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철마멸뢰 독고황은 자신의 앞에 부복하고 있는 철마오령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아버님이 직접 내게 하실 말이 있다고 하셨단 말이냐?”
“예.”
독고황은 자신의 짙은 검미를 찌푸렸다. 날카로운 검미에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던 독고황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 먼저 가 있거라. 곧 찾아뵙도록 하마.”
“예.”
철마오령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다음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독고황은 천천히 자신의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지가 태상각에 들어 가신지가 벌써 오년이 넘으셨는데 여태껏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갑자기 왜 나를 부르시는 거지?”
독고청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독고황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자신의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미 강호의 육대세력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장성한 자식의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눈치를 보며 서 있는 독고황을 바라보며 독고청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아야.”
“예. 아버님.”
독고청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에게 철마성을 넘겨준지 이제 오년이 지났구나.”
“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독고황을 바라보며 독고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철마성을 운용하는 것을 지켜보니 제법 흡족하구나.”
“감사합니다.”
독고청은 가만히 창밖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 너를 믿고 나는 폐관수련에 들어가려고 한다.”
“폐관수련을 말입니까? 이미 극마의 경지에 오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심검에 들고자 한다.”
독고청의 말에 독고황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철마성에서도 심검에 든 고수는 둘 밖에 되지 않았다. 독고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독고청은 독고황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기 전에 너에게 한 가지 할말이 있다.”
“하명하십시요.”
독고청은 독고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독고황은 독고청의 눈빛을 받으며 잠시 시선이 흔들렸다. 독고청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폐관수련은 십년을 잡고 있다. 그동안에 장강 이남을 통일 시켜 놓거라.”
“아버님. 진심이십니까?”
“그래. 진심이다.”
독고청의 말을 들은 독고황이 당황하며 말을 받았다.
“하지만 장강 이남에는 저희만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창천궁도 있는데 어찌…”
“언제까지 창천궁을 육대 세력 중 최고의 자리는 내줄 것이냐!”
“아버님.”
당황하는 독고황을 바라보며 독고청은 눈을 빛냈다.
“네 녀석이 처음 강호행을 나가서 지금 창천궁주인 백선후와의 알력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
“아…아버님.”
과거의 일을 이미 아버님도 알고 계시다는 것에 당황스러운 독고황은 말을 더듬었다. 독고청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고도 싶었다만 나는 허락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시끄럽다.”
독고청은 눈을 빛내며 독고황을 쏘아보았다.
“일단 강남무림의 군소방파에게 배첩을 돌려서 그들의 신물을 다 받아놓아라.”
“…알겠습니다.”
“만약 말을 듣지 않는 곳은 흑마천살대를 보내서 쥐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말거라.”
“예.”
“창천궁과의 일은 그 일이 모두 이루어진 후에 도모 하거라. 그 일은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예.”
“이제는 우리가 무림의 패권을 쥘 때가 온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폐관수련을 들어갈 터이니 너만 믿겠다.”
“예.”
독고청은 고개를 끄덕이는 독고황을 바라보고는 손을 내저었다.
“그만 물러가거라.”
“그럼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뒤돌아 물러가는 독고황을 향해 독고청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거력마장(巨力魔掌) 염악에게 말해 놓을 테니 도움을 받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독고황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태상각의 대청에서 물러났다. 독고청은 그런 독고황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하늘하늘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뭇잎들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가을 햇살에 은빛으로 부서져 나가는 폭포수를 등진 소년이 있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마치 넝마조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눈가리개를 한 채로 야수처럼 몸을 숙이고 있었다. 소년은 붉게 퉁퉁 부어 있는 손을 들어올렸다.
“헤헤. 어디 또 한번 해보시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구나.”
찬란하게 은빛을 발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은태정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녀석 이제는 제법 피하고 있단 말이야? 일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이제 겨우 열 달 밖에 안됐는데’
은태정의 맞은편에 서 있던 유세운은 자신의 눈가리개를 한번 쓰다듬더니 입술을 핥았다.
‘어떻게 된 게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그렇게 안 잡힐 수가 있지?’
유세운은 자신의 손바닥을 움켜쥐며 감촉을 느껴보았다. 하도 많이 맞아서 손이 제대로 움켜쥐지가 않았다. 이제 고기 굽는 솜씨도 많이 늘었고 밤에 잠도 너무 줄어서 모든 신경을 육감에만 쏟고 있는 실정이었다. 밤에 자기 전에 자리에 누워서도 온통 육감으로 주변의 경물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뻔히 오는 길이 보이는데도 도저히 사부의 대나무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기가 막히다 싶을 정도로 여러 개로 날아오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대뜸 피하고 보았다. 워낙 경신법이 형편없어서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두들겨 맞지만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적어도 대나무에 손바닥은 가져다 댈 수 있을 정도로 늘었으니 말이다.
“어서 하시죠?”
입술을 혀로 핥으며 다시 한번 말을 하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냐. 안 그래도 하던 참이다.”
눈가리개 저편으로 세 개의 그림자가 마치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세 개의 대나무를 쳐다보던 유세운은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 두들겨 맞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잡아야겠다.’
앞으로 몸을 숙여 하나를 머리위로 흘려보내고서는 대뜸 두개의 대나무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하지만 금세 혀를 찼다.
어느새 반대쪽에서 가로로 베어 들어오는 대나무가 지척까지 이른 것이었다.
‘제길!’
하반신을 찔러오는 대나무를 도약으로 피하면서 가슴으로 다가온 대나무와 옆에서 날아오는 대나무에 얻어맞은 유세운은 일장을 날아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크윽!”
은태정은 주변에 널려져 있는 대나무의 개수를 세어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에게 다가온 위험만 느껴서는 아니 된다. 주변 모든 공간을 너의 육감으로 인지해야 하느니라.”
“알았어요. 끄응.”
비틀거리며 자리에 일어나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은태정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해보자. 너의 주변을 인지하는 능력을 극대화 시켜주지.”
“예?”
은태정의 가벼운 손짓을 따라 바닥에 쌓여있던 대나무 스무 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대나무들은 조용히 날아가서 유세운의 팔방을 에워쌌다. 유세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이것들은 뭐죠?”
“말했잖느냐. 너의 주변을 인지하는 능력을 극대화 시켜 주겠다고.”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이제는 한꺼번에 이 많은 것들로 공격하겠다고요?”
“아니지. 어떤 것들은 매복처럼 숨어있기도 할 테니 너무 걱정 말거라.”
“하하. 고맙군요.”
유세운은 어이가 없었다. 여태껏 사부의 양손에 들린 대나무로도 이렇게 형편없이 나뒹굴고 있는데 이제는 족히 스무 개는 되어 보이는 대나무를 상대하라니 말이 안나왔다.
‘그래. 한 번 죽여보고 싶다 이거지?’
“받아 보거라.”
은태정은 태연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내저었고 유세운의 머리 위에 있던 대나무가 벼락처럼 내리 꽂혔다. 유세운은 머리 위에서 날아오는 대나무를 피하다가 자신의 다리를 쓸어오는 대나무를 느끼고 가볍게 도약을 했다. 허공에 몸을 띄운 사이 세 방향에서 대나무가 날아왔다.
“으악! 죽이려는 거예요!?”
“설마?”
은태정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유세운은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대나무의 옆면을 가격하면서 그 힘을 빌려 몸을 약간 비틀었다. 자신의 허벅지를 향해 날아오는 것은 도저히 막을 시간이 없었다. 머리로 날아오는 대나무를 양손을 교차해 막으며 허벅지 근육에 온 힘을 다 주었다.
빡!
“큭.”
신음을 흘리며 땅에 떨어지려는 찰나 다시 두 개의 대나무가 양쪽 어깨를 노리고 쏘아져 왔다. 방금 얻어맞은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바닥을 들어올려 대나무를 막아갔다. 손바닥에 닿을 듯 다가오던 대나무는 부드럽게 휘어지며 양쪽 허벅지를 가격했다.
짝!
“악!”
허벅지에 느껴지는 통증에 자리에 주저앉는 유세운을 바라보던 은태정이 태연히 물었다.
“힘드냐? 잠시 쉬었다 할까?”
“헥헥. 좀 쉬었다 해요.”
“그래. 그러자꾸나.”
은태정의 가벼운 손짓을 따라 대나무는 질서정연하게 일렬로 바닥에 꽂혔다. 유세운이 힘들게 눈가리개를 벗으려고 손을 들어올릴 때 은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거나 잠 잘 때를 빼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벗지 말라고 했다.”
“쳇! 알고 있다고요.”
유세운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은태정은 평평한 바위위에 걸터앉아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차적으로 반응하려고 하지 말고 너의 주변의 모든 상황을 인지하는 게 좋을 거다. 지금처럼 움직이는 것만 느껴서는 안 된다. 움직이지 않는 것도 느낄 수 있어야해.”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도?”
“그래. 지금 네놈의 육감은 너에게 위험성이 느껴지는 것은 느낀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강호에는 살수도 판을 치니 말이지.”
“살수요?”
“그래. 그들은 주변의 바위나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에 너의 숨통을 끊겠지. 당하기 싫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도 느낄 수 있어야해.”
“그런가?”
유세운은 은태정의 말을 듣던 중 자신의 뺨에 와 닿는 낙엽을 느꼈다. 유세운이 천천히 자신의 뺨에 붙어 있던 낙엽을 들어올리는 것을 본 은태정이 태연히 말했다.
“방금 그 낙엽이 독이 묻어 있는 암기였다면 어쩔 뻔 했느냐?”
“헉!”
깜짝 놀란 유세운은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누군가의 암기가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한다면 뭔지도 모르는 새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주변의 상황을 느끼려고 했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바닥과 자신에게 다가와 부딪쳐 흘러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계속 신경을 집중하자 자신의 주변에 떨어져 내리는 낙엽의 모습들도 하나 둘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어둠 속에 빛이 스며드는 것처럼 주변의 사물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폭포수를 비롯해서 나무들과 바위 그리고 저 멀리 목옥이 느껴졌다. 자신의 주변에 일렬로 꼽혀 있는 대나무들도 느껴졌다.
‘그래. 항상 내게로 날아오는 위협하는 것들만 인식을 했구나. 이렇게 눈으로 보듯 모든 것이 훤하게 느껴지는 것을…’
은태정은 유세운의 표정 변화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설마 저놈의 육감이 그렇게 뛰어나단 말인가?’
의문점이 든 은태정은 가만히 손을 휘저어 바람을 만들었다. 바람이 일어 나뭇잎들이 불규칙하게 흔들리자 유세운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은태정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바람을 일으켰고 유세운의 핀잔을 들었다.
“사부 지금 저랑 장난해요?”
“흠흠. 무슨 소리냐? 이제 다 쉬었으면 시작할까?”
유세운은 가만히 주변의 풍경을 느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다시 하죠.”
은태정은 가벼운 손짓으로 대나무들을 모두 뽑아 올렸다. 그리고 방금 전처럼 유세운의 주위를 둘러쌌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시작하시죠.”
말을 꺼냄과 동시에 유세운은 저돌적으로 앞으로 달려 나왔다. 여태껏 수동적으로 방어만 하던 유세운이 달려 나오자 은태정은 당황했다.
‘이놈이 미쳤나?’
하지만 노회한 고수답게 유세운의 전방에 있던 대나무 세 개가 뿔뿔이 흩어지며 그의 등 뒤와 양 옆의 대나무가 춤을 추었다. 유세운은 바닥을 한 바퀴 구르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대나무의 공세를 피했다. 곧장 일어난 유세운은 자신 왼쪽의 대나무를 잡으려고 손을 내뻗었다. 왼쪽의 대나무가 마치 뱀처럼 유연하게 휘며 유세운의 손길을 피하고 그때를 이용해 그의 머리 위로 대나무가 내리 꽂혔다.
“쳇!”
유세운은 입맛을 다시며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다시 그의 사방에서 대나무가 날아갔다.
‘허허. 확실히 무언가를 깨달은 게로군. 반응이 배는 빨라졌어.’
은태정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대나무들은 교대로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유세운을 공격했다. 비록 반응이 엄청 빨라지긴 했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헥. 헥.”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뛰고 발버둥을 쳐도 도저히 잡히지 않는 대나무들 때문에 속이 다 타는 것만 같았다. 유세운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좋아.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 잡는다. 이러다 숨차 죽을 것만 같군.’
다시 한번 허벅지와 어깨 그리고 복부를 동시에 노리고 날아오는 대나무를 가만히 느끼던 유세운은 뒤로 황급히 몸을 날려 허벅지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어깨를 향해 날아오던 대나무를 몸을 비틀며 손을 들어올려 간신히 흘려보냈다. 하지만 복부로 들어오는 것은 도저히 피할 틈이 없었다.
‘좋아. 이놈이다!’
자신의 복부를 가격하려는 순간 황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약간 배가 들어가자 대나무가 금세 복부를 가격했다. 유세운은 배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커헉!”
침까지 뱉으며 쓰러지는 유세운을 향해 은태정이 황급히 다가왔다.
“괜찮으냐?”
“켁! 켁!”
기침을 해대면서도 유세운은 흐뭇했다. 유세운은 은태정을 향해 고개를 들며 미소 지었다.
“그럼요. 켁. 열 달 간의 매질이 흑.. 끝나는 순간인데요. 큭.”
“뭐라고?”
다시 되묻는 은태정을 향해 유세운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대나무를 들어올렸다.
“크크크. 드디어 잡았다고요. 잡았어. 아하하하. 켁.”
심하게 웃자 복부를 가격당한 곳이 당겨와 숨이 막혔다. 하지만 이렇게 기쁘기는 정말 난생처음 인 것 같아 웃음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아하. 켁. 아하하하. 큭큭.”
무상진기(無想眞氣)를 익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