다. 영호천은 마지막으로 백연혜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백연혜는 머리로 바로 전해져 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유소제를 놓치지 마시오. 솔직히 무림의 역사에 한줄 이름을 남길 녀석이니 말이오.)
‘혜광심어(慧光心語)? 그 정도의 고수였었나?’
백연혜는 영호천의 전음의 내용보다도 그의 경지에 대해 깜짝 놀랐다. 혜광심어라면 적어도 이갑자의 내력이 필요한 무공이거늘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말하는 영호천의 내력은 추측하기조차 힘들었다. 백연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답을 하려고 영호천의 말을 되새기던 백연혜의 얼굴은 홍시처럼 붉게 익었다.
“예. 영호대협의 말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유소제에게 물어보시구려. 아마 녀석만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도 없을테니 말이오.”
“예.”
백연혜의 대답을 들은 영호천은 미소를 지으며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이제 당분간 이별이군.”
영호천의 말에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영호형님 마음 놓고 계시면 안 됩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아시죠?”
“하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영호천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유세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나도 놀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 유소제도 다음에 만났을 때 내 검을 탓하지 말게.”
“물론이죠. 걱정 말아요.”
영호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사람들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영호천을 향해 일행은 모두 포권을 취하며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조심해요.”
유세운의 쓸데없는 걱정에 영호천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돌아섰다. 영호천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여운을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여운은 말없이 자신이 잡고 있던 말고삐를 건네주었다.
“웬 말인가?”
“타고 가십시오. 소공녀님에게 절학을 가르쳐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가인가?”
영호천의 말에 여운은 가볍게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영호천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고삐를 받아들었다.
“이 말의 이름이 있는가?”
“묵운(墨雲)이라는 녀석입니다.”
“묵운이라… 멋지군. 고맙네.”
영호천은 가볍게 말에 올라서는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영호천은 말고삐를 틀어쥐며 말의 배를 힘껏 찼다.
히히힝-
묵운이라 불린 말은 윤기 나는 검은 갈기를 휘날리며 바람을 가르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영호천의 뒷모습을 보며 유세운은 기지개를 힘껏 켰다.
“형님. 두고 보자고요. 다음에 만날 때는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두고 보긴 뭘 두고 봐. 빨리 와서 마차나 몰아!”
유세운은 뒤에서 들려오는 유주란의 말에 인상을 확 구겼다.
떠나는 영호천(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