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47화 (4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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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운은 전신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사부야 워낙에 실력의 차이가 나서 별로 긴장감도 느끼지 못했었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영호천이라는 자는 모든 신경을 한올 한올 곤두서게 만들었다. 맹세코 이정도로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은 없었다. 백 명의 철탑백마인조차 별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었다. 유세운의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영호천은 죽립 밑으로 흥분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 천천히 자신의 허리에 매고 있던 고검을 뽑아 들었다. 고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유세운을 향해 겨누며 영호천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

단지 검을 뽑아 든 것뿐이었다. 하지만 유세운은 숨이 막혀왔다. 영호천의 기도가 엄중해졌다. 검을 하나 뽑아 든 것만으로 그의 검이 목 앞에 와 닿는 것만 같았다. 유세운은 자신의 앞을 가로 막으며 검을 뽑아드는 동철에게 조용히 말했다.

“비켜 줄래?”

“무슨 소리야? 널 향해 검을 겨누면 내게도 적이야.”

“미안하지만 네가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냐. 비켜줘.”

동철은 말없이 반개한 눈을 빛내며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의 눈빛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동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으며 옆으로 물러섰다. 영호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쉽군. 자네도 한번 검을 섞어볼 실력은 되는 것 같은데…”

“이봐. 순서는 지켜야지?”

유세운은 영호천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이미 그가 심검에 들었을 것 같았다. 그런 그가 만약 동철과 검을 섞는다면 분명히 동철은 삼초지척이 안 될 것이었다. 유세운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영호천은 가볍게 검을 찔러 왔다. 일체의 변식이 없는 영호천의 검은 섬광이 번쩍이듯 빠르게 찔러왔다.

유세운은 영호천의 미간을 향해 섬광마멸지를 발출했다.

슈아악-

바람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은 한 걸음씩 물러섰다. 유세운은 자신의 뺨에 느껴지는 따뜻함에 손을 들어올려 만져 보았다.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銳氣)에 뺨이 배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유세운의 얼굴에 묘한 흥분이 어렸다. 검기나 검강이었다면 피했을 테지만 검이 가지고 있는 예기만으로 공격을 하자 미처 다 피해내지를 못했다. 유세운은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이거 가슴 떨리는데?”

“쾌라면 확실히 대단하군.”

영호천은 자신의 죽립에 난 구멍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고개를 조금만 늦게 돌렸어도 미간에 구멍이 날 뻔했다. 그 덕에 뻗어 나가던 검이 잠시 주춤거렸고 그 틈을 이용해 유세운은 가볍게 자신의 검을 피했다. 분명 자신보다 늦게 출수 했지만 자신보다 빠른 공격이 가능했다. 아마도 섬광마멸지일 것이었다. 고금제일지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의 심득(心得)으로 터득한 쾌보다 빠를 리는 없었다. 영호천은 검을 머리위로 들어 올렸다. 검극이 천중(天中)을 가리켰다.

유세운은 눈가의 잔잔한 떨림이 느껴졌다. 천중을 향해 치켜져 올라간 영호천의 검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태산이라도 무너트릴 것만 같았다. 유세운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영호천은 검을 내리쳤다. 태산압정(泰山壓頂) 초식 이었다. 일체의 변식이 없는 내려찍기의 검술이 유세운을 향해 펼쳐졌다.

“태산압정? 저런 우스운 검술을?”

어느새 그들의 결전은 등왕각의 모든 인물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백연문은 처음 그들이 어떻게 일초를 나누는지 미처 보지도 못했지만 이번에 영호천이 펼치는 검술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태산압정이라면 검을 든 인물이라면 누구나 펼칠 수 있는 검술이었다. 강호의 삼류무사라도 잡고 펼치라면 웃으면서 손을 내저을만한 검술을 유세운 같은 고수와의 결전에서 펼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유세운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 공간을 베며 내려 찍어오는 영호천의 검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태산압정이라고?’

전신에서 경고가 울렸다. 단순한 태산압정 초식이 아니었다. 붕검(崩劍)의 끝이 이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강렬히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세였다. 유세운의 입가에는 더욱 미소가 진해졌다.

“와선파천지!”

콰콰콰쾅-

유세운의 십지(十指)에서 와선파천지가 줄기줄기 뻗어나갔다. 와선파천지의 강맹한 기세가 하나하나 부딪칠 때 마다 조금씩 영호천의 검이 느려졌다. 열개의 와선파천지가 모두 부딪치자 눈에 띄게 검세가 약해진 것이 느껴졌다. 유세운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차핫!”

콰앙!

유세운의 일권이 내려오는 검을 향해 뻗어나가자 와선형의 진기가 뿜어져 나오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붕검의 위세를 날려버렸다.

영호천은 주춤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영호천은 고개를 들어 죽립 밑으로 유세운을 바라 보았다. 그 또한 마지막 남아 있던 힘을 받아내며 뒤로 한걸음 물러나 있었다. 영호천의 입가에 흥분이 가득한 미소가 그려졌다.

“하하. 이거 정말 놀랍군. 내 붕검의 심득까지 이렇게 허무하게 꺾이다니…”

“하하. 제법인데? 내 와선파천지를 모두 막아내다니…”

유세운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의외였다. 와선파천지 열 번을 받아내고도 여력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아직도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이 느껴졌다.

영호천은 검극을 유세운을 향해 가리키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것도 한번 막아보시게.”

영호천의 검이 여덟 방위를 가리키며 찔러왔다. 옆에서 보던 동철은 입을 반쯤 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팔방풍우(八方風雨)? 하지만 이건…”

유세운은 전신을 얇은 거미줄이 한 겹씩 겹쳐지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 짐을 느꼈다. 자신을 옭매이며 영호천의 검이 팔방을 찔러오는 것을 보자 유세운은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하는 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전신의 모든 신경이 하나하나 곤두섰다. 유세운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유세운의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좋아! 그럼 이건 어때? 팔각연환권!”

유세운은 자신을 속박하는 기운을 가닥가닥 끊으며 일권을 내뻗었다.

슈앙!

날카로운 소리와는 반대로 유세운의 일권은 망망대해에 빠진 것처럼 사라졌다. 다만 팔방풍우의 기세가 조금 약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한번에 꺾였으면 실망 했을 거야.”

유세운의 무릎이 차올라가며 무상진기를 내뿜었다. 이어지는 팔꿈치와 돌려차기에 이은 좌권이 찔러 들어갔다.

콰콰쾅!

유세운과 영호천의 검과 권이 부딪치지 않는데도 그 경력의 충돌만으로도 등왕각이 흔들릴만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유세운은 팔방풍우의 기세가 많이 꺾이자 숨을 들이마시며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쿵!

등왕각의 이층이 흔들렸다는 생각을 가지며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찰나 유세운의 일권이 뻗어나갔다. 주변의 공기마저 그의 주먹을 둘러싸며 와선형으로 뿜어져 나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영호천도 유세운의 기세를 보고 진기를 더욱 내뿜었다. 영호천의 고검에서 옥(玉)색의 빛이 찬란하게 뿜어져 나왔다. 유세운의 주먹에서 뻗어 나오던 진기도 찬란한 은빛을 내뿜었다.

번쩍

소리도 없이 강렬한 빛만이 시야를 가렸다.

빛이 사라지자 유세운의 주먹과 영호천의 검이 한 치 정도의 간격을 둔 채로 멈춰져 있었다. 영호천은 죽립 밑으로 보이는 입가에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세운도 영호천을 바라보는 눈에 웃음이 가득했다. 영호천은 천천히 검을 거두어 다시 허리에 찼다. 유세운도 자세를 바로하고 손을 툭툭 털었다.

순간 백연혜의 뒤에 서 있던 여운이 빠르게 도약해 검을 뽑아 영호천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넌 누구냐?”

여운의 차가운 말에 영호천은 피식 웃더니 유세운에게 물었다.

“이 친구는 누군가?”

“여운 물러나세요.”

여운을 부르는 백연혜의 목소리에 그는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영호천은 그런 여운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난 함부로 내게 검을 겨누는 자를 좋아하지 않아.”

“뭣이?”

여운은 다시 빠르게 검을 쥐고 뽑으려 했다.

“헉!”

여운은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미처 검이 한 치도 뽑히기 전에 영호천의 손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아무리 힘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진기를 끌어올려도 마치 천근을 달아 놓은 것처럼 꼼짝도 못하는 것을 느끼자 여운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여운이 당황하는 사이 유세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난 그만 치시죠?”

유세운의 목소리가 들리자 자신을 억누르던 힘이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끼고 여운의 얼굴에 놀람이 깃들었다. 언제 자신의 손목을 잡았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손목을 언제 놓았는지 느끼지도 못한 것을 알고는 영호천의 무위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유세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같이 합석하시겠습니까?”

유세운의 말에 좌중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방금 전까지 죽자 살자 겨루던 사람에게 저렇게 태연하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유세운은 좌중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멀뚱히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영호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후후. 알았소.”

좌중은 다시 한번 어이가 없었다. 유세운의 행동도 이해 못하겠는데 그렇게 먼저 검을 휘두르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히 자리에 합석하겠다는 영호천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좌중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영호천은 유세운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동철과 유주란도 옆에 와서 나란히 앉으며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죽립을 쓰고 있어서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는 없었지만 약간은 각진 턱에 가는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앉아 있는 자세 역시 구도자의 그것처럼 반듯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던 가는 입술이 벌어졌다.

“내 검이 완성되는 날 나와 비무(比武) 해주겠나?”

“하하 물론이죠. 그건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유세운의 대답에 영호천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후후 고맙군. 무슨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게나. 자네와의 비무가 있기 전까지는 자네를 도와주지.”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어찌 되시죠?”

“나 말인가? 흐음. 이제 스물여덟이 됐군.”

“하핫. 그럼 저에게 형님 되시는 군요. 영호형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세운은 웃으며 죽엽청을 들어 영호천에게 한잔을 권했다. 영호천은 피식 웃으며 잔을 들어 유세운이 주는 술을 받았다. 잔을 가득 채우자 영호천은 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죽립을 벗었다. 각진 턱과는 다르게 섬세하게 생겼다. 더욱이 깊은 눈동자는 심연처럼 깊어만 보였다. 영호천의 얼굴에는 고독감과 쓸쓸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훗.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유세운은 그런 영호천의 표정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이거. 아무튼 기쁜 자리에서 그런 표정 지을 겁니까?”

“후훗. 그런가?”

영호천의 가는 입술이 꼬리를 말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유세운은 영호천의 미소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거 보세요. 그렇게 멋진 미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럽니까…아! 어디로 가는 길이에요?”

“그냥 수련중이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지. 그래서 자네를 보고 놀라서 한번 검을 섞어 보았던 것이고…”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알아 보셨어요?”

유세운은 못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영호천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가 나를 느끼고 시선을 보냈을 때 알았네. 눈빛이 보통 강렬해야 말이지.”

“체~ 그래서 저를 죽이려고 하셨단 말이에요? 죽을 뻔 했다구요.”

“후후 설마 그 정도에?”

유세운은 영호천의 물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아무튼 사부님도 칼질은 안했다고요. 쩝.”

“미안하게 됐군. 다음부턴 조심하지.”

“다음부터는 꼭 조심하셔야 되요. 아직도 식은땀이 흐른다고요.”

유세운은 너스레를 떨며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는 영호천을 향해 잔을 들어보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영호형님.”

“만나서 반갑네.”

장강삼검을 선물로 받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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