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유가장의 하인과 하녀들에게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며 자산을 나눠주고 개방의 고수들이 몰려와 흑마천살대원들을 데리고 먼저 출발했다. 백명의 흑마천살대원과 표충, 독고극을 데리고 유가장을 출발한 유가장의 식구 중 가장 많은 불만을 표하는 것은 유세운이었다.
“하아~”
표충과 독고극을 마차에 싣고 마차를 몰고 있는 유세운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이번에 사온 말을 타고 가겠다고 했다가 누나의 강력한 눈초리에 굴복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마차를 몰고 있었다. 옆에서는 유주란이 말을 타고 신선한 바람을 만끽하는 게 보였다. 유세운은 저 멀리 보이는 성을 보고는 유주란의 반대쪽에서 말을 몰고 있는 백연혜를 바라보았다.
“저 성은 어디죠?”
“아! 저곳은 신간(新干)이라는 성이죠. 그렇게 큰 곳은 아니지만 오늘은 저기서 묵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래요?”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 객점에서 묵을 때 확실히 자신의 마음을 피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신간성의 성문을 통과한 일행은 가장 큰 객점을 찾았다. 삼층으로 이루어진 가장 큰 객점인 황학루를 찾은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마차를 부탁하고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간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지간한 곳에서 보기 힘들 만큼 커다란 객점이 텅텅 비어 있었다. 유세운은 뒤따라 들어오는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도 이상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나만 이상한건 아니군.’
곧이어 백연혜도 황학루의 안으로 들어왔다. 백연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백연혜가 들어오는 것을 본 중년인 한 명이 달려왔다. 중년인은 백연혜에게 다가와 물었다.
“백소저이십니까?”
“그런데 무슨 일인가?”
백연혜의 뒤에 서있던 여운이 되묻자 중년인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모시게 되서 영광입니다. 백소저님 이름으로 몇 일째 이곳을 빌리신 분이 계십니다.”
“제 이름으로요?”
“예. 지금 잠시 밖에 나가셨는데 금방 오실 겁니다.”
“그래요?”
백연혜가 잠시 생각에 잠기자 중년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곳 황학루의 주인인 선범이라고 합니다.”
“하하. 좋아요. 일단 그럼 목부터 축이게 죽…”
유세운은 선범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주인을 향해 말을 건네다가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유세운은 헛기침을 하며 뒷말을 이었다.
“흠. 흠. 차 좀 내오게.”
“예. 그럼 일단 차부터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삼층으로 오르시죠.”
“좋아. 좋아.”
유세운을 비롯한 유가장의 인원들과 백연혜가 삼층으로 올라갔다. 여운은 창천백검수들에게 지시해 흑마천살대원들을 이층으로 보냈다. 창천백검수원들은 반으로 나눠 일층과 이층에 자리를 잡게 했다. 여운은 독고극과 표충을 데리고 삼층으로 올라갔다. 여운은 독고극과 표충을 자신과 같은 자리에 앉혔다. 독고극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여운. 네 녀석 두고 보자.”
“글쎄요? 그건 창천궁에 가서 독고공자의 처분이 결정나고 나서의 얘기 일 것 같군요.”
“갈! 지금 누구 앞이라고!”
표충의 고함소리에 여운은 조용히 속삭였다.
“인질로서 대우를 받고 싶다면 조용히 해 주겠나?”
“크윽!”
여운을 바라보는 표충과 독고극의 얼굴에 살기가 어렸다.
여운은 그들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 삼층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바라보았다. 인기척을 느낀 삼층의 인물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세 명의 인물이 올라왔다.
이십대 후반의 청년과 그 뒤를 따라 올라오는 두 명의 중년인이 있었다. 청년은 훤칠한 이마에 짙은 검미(劍眉)가 인상적이었다. 보는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의 출중한 외모가 돋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는 당당한 기품이 느껴졌다. 청년의 뒤를 따라 올라오는 중년인들의 눈에서는 보통 사람은 마주 보지도 못할 만큼의 예기(銳氣)가 뿜어져 나왔다. 푸른색의 관(冠)을 쓰고 있는 두 명의 중년인은 어깨에 비스듬히 검을 매고 있었다. 청년은 천천히 걸어와 백연혜에게 아는 척을 했다.
“연혜야. 수고 많았다.”
백연혜는 청년을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라버니! 직접 오신 거예요? 게다가 창운쌍검(蒼雲雙劍)까지 오시다니…”
백연혜가 기뻐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청년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웃음 지었다.
“하하. 이번 일이 원체 중요해야지. 철마성의 가장 유명한 집단인 흑마천살대를 잡아 들였잖니…”
“그래도…오라버니가 직접 오시다니 기뻐요.”
“하하. 녀석 이번에 큰일을 하나 해치우기에 다 큰 줄 알았더니 아직 아니구나.”
“오라버니는…아! 소개할게요. 유가장의 장주님과 유청운 공자, 유주란 소저, 유세운 공자에요.”
백연혜의 설명을 들은 청년은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저희의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백연문이라고 합니다.”
청년의 소개를 들은 유태청이 웃으며 마주 포권을 취했다.
“창천궁의 소궁주인 창천뇌검(蒼天雷劍) 백연문이신가?”
“예.”
“허허. 소문이 너무 백공자를 과소평가했군. 삼룡삼봉(三龍三鳳)이 그럼 다 자네만 하다는 말인가?”
“하하. 제가 어찌…다른 삼룡삼봉은 저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들입니다.”
“겸손하기까지 하군. 허허허.”
유태청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백연문은 백연혜의 옆의 의자에 앉았다. 자리에 동석(同席)을 한 백연문은 유청운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요즘 신진고수로 떠오르시는 현영검(玄影劍) 유공자시군요. 반갑습니다.”
유청운은 가볍게 웃으며 마주 고개를 숙였다.
“백공자의 위명에 비하면 저야…”
“하하. 아닙니다.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유공자의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 들었습니다.”
“하하.”
백연문은 유주란을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산검낭자시군요.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호호. 부끄럽네요.”
입을 가리고 작게 웃는 유주란을 보며 유세운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백연문을 보고 표정을 풀었다. 백연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막내 공자의 위명은 제가 미처 들어보질 못했군요. 죄송합니다.”
유세운의 인상이 처참히 구겨지려고 하는 찰나 유주란이 그의 머리를 내리누르며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 그거야 이 녀석이 집을 나갔다가 행방불명 된지 벌써 십삼 년이 넘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
유세운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으로 자신의 심사를 표현했다. 백연문은 멋진 웃음을 보이더니 백연혜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니?”
“응?”
백연혜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백연문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백연문은 이층으로 시선을 던지며 다시 한번 물었다.
“어떻게 저들은 창천백검수 만으로 잡았지? 더군다나 부상자도 없이 말야.”
“아…응. 그게 강호의 소문이라는게 다 그렇잖아요. 기습과 야습으로 다 잡을 수 있었어요.”
“흠. 다행이구나.”
독고극은 백연혜의 말에 발작을 하려고 하다가 자신의 배에 와 닿는 검집을 느끼고 내려보았다. 검집을 따라 시선을 옮긴 독고극은 여운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단전에 구멍이 나고 싶으면 입을 열어도 좋습니다.)
“크윽!”
독고극의 침음성을 들은 백연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백연문은 의외라는 듯이 독고극을 바라보았다.
“설마 했는데 정말 철마성의 둘째 공자시군요.”
“쳇! 그걸 이제야 알았냐?”
퉁명스럽게 쏘아 붙이는 독고극을 향해 백연문은 웃음을 지었다.
“후후. 이거 철마성주님께서 애가 타시겠군요.”
“흥. 아버지가 아시면 일이 쉽게 끝날 줄 아는 거냐? 너희는 아마 창천궁을 보지도 못하고 다 뼈를 묻게 될 거다.”
“하하.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겁니다. 창천백검수가 흑마천살대를 잡을 정도라면 가는 길에 만날 창검백영대(蒼劍百影隊)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지금 그들은 장강을 건널 배를 구하느라고 같이 못왔지만 그곳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으니 걱정할 거 없을 것 같군요..”
“헛소리 하지마! 고작 창검백영대로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창검백영대의 실력을 모르셔서 그런 것 같군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됩니다.”
백연문의 태연한 대답에 독고극은 이를 갈았다. 독고극의 살기 어린 시선을 받던 백연문은 그저 가볍게 미소만 지은 체 그를 마주 보았다. 싸늘해지던 삼층의 분위기는 차를 들고 올라오는 점소이에 의해 깨졌다. 차분히 자리에 차를 놓는 점소이를 보며 유세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술도 못 마시잖아. 술기운을 빌려서 누나에게 말하려고 한건데…’
백연문은 독고극을 향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미소를 보여주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백연문은 자리로 돌아와 백연혜와 가벼운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세운의 눈빛에서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저 자식은 지가 오빠면 오빠지 왜 저렇게 친한 거야?’
유세운의 분노를 느꼈는지 백연문은 이상하다는 듯이 가볍게 주변을 돌아보더니 다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천천히 차를 마시고 있던 일행은 백연문과 백연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유세운은 백연문이 하는 짓이 얄미워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니~밥은 안 먹습니까?”
유세운의 말 한마디에 주변의 분위기는 쇄신되었지만 유주란의 살기어린 눈빛을 받아야 되는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유주란의 전음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죽고 싶어?)
유세운의 안색이 찌푸려질 때 백연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좋은 날 술이라도 한잔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백연문의 말에 모든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리고 그 인원 중에는 유세운도 자리하고 있었다.
‘오 좋아! 좋았어. 그렇게 나쁜 놈만은 아닌 듯 하군.’
가뜩이나 술이 마시고 싶었던 더욱이 백연문과 백연혜의 오붓한 모습을 본 유세운의 기분이 술을 마신다는 말에 많이 풀렸다. 백연문은 점소이를 불러서 죽엽청을 내오라고 했다.
점소이가 내려가는 모습을 본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술이라 하면 역시 죽엽청 아니겠어? 보기보다 마음이 잘 맞는데?’
하지만 그런 속마음은 전혀 표현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백연문과 백연혜를 돌아 볼 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저런 다정한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아.’
백연혜에게 오라버니라고 불리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