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7화 (1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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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성 북부의 무당산.

산세의 수려함은 보는 이를 절로 감탄케 한다.

무당산을 유명하게 하는 것은 산세의 수려함 보다는 구파일방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무당파(武當派)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비록 일궁(一宮)이성(二城)삼문(三門)에 밀려 빛을 보고 있지 못하지만 아직도 그 명성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무당파의 연무장.

넓은 공간에 온통 푸른 청석(靑石)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을 더욱 빛내는 것은 무당파의 제자들이 일사분란하게 검을 연습에 있었다. 연무장의 구석에 한 소년이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현요진인의 제자가 되어 일대제자가 된 동철.

“휴~. 갑갑하다.”

“뭐가 그리 갑갑하냐?”

“헉!”

동철은 급히 앉아 있던 바위에서 튕겨지듯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춤의 검을 잡아 가는 것을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말렸다.

“야. 야. 나 복상(腹上)이야.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으…응.”

동철은 상대를 알아보고는 무안해하며 검을 손에서 놓았다.

복상은 꾀죄죄한 모습에 여기저기 기운 옷을 입고 있었다. 물론 악취도 만만치 않게 났지만 무당파의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던 인물들도 모두 멀리 떨어지기만 할 뿐 이렇다 말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등에 메어져 있는 다섯 개의 매듭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개방의 오결제자이자 걸기(乞奇) 용두장(龍頭掌) 홍소(紅笑)의 제자인 복상은 십사 세의 나이에 이미 다른 개방의 제자들을 물리치고 방주의 후계자가 될 거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의 인재였다.

“야. 네 소식 들었다.”

“무슨 소식?”

복상이 코를 후벼 정체모를 물체를 튕겨내며 말하자 동철이 안색을 미미하게 찌푸리며 물었다.

“크크크. 너 저번에 현요진인님한테 엄청 두들겨 맞았다며?”

“으…응?”

“야 저번에 사부님이 날 불러다가 얘기해 주시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아냐?”

“그…그랬어?”

“크크크. 당연하지. 사부님 말씀에 자기 무덤 판 거라고 하시던데…”

동철은 얼굴을 붉히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복상은 그런 동철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야 그런데 그 때 너 술 먹인 놈은 누구냐?”

“응? 아…유세운이라고 하던데?”

“유세운? 가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복상이 생각에 잠기자 동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가? 하지만 그렇게 유명하진 않을 것 같은데… 유가장의 막내아들이라고…”

“아하! 그랬구나!”

“응? 무슨 말이야?”

복상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그 녀석 말이야. 지금 행방불명이래.”

“응? 무슨 소리야?”

“그 왜 천룡문의 누군가에게 무공을 배우러 간다고 했는데 도중에 행방불명 됐데.”

“그걸 어떻게 알아?”

“음. 유가장에서 사람이 와서 부탁을 했거든… 감숙성의 분타주님이 여러모로 수소문하고 있는데 네가 만난 이 년 전 그날 이후로는 도저히 추적이 안 된다고 하던데?”

“저…정말?”

복상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하지. 그런 언제 내가 너한테 거짓말 하는 거 봤냐?”

“큰일이네…”

“뭐가 큰일이야?”

“유세운이라는 아이 참 착해 보였는데…”

“착하긴…야 열두 살 밖에 안 된 놈이 혼자 밖에 나와서 술이나 처먹고 있는데 착하긴 쥐뿔이 착하냐?”

“아니야. 그래도 괜찮아 보였는데…”

복상은 동철의 안색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는 걸 보니 그리 나쁜 놈은 아닌가 보군. 알았어. 네가 다시 한번 부탁해 볼께.”

“정말? 고마워…”

동철이 얼굴을 붉히며 고마워하자 복상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 했다.

“하하. 야 이번에 방주님한테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번 볼래?”

“정말? 우와 대단한데?”

“크크크. 이정도야 당연한 거지. 난 너무 늦게 가르쳐줘서 화가 다 나던걸?”

“좋아. 한번 보여줘.”

“그래.”

무당파의 장문인이 거주하는 상청궁(常淸宮).

상청궁 안에는 등에 여덟 개의 결을 메고 있는 거지와 붉은 얼굴의 현요진인. 그리고 중후한 모습의 백염의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푸른 청삼에 백염을 기른 노인은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보는 이의 마음마저 담을 듯 깊은 눈을 가진 이는 현 무당파의 장문인인 청수검(淸水劍) 현청진인(玹淸眞人)이었다.

여덟 개의 결을 메고 있는 거지는 현 무림에 기이하기로 유명한 무림이기 중 하나인 걸기 용두장 홍소였다. 홍소가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요즘 철마성의 발호가 심상치 않아.”

“철마성?”

현요진인의 반문에 홍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년 전 배첩을 돌린 일은 알고 있지?”

“음. 철마성에서 강남무림의 군소방파들에게 배첩을 돌린 일이 있었지.”

“배첩의 말을 따르지 않은 군소방파들이 의문의 몰살을 당한 사건이 있지 않았나.”

“그랬었지. 하루아침에 모두 죽어서 찾을 수가 없었지.”

“그런데 그 의문의 몰살을 한 세력이 흑마천살대라는 소문이 있네.”

“뭐? 그게 정말인가?”

“무량수불…”

현요진인의 기겁하는 소리와 현청진인의 도호가 서로 엇갈렸다. 홍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하지만 갑작스레 무림에 혈풍이 불만한 일을 그렇게 쉽게 할 자가 아니지 않은가?”

“사람 속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현청진인은 자신 앞에 놓인 차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요진인은 붉은 얼굴을 더욱 붉히며 소리쳤다.

“젠장!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한 다던가?”

홍소는 가만히 현청진인과 현요진인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누구를 말하는 건가? 우리 구파일방 말인가?”

현요진인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금 우리 구파일방이야 자네가 돌아다니면서 말을 하고 있으니 아직 일 테고… 창천궁(蒼天宮)말일세.”

“창천궁이라…하긴 그들이 가장 가깝긴 하지. 하지만 과연 그들이 서로의 영역까지 침범할까?”

“엥? 하지만 명색이 정파라고 하는 자들이 강남무림 통일을 지켜만 보겠는가?”

현요진인의 말에 홍소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과 부딪친다면 피해가 막심할걸세…문제는 그게 아니야.”

“무슨 소린가? 그보다 큰 문제라도 있다는 말인가?”

현청진인은 가만히 홍소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수라성까지 나서지 않겠지요?”

“그게 알 수가 없어. 수라성도 철마성도 같은 마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라…만약 이번에 강남무림에서 철마성이 발호한다면 강북무림의 수라성도 안심할 순 없지. 우리가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있지만 어찌 될지…”

“강북무림의 수라성까지 만약 강북무림 통일을 외치고 나온다면 문제가 장난이 아닐 텐데…”

“그래. 솔직히 말해서 강남 특히 철마성이 발호하는 곳은 구파일방의 본산은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다행이긴 한데…만약 이번 일을 나 몰라라 하면 문제는 심각해질 거야…”

“그렇겠지?”

현요진인의 물음에 홍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청진인을 바라보았다.

“어찌하시겠소? 현청진인.”

“무량수불…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홍소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짧으면 오 년, 길면 십 년 안에 강호에 큰 혈란이 일 것 같소이다. 대책을 마련해야 하오.”

“오년에서 십년이라…”

현청진인이 가만히 있자 현요진인이 소리쳤다.

“장문인. 무얼 그리 고민하시오. 일단 무림맹이라도 소집해야 되지 않겠소?”

현청진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림맹이 유명무실해진지가 언제인데 그것을 다시 소집한단 말이오?”

홍소는 현청진인의 물음에 강한 어조로 답했다.

“일단 창천궁을 믿을 수 없다면 아직 그들에게 당하지 않은 군소방파들을 위해서라도 무림맹을 소집해야 합니다. 아무리 유명무실하다해도 구파일방의 저력은 끝을 알 수 없는 법…지금이 아니더라도 미래를 위해서 소집해야 합니다.”

“무량수불…그렇다면 소림 장문인에게…”

홍소는 현청진인의 점잔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서로 미루려고만 해서 되겠습니까? 소림 장문인께서는 현청진인에게 물어보라고 하던 걸요…”

현요진인과 홍소가 바라보자 현청진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알겠소. 무림맹을 소집하기로 하죠. 그리고 현요 자네는 후학들 중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을 일단 추려주게. 개방에도 부탁하겠소.”

“하하하. 알겠소. 우리 개방에서도 쓸모 있는 애들로 추려놓지요.”

“흐흐흐. 걱정 마쇼. 장문인. 내가 아주 쓸모 있는 놈들로 골라주지.”

현청진인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팔각연환권(八角連環拳)을 배우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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