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악양에 위치한 복호산장(伏虎山莊).
몰락해가는 산장을 구파일방에서 사들여 지금은 정협련의 총단으로 쓰이고 있었다.
복호산장의 대청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는 세 명의 사내가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사내는 소매에 매화가 다섯 송이 수 놓여져 있었다. 사내는 조용히 차를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부련주들의 생각은 어떻소?”
“철마성에 대한 건 말이오?”
이마에 여덟 개의 계인을 찍은 승려는 조용히 합장을 하며 물었다.
“그렇소. 그들이 실력행사를 해서라도 우리 정협련을 막겠다는 얘기가 나왔다지 않소.”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상석에 앉아 있던 사내 호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소. 그들이 진심으로 나온다면 정협련으로는 그들을 막기에 무리가 있소.”
“그렇지요. 구파일방의 힘이 하나가 되지 않는 이상 무리오.”
소림사의 승려인 혜오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체 고개를 흔들었다. 호강현은 고개를 돌려 옆에서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던 사내가 반개한 눈을 들어 호강현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호강현은 안색을 조금 굳혔다.
“자넨 무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닌가? 지금 자네 뜻을 듣고 싶네만…”
“흠. 글쎄요…”
반개한 눈을 내리깐 동철은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호강현의 표정에 언짢은 기색이 어릴 때 동철은 고개를 들어 대청의 문을 바라보았다. 호강현과 혜오도 같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대청의 문이 벌컥 열리며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사내가 뛰어 들어왔다. 호강현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아니 현무당주 여기가 어디라고 그렇게 뛰어드는 거요?”
“헉헉! 아니 지금 그게 문제요?”
호강현은 되레 화를 내는 현무당주 복상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복상은 제자리에 서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소식 들었소?”
“소식이라면 당연히 현무당주가 제일 먼저 듣는 거잖소.”
퉁명스레 대답하는 호강현을 바라보며 복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
“지금 장난하는 거요?”
호강현의 언성이 높아지자 복상은 피식 웃더니 의자를 끌어내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지금 장난치는 것 같소?”
“이…”
“하하. 그래 무슨 일입니까?”
얼굴을 붉히려는 호강현의 말을 자르며 혜오가 복상에게 물었다. 복상은 태연하게 동철의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웃었다.
“새로 들어온 재미있는 소식이 있소.”
“재미있는 소식?”
호강현도 화를 가라앉히며 호기심을 표현했다. 복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며 동철을 바라보았다.
“흑마천살대가 유가장을 향해 출발한 건 알고 있소?”
“흠. 그 얘긴 이미 강호에 소문이 파다하게 난 일 아니오?”
복상은 눈을 빛내며 호강현을 바라보았다. 복상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런데 그게 흑마천살대 전원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었소?”
“무슨 소리요! 분명히 흑마천살대중 일개 대만 나왔다고 하지 않았었소? 흑마천살대 전원이라면 구파일방중 하나도 승부를 결해야 할 정도의 전력이 아니오?”
“그러니 재미있다는 거 아니요.”
동철은 손을 내밀어 복상의 손을 움켜쥐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음? 그런데 그들이 전원이 나온 지도 모르고 창천궁에서 창검낭화 백연혜와 창천백검수를 유가장으로 보냈다는 거지.”
“뭐? 고작 창천백검수 밖에 안 보냈단 말이야?”
“동철아. 흥분 하지마. 그들도 몰랐지. 설마 그들이 흑마천살대 전원을 보낼 줄은…”
동철은 강하게 움켜쥐던 손의 힘을 약간 뺐다. 하지만 복상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창천백검수와 창검낭화도 붙잡힌 건가? 유가장도 무사하지는 못했겠군.”
“그런데 그게 말이야…”
동철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잠시 멈췄다. 복상은 그런 동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창검낭화와 창천백검수가 흑마천살대 전원을 잡았어. 게다가 철마성의 둘째 공자인 독고극까지 말이야.”
“뭐?”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하는 겁니까!”
격렬한 일행들의 반응에 복상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나한테 그 소식을 전한 놈을 두들겨 패주려고 했는데…”
복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의 뒷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인물들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잠깐만…”
복상은 동철의 차로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들을 포획하고 호송할 인원을 요청해왔어. 창검낭화 본인이 말야.”
“개방에 말인가?”
호강현의 질문에 복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지금 강서성에서는 한 창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
“정말인가 보군.”
호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자 혜오가 미심쩍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그들의 능력이라면 고작 흑마천살대의 이 백도 상대하기 힘들텐데…”
“강호의 소문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것 아니겠어?”
피식 웃는 복상을 바라보며 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만…”
복상은 말없이 고개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 동철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 하냐?”
“응?”
고개를 들어 복상을 바라보는 동철의 눈에는 갈등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복상은 동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되냐?”
“응? 으응.”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동철을 보며 복상은 피식 웃었다.
“훗. 그렇게 걱정되면 한번 가봐.”
“그래도 될까?”
“그래. 유세운이라는 녀석이 보고 싶은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동철은 주저하며 호강현과 혜오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난 정협련의 부련주잖아.”
“하하. 알긴 아는 거야?”
복상은 그런 그를 보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복상은 호강현을 바라보고는 물었다.
“동철이 꼭 필요하진 안잖소?”
“…그건 그렇지만…”
호강현의 어색한 대답을 들은 동철의 얼굴이 밝아졌다. 복상은 동철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야. 별 쓸모없다는 말을 좋게 받아들이면 어쩌자는 거냐?”
“그렇지만…”
“휴~ 일단 그들이 출발하기로 한 날이 어제였으니 서둘러 출발하면 그들이 남창에 도착하기 전에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래?”
동철은 호강현을 바라보다가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련주님. 잠시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호강현은 말없이 동철을 바라보았다. 동철의 눈을 바라본 호강현은 물었다.
“유세운이라는 자를 만나러 가는 거요?”
“예. 그를 만나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나도 가도 되겠소?”
“예?”
호강현의 돌발적인 물음에 동철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복상의 눈이 가늘어지며 호강현을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호강현은 그들의 시선을 받고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는 우리 화산파와 은원을 맺었으니 말이오.”
“무슨 말입니까! 분명히 홍부단주가 실수한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흠.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무안을 주다니요. 그건 우리 화산파를 우습게 안 것이지요.”
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호강현의 속셈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아무리 정무에게 사과를 했다 하더라도 마음에 쌓인 게 있음이 분명했다. 그와 같이 움직이면 분명히 유세운과 겨루려 들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을 잘 아는 동철로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홍종익과 궤를 달리하는 고수였기 때문이었다. 동철의 마음을 이해한 복상이 태연하게 코를 파며 물었다.
“련주가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이오?”
호강현은 복상을 바라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혜오를 바라보았다.
“부련주께서 잠시 대리 임무를 맡아주시면 안되겠소?”
혜오는 가만히 호강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사제가 당했다면 자신도 무슨 일이 있어도 가서 복수해 줄 것이었다. 결국 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그…그런…”
동철이 말을 더듬자 복상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어 놓았다. 복상의 체온을 느낀 동철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같이 가자고 해. 아무리 그라도 유가장주와 창검낭화 백소저가 같이 있는데 겨루어 보진 못 할 거야.)
귀속으로 파고드는 복상의 전음에 동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강현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요.”
“그럼 내일 바로 출발하도록 합시다.”
“예.”
호강현은 자리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섰다. 홍종익이 실려 왔을 때 그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흥분했던지 기억이 생생했다. 자신에게 빛이 가려져서 성격이 많이 삐뚤어졌지만 노력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던 사제였다. 그런 그가 단 일 수에 패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는 더욱 놀랐다. 와선형의 푸른 멍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의 실력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만나게 되면 사제의 복수를 겸해서 그와 겨루어 보고 싶었다.
‘기다려라. 화산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각인시켜주마.’
유가장을 두고 떠나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