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유세운은 심호흡을 했다. 일단 문제에 부딪쳐 보아야 해결방법이 보일 것만 같았다.
“하앗!”
기합과 함께 있는 힘껏 어깨로 나무를 받았다.
쿵!
“아야!”
어깨로 전해오는 통증에 신음하며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공력이 월등히 높아져서인지 나무가 약간 파인 것이 보였다. 유세운은 그런 나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런 나무를 무슨 수로 넘어뜨리라는 거야? 더군다나 마치 쥐어뜯듯이 만들라니.”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든 내력은 와선형으로 발출된다고 했나?”
유세운은 옆에 사부가 넘어뜨린 나무에 다가가 보았다. 마치 무슨 힘에 의해 뜯겨져 나간 것처럼 보이는 나무를 보자니 흠칫 등골이 시려왔다.
“이정도의 힘인가?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이건 정말 무언가를 회전을 줘서 뜯어낸 것 같은데?”
유세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은태정이 어깨에 멧돼지 한 마리를 들쳐 메고 나타났다. 은태정은 유세운을 바라보다가 유세운이 어깨로 받은 나무를 흘낏 바라보았다.
“녀석아 회전력을 실어야 한다니까…”
유세운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은태정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더니 소리쳤다.
“에이 그게 한번에 될 리가 없잖아요!”
“그래? 그럼 알아서 열심히 해라. 나는 요리나 하러가야겠다.”
은태정은 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하고는 어깨에 멧돼지를 멘 채로 폭포수 옆의 연못으로 향했다. 유세운은 결국 속으로 또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된 놈의 사부가 저렇게 성의 없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거지?’
유세운은 결국 투덜대면서 다시 자신의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휴~회전이라…기를 발출할 때 회전을 걸어주어야 한단 말이지.”
가만히 어깨를 나무에 갖다 댄 유세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단전에서 어깨 부분으로 기를 보낼 때 회전을 걸어주면…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엄연히 혈맥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중에 어떻게 회전을 걸 수가 있는 거지?”
유세운은 다시 한번 은태정이 넘어뜨린 나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지 발출 순간에만 건다면 그 힘은 이 정도로 나타나진 않을 텐데?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그 자리에서 가만히 턱을 매만지던 유세운은 결국 힘껏 나무를 걷어찼다.
“악!”
발가락을 움켜쥔 유세운은 다시 한번 투덜거렸다.
“하긴 쉽지는 않겠지. 사부가 어디 쉬운 걸 시킨 적이 있어야 말야.”
쉬이익!
“응?”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무언가의 소리를 들은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길쭉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본 유세운은 고개를 숙이며 피하려 했다. 하지만 길쭉한 무언가는 허공에서 선회하며 유세운의 눈을 덮쳤다.
철퍽!
“윽! 이 비린내!”
유세운은 자신의 눈을 덮은 물체를 들어올렸다. 물씬 피비린내가 나는 물체를 들어올린 유세운은 결국 악을 썼다.
“악! 이건 창자잖아요!”
“난 항상 안 되는 것은 시킨 적이 없다. 믿고 해!”
“예.”
유세운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폭포수 연못으로 향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서 어쩔 수 없이 씻으러 내려가는 유세운을 보며 내장을 다 버리고 씻은 은태정이 키득거렸다.
“큭큭. 네놈을 씻기려면 이렇게 하면 되겠군.”
“뭐라고요! 이런 건 사절이에요.”
유세운은 투덜거리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 속으로 들어가자 몸에 묻어있던 피가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유세운의 모습을 바라보던 은태정은 멧돼지를 어깨에 둘러메며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길어야 반 시진이니까 빨리 해결하는 게 좋을 거다.”
“으윽!”
유세운은 투덜거리며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공력이 늘고 나서 물속에서도 예전보다 오래 버틸 수 있게 된 것을 즐길 사이도 없이 요리가 완성될 시간은 다가왔다. 유세운은 머리를 움켜쥐다가 언뜻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 분명히 가르쳐준 내용 안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거야!’
유세운은 연못바닥을 발로 차며 밖으로 나왔다.
촤아!
“그래! 그걸 거야!”
은태정은 연못가에서 장작에 불을 붙이며 유세운을 돌아보았다. 유세운은 천천히 물 밖으로 걸어 나오며 은태정을 향해 득의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후. 두고 보시죠.”
“어쭈? 그래 한번 잘해봐라.”
“하하 두고 보시라고요.”
유세운은 다시 한번 나무 앞으로 가서 마주보고 섰다. 잠시 나무를 어루만지던 유세운은 털썩 자리에 앉았다. 유세운이 명상에 들어가는 것을 본 은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제법인데?’
은태정은 나무들을 모아서 삼매진화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멧돼지의 입부터 커다란 나무를 꽂아 넣은 은태정은 뱃속에 오는 길에 따온 향이 나는 잎들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오는 길에 잘라온 넝쿨을 손에 들었다. 넝쿨은 바늘도 없이 멧돼지의 배를 꿰매기 시작했다. 은태정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꿰매진 고기를 불 위에 올리고서는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다시 한번 자신의 내면의 우주와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내면의 우주가 다시 한번 밀려와 전신을 휘감았다. 유세운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래. 저번처럼 기를 모아서 회전시키는 거야.’
자신의 중심에서 생겨난 빛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세 명상은 깨지고 말았다. 코를 파고드는 구수한 고기 냄새가 정신을 흩으려 놓았다.
“으윽!”
눈을 뜬 유세운에게 비춰진 모습은 은빛의 강기를 이용해 구워지고 있는 멧돼지에게 칼집을 내는 은태정의 모습이었다. 은태정은 유세운을 바라보더니 다시 고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이 각이면 충분히 익을 것 같군.”
“쳇!”
유세운은 다시 눈을 감았다. 천천히 어둠이 자신을 휘감고 나자 다시 자신의 중심에서 빛이 생겨나 회전하기 시작했다. 빛의 회전속도가 빨라지자 유세운은 눈을 떴다. 눈을 감고 명상할 때만 기를 회전시킨다고 해서 나무가 저절로 넘어지지 않기 때문에 눈을 뜬 채로 기를 회전시켜 보았다. 눈을 감고 명상할 때에 비하면 쥐꼬리만큼 작은 기운이었지만 일단은 실마리를 잡았으니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차핫!”
빠직!
자그마한 소리와 함께 나무껍질에 와선형의 작은 생채기가 생겨났다.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후후. 그래 이렇게 하는 거야.”
은태정은 그런 유세운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큭큭. 제법이구나. 벌써 요체를 깨닫기 시작하다니…”
“하하. 그야 물론 제가 워낙…”
빠악!
은태정은 추호도 망설임 없이 손에 잡히는 돌을 던졌고 유세운은 머릴 움켜쥐고 눈물을 글썽이며 쭈그려 앉았다. 은태정은 고기를 반대로 돌리며 말했다.
“요리가 다 익으려면 멀지 않았다. 먹고 싶으면 열심히 해.”
“에이! 알았어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유세운은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와선형…와선형.”
유세운은 자신이 바라보는 나무에 와선형의 모양을 마음으로 그리며 다시 한번 어깨로 들이 받았다.
“차핫!”
콰직!
좀 전보다 큰 소리를 내며 나무가 뒤틀렸다. 유세운은 마음으로 다짐했다.
“아니. 아직이야. 난 저녁을 먹어야 한다구. 차핫!”
콰-지--직!
큰 소리와 함께 유세운이 부딪친 부분이 뜯겨져 나가며 나무가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유세운은 굉장히 기뻐하며 광소(狂笑)를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유세운의 광소에 은태정이 흐뭇해하며 중얼거렸다.
“허허 드디어 저놈도 광오문 문주의 자질을 보이는군. 그래 약간의 광기는 필요한 거라니깐…”
은태정은 고기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만 웃고 가서 소금이나 가져 오거라.”
“하하 사부님. 이거보세요. 제가 이 나무를 넘어뜨렸다고요.”
은태정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고작 그 정도로 기뻐하긴 이르다. 아직 갈 길은 멀었으니까. 가서 소금이나 가져와.”
“사부님. 이거 보시라니깐요.”
유세운은 너무 기쁜 나머지 은태정의 말을 못 듣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결국 은태정은 자신의 옆에 놓인 돌멩이를 집어 들며 작게 으르렁 거렸다.
“좋은 말로 할 때 소금이나 가져 오거라. 안 그러면 오늘 저녁은 없다.”
“예?”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은태정을 바라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고기가 구워지고 있는 모습을 본 유세운은 손뼉을 쳤다.
“아 소금! 잠시만 기다리세요.”
쏜살같이 목옥으로 사라지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은태정은 자신의 손에 들린 돌멩이를 뒤로 집어던졌다.
“하지만 대단한 놈이군. 가르칠 맛이 나는데…”
팔각연환권(八角連環拳)을 배우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