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무상진기(無想眞氣)를 익히다.”
형산의 이름 없는 골짜기의 작은 폭포수 옆 목옥 앞의 공터에서 유세운은 하품을 하며 앉아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쁜 일도 없었고 어제 대나무를 잡고 나서 두들겨 맞지도 않아 하늘을 날것만 같았다. 유세운은 폭포수 밑의 연못에서 가볍게 씻고 올라오는 은태정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데다가 은빛머리칼이 아주 신비롭게 보였다.
‘반로환동이 결코 좋은 건 아닌가? 나보다도 어려보이면 나이 먹고 무슨 망신이야?’
“뭘 그렇게 쳐다보냐? 씻지도 않는 녀석이 지저분하게…”
“하하. 뭐 밖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굳이 씻을 필요가…”
은태정은 가만히 자신의 은빛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서는 유세운의 맞은편으로 다가갔다. 은태정은 유세운의 앞에 놓인 바위위에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흠. 그래도 제법이구나. 아무리 살살했다지만 이렇게 빨리 잡아내다니.”
“하하하. 제가 천재라서 그래요. 하하하.”
빠악!
“악! 왜 때려요?!”
“자만(自慢)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강호에서는 말이다.”
“에이 씨! 알았어요.”
“좋아. 그럼 이제 본론을 얘기하마.”
“예.”
은태정은 유세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네가 열 달간 익힌 것은 육감과 반사신경, 순발력 등이다.”
“예. 얼마나 맞았던지…골병이 안든게 신기하죠?”
“그래. 내가 때릴 때 추궁과혈을 하며 네 모든 세맥(細脈)과 전신에 일 갑자 정도의 공력을 심어 놓았다.”
유세운은 은태정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에? 뭐라고요? 일 갑자의 공력이요?”
유세운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보통 한사람이 육십년 이상을 수련해야 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일 갑자의 공력이다. 물론 현 무림에는 심법(心法)이 많이 향상되어서 예전보다는 훨씬 빠르게 공력을 모을 수 있었다. 대략 뛰어난 심법들이라면 삼십년 정도만 수련을 해도 일 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에게 일 갑자나 되는 공력이 갑자기 생겼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사부가 매일 자신을 두들겨 팬 것이 그런 것 때문이었다니 더욱 믿기지가 않았다. 혼란스러운 유세운을 향해 은태정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 그리고 이제부터 수련을 하려면 많은 내력이 필요할 것이니라. 그래서 너에게 일단의 심법을 먼저 전수해주고 일 갑자의 공력을 더 넣어주마.”
“엑! 사부 제 정신이에요? 이 갑자의 공력이나 남에게 주다니요?”
빠악!
유세운은 머리를 움켜쥐며 고개를 숙였다. 은태정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잘 들어라.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그동안 갈고 닦아서 완전무결(完全無缺)하게 만든 심법이니라. 이름은 무상진기(無想眞氣)라고 이름 지었지.”
유세운은 머리에서 오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으~그런데 사부의 내공은 얼마나 되기에?”
“흠. 나? 이미 내공이란 것이 필요 없는 경지니라.”
“에?”
은태정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일단 귀를 기울여라. 일단 무상진기에 대해서 말해주지.”
“예.”
유세운은 가슴으로 밀려오는 사부에 대한 경외심을 애써 무시하며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무상진기는 무념무아(無念無我)의 경지에서 자신의 우주를 바라보는데 의의가 있다. 자기 자신의 우주를 바라보고 그것과 일체화(一體化) 되는 것이 진정한 요체지. 모든 인간은 소우주를 가지고 있고 자연과 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니라. 그걸 일단 이해를 한다면 요체(要體)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 대충 이해가 되느냐?”
“예? 하하하.”
유세운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떻게 이해하라는 거야?’
“이정도도 이해가 안 되냐? 이건 정말 대략적인 것만 말해준 것인데?”
“하하하. 대충은 이해가 가는군요. 대충은…”
“그럼 일단 좌선을 하고 명상이려니 하고 네 내면을 돌아보아라.”
“예.”
유세운은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겼다. 은태정은 그런 유세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런 최상승의 요체를 과연 깨우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네놈은 정말 대단한 놈이다.”
“후후. 당연하죠. 제가 원래…”
빠악!
“악!”
“명상하라고 했지!”
“에이 씨! 알았어요!”
유세운은 다시 눈을 감고서는 그 자세 그대로 약 이 각 정도를 앉아 있다가 눈을 뜨고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은태정이 놀라며 물었다.
“벌써 보이는 것이냐?”
“보이긴 뭐가 보여요? 엉덩이가 아파서…”
빠악!
“아이 씨! 왜 계속 때려요!”
은태정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유세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명상을 이 각 밖에 못하는 놈이 뭐가 잘났다고…”
다시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본 유세운은 째려보던 것을 멈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한번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냥 단지 어두운 곳에서 이런저런 잡생각만 나기 시작했다. 결국 반 시진 만에 다시 엉덩이를 만졌다. 은태정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꺼냈다.
“하긴 네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한달음에 무공에 대한 개안(開眼)이 되겠지만…지금은 무리이니 그럼 운기(運氣)를 먼저 하자꾸나. 일단은 소주천(小周遷)을 하도록 하자. 무상진기의 소주천은 단전의 기해혈로부터 출발하여 주요경맥(主要經脈)들만 운기 하는 것이니라. 일단 소주천을 십이주천(十二周遷)한 후에 전신 세맥까지 운기하는 대주천을 십이주천 하도록 하자.”
“예. 그런데 어디로 운기하나요? 그리고 기해혈이 뭐죠?”
빠악!
“악!”
“이런 무식한 놈. 기해혈이 어딘지도 모르다니. 시끄럽다. 너에게 그런 것 일일이 다 가르쳐 주다보면 시간이 없겠다. 돌아앉아라.”
“예.”
유세운이 돌아앉자 그의 명문혈에 장심을 대며 은태정이 다짐을 했다.
“일단 절대로 입을 열지마라. 그리고 지금 내가 인도하는 길을 잘 기억해라. 그 길만을 따라서 운기해야 하느니라.”
“예.”
진지하게 입을 여는 은태정에게 주눅이 든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태정은 천천히 장심에서 기운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유세운은 자신의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기운에 대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 기운은 천천히 몸을 한바퀴 휘저으며 전신 곳곳에 숨겨져 있던 기운들을 찾아내 그것들을 인도하며 단전으로 몰려왔다. 단전에서 모이기 시작하며 어떤 한 곳에 모여 그곳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출발하여 척추를 따라 돌며 머리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가슴을 지나 단전의 넓혀진 공간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하기를 세 번을 하고는 그 기운은 천천히 단전에 머물렀다.
은태정이 명문혈에서 장심을 때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네놈의 기가 모인 그곳이 기해혈이니라. 그리고 전신에 떠도는 기운들 중 대부분을 모으며 내가 기운을 조금 보태서 틀을 마련했다. 대략 십년의 내공정도가 되겠군. 일단 그것으로 소주천을 하며 너의 길을 터놓아라.”
“아하. 이것이 내공이라는 것이군요.”
“그래. 방금 내가 인도해준 대로 소주천을 시작 하거라.”
“예.”
유세운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자신의 기해혈에 모여 있는 기운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기해혈에 모여 있던 기운은 유세운의 의지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기운을 사부가 인도해준 대로 일주천 시킨 유세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은태정이 놀라워하며 물었다.
“설마? 벌써 십이주천을 마쳤느냐?”
“아니요. 이제 막 일주천 했는걸요?”
“하긴 처음이니 이정도 걸리는 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예? 얼마나 걸렸는데요?”
“흠. 약 이각 정도 걸린 것 같구나.”
“이 각이나요?”
“그래. 어서 계속 운기하거라.”
“예.”
다시 눈을 감고 일주천을 한 유세운은 다시 눈을 떴다.
“일 갑자의 내력을 심어준 것 맞아요? 그리고 십년 내력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건가요?”
빠악!
“악! 왜 또 때려요!”
“네놈에게 심어준 일갑자의 내력이 고작 소주천을 두 번 돌렸다고 다 네놈의 진기(眞氣)가 될 줄 알았느냐? 이런 멍청한 놈이라니. 네가 부단히 노력해야지만 그것을 네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거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평생 너의 것이 안 될 수도 있지. 이런 멍청한 놈.”
“에이. 그럼 내 몸 안에 있어도 내 것은 아니군.”
은태정은 다시 손을 쳐들었다가 한숨을 쉬며 천천히 내렸다.
“오늘부터는 빠지지 말고 명상과 운기를 계속 하거라.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마.”
“예.”
유세운은 자신의 머리에 난 혹을 어루 만졌다.
‘이게 벌써 혹이 몇 개야? 오늘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이 맞다니. 어제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지만…에휴’
무상진기를 익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