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팔각연환권(八角連環拳)을 배우다.”
햇살이 가득하게 내려 쬐는 오후. 은태정은 유세운이 운기하는 모습을 보며 가볍게 하품을 했다.
“하암.”
유세운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잠시 후 눈을 떴다. 유세운의 눈에서는 신광(神光)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은태정은 흐뭇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의 성취가 제법이구나.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임해야 하니까 저번에 얘기 했듯이 진기를 불어 넣어주마. 자세를 바로 잡거라.”
“예.”
유세운은 운기하던 모습 그대로 조용히 눈을 감았고, 은태정은 그의 등 뒤로 향했다. 은태정은 유세운의 명문혈에 장심(掌心)을 대고서는 충고했다.
“절대로 정신을 흐트러트리지 말거라. 그리고 진기에 저항할 생각도 하지 말고…”
“예.”
“한순간의 흐트러짐이 우리 둘에게 다 위험하다.”
“예.”
은태정의 장심을 통해 정순한 진기가 밀려들어왔다. 명문혈을 통해 들어온 진기는 전신의 세맥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남아있던 진기들과 하나가 되었다. 전신 세맥에 남아있던 진기들을 모은 연후에 단전으로 밀려들어갔다. 단전에 웅크리고 있던 진기와 만나 서서히 회전하며 하나가 되어갔다. 두 개의 거대한 진기가 합쳐지자 단전을 넘쳐나려고 했다. 유세운이 당황하는 사이 은태정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직 당황하지 마라. 이제 시작이니까 날 믿어라.)
은태정의 전음을 들은 유세운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지금이 고비다. 이것만 넘기고 나면 더 이상 사부에게 두들겨 맞을 일도 없을 거야. 힘내자!’
(지금부터가 고비다. 준비 하거라.)
은태정의 전음에 유세운은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단전을 넘쳐날 것 같던 진기는 갑자기 강렬한 기세로 임맥(任脈)을 향해 노도(怒濤)와 같이 부딪쳤고, 그 기세에 임맥은 허망하게 뚫렸다. 그러나 진기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반대로 돌아 강렬한 기세로 독맥(督脈)에 부딪쳤다.
쿠--웅!
머리에 묵직한 무엇인가가 와서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지만 독맥은 뚫리지 않고 전신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입을 벌리면 안 된다. 정신을 놓지 말아라!)
유세운은 간신히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한번에 뚫리지 않은 독맥으로 못 들어간 진기가 날뛰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흩어지려던 진기는 은태정의 기운에 눌려 다시 자리를 잡아갔다.
(정신을 차려라! 이번 한번에 못 뚫으면 다음을 노려야 한다.)
유세운은 정신을 다잡았다. 마음을 편안히 먹고 은태정이 진기를 유도하는 대로 따라갔다. 다시 한번 노도와 같이 내달은 진기는 다시 한번 독맥에 부딪쳤다.
쿠--웅!
머릿속을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독맥이 뚫렸다. 마치 세상과 자신이 하나 되는 것 같은 일체감(一體感)에 몸이 떨려 왔다. 그러나 진기는 멈추지 않고 뚫어놓은 길을 통해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몇 차례 돌더니 다시 단전으로 모였다. 은태정은 장심을 떼고 물러나 앉아서 간단히 운기 조식을 시작했다. 유세운은 자신에게 들어온 방대한 양의 진기를 기경팔맥을 돌리고 전신 세맥까지 돌렸다. 완전히 몸에 익힌 진기를 단전에 모으고는 조용히 눈을 떴다. 유세운의 눈에서는 예전처럼 신광이 뿜어져 나오지 않고 잔잔한 눈빛만이 흘러나왔다. 이미 내력이 반박귀진(反縛貴珍)의 경지에 까지 올라서 있었다. 은태정이 운기를 마치고 미소 지었다.
“허허허. 제법이구나. 이젠 임독양맥이 타통 되었으니 빠르게 진기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지금 내가 실어준 내력까지 모두 얻는다면 이갑자에 이르는 내력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유세운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유세운이 고개를 숙이자 은태정은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아니다. 아니야. 이제부터 시작인 것을…”
“예?”
유세운이 반문하자 은태정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옮겨 공터로 나간 은태정은 손짓하며 유세운을 불렀다.
“이리 오거라.”
“예.”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비록 경공술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의 몸 상태라면 하늘도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세운은 가볍게 걸음을 옮겨 은태정의 맞은편으로 갔다. 은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시작했다.
“그래. 이제 너는 기초가 됐느니라.”
“예.”
“그동안 네가 배운 것은 반사 신경과 육감, 그리고 순발력, 그리고 무상진기를 배웠느니라.”
“예.”
“그리고 이제 그것들을 터득하여 밑바탕을 이룬 것이지.”
“예.”
은태정은 계속 같은 대답만을 하는 유세운을 한번 째려본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겠다.”
“본격적인 수련…?”
“흐흐흐. 그래. 일단 내가 창시하고 다듬은 팔각연환권(八角連環拳)부터 배우도록 하거라.”
“예.”
대답하는 유세운의 눈에 강렬한 결의가 떠올랐다.
‘그래. 이제부터 제대로 무언가를 배우는 거야.’
“흠. 일단 연환권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권법의 특징은 연속적인 공격이다. 하지만 이것에 순서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지.”
“에? 순서가 없다뇨?”
빠악!
유세운은 은태정의 손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뒤로 뺐지만 언제 나와 같은 속도로 머리를 맞고는 비명을 질렀다.
“악!”
“이런 바보 같은 놈! 만약 누군가가 너의 초식의 순서를 알게 되면 그 순간 그 무공은 죽은 무공이 되는 것이니라.”
“예…”
자신 없게 대답하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은태정은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 하긴 아직 네놈이 무학에 대해서 뭐 하나라도 알아야 말이 통하지.”
“…”
말없이 고개 숙인 유세운을 한심하게 쳐다본 은태정은 말을 이었다.
“잘 들어라. 팔각이란 양 주먹, 양 팔꿈치, 양 무릎, 양 발을 이용한 공격이니라.”
“예.”
“일단 주먹 하나로 공격하는 방법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근접전에서 팔각으로 공격을 한다면 일단 당황하게 되겠지. 하지만 단순히 팔각으로 공격하는 것만이 끝이 아니다.”
“예?”
“팔각연환권을 사용하면서 항시 와선형으로 내력을 발출해야 된다는 것이지.”
“에~엑?”
“크크크. 그리고 솔직히 내가 이렇게 너를 공격한다고 해보자.”
은태정은 그리고는 천천히 주먹을 내밀었다. 유세운은 부지불식간에 팔을 들어올려 주먹을 막았다. 은태정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 상황에서 다시 한번 공격을 하려고 할 때 주먹을 다시 뺀 다음 공격을 하려면 그 만큼 상대에게 여유를 주게 되지.”
은태정은 말을 하면서 주먹을 빼내려다가 팔꿈치로 공격을 가했다. 유세운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팔꿈치를 팔로 막았다. 은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단순하게 공격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당연히 반격을 당하게 되느니라.”
말을 마친 은태정은 팔을 빼는 듯하면서 무릎을 들어올려 유세운의 팔꿈치를 쳐 올렸다. 유세운의 팔이 들어올려 지는 순간 주먹이 날아 왔다. 유세운이 눈을 감자 그의 옆구리에 은태정의 발이 와서 닿았다.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눈을 감지 말거라.”
“…예.”
“만약 눈을 감지 않았더라면 주먹이 아닌 내 발이 나가는 것을 보았을 테니까 말이다.”
“예.”
“그러니까 이 무공의 요체는 ‘마음 안에 초식이 있다’이니라. 결국 순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에는 이미 자신의 무공이 발휘되는 것이지.”
“흠. 마음이 가는 곳에 이미 발휘되는 경지라…”
“그리고 그건 주먹이나 발만이 아니라 너의 그 와선형 진기 발출도 같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
고개를 끄덕이는 유세운은 바라보며 은태정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앞으로 너의 일정을 알려주마.”
“예.”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내공수련과 명상을 점심까지 하거라.”
“예.”
“그런 연후에 저녁까지 나와 대련을 하고…”
“…에?”
“…저녁을 먹고 나서는 다시 명상과 내공수련을 하거라.”
“대…대련이요?”
은태정은 유세운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너를 오직 팔각연환권 만으로 공격을 할 테니 너 또한 오직 팔각만을 이용해서 막아야 하느니라. 물론 반격을 해도 괜찮다. 단 진기의 발출법은 알고 있겠지?”
“마…말도 안돼요!”
“진기의 발출이 단 한 번이라도 틀리면 그 순간은 대련이 아니라 징계를 가할테니 그리 알거라.”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흐흐흐. 그럼 각오 하거라.”
은태정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유세운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날렸다. 유세운은 급히 팔꿈치를 들어 막아갔지만 은태정의 이어지는 발차기를 옆구리에 맞았다.
퍽!
“커헉!”
은태정의 가벼운 발차기에 맞은 유세운은 허공을 선회하며 날아가 폭포 밑의 연못에 빠졌다.
풍덩!
잠시 후 유세운은 이를 갈며 물에서 솟아올랐다.
“푸! 이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흐흐흐. 여기 있다. 어서 올라 오거라. 저녁까지는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에이 씨!”
팔각연환권(八角連環拳)을 배우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