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20화 (20/194)

(20)

은빛의 물방울 들이 시원한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폭포.

폭포의 밑에 고인 연못은 바닥이 모두 비춰 보일 정도로 맑았다. 물고기들은 맑은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다녔다. 적어도 대나무 작살들이 자신의 몸을 꿰뚫을 때까지는 말이다.

슉! 슉! 슉!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연못을 가로지르며 물고기들을 꽂은 대나무는 천천히 연못 위로 떠올랐다.

“아직도 그정도 밖에 안 되는 거냐?”

“쳇! 잡을 수 있게 된 것도 다행이라구요.”

“그게 다 네 녀석의 기의 수발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란 말이다.”

“체! 그럼 제가 언제 기의 수발을 배우기나 했어요? 순전히 팔각연환권이나 지법도 기의 수발이 거의 필요 없는 그런 것들만 배웠잖아요.”

은태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장작에 불을 붙였다. 유세운은 은태정에게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나무들을 건져 올렸다.

‘흐흐흐. 말싸움으로라도 이겨서 다행이군.’

유세운은 건져 올린 물고기들의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냈다. 연못의 맑은 물을 붉게 물들여가는 생선의 피를 보며 유세운은 혀를 내둘렀다.

‘아아~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부지런해진 거지? 이런 비린내 나는 일도 아무거리낌 없이 하고 있잖아?’

유세운의 망상은 은태정의 목소리에 의해 깨졌다.

“뭐하는 거냐? 빨리 가져와라.”

“…예.”

유세운은 내장을 꺼내고 깨끗이 씻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은태정에게로 다가갔다. 은태정은 물고기를 받아 나뭇가지에 꼽아서 불 위에 얹어 놓았다. 유세운이 은태정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저…이제 더 배울게 없는 건가요?”

유세운의 물음에 은태정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흥. 장난하냐?”

“그럼 아직 남은 건가요?”

“당연하지. 그것도 엄청난 걸로…”

“엄청난 거요?”

“그래. 네가 이것을 터득 하냐 못하느냐로 네가 여기서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가 정해질 정도로 엄청난 거지.”

“에엑?”

“그리고 이 무공을 익히지 못한 자는 절대로 광오문의 문주가 될 자격이 없다.”

“끄으응…배우기 어려운가요?”

은태정은 입가에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자질이 뛰어나지 않은 자는 몇 갑자를 매달려도 익힐 수 없을 만큼…”

“뭐…뭐라고요?”

은태정은 유세운의 핏기가신 얼굴을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장담하건데 이 무공을 익히고 나면 무림에서 너의 상대는 잘해야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다. 물론 내가 무림에 있을 때는 이정도의 경지에 이른 자가 아무도 없었다.”

“윽!”

“그런 만큼 이것은 이곳에서 뼈를 묻는 한이 있어도 배우고 나가야 한다.”

“마…말도 안돼. 그럼 저보고 천하제일인이 되라는 말인가요?”

“갈! 멍청한 녀석! 광오문의 문주라는 자가 포부가 그것 밖에 안돼서 어따 써먹겠느냐! 적어도 강호무림에 발을 내밀었으면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 정도는 바라봐야지.”

“하! 고금제일인이요?”

“그래. 솔직히 내가 장담하건데 내가 무림에 나가면 바로 천하제일인일거다.”

“거…거짓말!”

빠악!

“악!”

“헛소리 하지마라. 내가 무림에 안나가고 있는 이유는 고금제일인이 되기 위해서지 결코 뭐가 두렵다거나 그래서가 아니다.”

“그…그런 거짓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강호에 대해서 모른다지만 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아니 이런 빌어먹을 놈을 봤나! 자기 사부가 당연히 천하제일인이라고 믿고 수련을 해도 부족할 판에 뭐가 어쩌고 어째?”

“으윽!”

은태정의 전신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자 유세운은 앉은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며 작게 말했다.

“아…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지금 고기 뒤집어야 되는데요.”

“그래. 뒤집어라.”

유세운은 은태정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고기를 뒤집어 굽기 시작했다. 은태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 이 무공을 배우고 나면 적어도 기의 수발에 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될 거다.”

“…예”

‘웃기지 말라고요. 천하제일무공이라니 내가 아직도 앤 줄 아나?’

“자 잘 들어라. 일단 내가 지금 이룬 경지는 거의 전설상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광검(光劍)의 경지니라. 뭐 너한테 설명해준다고 해서 네 녀석이 알아들을 수도 없지만 말이다.”

“광검이라…”

“이건 나중에 무림에 나가더라도 비밀로 해라. 괜히 어중이떠중이들이 한번만 겨뤄 달라고 몰려올지도 모르니깐…”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요. 와봤자 두들겨 맞기 밖에 안 할 텐데 누가 오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가끔 그걸 뻔히 알면서도 승부사네 어쩌네 하면서 덤비는 놈들이지.”

“그런 놈들도 있나요?”

“흥. 그놈의 무림에 그런 놈들이 한두 놈인 줄 아냐?

“으음. 이상한 녀석들이군요.”

“뭐 자신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자신의 경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 놈들이 많으니까 소문은 내지마라.”

“예.”

“그리고 너에게 가르쳐 줄 무공은 광검의 초입(初入)이라고 할 수 있는 심검(心劍)의 경지에 들 수 있는 무공이니라. 최소한 이것 정도는 익히고 나가야 되는 것이지.”

“심검이요? 설마 저번의 그 의기상인의 경지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아직 기억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저희 문은 권법이 주가 아닌가요? 검이라고는 단 한번도 쥐어 본적조차 없는데?”

빠악!

은태정은 울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주먹을 날렸고 유세운은 머리를 움켜쥐며 인상을 썼다.

“이러다가 천하제일의 석두가 되겠다고요! 왜 매일 머리만 때리는 거예요!”

“응? 그건 네가 이 손맛을 몰라서 그런 거고… 저번에도 얼핏 얘기했다만 그건 경지를 나누는 기준이지 그게 무슨 검이나 휘두르는 그런 것은 아니란 말이다. 더구나 그 경지에 이르면 이미 손에 검을 드나 안 드나 다 필요 없게 되니까 권도 검도 다 상관없는 것이다.”

“에이 씨! 그럼 그렇다고 말로 설명해주면 되잖아요!”

“아직 덜 맞았냐?”

“아니요…”

“지금 네 녀석의 경지는 마음이 이는 곳에 공력이 일어나는 경지까지 올라가 있느니라. 뭐 지금 강호에 던져놔도 초절정고수(超節頂高手)는 될 거다.”

“에? 정말요? 하지만 초절정고수라면 어느정도 되나요?”

“물론이지. 보통 검기라는 것을 일으킬 정도가 되면 그를 삼류에서 벗어난 이류고수라고들 부른다. 그리고 검강을 뿜어낼 정도가 되면 일류고수라고 불리 울 수 있지. 그 정도도 대단한거다. 이 넓은 대륙에 고작해야 이백여명 밖에는 못 뽑아 낼 거다. 보통 이정도면 구파일방의 장로급 이상이 되어야 하지. 육대세력의 간부들이 그정도에 이르러 있다. 그리고 그 위로 검풍이라는 경지가 있지. 이정도가 되어야 절정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다. 고작 해봐야 칠십을 넘기지 못할 거다. 예나 지금이나 검풍의 경지에 오른 자들은 구파일방의 장문인정도 밖에는 없었다.”

“에? 그런데 어떻게 칠십 명이나 된다는 거죠?”

“바보 녀석! 강호를 주름잡는 육대세력이 있지 않느냐. 그곳의 내성의 고수들은 검풍에 이른 고수들이 여럿 있다.”

“호오 그곳에는 절정 고수를 다량으로 데리고 있는 거군요.”

“그렇지. 그리고 검환의 경지라는 것이 있다. 이정도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라고는 전 무림을 뒤져도 삼십을 넘지 못한다.”

“이 넓은 대륙에 삼십을 넘지 못한다고요?”

“그래. 이미 그정도가 되었다면 육대세력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가 된거지. 육대세력의 주인들 정도 되거나 강호에서 이미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의 고수가 된 거다.”

“그런데 제가 그 정도나 된다고요?”

“그래.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엑?”

“그럼. 하지만 광오문의 문주는 절대로 남에게 추호도 깔보여서는 안 된다! 오로지 깔보는 것만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는 돼야지.”

은태정의 말에 유세운은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은태정은 결의에 찬 눈빛을 내뿜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자신의 은발을 갑자기 뒤로 한번 쓸어 넘겼다.

“네가 보기에 이 은발은 왜 그런 것 같으냐?”

“하하하 사부님 저랑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오~ 알고 있느냐?”

“당연하죠. 사부 올해 나이가 몇인데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당연히 다 머리가 세서 은발이 된 것이죠.”

빠악!

“윽!”

“이런 무식한 놈을 봤나! 반노환동한 사람이 머리가 다 은발이면 그게 무슨 반노환동이냐!”

“그럼 그 은발은 뭐예요! 그게 명백한 증거잖아요!”

“에구 이런 무식한 녀석. 이놈아 이건 너와 내가 익힌 무상진기가 십성(十成) 이상이 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니라…뭐 공력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깨달음의 차이니까 그 정도는 알아두고…게다가 은은하게 은광이 나는 것이 보이느냐?”

“흠. 그거야 언제나 궁금했었죠. 아무리 봐도 뭘 바르는 것을 못 봤는데 왜 그렇게 머리에서 빛이 나나 하고요.”

“이건 내가 익힌 광검의 성질 때문이니라. 무상진기의 영향이지.”

은태정의 설명에 유세운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저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얼마든지 물어봐라.”

“저도 나중에 그런 머리카락을 하게 되나요?”

“뭐? 하하하. 네놈도 무상진기가 십성이상이 되는 날이 온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악! 안돼요! 너무 늙어 보이잖아요!”

빠악!

“커흑!”

“이놈이 지금 사부를 늙은이 취급하는 것이냐?”

“아니! 그럼 사부가 애에요! 나이가 몇인데!”

“이놈이 그래도!”

유세운은 은태정의 손이 올라가자 잽싸게 뒤로 이장을 물러났다. 은태정은 가만히 유세운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리고서는 다 구워진 물고기를 들어 올렸다.

“아무튼 이제 네가 익혀야 할 이 무공은 대자연의 진기를 네놈의 몸 안으로 담은 후에 그 기를 네 몸속에서 회전시키며 발출하는 무공이다.”

“에? 무슨 말인지…?”

은태정은 유세운의 물음에 피식 웃고는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유세운은 은태정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다가왔다. 하지만 은태정은 고기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네놈이 하도 건방지게 굴어서 점심은 없다. 시범을 보일 테니 따라 오거라.”

“예? 그런게 어딨어요!”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오너라.”

“예.”

은태정은 몸을 날려 폭포수의 위로 올라갔다. 유세운은 투덜거리며 있는 힘껏 바닥을 차며 뛰어 올랐다. 폭포수 옆의 바위를 밟고 가볍게 십장 높이의 폭포를 올라간 유세운은 물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은태정을 보았다. 은태정은 유세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무공은 지금까지 무공과는 수준이 다를 정도로 충격파가 강하니 내게서 적어도 십장 정도는 떨어지거라.”

“예.”

유세운은 속으로 무슨 무공이 그런 말도 안돼는 수준이냐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으며 십오 장(丈) 정도 멀리 떨어졌다.

“예. 충분히 물러났습니다.”

“그래. 잘 보도록 하거라.”

“예.”

은태정은 유세운의 대답을 듣고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유세운은 갑작스레 은태정의 주변이 이상해 보였다. 마치 주변의 모든 사물이 생기를 잃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금세 사라졌다. 일순간 은태정의 몸을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츄-아--악!

엄청난 광채의 은빛 구(球)는 삽시간에 주위의 사물들을 소멸시켰다. 은태정의 발밑을 흐르던 물도 그리고 그의 주위에 있던 바람도 순식간에 무(無)로 돌아갔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은태정의 주변에 반경 십장에 이르는 거대한 화구(火丘)에 다시 물이 흘러드는 소리가 시간을 움직였다. 유세운은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하~”

은태정은 유유히 몸을 날려 유세운의 앞에 내려서며 말했다.

“이것이 내가 말한 무공이다. 이름은 은광천세(銀光天勢). 내가 만든 무공 중 최고의 무공이자 앞으로 네가 반드시 익혀야 할 무공이지.”

유세운은 아직도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놀렸다.

“정말 이…이걸 인간이 익힐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이지! 그럼 앞으로 넌 매일 대자연의 진기를 네 몸에 담을 수 있는 수련과 발출하는 법! 그렇게 연습을 할 거다. 물론 명상과 운기 또한 거르지 말아야 한다.”

“하…하하.”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은태정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리 내력이 된다 해도 깨달음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니까 항상 명상을 하거라.”

“…예.”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은태정이 만든 화구를 바라보았다. 다시 물이 차서 흐르고 있지만 어느새 폭포 위에는 또 다른 연못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부는 어쩌면 정말 천하제일인일지도 모르겠군. 아니 어쩌면 벌써 고금제일인일지도…’

지법을 배우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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