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24화 (2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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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출수하다.”

삼층 높이에 동정호 호반에 자리 잡고 있는 악양루의 주렴을 걷으며 들어간 유세운은 그 안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넓은 식당을 가득 메운 손님들과 차분하게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다가가는 점소이들을 본 유세운은 입이 벌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유세운의 곁으로 키가 자그마한 소년이 다가왔다. 유세운은 자신의 앞에 와 선 소년이 점소이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너도 점소이냐?”

“예. 공자님. 식사를 하실 건가요?”

귀엽게 생긴 소년 점소이를 향해 유세운은 살짝 고개를 숙여 작게 말을 건넸다.

“음. 자고 갈 거니까 방좀 준비해주고 삼층에 자리 있니?”

소년 점소이는 유세운의 말에 안절부절못했다.

“그게 삼층은 아무나 올라 갈수 없다고 배워서…”

“그래? 누가 그랬는데?”

“그게…장삼이라는 점소이 형님이…”

“그래? 좋았어. 오늘 아주 단단히 걸리는 구나.”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괜찮으니까 삼층에 자리 있으면 올라가자꾸나. 내가 이래봬도 누구 못지않은 부자거든…”

“아. 예. 알겠습니다. 공자님. 아마 창가에 자리가 하나 비어 있을 겁니다. 아까 내려가시는 것을 봤거든요.”

“그래. 올라가자.”

소년 점소이는 귀엽게 웃어보이고는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세운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신기해하며 소년의 뒤를 따라갔다. 삼층에 올라가자 창가의 빈자리가 보였다. 소년 점소이는 유세운에게 밝게 미소 지으며 앞장서 자리로 안내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년 점소이는 금세 다른 점소이에게 제지를 당했다. 소년 점소이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의 앞에 서 있는 점소이가 차분한 미소를 지은 체 물었다.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아. 장삼 형님. 지금 손님이 삼층에 자리가 있는지 봐달라고 해서…”

“뭐? 네가 언제부터 삼층 손님들을 받게 된 거지?”

“에…그게”

“하. 기가 막히는군. 어서 네가 데려온 손님을 데리고 내려가 주겠니? 이곳은 아무나 올라올 수 없는 곳이니까.”

“장삼이라고 했나?”

장삼은 고개를 들어 지금 올라온 손님을 바라보았다. 척 보기에도 최고급 비단으로 된 청삼을 입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 저 정도면 이곳에 올라와도 될 것 같긴 하지만…’

장삼의 시선은 점점 올라가 손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장삼은 잠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가만 저 정도의 고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내가 기억 못할 리가 없는데…낯은 익은데 어째서 기억이 안 나는 거지?’

장삼의 시선을 받던 유세운은 가볍게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부르는 거 못 들었나? 형편없는 점소이로군.”

“아.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가 장삼이 맞습니다만…”

“그래? 그런데 지금 손님이 왔는데 자리를 안내하던 점소이를 막아서 어쩌자는 건가? 지금 나보고 여기서 돌아서 내려가라는 말은 아닐 테지?”

“아. 그게…”

장삼은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삼층에 앉아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유세운은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자네 귀도 잘못 됐나? 이거 누가 악양루의 점소이는 일류만 쓴다고 한거야?”

“응?”

장삼은 방금 들은 말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장삼은 입이 떡 벌어지며 말을 더듬었다.

“너…너는 그 촌…”

“뭐라고? 아니 이놈의 점소이가 미친 거 아냐? 주인장! 여기 주인장 어디 갔어!”

유세운이 내력을 담아 소리치자 악양루 전체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력을 조절해서 악양루 전체에 소리가 나자 삼층의 손님들의 시선에 이채가 띄어졌다. 외견상으로는 어딜 봐도 무림인 같지 않은 유세운의 내력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장삼은 당황스러움에 얼굴을 붉혔고 악양루주가 달려 올라왔다. 적당히 살이 오른 중년인이었다. 짧은 턱수염에 고급 옷을 입고 허둥지둥 달려온 악양루주는 유세운을 보고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당신이 이곳 주인이요?”

“예. 제가 이곳 주인입니다만…”

“그래? 아니 대체 점소이 교육을 어떻게 시키기에 손님을 보고 촌놈이라고 하는 거요?”

“아니 어떤 놈이 감히 그랬습니까?”

유세운은 장삼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내 앞에 있잖소. 나 참 기가 막혀서…”

악양루주는 눈을 부라리며 장삼에게 조용히 물었다.

“정말이냐?”

“아니 그게…저 놈이 글쎄…”

“거보슈. 아직도 나보고 이놈 저놈 하지 않소? 기분이 상당히 안 좋군.”

“죄송합니다. 공자님.”

유세운은 품에서 황금 열 냥짜리 전표를 한 장 꺼내 주인에게 내밀며 말했다.

“일단 선불로 계산하죠. 오늘부터 며칠 간 묵어 갈 테니 좋은 방으로 하나 잡아주시구려. 그리고 그동안 저기 소년 있잖소? 저 점소이가 내 심부름을 해주었으면 하오만…”

“예. 물론입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장삼이라는 녀석은 주인장이 손 좀 봐주쇼. 내 살다 살다 이렇게 기분 나빠 본적은 없으니 말이요.”

“예. 잘 알겠습니다.”

악양루주는 고개를 돌려 소년 점소이를 불렀다.

“음. 이소(李小)야 이리 오너라. 손님을 자리로 안내해 드려라.”

“예.”

이소라 불린 소년은 유세운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자리로 가시지요.”

“응. 그럴까?”

유세운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소의 뒤를 따라 삼층 창가의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유세운은 입가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보이는 경치가 아주 죽이는구나?”

“예. 이 자리가 상당히 비싼 자리거든요. 동정호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아주 유명한 자리기도 하죠.”

“그래. 좋다. 일단 악양루에서 자랑할만한 음식이랑 술 좀 내 오거라.”

“예. 하지만 어떤 걸로 하실지…”

“음 술은 죽엽청으로 해주고 음식은 네가 알아서 골라다오. 그리고 안내해줘서 고맙다.”

유세운은 웃으며 품에서 은자 열 냥짜리 전표를 꺼내 이소의 손에 쥐어줬다. 이소는 자신의 손에 들린 돈을 확인하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내저었다.

“공자님. 이렇게 많이 주시면 안 됩니다.”

이소의 말에 유세운은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이소는 유세운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숙이며 귀를 기울였다.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너는 지금 강호에서 가장 유명해질 사람과 함께 있는 거야. 그건 너한테 고마워서이기도 하지만 내 위신을 생각해서이기도 하니까 받아둬.”

“예.”

이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세운에게 받은 전표를 품에 넣고서 황급히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유세운은 이소가 내려가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까 눈독을 들여 논 홍공자라는 자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세운은 금세 그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맞은 편 창가에서 자기들끼리 앉아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유세운은 그를 가만히 쏘아보며 속으로 고민했다.

‘저것들을 어떻게 혼내주지? 특히 저 째진 눈의 홍가 녀석은 아주 그냥…’

유세운은 잠시 그를 쏘아보다가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삼층의 자리는 거의 다 차 있었다. 모두 고급 옷을 입고서 식탁을 가득 메운 요리들을 먹는 모습을 보고 유세운은 씁쓸히 웃었다.

‘사부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나중에 꼭 한번 모시고 와야겠다.’

유세운이 씁쓸히 웃으며 은태정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삼층으로 올라오는 인물들이 보였다. 모두 네 명이었는데 짙은 회의(灰衣)를 입은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등에는 한 자루 도를 메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 중 가장 앞에 들어오는 자는 사십대 정도의 중년인으로 광대뼈가 불거져 나온 것이 약간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유세운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옆자리에서 작게 속삭이는 인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들은 혹시 뇌종문(雷從門)의 사람들 아닌가?”

“그렇지. 하지만 이제 뇌종문은 없어졌지 않은가. 모두 철마성 밑으로 들어가 그들의 주구가 됐지.”

“그건 그렇지만 지금 저기 앞의 광대뼈가 튀어나온 저 중년인은 뇌종문의 부문주 아닌가?”

“흠.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구먼. 뇌영일도(雷影一刀) 정무라는 자 같은데?”

“갑자기 여긴 웬일이지? 저들이 있는 곳은 광서성이 아닌가? 여기 호남성에는 무슨 일인거지?”

“모르지. 이제는 저들의 뜻이 아니라 철마성의 뜻을 따를 테니 말일세.”

두 사내의 말을 들은 유세운은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등에는 검을 메고 있는 사내들로 고급스런 옷을 입고 있었다.

‘흐음. 어디 부잣집 도련님들 정도 되나보군.’

유세운은 다시 시선을 돌려 올라오고 있던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뇌종문의 고수들이라던 자들은 삼층에 올라와 가운데 빈자리에 앉았다. 유세운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홍가 사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맘에 안 들게 생긴 홍가 사내는 안색을 굳힌 체로 뇌종문의 사내들을 쏘아 보고 있었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잘만하면 손도 안 데고 재미 볼 수 있겠는데?’

유세운이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자 홍가 사내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를 따라 나머지 세 명의 인물도 차례로 일어났다. 홍가 사내는 뇌종문의 사내들을 쏘아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홍가 사내는 그들의 앞에 가 서더니 탁자에 손을 짚으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뇌영일도 정무가 아니신지? 여기는 웬일로?”

중년의 광대뼈가 튀어나온 정무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홍가 사내를 쏘아보았다.

“흠. 자네는 화산파의 검객인가? 매화가 세 개라 게다가 그 눈매를 보아하니 자네는 아마 매영검(梅影劍) 홍종익이겠군.”

“맞소이다. 저를 알아보시다니 의외군요.”

“그래. 무슨 일이신가?”

홍종익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철마성의 개가 된 뇌종문의 부문주께서 이곳 호남성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가가 궁금해서 온 겁니다.”

홍종익의 말에 뇌종문의 사내들은 모두 분개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무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걸 고작 자네 정도가 알려고 해서야 쓰겠나? 모르는 게 약일세.”

홍종익은 정무의 대답에 이마에 핏줄이 서며 이를 악물었다.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출수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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