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45화 (45/194)

(45)

대륙 북서부의 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신강성(新疆城)을 남북으로 양분하고 있는 천산산맥(天山山脈).

천산산맥의 주 봉우리인 성리봉은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아올라 있었다. 성리봉은 강호에서 천산의 주 봉우리로도 유명했지만 녹지 않는 만년한설과 수라성이 있어 더욱 유명했다.

수라성(修羅城)

천 년 전 수라마교라는 이름으로 천하에 혈겁(血劫)을 일으킨 적이 있었던 곳으로 그 당시 천하를 최초로 통일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초대 교주가 죽고 나서 십삼대 교주가 나올 때까지 수라성은 중원에서 밀려나 있었다. 육백 년 전 강호에 다시 발을 내민 수라마교의 힘은 충분히 다시 강호를 손에 넣을 만큼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갑작스레 떠오른 신성(新星)들 때문에 강호를 손에 얻을 수 없었다. 당시 강호에 떠오른 여섯 명의 신성들은 지금의 일궁, 이성, 삼문의 초대 문주들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수라마교의 뜻은 꺾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강호 사가(史家)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수라마교의 십삼 대 교주였던 단우강은 화산에서 있었던 대 결전 끝에 천산으로 돌아가 수라성을 세웠다. 그리고 절치부심(切齒腐心) 수라성의 전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썼다. 하지만 여섯 명의 신성은 모두 강호에 자신들의 세력을 만들어 서로를 경계했기 때문에 다시 혈겁을 일으키지 못했다.

수라성의 성주가 기거하는 태황각(太皇閣).

구층(九層)으로 이루어진 태황각의 구층은 오직 태사의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태사의에는 한명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태사의에 앉은 중년인은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내리고 있었다. 핏빛의 눈썹과 수염은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게 짙은 흑의를 입고 있었다. 재질은 물론 최고급의 비단으로 되어 한번쯤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만들어져 있었다. 핏빛의 수염을 쓰다듬는 중년인은 자신의 십장 앞에 부복하고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그래. 비천마왕의 일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

“예. 지금 비천마왕은 북천방주의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호? 그래? 북천방주라…”

핏빛 수염의 중년인은 태사의의 손잡이를 천천히 두들기기 시작했다.

“북천의 패자라면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겠지.”

“예. 성주님.”

핏빛 수염의 중년인. 현 수라성의 성주이자 수라마교의 십육 대 교주인 수라마황(修羅魔皇) 단우적이었다. 비록 강호에 나선 적은 없지만 모든 무림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이름이었다. 단우적은 태사의의 손잡이를 두들기며 물었다.

“그래. 태아는 어떻더냐?”

“예. 지금 소성주님이 전해주신 바에 의하면 폐관수련의 결과는 일년 안에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후후. 좋다. 비천마왕에게 연락해라. 태아가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는 날에 맞춰 선물을 준비하라고 말이다.”

“예. 성주님.”

단우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우적이 일어나자 그의 앞에 부복하고 있던 천이마왕(天耳魔王)은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단우적은 뒤로 돌아 창밖으로 펼쳐진 천산산맥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맞닿아 시선이 끝나는 곳까지 뻗어 있는 천산산맥을 보는 단우적의 눈에는 패기가 넘쳐흘렀다.

“후후후. 태아가 대성을 이루는 날 천하는 수라마교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단우적의 등 뒤로 피어오르는 기세에 천이마왕은 더욱 깊이 부복했다. 단우적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기세를 죽였다. 단우적은 고개를 돌려 천이마왕에게 물었다.

“요즘 강호에 뭔가 주의를 줘야 될 만한 일이 있느냐?”

“예. 그게 좀…”

단우적은 말끝을 흐리는 천이마왕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여태껏 몇 십 년을 같이 해왔지만 그가 저렇게 확신 없는 목소리로 말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조금 황당한 소문이 나돌아서…”

“황당한 소문?”

“예. 이번에 철마성이 강남 무림을 재패하며 북상을 하던 중 유가장이라는 곳을 침으로써 창천궁과의 일전을 벌일 계획이었습니다.”

“호오. 그래? 독고황도 제법 겁이 없어졌군. 감히 창천궁을 건드리려 하다니 말야.”

“약 백명의 흑마천살대원들을 보낸 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의외로 철마성의 둘째 공자인 독고극과 흑마천살대원 전원을 풀어 유가장을 노렸습니다.”

“그래? 제법 큰 수를 뒀군.”

단우적은 흥이 동했는지 다시 태사의로 다가가 앉았다. 천이마왕은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창천궁에서는 철마성에서 내보낸 허위 정보만 알고는 그 일을 그렇게 크게 보지 않고 창천백검수와 창검낭화 정도만을 보냈습니다.”

“허허. 그래? 그렇다면 창천궁에서 크게 한번 당한 거로군.”

“그런데 그게…”

다시 한번 말끝을 흐리는 천이마왕을 보며 단우적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어떻게 됐단 말인가?”

“그게 흑마천살대원 전원과 독고극이 인질이 되었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내가 알기로는 창천백검수라고 해봤자 흑마천살대원 이백을 간신히 감당할 터인데…”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단우적은 앞으로 숙였던 몸을 다시 태사의에 기대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천이마왕은 단우적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철마성에서는 철궁마 전소가 철탑백마인을 이끌고 그들을 치러갔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얘기는 끝이겠군.”

“창천궁에서는 창천뇌검과 창운쌍검을 보냈습니다.”

“그래봤자 전력의 차이는 극복 못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것이…”

“왜 이번에는 그들마저 잡았다고 말하려는 건가?”

“…예.”

“자네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건가!”

단우적의 분노한 일갈에 태황각이 흔들린다는 생각을 잠깐 한 천이마왕은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의 뒤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인물?”

“예. 가장 최근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광오문의 이대 문주라고 자신을 소개한다는 인물로 이름은 유세운이라고 합니다.”

“유세운? 뭔가? 유가장의 아들인가?”

“예. 유가장의 막내아들입니다.”

“하! 지금 자네 계속 나랑 장난하는 건가? 유가장주가 비록 무림에 의협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라 해도 일신의 재간은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예. 그런데 유세운이라는 자의 행방이 십삼 년 동안 묘연했다고 합니다.”

“십삼 년? 고작 십삼 년 정도로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유세운이라는 자가 펼치는 무공이 범상치 않다고 합니다.”

“범상치 않다?”

천이마왕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예. 그가 펼친 무공 중 하나가 섬광마멸지 였다고 합니다.”

“뭐? 섬광마멸지?”

단우적은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천이마왕은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이었다.

“예.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자는 무광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예. 그렇게 사료되옵니다.”

“하하. 이거 정말 재밌는 일이로군.”

단우적은 태사의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광이라면 이미 백년도 전의 고수가 아닌가? 무림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이미 심검에 들었던 고수였지. 후후후. 그 자가 당시에 여천의 비도를 찾으러 갈 때 끼어들어서 전대 비천마왕을 구해 줬다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예. 저도 들었었습니다.”

“후후. 그렇다면 그 유세운이라는 아이는 그의 진전을 얻었다는 것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일단 섬광마멸지는 무광의 손에 넘어간 것이 확실하니 그의 진전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후후후. 이거 재미있군. 재미있어.”

단우적은 자신의 핏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너희 십팔마왕 모두가 심검에 들어선 이상 우리의 앞을 막을 수 있는 자들은 없다.”

“예.”

단우적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했다.

“이미 나 또한 심검의 경지를 예전에 뛰어넘었으니 이제 그가 직접 온다고 해도 상대해 줄 수 있다.”

단우적은 태사의의 손잡이를 다시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보기에 유세운이라는 자는 어느 정도의 수준일 것 같나?”

“심검은 무리더라도 적어도 강환(罡丸)의 경지에는 든 자 같습니다.”

“그래? 그 나이에 강기도 아니고 강환의 경지라…”

“예. 그렇지 않다면 전소가 이끄는 철탑백마인을 단신으로 무너뜨릴 수 없었을 겁니다.”

“후후. 이거 어쩌면 태아에게 재미있는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군.”

단우적은 태사의에 깊이 몸을 묻으며 웃음 지었다.

“요 근래 들었던 얘기 중 가장 흥미 있는 얘기였네.”

“예.”

단우적은 고개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유세운이라는 자에게 우리 쪽 사람을 하나 붙이게.”

“예.”

“아무에게도 의심을 사면 안 되네.”

“예.”

“일단 강호의 시선은 북천방에게로 돌려놔야 할 테니 말야.”

“예.”

단우적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만 물러가게.”

“예.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천이마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태황각의 구층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천이마왕은 생각에 잠겼다. 비록 단우적의 명령에 말했지만 강환을 뛰어넘은 고수에게 본교의 인물을 제외하고 누구를 붙여야 될지 막막했다. 단우적의 성격상 이일이 빨리 해결 되지 않으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다. 그가 심검을 뛰어 넘었을 때 전대 십팔마왕 모두가 그의 손에 하나씩 제거 됐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렸다. 비록 자신이 심검에 들었지만 아직 그의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천이마왕은 태황각을 들어오는 자를 보고 눈을 빛냈다.

입에 곰방대를 물고 거만하게 걸어오던 자는 천이마왕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오. 천이마왕이 아니신가? 왜 강호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는 건가?”

“관심 끊어 주시면 고맙겠소. 청운마왕(靑雲魔王).”

“에이. 왜 그러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흥. 됐소.”

“쩝 알았네.”

청운마왕은 곰방대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태황각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이마왕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번뜩 스쳐가는 인물이 있었다.

‘아! 그자가 있었군. 크크크. 그자라면 충분하겠지. 좋아.’

영호천을 만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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