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30화 (30/194)

(30)

“흑마천살대(黑魔千殺隊)와의 결전.”

유세운은 천천히 손을 들어 검지로 표충을 가리키며 말했다.

“흠. 네놈이 흑마천살대의 대주라고?”

“크크크. 그래. 내가 바로 흑마천살대의 대주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네놈의 목은 내가 날려버리기로 마음먹었으니 말이야. 크크크크.”

“인질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놈이군.”

“단단히 미친놈이군. 네놈의 마지막 발버둥은 지켜봐 줄 테니 덤벼라.”

“좋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유세운은 가볍게 웃으며 손에서 섬광마멸지를 펼쳤다. 표충은 느끼지도 못한 세에 어깨를 관통 당했다.

슈악!

어깨에 불을 지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때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표충의 안색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크윽. 이것은…”

비겁한 암수 따위를 쓰냐고 소리치려던 표충은 자신을 향해 섬전처럼 쏘아져 오는 유세운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도를 왼손으로 옮겨 쥐며 내려치려고 높이 쳐든 순간 유세운은 이미 그의 가슴팍까지 달려와 있었다. 유세운의 왼발이 진각을 밟으며 어깨로 표충의 가슴팍을 노렸다. 표충은 다급한 마음에 들어올렸던 도를 돌려 자신의 가슴부분을 가리며 진기를 쏟아 부었다. 도에 푸르스름한 도기가 맺히자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 미소는 유세운의 지금 뭐하는 짓이냐는 눈빛에 처참히 일그러졌다. 유세운의 어깨가 도면에 부딪쳐 왔다.

쩡!

도와 사람의 어깨가 부딪친다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표충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현철(玄鐵)로 만든 대도에 와선형으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대도는 순식간에 조각조각 부서지며 자신을 덮쳐왔다. 표충은 죽을힘을 다해 호신강기(護身剛氣)를 끌어올렸다.

퍼퍼퍽!

간신히 요혈은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이미 팔과 다리에 몇 개 씩 대도의 조각이 박혔다.

“크윽!”

입 밖으로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선혈이 입안 가득 고였지만 간신히 머금고 있었다. 유세운은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싱겁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고작 기본기에 지나지 않는다구…”

빠각!

“커헉!”

유세운의 무릎이 표충의 우측 무릎 뼈를 가격하자 그는 입에 머금고 있던 선혈을 토해내며 비명을 질렀다. 우측 무릎 뼈가 조각이 난 듯 덜렁거리며 쓰러지려는 표충의 뒷덜미를 잡은 유세운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좀 쉬고 있어. 네 부하들도 몽땅 그 꼴이 될 테니 억울하진 않을 거야.”

“으으윽!”

유세운은 표충을 여운에게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혈을 좀 제압하고 잡아 놓으시오. 그게 백소저의 안전을 위해서도 좋을 테니…”

여운은 날아오는 표충을 받아들고는 어깨 부근의 견정혈(肩井穴)을 제압했다. 여운의 눈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자신이 겨루어도 패배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표충을 저렇게 손쉽게 제압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여운은 이 상황을 어떻게 납득해야 될지 몰라 뒤를 돌아보았다. 백연혜의 모습을 바라본 여운의 눈에 의혹이 어렸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백연혜의 모습에 여운의 시선도 그녀를 따라 앞을 향했다. 그리고 여운 역시나 무언가에 홀린 듯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입을 벌렸다.

퍼퍼퍼퍽!

“큭!”

“커헉!”

유세운을 향해 사방에서 몰려드는 온통 흑의를 입은 검은 물결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방을 향해 일권 일각을 내뻗는 청삼의 유세운은 어둠 속의 한줄기 빛처럼 시야를 잡아끌었다. 무료한 듯 내뻗는 일권에 흑마천살대원 한 명의 턱이 박살나며 뒤로 날아갔고 아무렇지 않게 내뻗는 일각에 흑마천살대원 한 명이 허공을 날았다. 마치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며 날아가는 모습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우습기까지 했다. 여운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창천백검수의 시선도 유세운에게 쏟아져 있는 것을 보고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방심하지 마라. 아직 우리의 포위가 뚫린 것이 아니다.”

여운의 소리침에 정신을 차린 창천백검수들은 아쉬운 눈빛으로 유세운의 무위(武威)를 흘끔 바라보고는 모두 긴장한 체 검을 움켜쥐었다. 여운은 자신들 뒤편의 흑마천살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여운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들을 크게 우회하며 유세운을 향해 갔다. 여운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자신들 뒤의 적이 모두 유세운을 향해 가고나자 편안한 마음으로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흑마천살대원들의 공격에 절로 흥이 났다. 사방에서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들어오는 공격들은 가슴을 설레게 했다. 동시에 네다섯 곳을 공격당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많게는 열 곳도 넘는 곳으로 공격이 들어왔다.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비스듬히 피하고 그 사이로 일권을 찔러 넣어줬다.

“커헉!”

비명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의 흑마천살대원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공격이 들어오는 곳은 호신강기를 일으켜 무시해 버리고 뒤 쪽으로 힘껏 발을 내뻗었다.

“크헉!”

양쪽 팔을 교차하며 막았던 흑마천살대원의 양팔의 뼈가 부서지며 뒤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유세운은 자신들을 향해 몰려오는 흑마천살대원들을 보며 사부와의 대련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유세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흑마천살대원들의 모습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피하고 내뻗고 공격을 튕겨내고 일각을 내뻗었다. 밀려오는 공격은 비록 위력은 형편없다고 느꼈지만 그 양과 절묘함은 사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유세운의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아…아름다워요.”

여운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백연혜가 두 눈 가득 선망의 눈빛을 담은 체 유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지금 가슴이 찌릿 거릴 만큼 감동을 받고 있었다. 한명의 절대적인 무인의 무위를 본다는 것은 아무리 도산검림(刀山劍林)의 강호를 살아간다 해도 보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무적의 신위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들을 담고 싶은 마음에 창천궁에 들었고 그동안의 노력으로 창천백검수의 대장의 자리에 올랐지만 맹세코 저 정도의 무위를 본 적은 없었다. 일대 오백의 대결이라니 강호사(江湖史)에 한줄 기억될만한 순간에 자신이 서있다는 것이 가슴을 울렸다.

백연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가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그의 일권 일각은 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 듯 자연스레 행해졌고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자신의 아버지 정도라면 저 정도의 무위를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사내가 펼치는 무위는 가공하다기 보다는 아름다워 보였다. 검은 물결은 쉴 새 없이 작은 청색의 점을 향해 부딪치며 파도가 스러지듯 무너져 갔다. 백연혜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유세운은 일권을 내뻗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더 이상 느껴지는 것이 없어 눈을 뜬 것이었다. 유세운의 주위로는 온통 흑마천살대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사부에 대한 그리움을 날려 보냈다.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여운을 바라보고는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혈이 제압된 것은 아니니 조금 수고 좀 해주시겠소?”

“알겠습니다.”

깊이 고개 숙이며 대답하는 여운의 목소리는 감동으로 잔잔하게 떨려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존경어린 목소리로 대답을 한 것에 여운은 속으로 웃으며 창천백검수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창천백검수중 일조, 이조, 삼조는 남고 나머지 조는 모두 흑마천살대원들의 혈을 제압하라.”

“예.”

창천백검수는 모두 우렁차게 대답을 하고는 여운의 명령을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유세운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별것도 아닌 것들이…어디 감히 우리 집을 넘보는 거야?”

유세운은 자신의 말을 향해 다가가 말을 타려고 할 때 백연혜의 목소리를 들었다. 잔잔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의아스럽게 그녀를 돌아보았다.

“유…유공자.”

“왜 그러시죠?”

백연혜는 유세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방금 전 느꼈던 감정이 다시 몰려오는 듯해 얼굴을 약간 붉히며 물었다.

“혹시 아까 표충을 공격한 지풍은… 섬광마멸지가 아닌지요?”

유세운은 백연혜의 물음에 가볍게 놀라며 물었다.

“오? 그걸 어떻게 알았죠?”

백연혜는 유세운의 대답에서 그가 펼친 지풍이 섬광마멸지였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혹시 백이십년 전의 절대고수였던 무광(武狂) 은태정 선배님과는 무슨 관계이신지요?”

“무광? 푸하하핫!”

유세운은 백연혜의 물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에…?”

“아니에요. 푸하하하하. 딱이야! 딱!”

“무슨…?”

유세운이 정신없이 웃어대자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싶어 얼굴을 붉히며 안절부절 못했다. 유세운은 백연혜의 모습을 보고는 사과했다.

“아! 이런 실례를… 그가 내 사부에요. 광오문의 일대 문주시죠.”

“예? 하지만 그분이 살아 계시다면 지금 벌써 백오십이 훨씬 넘으셨을 텐데…”

“걱정 말아요. 하핫. 이미 반로환동 하셨으니까요.”

“아~ 예.”

흑마천살대원들을 모두 혈을 제압한 창천백검수 인원들은 돌아오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모두 눈빛이 달라졌다. 백연혜 또한 유세운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색해졌다.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엥? 왜 그래요?”

“아니 그렇다면 유공자…아니 유선배의 배분(輩分)은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배분이신지라…”

“예? 그게 무슨 말…”

“당금 무림에 유선배 만큼 높은 배분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이죠.”

유세운은 어색하게 말을 잇는 백연혜를 바라보고는 손을 흔들며 웃었다.

“하하. 뭘 그런 걸 가지고… 됐어요. 편히 대해주세요.”

“에…예.”

백연혜는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며 대답했다. 유세운은 혈을 제압당한 체 서 있는 흑마천살대원들을 보고는 여운에게 물었다.

“저들이 걸을 수는 있나요?”

“예. 저희가 데리고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여 다리 쪽 혈은 제압하지 않았습니다.”

“잘 하셨어요. 그렇다면 저들을 데리고 가기로 하죠. 아버지께 물어봐야죠. 어떻게 하실 건지…”

“예.”

여운은 대답을 하고는 흑마천살대원들을 앞장서게 하고는 길안을 향해 말을 몰았다. 유세운은 가볍게 자신의 말에 올라타고는 백연혜의 옆에서 천천히 말을 몰았다. 백연혜는 가만히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특별히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그저 보기 편안한 정도의 얼굴이었지만 그가 무위를 떨치던 모습은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유세운은 그런 그녀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손뼉을 쳤다.

“아! 백소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예?”

갑작스레 말을 거는 유세운에게 놀란 백연혜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유세운은 그런 그녀를 잠시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 무공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로 해주시죠. 그리고 창천백검수에게도 전해주셨으면 좋겠군요.”

“그건 왜…?”

유세운은 백연혜에게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헤헤. 거기까진 아실 거 없구요. 부탁드릴 게요.”

“예. 그 정도라면 아무 것도 아니군요.”

유세운과 백연혜는 그 후로 아무 말 없이 말을 몰았다. 유세운은 집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고 백연혜는 그저 그런 유세운을 몰래 훔쳐보기에 바빴다. 그들 일행이 길안의 유가장에 도착하자 유가장의 대문이 열리며 이남 일녀가 나오고 있었다. 한 명의 중년인과 수려하게 생긴 사내, 그리고 발랄해 보이는 여인 한 명이었다. 그들은 제압당해 몰려오는 흑마천살대원들을 보고는 경악했다. 중년인이 앞으로 나서며 읍을 했다.

“창천궁에서 오신다던 분들이시군요. 이들은?”

“흑마천살대원들입니다. 오는 길에 매복을 하고 있어 저희와 부딪쳤지요.”

“허허. 정말 놀랍군요. 백여 명 정도로 이 많은 인물들을 제압하시다니…”

여운은 그의 말에 이들을 잡은 건 자신들이 아니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귀속으로 들려오는 전음소리에 말을 삼켰다.

(유공자님께서 자신이 하신 일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여운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백연혜와 유세운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여운은 말을 몰아 백연혜가 앞으로 나설 수 있게 비켜섰다. 백연혜는 말을 몰아 앞으로 오더니 말에서 내렸다. 그녀는 깊이 읍을 했다.

“유가장의 장주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창천궁의 백연혜라고 합니다.”

“오~ 창천궁의 소공녀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주 읍을 하는 유태청을 바라보던 청년은 고개를 들어 백연혜의 뒤로 말에서 내리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너…너 설마?”

유세운은 사내를 보며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형. 저 세운이에요.”

유세운의 말에 유태청과 사내, 발랄해 보이는 여인은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유청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녀석. 그동안 어디 가 있었느냐?”

유세운은 애써 눈물을 삼키며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그게 그냥 길을 잃어버려서 헤매다가 왔어요.”

따악!

“요녀석! 너 때문에 우리가족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야! 에이 씨 누나는 보자마자 손찌검이야!”

유세운은 투덜거리다가 누나 유주란이 껴안자 피식 웃고는 가볍게 마주 안아 주었다. 유태청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허허.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구나.”

“헤헤. 아버지도 그간 안녕하셨죠?”

“허허. 녀석 대체 뭘 하고 왔길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것이냐?”

가족들의 상봉을 지켜보는 백연혜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세운은 그런 백연혜의 모습을 오해하고는 유태청에게 말했다.

“아버지 그런데 이분들은 밖에 세워 놓으실 건가요?”

“아 이런 실례가 있나…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예. 고맙습니다.”

백연혜는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유태청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흑마천살대원들은 모두 유가장의 식솔들이 나와 포박을 했고 창천백검수도 안내를 받아 유가장 안으로 들어왔다. 유세운은 백연혜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 철마성의 미친놈이 올 때까지 푹 쉬어요.”

“훗. 알았어요.”

백연혜는 가족을 따라 대청으로 가는 유세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흑마천살대(黑魔千殺隊)와의 결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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