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콰콰-쾅!
퍼펑!
엄청난 소음과 함께 흙먼지를 가득 피워 올리며 격투를 벌리고 있는 두 인영(人影)은 쉬지 않고 연속적인 공격을 뿜어내고 있었다. 수비와 공격이 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지는 두 인영의 격투는 마치 연습을 하고 있는 듯했다. 두 인영의 공수(攻守)는 큰 폭파음과 함께 서로 일장씩 떨어져 내리며 멈췄다.
“하하하. 어때요? 이제는 다 막아낼 수 있다고요. 하하하.”
“끄응. 그래 삼 년 만에 팔각연환권의 요체를 터득했구나. 경지에도 들어섰고…”
유세운은 은태정의 앞에서 허리에 양손을 걸치고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드디어 그 고문의 끝에서 탈출이구나.”
“고문?”
“크하하하. 대련을 빙자한 고문이 끝났다는 말이지요.”
“이 녀석이!”
은태정은 유세운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유세운은 입가에 가벼운 조소를 띄우며 손을 들어올려 은태정의 주먹을 막아갔다.
빠악!
“악!”
유세운은 영문도 모르게 얻어맞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비명을 질렀다. 유세운이 악을 썼다.
“이…이게 뭐예요! 분명히 막았는데…”
“크흐흐흐.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지금 네 실력으로는 진짜로 때리려고 하면 죽었다 깨도 못 막으니까 앞으로 그런 헛소리는 하지마라.”
“그…그런.”
은태정은 귀여운 얼굴의 볼을 부풀리며 입을 열었다.
“좋아. 팔각연환권이라면 어디 가서 두들겨 맞지 않을 만큼 가르쳐 놨으니 이제는 다른 무공을 가르쳐주마.”
“오~사부의 재산은 팔각연환권만 있는게 아니군요?”
“크흐흐흐. 당연하지. 이리와 앉아라.”
“예.”
유세운은 은태정의 맞은편으로 다가가 바닥에 앉았다. 은태정은 유세운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려 보였다.
“이제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은 두 가지의 지법(指法)이다.”
“지법이요?”
“그래. 지법.”
“흐음.”
“이건 내가 창시한 건 아니다. 삼백 년 전 지공(指功)으로 천하를 독보(獨步)하던 고금제일지(古今第一指) 여천의 섬광마멸지(閃光魔滅指)라고 하는 굉장한 지법이지. 그는 이 지법 하나만으로 자신의 무명(武名)을 무림 역사에 남겼다.”
“호오. 굉장한 지법인가 봐요?”
“크흐흐. 당연하지. 지법에 관한한 수위(首位)를 한번도 내주지 않은 무공이야.”
“흐흐흐. 하긴 그 정도는 돼야 배울 맛이 나죠.”
“그럼. 이 정도는 돼야 배울만하지.”
“음. 그런데 또 한 가지는 뭐죠?”
“흐흐흐. 또 하나는 내가 만든 건데 와선파천지(渦旋破天指)라고 한다.”
“와선파천지?”
“그래. 이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지법이지. 아마 솔직히 섬광마멸지와는 전혀 다른 방면으로 일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
유세운은 은태정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 사부님. 그거 혹시 어디서 써본 적 있나요?”
“응?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일가를 이룬지 안다는 거예요!”
“이런 멍청한 녀석! 꼭 누군가에게 보여 줘야만 인정받는 다는 거냐!”
“쳇! 하여튼 빨리 가르쳐줘요.”
입으로는 투덜거리지만 눈이 반짝이는 유세운을 보며 은태정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이제는 네놈도 무공에 중독 되었구나.’
은태정은 손가락을 다시 들어올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은 섬광마멸지부터 얘기하자면 이 지공은 극쾌(克快)를 중점으로 만든 지법이다.”
“극쾌?”
“그렇지. 여타의 다른 지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속도를 가지고 있지. 예전에 여천이 섬광마멸지를 펼친 적이 있었다는데 그 당시에 무림십성(武林十星)이라 불리던 자들도 일수(一手)에 다 죽었다더구나.”
“예?”
“하긴 그 당시에 비하면 지금 무림이 훨씬 발전했으니 그렇게 쉽게들 당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데 아직껏 무림에 이보다 빠른 무공은 보질 못했다.”
“하. 그 정도에요?”
은태정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유세운을 못미덥다는 듯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네놈의 능력으로 보건데 이 무공의 오의(悟意)를 깨우칠 날이 올지 의문이구나.”
“하. 무시하지 마시죠. 이래봬도 지금껏 사부에게 배운 무공은 다 터득하고 있잖아요.”
“흥. 좋아. 하여튼 이 무공의 요체는 적과 나를 잇는 가장 가까운 거리를 지력을 내뿜어 멸하는 것이 요체이니라.”
“흐음.”
“하지만 그렇게 치면 여타의 다른 무공과 다를 게 없지. 물론 지금 네 수준에는 이정도로 만족해야 할 거다.”
“뭐라고요?”
따지고 드는 유세운은 은태정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뿜어져 나가는 빛살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은태정은 놀라는 유세운을 보며 웃었다.
“이정도로 만족해야 할 거야.”
“에? 그럼 이것보다도 더 빠르다는 건가요?”
“얼핏 보기는 봤냐?”
“예.”
“거봐라. 넌 이정도로 만족해도 된다니까…사실 진정한 이 지법의 요체는 마음이지. 즉 내가 저기를 노렸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그곳은 뚫려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무공은 의기상인(意氣傷人)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진정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거다.”
“의기상인이요?”
“그래. 의지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경지지. 하지만 그것은 심검(心劍)의 진정한 오의지. 그것을 깨달으면 진정한 심검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으흠. 그런데 심검이 뭐죠?”
“그건 아직 네가 알기에는 몇 년은 더 기다려야 알려줄 수 있다.”
“예? 말도 안돼요. 궁금한 것도 안 가르쳐주는 사부가 어디 있어요!”
“다 때가 되면 가르쳐 주마. 지금은 말해줘도 네놈은 말도 안된다는 헛소리만 할테니 말야.”
“쳇!”
“하여튼 보여는 주마. 진정한 섬광마멸지의 위력을.”
“어디 그 대단한 심검이란 걸 보도록 하죠.”
“크크크. 이게 다 네놈의 의지를 불태워주기 위한 거다.”
은태정은 가만히 손을 들어 폭포수 옆의 바위를 가리켰다. 유세운은 가만히 은태정을 바라보았다.
퍼퍼퍼퍽!
“응?”
유세운은 갑자기 소리가 들려오는 폭포수 옆의 바위를 바라보았다.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은태정의 손가락에서는 빛살은커녕 미약한 지풍(指風)의 흔적조차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바위에는 전에는 정말 본 적이 없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광오곡(狂傲谷).
굵고 강렬한 필체로 바위 위에 새겨진 글귀에 유세운의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졌다.
“뭐…뭐야? 아무것도 느끼질 못했는데…”
“이것이 의기상인이 발현된 심검의 경지지. 크크크.”
“이것이 심…검?”
“그래. 진정한 섬광마멸지는 이 정도다. 아마 내 생각인데 여천도 이정도 경지는 됐던 모양이다. 그러니 지법 하나만으로 당시 천하제일인이 되었었겠지.”
“으흠.”
유세운은 바위에 새겨진 글을 보며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하지만 광오곡이 뭐예요?”
“녀석 누가 네가 무공을 수련하던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이름 없는 무명곡(無名谷)이라고 하기 이상할까봐 내가 지금 이름을 지어준 것이니라.”
“아. 그렇군요.”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길! 반드시 이름 없는 무명곡에서 수련했다고 해야겠다.“
“일단 섬광마멸지를 시전해 보거라.”
“예? 대체 저한테 뭘 가르쳐 줬다고 시전해보라는 거죠?”
“뭐? 요체를 가르쳐 줬더니 이제 와서 발뺌이냐?”
“아니 그러니까 언제 요체를 가르쳐 줬다는 거예요?”
“극쾌가 요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적과 나를 잇는 가장 가까운 거리를 쏘아내는 거라고도 해줬더니 어디서 모르는 척이야!”
“아! 그게 요체였어요?”
유세운은 은태정이 불같이 화를 내려고 하자 자리에 앉은 채로 눈을 감아 버렸다.
‘설마 명상하고 있는 제자를 때리지야 않겠지.’
은태정은 명상에 들어간 유세운을 보고는 투덜거리며 맞은편에 다시 앉았다. 은태정은 명상에 잠긴 유세운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을 이었다.
“명심해라. 극쾌라는 것을 대상과 너를 잇는 가장 가까운 것은 직선이니라. 일체의 변식(變式)도 없이 가장 빠른 길만을 택하거라.”
유세운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의문점을 물었다.
“그렇다면 저희 문의 내공 발출법이랑은 다르군요?”
“그렇지. 이것은 쾌를 중점으로 하기 때문에 굳이 회전을 넣을 필요가 없느니라.”
“회전도 없이 내력을 직선으로 일체의 변식도 없이 뻗어라…?”
“그렇지. 이제야 조금 알아듣는구나.”
“그런 거군요.”
유세운은 눈을 감은체로 명상에 들어갔다
지법(指法)을 배우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