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광동성(廣東城).
광동성의 수도인 광주(廣州)의 동북쪽에 위치한 백운산(白雲山) 전체를 뒤덮는 성채가 있었다. 산 하나를 둘러쌓은 성채의 위용은 보는 이들이 혀를 내두르게 할만했다.
백운산을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대문의 높이만 오장에 달했다. 그리고 그 위에 길이만 삼장에 달하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편액에는 웅혼한 필체로 ‘철마성’이라 쓰여 있었다.
철마성의 마제각(魔帝閣)
현 철마성의 성주인 철마멸뢰 독고황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구층의 전각으로 이루어진 전각의 칠층. 철마멸뢰 독고황은 상석에 앉아서 좌중을 돌아보았다. 내성과 외성의 간부급 고수들은 모두 자리에 나와 앉아 있었다. 독고황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때는 무르익었다.”
독고황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시선을 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지난 십삼 년간 우리는 우리 세력권 내에 있는 모든 군소방파를 흡수했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의 세력으로 만들었다. 그들을 외성의 세력으로 분류하고 마공을 가르친 지도 팔년이 흘렀다.”
독고황은 한명 한명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창천궁과 자웅을 결할 때가 되었다.”
독고황의 말에 좌중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황은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창천궁과 직접 겨루면 피해가 클 것이다. 그래서 창천궁의 세력권 안에 있는 군소방파 중 한 곳을 노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디 마땅한 곳이 있으면 말해보라.”
독고황의 말에 다들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성의 인물들이 앉아있는 좌측의 좌석에서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성주에게 묻고 싶은게 있소.”
독고황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시오. 묵철일왕(墨鐵一王).”
내성에서 서열이 세 번째인 묵철삼왕 중 맏이인 묵철일왕은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왜 직접 공격하지 않고 그들의 세력권 안에 있는 군소방파를 공격한단 말이오?”
독고황은 가만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오. 하지만 우리가 직접 창천궁의 한개 지부를 공격한다는 것은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하오.”
“그들도 여태껏 대비를 했을테니 쉽지는 않을 것 같소.”
“그래서 하는 말이오. 그들을 바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력권 안의 군소방파를 공격한다면 그들도 사람들을 내보낼 것이 아니겠소?”
독고황의 말에 묵철일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하나하나 각개격파하는 것이오.”
“본궁의 세력들을 말이오?”
“그렇소.”
독고황의 말에 검은색으로 전신을 온통 두르고 얼굴에도 검은 두건을 두르고 있는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쉽게 각개격파 당할 리가 없지 않소?”
독고황은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를 바라보았다. 묵철삼왕의 바로 다음가는 내성의 고수인 암연사객(暗煙死客)이었다. 단신으로 이미 내성에서도 확고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암연사혼검식(暗煙死魂劍式)은 강호에서도 수위에 드는 검식이었다. 그의 말투 또한 날카로움을 담고 있어 독고황은 가볍게 아미를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정보조작이 조금 필요할 것 같소.”
“정보조작말이오?”
독고황은 주변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입가에 미소 지었다.
“우리 성 안에도 분명히 창천궁의 간세들이 있을 것이오. 그들을 이용하여 허위정보를 적들에게 흘리는 것이오.”
암연사객은 독고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독고황은 다시 좌중을 훑어보며 물었다.
“아직 마땅한 곳이 없는가?”
독고황은 외성의 간부들이 앉아있는 오른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른쪽의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자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짙은 흑의에 멋들어진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자로 외성의 최고수인 미염장(美髥掌) 주태진이였다. 외성의 가장 강맹한 집단인 철영당(鐵影堂)의 당주로 얼마 전 강환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외성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지간하면 그가 다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주태진은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창천궁과 가까운 곳의 방파를 노린다면 그들을 돕기 쉬우니 조금 먼 곳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생각에는 나도 동의하네.”
내성 고수들 측에서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백염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내성의 최고수이자 태상성주인 철마풍 독고청의 지기인 거력마장(巨力魔掌) 염악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강환의 경지에 오른 고수로 극마의 경지에 머물고 있는 고수였다. 독고황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럼 방향을 그쪽으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독고황의 시선이 다시 한번 좌중으로 향할 때 그의 뒤에 서 있던 둘째 아들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독고황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자신의 둘째 아들인 독고극을 바라보았다. 독고극은 좌중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며 말을 이었다.
“유가장을 노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강서성의 유가장을 말이냐?”
“예.”
독고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성의 두 번째 가는 고수인 폭마쌍괴(爆魔雙怪) 중 폭마음괴(爆魔陰怪)가 음산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흐. 그거 좋은 생각이군. 성주의 생각에 정확히 부합되는 곳인 거 같소.”
폭마음괴의 옆에 앉아 있던 폭마양괴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군. 맞아. 일단 유가장의 그 장주 녀석도 협의지도를 지키는 모습도 역겨우니 딱 좋군.”
좌중은 폭마양괴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독고황은 좌중을 돌아보며 물었다.
“유가장을 노리는 것에 대해 다들 수긍하는 건가?”
독고황의 물음에 등에 거대한 철궁을 매고 있던 철궁마(鐵弓魔) 전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곳이라면 창천궁에서도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고 강호에 알려진 유가장의 이름을 생각하건데 창천궁에서도 그들을 돕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철탑백마인(鐵塔百魔人)의 대장인 철궁마 전소의 얘기를 들은 독고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자네들도 이 생각에 동의하는가?”
독고황은 외성의 주축을 이루는 흑홍황삼대(黑紅黃三隊)의 대주들을 바라보았다. 홍마철시대(紅魔鐵矢隊)의 대주인 패력구(覇力毬) 곡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가는 주름들이 가 있었지만 불쑥 튀어나온 태양혈이 상당한 경지의 내공임을 보여줬다. 황마철웅대(黃魔鐵熊隊)의 대주인 흑웅마(黑熊魔) 사적도 고개를 끄덕였다. 산만한 덩치에 절로 곰이 연상되는 사내였다. 독고황은 천천히 흑마천살대(黑魔千殺隊)의 대주인 대력참도(大力斬刀) 표충을 바라보았다. 흰 수염이 길게 자란 표충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표충의 말에 독고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을 것 같군.”
독고황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독고극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하필 유가장을 이야기한 것이냐?”
독고극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유가장에 산검낭자(散劍娘子) 유주란이란 계집이 있습니다.”
독고황은 자신의 둘째 아들의 색을 밝히는 성격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도는 불순했지만 좋은 선택이었구나.”
독고황은 시선을 돌려 내성의 고수들인 흑마육령(黑魔六靈)과 철마십영(鐵魔十影)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모두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황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력참도 표충을 불렀다.
“흑마천살대주 표충!”
“예.”
고개를 숙이는 표충을 보며 독고황은 말을 이었다.
“유가장을 일단 본보기로 삼겠다.”
“예.”
“유가장이라는 이름을 강호에서 없앨 수 있도록.”
“존명!”
“그리고 그들을 도우러 오는 창천궁의 무리들도 모두 주살할 수 있도록 하라.”
“존명!”
“일단 백 명만 먼저 출발 시키고 남은 병력을 둘로 나눠 야음을 틈타 유가장을 향해 가도록하라.”
“존명!”
독고황은 좌중을 돌아보고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것으로 오늘 회의를 마치겠다.”
깊이와 그 넓이를 도저히 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동정호(洞庭湖).
동정호와 장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악양(岳陽)은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특히 악양을 대표하는 주루인 악양루(岳陽樓)는 북으로 장강을 바라보고 동으로 흐르는 동정호의 호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악양루에서 보이는 경치 또한 절경이라 당나라 시대의 시성(詩聖) 두보를 비롯한 많은 시인과 문장가들이 무수한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의 악양루주는 고급 주루의 기치를 내걸고 모든 점소이에게 철저한 교육을 시켰다. 그중 가장 빛을 발하는 점소이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장삼이었다. 눈치 하나는 정말 빠른 장삼은 언제나 악양루의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장삼은 점심때가 되어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잠시 쉬려고 악양루의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손님이 들끓어서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움직인 다리를 주무르며 쪼그리고 앉았다.
“에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손님들이 많은 거지. 그 덕에 오늘 돈은 좀 벌었지만…”
장삼은 허리춤에 있던 고급수건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장삼은 갑작스레 그늘이 지자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허름한 옷차림에 눈에는 신기하다는 듯이 삼층으로 된 악양루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는 입가에 가득 웃음 짓고 있었다. 장삼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어디서 올라온 촌놈이야. 이거?’
입가에 미소를 짓던 사내는 장삼을 바라보더니 대뜸 물었다.
“여기가 어디냐?”
장삼은 이마에 치솟는 핏줄을 태연하게 수건으로 가리며 대답했다.
“이곳은 악양루라고 합지요.”
“악양루? 음. 여기가 악양이었군.”
장삼은 태연하게 말하는 사내를 보며 속이 뒤집어졌다. 장삼은 사내의 신색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허름한 옷차림에 눈에서 다른 고수처럼 날카로운 기세가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태양혈이 불쑥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다. 어디로 보나 무림고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 많은 갑부의 아들도 아닌 것 같았다. 한마디로 정말 어디 촌구석에서 올라온 녀석이었다. 장삼은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이곳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악양에서 가장 유명한 것과 동시에 가장 비싼 가격의 음식으로도 유명합죠. 물론 호남성 최고의 숙수(熟手)들이 만든 음식이라 맛만은 어떤 미식가도 만족하고 갈 정도랍니다. 단지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빼면요.”
“그래? 흐음. 좋아. 맘에 들었어.”
장삼은 이마에 치솟아 오르는 핏줄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맘에 들긴 뭐가 맘에 들어! 솔직히 우리 악양루는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란 말이다!’
“흠. 맘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저희 주루의 가격은 무척 비싸답니다.”
“그래? 흠. 그만큼의 맛을 자랑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
“으윽! 야! 이곳은 너 같은 놈이 올 수 없는 곳이란 말야! 내 말 알아듣겠어?”
사내는 격렬한 장삼의 반응에 의외라는 얼굴을 띄며 물었다.
“너 지금 나보고 한말이냐?”
“그래! 너 이 자식. 내가 점소이라고 우습게 아나본데 나도 이 바닥에서는 일류야. 어? 너 같은 촌놈이랑 같은 줄 알아!”
“하? 내가 지금 무언가 엄청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데…”
“뭐? 네 녀석은 귀도 잘못됐냐? 촌놈이 귀까지 나빠서는… 이곳은 너 같은 촌놈은 몇 일만에 거덜 나게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아니지 한 끼 식사도 제대로 못할 곳이란 말이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별 것도 아닌 게 와서 장난질이야!”
“하?”
“어이 장삼 무슨 일인데 그렇게 화를 내고 있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사내와 장삼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푸른 청삼에 소매에 매화를 그려 넣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비슷한 복장의 사내 셋이 따라 오고 있었다. 말을 건 사내는 날카로운 눈매에 얇은 입술을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장삼은 사내를 보자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했다.
“아이구. 이거 홍공자님 아니십니까. 어쩐 일이십니까?”
“응? 하하하. 그야 악양루의 용정차의 향이 그리워서 다시 왔지. 이거 밖에 나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세.”
“물론입죠. 어서 드시지요.”
“오. 그래. 혹시 삼층에 자리 있나?”
“헤헤. 없어도 만들어 드려야죠. 어서 드십시오.”
“그러지. 그리고 저런 촌놈에게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네.”
“예. 죄송합니다. 소인이 못난 모습을 보였군요.”
“하하하. 아닐세. 걱정 말게. 어서 올라가지.”
장삼은 홍공자라 불린 사내를 안내하고 가면서 사내에게 눈을 부라렸다. 사내는 그들이 악양루에 올라가는 것을 보며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감히 저런 점소이 따위가 광오문의 문주인 나 유세운을 무시해?”
유세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게다가 그 재수 없게 생긴 놈은 뭐지? 흐음.”
유세운은 자신의 옷을 바라보다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상황이 그려졌다.
“아! 사부가 한말에 돈이 없으면 점소이에게도 무시당한다던 말이 있었군.”
유세운은 씁쓸히 웃었다. 자신의 옷은 이미 작아져 소매도 짧았고 옷도 많이 헤져있었다. 유세운의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그려졌다.
“오호라. 장삼이라고 했지? 어디 두고 보자.”
유세운은 급히 자신의 주변을 지나가는 사내를 붙잡았다. 사내의 당황하는 표정을 뒤로하고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체로 물었다.
“하나 물어 볼게 있습니다. 여기서 큰 전표를 바꾸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사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거라면 저기 보이시는 대륙전장(大陸錢場)에 가시면 될 겁니다. 대륙최고의 전장이니 충분할 겁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유세운은 사내에게 웃으며 감사의 말을 했고 대륙전장을 향해 갔다. 대륙전장의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간 유세운은 철장이 보이고 그 뒤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염소수염을 기른 사내는 유세운을 보고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쩐 일이쇼?”
“아. 백 냥짜리 전표를 좀 바꾸려고 왔는데요.”
“아. 그러십니까?”
염소수염의 사내는 금세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은자 백 냥이면 작은 돈이 아니군요. 하지만 저희 대륙제일의 전장에서는 충분합죠.”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그렇게 허름한가? 젠장 제일 좋은 옷으로 사 입고야 말테다.’
유세운은 품에서 사부에게 받은 황금 백 냥짜리 전표를 꺼내 철장 밑으로 염소수염의 사내에게 내밀었다. 염소수염의 사내는 전표를 받자 일단 직인을 보았다. 그리고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오! 이건 저희 전장에서 발행한 전표군요. 그러니까 액수가 백 냥이 맞군요. 황금 백 냥. 에…황금 백 냥!?”
“바꿔주쇼.”
어느새 유세운의 말투에서는 거만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염소수염의 사내는 자신의 손에 들린 전표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이정도의 액수를 바꿔드릴 수가 있을지…”
“응? 대륙 최고의 전장이라고 아까 누가 그러던데?”
“예.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응. 그러지.”
염소수염의 사내는 급히 자신의 뒤에 나 있는 문으로 빠져나갔다. 유세운은 태연히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염소수염의 사내는 허겁지겁 돌아오며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 이번에 들어온 돈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저희 대륙전장은 대륙 최고의 전장으로서…”
“아. 알았으니 어서 주게. 난 그 돈을 급히 써야 할 데가 있으니까.”
“예. 여기 있습니다.”
“음. 좋아. 어디보자 황금 열 냥짜리 아홉 장이랑 은자 열 냥짜리로 스무 장이라. 좋아. 아 이 근처에 가장 고급 포목점은 어디 있나?”
“아. 그 포목점이라면 이곳에서 나가셔서 오른쪽 세 번째 건물입니다. 그곳이 이곳 악양을 통틀어 가장 고급 포목점이지요.”
“고맙소. 다음에도 꼭 대륙전장을 이용하지.”
“예. 감사합니다.”
유세운은 가볍게 웃어주고는 대륙전장 밖으로 나왔다. 유세운은 자신의 품 안에 든 돈을 슬며시 만져보고는 미소 지었다.
“이정도면 집에 안 들어가고도 평생 살겠다. 후후후.”
유세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포목점을 향했다. 포목점 주인인 듯 보이는 뚱뚱한 사내가 웃으며 나오다가 유세운의 모습을 보고는 안색을 살짝 굳혔다.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며 황금 열 냥짜리 전표를 꺼내 건네줬다. 뚱뚱한 사내는 얼핏 대륙전장의 황금 열 냥짜리 전표를 보고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하하. 공자님께서는 특별히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신지요?”
“음. 여기서 제일 좋은 고급 옷으로 주게. 음 색은 하늘빛의 청삼이 좋겠군. 있나?”
“그러시다면 정말 잘 오신 겁니다. 여기 최고급 비단으로 된 청삼이 하나 들어와 있군요.”
뚱뚱한 사내는 유세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놓인 청삼을 들어올리며 웃음 지었다. 유세운은 청삼을 받아 들어 살펴보았다.
“오. 정말 감촉이 좋은데?”
“물론입죠. 저희가 자랑하는 최고급 상품입니다.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죠.”
“그래? 잠깐만.”
유세운은 자신의 헤진 낡은 옷을 벗어서 주인장에게 주고는 청삼을 위에 걸쳤다. 단지 옷 하나 가아 입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한명의 귀공자가 나타난 것 같았다. 유세운은 동경(銅鏡)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뚱뚱한 상인은 옆에서 양손을 마주잡은 채로 말을 꺼냈다.
“역시 손님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군요. 여기 바지도 있습니다. 입어 보시죠.”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지도 갈아입었다. 동경에 비친 모습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헤진 옷에서 사부에게 받은 주머니를 꺼내 품에 넣었다. 유세운은 주인을 향해 물었다.
“그래. 이 바지랑 청삼은 가격이 얼마죠?”
“그게 조금 비싼 거라서…”
“그래서 얼마요?”
유세운이 거만하게 묻자 주인은 양손을 비비며 말했다.
“두벌해서 황금 한 냥입니다.”
“오 그래요? 제법 비싸군.”
유세운은 손으로 다시 한번 자신이 입고 있는 청삼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주인은 안절부절못하며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금 열 냥짜리 전표를 내밀었다. 뚱뚱한 주인은 얼굴가득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전표를 받아 들었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남는 돈은 그 만큼의 고급 옷으로 준비해서 악양루로 가져오시오. 오늘부터 거기 묵을 테니까 말이오. 아셨소? 악양루로 가져오시오.”
“예. 공자님. 그런데 공자님의 존성대명(尊姓大名)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아! 내 이름은 유세운이요. 아마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이름이 될 거요.”
“물론이죠. 그럼 저녁까지 갔다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예. 안녕히 가십시오.”
유세운은 고급 청삼을 입고 포목점을 나서며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장삼이라고? 후후후. 그리고 그 재수 없게 생긴 놈도…흐흐흐.”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출수하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