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철탑백마인과의 결전.”
하늘을 가득 매우며 날아오는 회색빛의 거한들의 모습은 철탑을 연상시켰다. 유세운은 가장 높이 날아오른 거한을 목표로 뛰어 올랐다. 가볍게 오 장(五丈)을 뛰어오른 유세운의 주먹이 거한의 가슴을 향했다. 거한이 코웃음을 치며 손을 뻗어 유세운의 머리를 노렸다.
“도검불침이라더니 그걸 믿는 거냐?”
“크크. 네놈의 머리를 부숴주마.”
펑!
“크헉!”
유세운의 주먹이 거한의 가슴에 적중하자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거한의 몸은 날아오던 속도의 배는 되는 속도로 뒤로 튕겨 나갔다.
우지끈!
거한의 몸은 장정 한명이 간신히 두를 만한 두께의 나무를 쓰러뜨리며 먼지 속으로 파묻혔다.
유세운의 일수를 본 좌중의 인물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놀란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전소의 놀람은 다른 이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철탑백마인들의 개개인의 무공수위는 구파일방의 일대제자에 버금가는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배운 무공의 특성상 개개인이 겨룬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자들이었다. 도검불침의 신체를 가진 그를 저렇게 날려버린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먼지가 가라앉고 거한의 모습이 드러났다. 거한은 가슴을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쿨럭!”
선혈을 거의 한 사발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고 전소가 놀라 물었다.
“왜 그러냐?”
“큭. 기…기혈이 가닥가닥 끊어…진 것 같습니다.”
힘들게 말을 하며 고개를 드는 거한의 눈에 사방으로 날아가는 철탑백마인들이 보였다. 결코 두 번 출수하는 일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전소는 눈이 뒤집어 질 것만 같았다. 철탑백마인 열 명이면 구파일방의 장문인도 쳐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 삼십 명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철탑백마인을 보는 전소의 인상은 심하게 구겨졌다. 전소는 비명에 가까운 명령을 했다.
“철탑백마인은 내 뒤로 모여라!”
“예.”
회색의 거한들이 날아올라 전소의 뒤에 서는 모습을 유세운은 태연하게 팔짱을 낀 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전소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지?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조금 깨달은 건가?”
“크크. 이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생각보다 강하군.”
“그래? 나는 듣도 보도 못한 너희가 너무나 약해빠져서 짜증이 울컥 치솟으려는데?”
“갈! 이거나 먹어랏!”
철궁이 부러질 듯 휘어지며 세 개의 철시가 매겨졌다. 유세운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받아봐라. 연환철시(連環鐵矢)!”
슈슈슉!
유세운은 날아오는 철시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처음 세 개만을 생각하고 몸을 날렸던 유세운은 안색이 약간 찌푸려졌다. 돌풍처럼 나아가며 철시들을 튕겨내던 유세운은 계속 이어져 오는 철시들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으윽! 짜증나!”
유세운의 검지에서 빛살이 폭출 되었다.
슈악
팅!
전소의 철궁의 시위가 빛살이 지나감과 함께 끊어졌다. 전소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의 철궁 시위는 천잠사 스무 개를 꼬아서 만든 것으로 보검으로 내리쳐도 끊어지지 않는 시위였다. 그런 시위가 단 일수에 끊어지다니 전소의 눈이 뒤집혀 질 것만 같았다.
“크아악! 모두 나가서 저자를 죽여라!”
“예!”
다시 한번 허공을 가득 메우며 날아오는 철탑백마인을 보고 유세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웃기지도 않는 놈들이군. 단순히 숫자에 불과할 뿐이잖아?”
유세운은 양손을 펼치며 웃음 지었다.
“어디 한번 받아봐라. 와선파천지!”
유세운의 십지에서 와선형의 강기가 뿜어져 나갔다.
퍼퍼퍼펑!
“크아악!”
바위도 산산조각 내는 와선파천지의 위력 앞에 도검불침의 신체 또한 아무 의미가 없었다. 거한들의 어깨를 향해 쏘아진 와선파천지는 그들의 어깨를 뜯어내며 지나갔다. 거한들이 주춤하는 사이 유세운은 다가오는 거한의 복부를 걷어찼다.
“크헉!”
뒤로 날아가는 거한을 한번 쳐다보고는 유세운의 팔꿈치는 좌측의 거한의 명치에 틀어 박혔다.
“컥!”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검불침의 신체라면 어딘가 쓸데가 있지 않을까?’
유세운은 입가에 장난끼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마침 거한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얼굴을 향해 덮쳐왔다. 유세운은 거한의 팔뚝을 움켜쥐며 주먹을 막았다. 유세운이 거한에게 속삭였다.
“잠깐만 도와줘.”
“뭐?”
거한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힘으로 자신이 휘둘려지고 있다는 것만을 느꼈다.
퍽퍽!
“커헉!”
마치 몽둥이처럼 거한을 쥐고 휘두르는 유세운의 입가에는 장난끼 어린 미소가 가득했다.
“오 이거 좋은데!”
“크악! 놓아라!”
유세운에게 잡혀 휘둘려지는 거한의 비명에 가까운 절규가 들려왔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구. 왜 고함은 지르고 그래?”
유세운은 거한을 전소를 향해 집어던졌다.
전소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한을 보고서야 공황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철궁을 휘둘러 거한을 쳐낸 전소의 눈에서는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이미 철탑백마인의 수는 스무 명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줄어가고 있었다. 거한들은 절대 두 번 출수하는 일이 없는 유세운의 강맹한 공격에 바람개비처럼 허공을 선회하며 나무들을 부수며 쓰러지고 있었다. 전소는 소리 없이 몸을 움직여 거한의 뒤로 다가갔다. 유세운의 주먹에 눈앞의 거한이 날아오르자 전소의 철궁이 허공을 찢어 버릴 듯한 위력으로 유세운을 향해 쏘아져 갔다. 다른 철탑백마인을 뒷발차기로 날리고 있던 유세운의 코앞까지 철궁을 휘두른 전소의 입가에는 승리의 미소가 그려졌다.
“크하하! 죽어랏!”
턱!
전소의 광소(狂笑)는 자신의 철궁이 유세운의 손에 잡히며 그쳐졌다. 전소의 눈이 부릅떠졌다. 유세운은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야. 다행이네. 안 그래도 네놈이 도망 갈까봐 조마조마 했었는데…”
“건방진 죽어랏!”
전소는 손톱을 세워 유세운의 목줄기를 쥐어뜯기 위해 출수했다. 유세운은 코웃음을 치며 전소의 팔꿈치를 걷어찼다.
뿌득!
“크아악!”
전소의 팔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꺾이자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세운은 고개를 흔들고는 전소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바닥에 집어 던졌다.
“커헉!”
전소의 입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유세운은 전소의 가슴에 한쪽 발을 올려놓고는 나머지 철탑백마인들을 향해 손짓했다.
“어서 끝내자구…나는 이놈에게 볼일이 많거든…”
“어디 감히 대장님을!”
남아있던 철탑백마인들이 일순간에 살기를 내뿜으며 덮쳐왔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래야 남자지.”
유세운의 돌려차기가 바람을 가르며 또 한명의 철탑백마인을 날려 버렸다. 철탑백마인의 기세가 약간 주춤했다.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하는 거야? 너희 대장에게 용무가 많다니까? 아! 그래 그럼 틈틈이 약속을 지켜볼까?”
유세운의 발이 전소의 왼쪽 팔꿈치를 밟았다.
뿌드득!
“크아악!”
철탑백마인의 눈에서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유세운은 허리띠에 꽂아 두었던 철시를 꺼내 전소의 양 다리에 꽂아 버렸다.
“크악! 차라리 죽여라! 으악!”
유세운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죽이진 않아. 하지만 벌은 받아야지.”
“멈추어라!”
유세운은 벼락같은 호통소리에 주춤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일행이 있던 곳에서 유태청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유세운은 아버지의 기세에 놀라 주춤했다. 유태청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
“그게…”
머뭇거리는 유세운을 보며 철탑백마인들이 다시 한번 덮쳐왔다. 유세운이 유태청을 바라보며 꼼짝도 안하자 동철이 검을 움켜쥐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정신 차려! 지금 뭐하는 거야!”
동철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철탑백마인의 팔뚝을 베어가자 잔뜩 독이 오른 철탑백마인은 신경 쓰지 않고 동철을 공격했다.
스걱!
“크악!”
자신의 도검불침의 신체를 믿었던 철탑백마인은 믿기지 않는 상황에 비명을 질렀다. 동철의 검에 의해 깨끗하게 베어져 나간 자신의 팔뚝을 바라보는 거한의 눈에는 불신의 빛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의문은 호강현의 놀람에 가득 찬 부르짖음에 의해 해결됐다.
“거…검강?”
동철은 말없이 철탑백마인을 쏘아 보았다. 거의 기습에 가깝게 펼쳤기 때문에 적을 벨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철탑백마인 스무 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유태청은 노기어린 목소리로 유세운에게 말했다.
“일단 상황을 마무리 지어라. 차후에 얘기하자.”
“…예.”
유세운은 기죽은 표정으로 다시 뒤돌아섰다. 동철은 유세운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흐뭇한 빛이 더욱 진했다. 어렸을 적 친구인 유세운의 놀라운 신위를 지켜본 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현 강호에서 무시 못 할 자리에 있는 자들이었다. 이제 유세운의 이름은 아마 강호를 떨어 울릴 것이었다. 동철은 유세운의 깨끗한 공격을 지켜보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일체의 격식이나 틀이 없는 공격은 마치 바람과 같았다. 그리고 흐르는 듯이 공격을 피해내는 모습은 마치 바람을 맞는 갈대 같아 보였다. 벼락처럼 쏟아지는 의외의 공격을 지켜보노라면 자신이 그의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
유세운은 마지막 한 명의 철탑백마인을 날려버리고 나서야 자리에 섰다. 기가 잔뜩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세운의 모습을 본 백연혜는 안타깝게 그를 바라보았다. 백연혜는 조용히 다가가 유세운의 소매를 잡았다.
“오라버니…”
유세운은 백연혜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에휴~ 아버지가 저렇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철탑백마인과의 결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