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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운은 동철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태청에게 다가갔다. 유태청 앞까지 간 유세운은 동철을 소개했다.
“아버지. 제가 강호에 처음 나갔을 때 만난 친구에요.”
“동철이라고 합니다.”
포권을 취하는 동철을 바라본 유태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우리 못난 녀석의 친구가 되어주다니 고맙군.”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친구입니다.”
“허허 그런가?”
유주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동철이라면 혹시 태혜검 동철인가요?”
“아…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태혜검 동철?”
유세운이 되묻자 유주란이 놀란 눈으로 동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림이기중 한분인 현요진인의 적전제자로 무당파의 가장 촉망받는 기재 중 한명이라고 들었어.”
“에?”
유세운은 유주란의 말을 듣고는 동철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볼 때는 몰랐는데 차분히 바라보자 동철의 경지가 피부로 와 닿았다. 반개한 눈에서 잔잔하게 뿜어져 나오는 깊은 안광과 항상 흐트러짐 없는 자세. 분명히 고수의 경지에 들어 있었다. 유세운은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기분 좋은데? 네가 이렇게 유명하다니 말야.”
“별로 그렇지도 않아.”
어색하게 웃음 짓는 동철의 뒤 쪽으로 도사차림의 사내가 다가왔다.
“사숙님 무슨 일이십니까?”
“응? 아 운백사질 인가?”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이분들은?”
“응. 이분은 유가장의 장주이시고 이쪽은 그분의 자제분들이시네. 인사하게.”
“무당의 운백이라 합니다.”
“반갑소.”
유태청이 인사를 받자 운백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유주란과 유세운을 쏘아보았다. 유세운이 멀뚱히 바라보자 운백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사숙님의 배분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렇게 편하게 대하실 분이 아닙니다.”
“무슨 말 버릇이냐!”
갑작스레 버럭 소리를 지르는 동철을 운백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동철은 눈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며 운백을 쏘아보았다. 운백은 당황했다. 맹세코 동철에게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항상 말이 없고 조용히 무공수련만 하던 동철은 엄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거의 무당파 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그 존재를 잘 느낄 수 없었던 사숙이었다. 이번 정협련의 련주를 뽑는 정천비무회에서의 놀라운 신위를 보여 준 것만이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인지 범위 내에 들어 온 것이었다. 그런 그의 박력있는 모습에 운백은 뒤로 한걸음 물러날 만큼 놀랐다.
동철의 살벌한 기세에 유세운이 피식 웃었다.
“왜 그래~ 기 죽겠다.”
“크윽!”
운백의 분노한 얼굴을 본 유세운은 가볍게 혀를 내밀었다. 동철은 유세운과 운백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고는 운백에게 명했다.
“물러가라. 어차피 넌 련주를 지켜야 하는 호법이 아니냐.”
“예.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운백은 동철에게 포권을 취한 다음 자리에서 물러났고 유세운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저기 나랑 가서 지난 얘기나 나누자.”
“그러지.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동철은 유태청에게 포권을 취하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마차 곁으로 간 유세운과 동철은 마차의 바퀴에 기대어 앉았다. 유세운은 동철이 건네줬던 물통의 마개를 열었다. 은은하게 밀려오는 죽엽청의 향기에 유세운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캬~ 곡차의 향기가 죽이는 걸.”
“이게 무슨 곡차냐!”
유세운은 마차의 문을 열고 투덜대는 표충을 올려다보았다. 표충은 죽엽청의 향기에 회가 동한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유세운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마차 안으로 들어가 있어라. 나중에 살려달라고 빌지 말고…”
“쳇!”
표충은 다시 마차의 문을 닫고 들어갔고 동철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누구야?”
“응? 아 표충인가 뭔가 하는 놈인데 지금 호송중이야.”
“표충이라면 대력참도 표충 말야?”
“응. 너두 아네?”
“그럼 당연하지. 흑마천살대의 대주잖아.”
“응. 맞아.”
“그런데 그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야?”
“무슨 소리하는 거야? 저놈은 포로잖아.”
“그런가?”
벌컥. 벌컥.
듣는 이가 갈증을 느낄 만큼 시원하게 죽엽청을 마신 유세운은 동철에게 물통을 내밀었다. 동철은 웃으며 물통을 받아 한 모금을 들이켰다. 예전의 그 맛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유세운은 동철을 보며 물었다.
“네 사부님은?”
“응? 악양에 계셔. 사부님도 널 보고 싶어 하시는데…”
“그래? 그럼 나중에 한번 찾아뵙지. 뭐…”
“그리고 아깐 미안했어.”
“뭐가?”
“운백사질이 실수 한거 말야.”
“괜찮아. 누나한테 실수한건 용서 할 수 없지만 말야.”
“그리고 말이야. 너 혹시 악양에서 홍종익과 싸운 적이 있니?”
“홍종익? 그게 누구야?”
“몰라? 정무의 말에는 네가 그를 해치웠다고 하던데?”
“정무? 아! 악양루에서 만난 아저씨군. 홍종익이라면 그 때 그 재수 없는 녀석 말야?”
“네가 싸운게 맞아?”
“뭐 싸웠다기 보다는 그냥 손 좀 봐줬지. 뭐…아! 그런데 그건 비밀이다. 아직 가족들은 모르니까 말야.”
“그래? 그렇다면 정협련주를 조심해.”
“정협련주? 그게 누군데?”
유세운의 질문에 동철은 목소리를 낮췄다.
“호강현이라고 하는 고수인데 홍종익의 사형이야. 하지만 그와 비교하지는 마. 둘을 비교 한다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만한 고수니까.”
“그래? 쩝. 혹시 호강현이라는 사람 혹시 부리부리한 호목(虎目)에 소매에 매화 다섯 송이가 수놓아져 있는 사람이냐?”
“응. 알고 있었어?”
“아니. 저기 나를 노려보며 이쪽으로 오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생겼기에.”
“뭐?”
동철은 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호강현이 열명의 호법을 데리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구파일방에서 뛰어난 인재 한 명 씩을 뽑아 련주의 호법으로 세운 십강호법(十剛護法)은 말없이 호강현의 뒤를 따라왔다. 하지만 그 중 유독 운백의 시선은 날카롭게 빛났다. 호강현은 동철과 유세운에게 다가왔다. 유세운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호강현을 보고 인상을 썼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뭣이! 이런 버릇없는!”
호강현의 뒤쪽에 소매에 매화 두 송이를 수놓은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유세운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앞에 나서지도 못할 놈이 큰 소리는…”
“뭐…뭣이!?”
마치 거품을 물 듯 흥분하는 사내를 호강현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호강현은 유세운을 쏘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이냐? 홍사제를 쓰러뜨린 것이?”
유세운은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글쎄? 악양루에서 누군가를 두들겨 팬 기억은 나는데 그게 누군지 잘…”
“갈!”
호강현의 일갈에 주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행에게 집중했다.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주변의 시선에 부담스럽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시끄럽게… 그 때 그 일을 모두 알리고 싶다는 거야?”
“큭!”
유세운의 말에 호강현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아직 이곳까지는 그 소문이 전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난리를 피우면 화산파의 치욕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줘야만 했다. 유세운은 고민하는 호강현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거봐~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흥! 좋다.”
호강현은 조용히 자신의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작게 말했다.
“그렇다면 따라와라. 네 녀석에게 화산파의 무서움을 가르쳐 주마.”
“싫은데?”
호강현이 코웃음을 치며 검을 뽑으려하자 동철이 유세운의 앞을 막아서며 조용히 말했다.
“무슨 짓입니까?”
“비켜주겠나? 이건 화산파의 일이니 말일세.”
“제 친구의 일이기도 합니다.”
“화산파와 무당파의 일로 확대 되도 좋다는 말인가?”
“사숙님 물러나 주십시오. 그런 자 때문에 화산과 껄끄러운 사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운백. 물러나라.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동철의 차가운 목소리에 운백은 조용히 물러났다. 운백의 시선은 유세운을 잡아먹을 듯이 빛을 냈다. 유세운은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는 호강현을 바라보았다. 호강현은 유세운을 막고 있는 동철을 쏘아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진심인가?”
말없이 호강현을 바라보는 동철은 옆에서 들려오는 싱그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창천궁으로 초대한 손님에게 실력행사를 한다는 것은 저희 궁과 화산파의 관계가 껄끄러워져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호강현도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보았다. 백의에 면사를 쓴 백연혜가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호강현을 쏘아보고 있었다. 호강현은 물러나지 않고 대답했다.
“저 자는 화산파에 빚을 지웠소. 그 빚을 갚아줘야 하니 물러나 주시오. 이건 창천궁과는 상관없는 문제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르군요. 그는 일단 저희 일행입니다.”
백연혜는 당신을 위해서라도 물러나라고 하고 싶은 말을 간신히 참았다. 백연혜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유세운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유세운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세운은 걸음을 옮겨 백연혜의 옆으로 다가왔다. 백연혜가 무언가를 물으려고 할 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슈아앙-
창!
검을 뽑는 소리와 함께 유세운의 앞에 나타난 동철은 재빨리 검으로 태극(太極)을 그렸다. 검기의 무리가 부드럽게 원을 그리자 강렬한 충격이 덮쳐왔다.
콰앙!
“큭!”
검으로 전해져 오는 충격에 거친 신음을 토해내는 동철은 뒤로 날아가려는 몸을 유세운이 잡아줘 바닥에 내려섰다. 유세운은 동철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날 막아 준거냐?”
“바보짓을 한건가? 네가 나보다 저들을 빨리 알아챘을 때 눈치 챘어야 하는 건데…”
“바보 녀석.”
유세운은 동철의 검에 튕겨져 나간 화살을 집어 들었다. 길이가 사 척(四尺)에 이르는 긴 화살을 보며 유세운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무게 또한 결코 보통 화살이 아닌 철시(鐵矢)였다.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철시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팔 척(八尺) 거구의 사내들이 웃통을 벗은 체 서 있었다. 우람한 근육에 은은한 회색빛이 감도는 상체는 위압감을 내뿜었다. 그들의 수는 거의 백을 헤아렸다. 그들의 가장 선두에는 팔 척의 거구가 자신만한 거대한 활을 들고 나타났다. 그 인물은 괴소를 흘렸다.
“크크크. 고작 여기까지 밖에 도망 못 갔나? 실망스럽군.”
그의 거대한 활을 본 백연문이 탄식했다.
“철탑백마인의 대장 철궁마(鐵弓魔) 전소…”
백연혜에게 오라버니라고 불리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