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49화 (4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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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

장강의 물살을 가르는 시원한 소리와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긴 흑발이 휘날렸다. 유세운은 흑발을 휘날리고 있는 죽립인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영호천은 무엇에 심취했는지 두 눈 가득 빛을 발하며 장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들의 배 뒤로 줄줄이 따라오는 배들이 보였다. 대륙전장에 창천궁주가 청해서 빌려 왔다는 선박이 줄을 이어 장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흑마천살대와 철탑백마인을 나누어 태우다 보니 배의 수는 거의 이십여 척에 달했다. 남창에서 합류한 창검백영대와 창천백검수가 배에 나누어 탄 채로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고 그 총책임은 백연문과 창운쌍검이 하고 있었다.

유세운은 다시 한번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이미 일행들과는 인사를 나눴지만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운을 가볍게 한 수에 제압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함부로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더욱이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있는 듯 없는 듯해서 사람들도 신경을 안 쓰게 되었다.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얼마나 큰 기연을 얻었기에 저 나이에 심검에 들었는지 궁금했다. 자신처럼 힘든 수련을 했을까 싶었다. 더욱이 등왕각에서 마지막 한 수를 펼칠 때 서로 마음이 통해 기를 거두었던 것을 보면 이미 기의 수발이 경지에 들어 있었다는 증거다.

솔직히 대결을 다시 펼친다면 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자신이 은광천세를 펼치지는 않았지만 영호천 또한 밑천을 다 드러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유세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영호천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입이 열렸다.

“어때? 장강의 저 흐름을 보면 뭔가 와 닿지 않니?”

“뭐가요?”

유세운은 다른 생각을 하다가 당황해서 되물음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영호천은 장강에서 시선을 때지 못한 체 말을 이었다.

“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이라든가…”

유세운은 영호천의 말에 고개를 숙여 장강을 바라보았다. 깊이만 보아도 몇 장은 넘을 것 같았다. 그런 엄청난 깊이에 흐르는 속도를 보아하니 그 장대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유세운은 생각에 잠긴 자신을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훗. 그런 것도 같네요. 그런데 영호형님은 무엇을 봐도 무공과 연관지어 보나요?”

유세운의 말에 영호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때는 어쩔 수 없더구나.”

영호천의 대답을 들은 유세운은 머리를 흔들었다.

“에휴~ 나중에 겨루는 것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응? 왜?”

영호천의 물음에 유세운은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야 사부한테 맞으면서 배운 것이 다지만 형님은 모든 걸 보고 무공생각만 하니까요.”

“하하하. 녀석. 별 걱정을 다하는 구나.”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영호천은 다시 시선을 돌려 장강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사부 생각이 떠올라 쓴 웃음을 지었다. 장강을 바라보던 영호천은 죽립 밑으로 보이는 가는 입술에 미소를 지었다.

“너…백소저가 마음에 들지?”

“예?”

예상치 못한 질문에 유세운은 어이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영호천은 여전히 미소 지은 체 말을 이었다.

“아니냐? 아니면 말고…”

“음. 그게 말이죠. 음 그러니까 그게…”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유세운의 모습을 보던 영호천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알았다. 네 마음은. 그럼 내가 무엇 하나 선물해도 될까?”

“오옷. 정말요? 그래주면 좋죠. 뭐 영약이나 그런 건가요?”

“쩝. 나 같은 낭인(狼人)이 무슨 돈이 있다고…”

“에? 그럼 뭐예요?”

실망한 기색이 가득한 체 퉁명스레 묻는 유세운을 보고 영호천은 쓴 웃음을 지었다. 영호천은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뒤쪽에서 눈을 감은 채 바람을 맞고 있는 백연혜를 보고는 불렀다.

“백소저 잠깐만 이리 와 주시겠소?”

“무슨 일이냐?”

여운은 저번의 일로 영호천의 능력이 유세운이 아니면 막을 수 없음을 알고는 일단 경계했다. 백연혜는 그런 여운의 소매를 붙잡았다. 여운이 돌아보자 백연혜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여운은 백연혜의 뜻을 이해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백연혜는 영호천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예. 무슨 일이시죠?”

영호천은 웃으며 부탁했다.

“배의 속도를 조금 늦춰 줄 수 있겠소?”

“예?”

백연혜는 뒤에서 따라오는 배들을 걱정스레 한 번 돌아보고는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백연혜의 시선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연혜는 유세운의 뜻을 확인하고서야 여운에게 부탁을 했다.

“배의 속도를 조금만 늦춰주시겠어요?”

“예.”

여운은 대답하고서는 밑으로 내려가 사공들에게 말을 전했다.

배의 속도가 현저히 줄기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배의 속도가 줄자 뒤에서 따라오던 배들도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영호천은 입가에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소저. 내가 유소제(少弟)를 대신해 선물 하나 할 테니 받아주겠소?”

“유오라버니 대신요?”

백연혜의 자연스런 대답에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강을 보면서 기쁨의 웃음을 지었다. 뿌듯한 행복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영호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연혜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렇소. 마음이 있소?”

백연혜는 유세운이 적어도 자신에 필적하는 고수라고 말해 준 것이 있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이죠.”

그녀의 말에 영호천의 가는 입술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럼 잘 보시오. 지금 즉흥적으로 떠오른 거지만…약소하더라도 받아주시면 고맙겠구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영호천은 강으로 몸을 날렸다. 백연혜는 깜짝 놀라 뱃전으로 가서 영호천을 찾아보았다. 영호천은 강물 위에 마치 평지인양 떠 있었다. 등평도수(等坪渡水)의 경지가 자연스레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백연혜는 깜짝 놀라 유세운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유세운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영호천을 구경하고 있었다. 영호천은 고개를 들어 백연혜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잘 보시오.”

영호천은 허리에 차고 있는 고검을 뽑아들고는 일검(一劍)을 찔렀다. 그의 검은 마치 유영하듯 부드럽게 뻗어 나갔다. 부드러움에 마치 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자연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영호천의 일검을 보는 유세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영호천은 내뻗었던 검을 회수하며 일검을 횡으로 그었다. 순간 파도가 치는 양 강렬한 기세가 일어나며 그의 앞에 펼쳐진 장강의 강물이 하얗게 뒤집어졌다. 영호천의 일검을 보는 유세운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매우 만족할 만한 선물이었던 것이었다.

영호천은 검을 그은 자세에서 자연스럽게 검을 치켜 올렸다. 태산압정을 펼치던 때와는 분위기는 달랐지만 그 기세 또한 범상치 않았다. 그의 검이 섬전처럼 아래로 내려치자 그의 앞에 있던 장강의 물결이 반으로 갈라졌다. 십여 장을 넘게 장강을 반쪽으로 쪼개놓은 영호천은 고검을 다시 허리에 찼다. 백연혜는 그 놀라운 위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세운도 사부 이외에 이토록 강렬한 무공을 쓰는 것을 처음 보는지라 그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영호천은 가볍게 장강의 물을 차고 사뿐히 배에 올라왔다.

“하하. 이거 눈을 어지럽힌 게 아닌가 모르겠소.”

“예? 아니에요. 정말 개안(開眼)했어요.”

진심으로 대답하는 백연혜를 보며 영호천은 웃음 지었다.

“이것이 선물이오.”

“예?”

“흠. 일단 간단하게 말해주겠소.”

백연혜는 지금 상황이 믿기지를 않았다. 방금 펼친 무공은 자신의 아버지도 저렇게 펼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검식이었다. 그런 무공을 선물로 주겠다는 말에 백연혜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예? 정말 그래도 될까요?”

“하하하. 내가 말 했잖소. 유소제 대신 주는 선물이라고.”

“…예.”

“흠. 일단 처음의 찌르기는 장강의 강물은 어떤 것에 막혀도 흐른다는 것을 보고 초식으로 옮겨 본 것이오. 아무리 상대의 공세가 강하다해도 강물이 스며들 듯 그 틈새를 노리고 들어가는 검이오. 아직 이름은 정하지 않았소만 아마 이 검의 진수를 깨달으면 당신의 검을 피할 자가 드물 것이오.”

“예…”

아버지 외에도 창천궁내의 많은 고수들에게 무공을 사사받았던 백연혜였지만 이런 무공은 생각도 못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유세운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래! 이름을 장강불진(長江不進)으로 짓는 거야. 장강은 나아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어때?”

유세운의 말에 영호천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녀석 이름 짓는 거 하고는…그건 맘대로 해라. 그리고 두 번째 초식은 깊은 곳에서만 커다란 파도가 일 듯 자신의 몸에서 검강을 방출할 때 좀더 깊게 생각하고 뻗는 것이오. 아 생각한다는 말은 자신을 더욱 깊게 바라보라는 말이오. 그래야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오.”

“아하! 사부가 말했던 자신 안의 우주를 바라보라는 말과 비슷하군요.”

유세운의 말에 영호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아! 그래! 그렇게 되는 거였군.”

백연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으며 이해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서로 얘기를 하며 맞장구를 치자 토라졌다. 그것을 알아본 유세운이 다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아하! 그래요? 그럼 이름을 장강붕파(長江崩波)라고 짓도록 하죠. 장강의 무너지는 파도. 어때요?”

“흠. 그래. 이번 건 그나마 좀 낫군. 마지막 초식은 자연의 흐름을 받아들여 내가 원하는 형식으로 바꾼 거였는데…이렇게 설명하니 이해가 안 되겠군. 일단 그러면 자신의 기를 하나로 모아 벤 것으로 검풍(劍風)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오의를 깨닫게 된다면 대자연의 기를 빌려 쓸 수 있을 거요. 항상 연습할 때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오.”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자연의 기를 빌려 쓴 것이라 효과가 탁월하군요. 이름은 장강양단풍(長江兩斷風) 어때요? 장강을 반으로 가르는 바람. 하하하.”

“그래? 그럼 검식의 이름도 지어봐라.”

“흠. 모두 장강이 붙으니 장강삼검(長江三劍)! 하하하. 기가 막힌 이름이네.”

“후후. 순 엉터리로구나.”

영호천은 유세운의 너스레에 미소 지었다. 백연혜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을 검식을 선물 받아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이런 뛰어난 무공을 가르쳐 주셔서…”

“아…아니오. 대신 남한테는 가르쳐 주지 마시오. 혹시나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유소제가 잘 가르쳐 줄 수 있을 거요.”

“예.”

백연혜는 방금 전에 배운 초식을 생각하며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유세운은 돌아가는 백연혜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자신이 검을 익히지 않아 백연혜에게 아무것도 못해주었는데 영호천이 그녀에게 도움을 주자 웃음 지었다.

“영호형님 선물 고맙습니다.”

“응? 하하. 무슨 소린가? 이렇게 해 놔야 나중에 자네가 나랑 못겨루겠다고 도망가지 않을 것 아닌가.”

“에? 그게 이유였단 말이에요?”

“뭐 그런 점도 없지 않아 있지.”

“체!”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유세운은 영호천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마주 미소 지었다.

장강삼검을 선물로 받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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