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일주일간의 약속.”
강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쓸어내리는 영호천을 향해 유세운이 다가왔다.
“영호형님.”
“응?”
영호천은 고개를 돌려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 있는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체 다가와서는 조용히 말을 건넸다.
“영호형님. 형님은 검강을 언제 익히셨습니까?”
“검강?”
“예.”
“흐음. 그건 그냥 무형의 기운을 유형의 기운으로 바꿔주게 된 건데…그게 언제더라…”
유세운은 멀뚱히 영호천의 대답을 기다리며 바라보았다. 영호천은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가 손뼉을 쳤다.
“아! 그렇군. 아버지와 대련을 하던 중에 우연히 도저히 검기로는 안 되겠기에 발버둥치다가 어느 순간 깨달은 것 같군.”
“대련이라…”
“유소제는 강기를 언제 깨달았는데?”
“음. 저도 비슷하네요. 사부와의 대련 중에 깨닫게 되었죠.”
“흐음.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건가?”
유세운은 영호천에게 바짝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쌍창을 쓰는 사람이 강기를 익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요?”
영호천은 잔뜩 긴장하고 말을 들었다가 실없다는 듯이 웃음 지었다.
“하하. 자네가 그 정도 질문을 하다니 우습군. 나 같으면 검막으로 막아낸 다음에 가볍게 일검으로 베면 끝날 것 같은데…”
“휴~ 저도 제가 직접 싸울 거라면 걱정도 안하지요. 제 형님이 싸워야 할 상대가 그러니 문제지요.”
“형님? 아! 청운공자님 말인가?”
“예.”
“흐음. 큰일이군. 그분이라면 아직 검기 정도에 머무르는 것 같은데…”
“그러니 말이죠. 어떻게 좋은 방법 없을까요?”
영호천은 침중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는 고개를 들어 유세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쌍창을 쓰는 상대라면 누굴 말하는 건가?”
“음. 승천단창 이라던데요?”
“아! 헌원소저를 말하는 건가?”
“예. 아세요?”
“아니 말로만 들었지. 아마 신진고수 중 여류고수로는 최강을 달린다고 들었다.”
“흐음. 그녀가 상대에요.”
“쉽진 않겠군.”
“그렇죠.”
영호천은 앞을 내다보며 물었다.
“우리가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가?”
“예? 잠시만요.”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뒤에서 바람을 맞고 있던 백연혜에게 다가갔다.
“연혜. 우리가 언제쯤 도착 할 수 있을까?”
백연혜는 가만히 손을 꼽아 보고는 대답했다.
“저희는 늦어도 아마 일주일안에 도착할거에요.”
“일주일?”
유세운은 영호천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일주일 정도 남았다는 군요.”
“일주일이라…”
“얼마 안 남았군요.”
영호천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유세운이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영호천은 유세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청운공자님을 내게 맡기게. 내가 그녀를 상대할 만큼 강하게 만들어주지.”
“에? 일주일 만에요? 무리에요.”
“아냐. 일단 내게 한 번 맡겨보게.”
“흠. 그럼 저야 고맙지만…”
주저하는 유세운을 보고 영호천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그녀와도 한번 겨루어 보고 싶었었네. 나대신 겨루어 준다면 고마운 일 아닌가?”
“그건 그렇군요.”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영호형님.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무슨 소린가. 나도 좋자고 하는 일이니 그런 걱정 말게…”
“예.”
영호천은 고검의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그럼 어서 말을 전하게…그리고 선실 하나만 비워 주겠나?”
“예. 그렇게 하지요.”
유세운은 웃음 짓고는 서둘러 선실로 향했다. 백연혜가 서둘러 뛰어가는 유세운을 보고는 물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음? 아! 우리 형님 결혼시켜 드릴려구…”
“아! 영호공자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셨나요?”
“응. 아! 우리 비는 선실이 있나?”
“예. 꽤 많아요. 여운. 선실 하나 알아봐 주시겠어요. 넓은 곳으로 알아봐 주세요.”
“예.”
여운은 고개를 숙이고는 유세운보다 앞장서 내려갔다. 유세운은 헐레벌떡 뛰어가 유청운이 쉬고 있는 선실의 문을 열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세운을 보며 유청운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것이냐?”
“형! 강해지고 싶은 생각 있어요?”
“응?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형! 강해지고 싶은 생각 있냐고요.”
“무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 아니더냐?”
“좋아요. 그럼 저 믿어요?”
유청운은 유세운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보려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저 믿냐고요.”
두 눈을 빛내며 묻는 유세운을 바라보고는 결국 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느냐?”
“그럼 제 말을 믿고 따라줘요.”
“그래.”
“제가 영호형님한테 부탁해 놨거든요. 그래서 지금 여운이 선실도 하나 비우러 갔고…일주일안에 형을 강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일주일?”
“예. 아마 형이 원하는 만큼 강해질 거예요.”
“내가 원하는 만큼?”
“그래요. 솔직히 영호형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결코 제 밑은 아니니까 말이야.”
“흐음.”
유청운은 갑작스런 유세운의 제안에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저를 믿으면 그냥 따라줘요. 결코 손해 보지 않을 거예요.”
유청운은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빛내며 자신을 부담스러울 만큼 바라보는 유세운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어차피 나도 원하는 일이니까 너를 믿으마.”
“예. 그럼 가죠.”
“그래.”
유청운은 유세운의 말을 듣고 갑판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세운을 따라 걸어 나온 유청운은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죽립에 긴 흑발을 휘날리는 특이한 사내. 강호의 삼류 잡배들이나 쓰는 무공으로도 동생과 호각을 이루었던 사내였다. 결코 보통 고수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청운이 영호천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영호천은 유청운의 앞에 다가와 읍을 하며 말을 건넸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예. 영호대협도 편히 주무셨습니까?”
“하하. 대협이라니요. 누가 들으면 웃습니다. 유소제가 말을 전했는지요.”
“예. 들었습니다.”
“그럼 저를 대신해 승천단창을 꺾어주실 각오는 스셨는지요?”
“승천단창을 대신 꺾어 달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유청운은 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으며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승천단창은 자신보다 강하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본다잖아요.”
유청운은 가볍게 머리를 싸안았다. 그런 유청운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유청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와 직접 겨루어 보았지만 일주일만에 그녀를 이길 수는 없다.”
영호천은 그저 담담히 웃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녀는 이미 강기를 내뿜을 정도의 고수였소. 내 상대가 아니란 말이오.”
유청운의 말을 들은 영호천은 하늘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실망이군요. 유소제 만큼이나 호탕하고 기개가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고작 한번 겨루어보고 스스로 꼬리를 내리시다니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유청운이 두 눈을 빛내며 말하자 영호천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나랑 내기를 하시겠소?”
“어떤 내기를 말이오?”
“일주일 안에 당신을 승천단창보다 강자로 만들어 주겠소.”
“그게 무슨 내기가 된단 말이오?”
“뭐 내기라고 하기도 우습군요. 제 말대로 일주일 안에 당신이 승천단창을 꺾을 만한 고수가 된다면 나를 대신해 그녀를 꺾어 주시오. 솔직히 나도 한 번 겨루어 보고 싶던 상대요.”
유청운은 가만히 눈을 빛내며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영호천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체 말을 이었다.
“만약 당신이 그녀를 꺾을 만큼 강해지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에게 소림의 대환단이라도 구해다 드리리다.”
“하! 어찌 남의 문파의 물건을 그렇게 쉽게 자신의 것처럼 말한단 말이오?”
유청운이 기막혀 하자 영호천은 피식 웃었다.
“고작 소림에서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오?”
“그래도 그건 안 될 말이오. 우리의 내기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오.”
“좋소. 좋아. 그렇다면 내가 당신이 원하는 검결 세 개를 가르쳐 드리리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유청운은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대체 무얼 믿고 그런 내기를 거는 것이오?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지 않소?”
“후후. 그야 유소제를 믿는 것이지요.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좋소.”
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영호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옆에 서 있던 유세운도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형. 두고 봐요. 분명히 형은 강해질 거예요.”
유청운은 가만히 유세운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일주일 후에 나랑 얘기 좀 하자꾸나.”
“윽! 알았어요.”
유세운은 유청운의 말에 고개를 떨구고는 시선을 돌렸다. 유청운이 저렇게 조용히 말하면 결코 가벼운 얘기가 아닐 것이었다. 유청운은 가만히 유세운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유청운의 뒤로 여운이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유공자님. 영호공자님. 지금 선실을 비워 놨습니다만…”
영호천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좋소. 그럼 내기를 진행하러 가볼까요?”
“좋소.”
일주일간의 약속(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