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육감을 깨닫다.”
동녘 하늘이 은은히 밝아 오는 아침.
목옥 안으로 어슴푸레 빛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유세운은 누운 상태로 눈을 떠서는 인상을 찌푸렸다. 가만히 주변을 돌아본 유세운은 일어나 앉았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유세운은 가만히 목옥의 문을 열어보았다.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상해. 요즘 들어서 해도 안 떴는데 잠이 안 오다니…이…이게 어떻게 된 거지?”
조용히 다시 목옥의 문을 닫은 유세운은 은태정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누웠다. 하지만 금세 누워서 몇 번을 뒤척이던 유세운은 결국 일어나서 궁시렁 대며 밖으로 나갔다.
“뭔가 이상해. 몸이 너무 개운해. 그것도 너무…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유세운이 나가자 은태정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흐흐흐. 네놈이 잠이 무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래서 수련 도중에 추궁과혈(椎躬過血) 수법으로 전신의 혈과 혈맥들을 두들겨 모든 기능을 원활하게 했으니 앞으로 잠이 잘 안 올 것이다. 흐흐흐.”
목옥 밖으로 나온 유세운은 천천히 몸을 풀며 폭포수로 다가갔다.
“이상하군. 어제 그렇게 두들겨 맞았는데 어떻게 몸이 더 개운한거지?”
폭포수의 연못가로 나온 유세운은 윗옷을 벗고 조심스럽게 발을 담가 보았다.
“앗 차가워!”
유세운은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폭포수 옆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연못을 쏘아보던 유세운은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래도 물고기를 잡아야지! 안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유세운은 연못을 향해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풍덩!
“으악! 차! 차가워!”
한순간 전신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끼며 유세운은 몸을 웅크렸다. 몸을 부르르 떨며 주위를 돌아본 유세운은 걸음을 옮겼다.
“에이 근데 물고기들을 어찌 잡나? 일단은…”
유세운은 가슴까지 차는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물고기를 가만히 쏘아보다가 재빠르게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그런 그를 비웃듯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는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어쭈! 잡히기만 해봐.”
유세운은 열이 올라 몇 번이나 손을 휘저었지만 번번이 실패만 거듭했다.
은태정은 연못가에 나타나 웃으며 그런 유세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은태정은 유세운의 행동이 재미있던지 계속 구경하다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제 마지막에 휘두르는 대나무를 얼핏 느낀 것 같던데…그냥 단순한 우연인가?”
“얍! 이놈의 물고기들이… 죽엇!”
은태정은 열을 올리고 있는 유세운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유세운을 구경한지가 한 시진이 다 되자 은태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아 시간이 다 되가는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아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내 이 빌어먹을 고기 놈들을…차핫!”
은태정은 멀뚱히 물만 첨벙거리고 있는 유세운을 보며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됐다. 비켜라. 참내 이거 매번 잡아주게 되겠군. 아직 내력이 없으니 봐 주마.”
“예.”
은태정은 옆에 굴러다니는 대나무를 갈라 작은 꼬챙이를 여러 개 만들더니 그 자리에서 가볍게 손을 떨쳤다.
슉!슉!슉!
가벼운 파공음과 함께 연못으로 파고든 대나무 꼬챙이들은 잠시 후 물고기 한 마리씩을 꿰고서는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은태정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다 가지고 올라 오거라. 그리고 내장을 빼서 굽는 연습을 해라.”
“예.”
유세운은 대나무 꼬챙이들을 움켜쥐고 물 밖으로 나왔다. 연못가에서 대나무 꼬챙이 들을 뽑아 그중 날카로운 대나무 꼬챙이를 이용해 물고기들의 배를 갈랐다. 내장을 조심조심 빼낸 다음 물에 씻고 장작을 구해왔다. 어제 본 것처럼 날카로운 꼬챙이를 이용해 물고기를 꼽았다. 화섭자를 이용해 불을 붙인 유세운은 꼬챙이를 바닥에 꽂아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은태정은 가만히 옆에 앉아서는 유세운을 가르쳤다.
“그래. 지금 살짝 돌려줘.”
“예.”
그렇게 한참을 익힌 고기를 한 입 베어 물을 은태정이 입을 열었다.
“처음 치고는 제법이군.”
“하하하. 제가 원래는 요리에 소질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유세운을 보며 은태정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흠. 오늘은 어제 수련에 이어 계속 하겠다만, 네가 저 대나무를 잡을 수 있게 되면 다음 수련으로 넘어가겠다.”
“우물우물…쩝.쩝. 예.”
그런대로 잘 구워진 고기를 허겁지겁 먹으며 유세운이 건성으로 대답을 하자 은태정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흠. 그래 어서 먹도록 해라.”
“예.”
금세 아침을 해치운 유세운과 은태정은 다시 어제의 공터로 나갔다. 유세운이 눈을 가리길 기다리던 은태정이 작게 웃었다.
“하하. 오늘은 지난 일주일보다 약간은 재미있을 거다. 약간은…”
“예?”
은태정은 이번에는 양손에 대나무를 들더니 가볍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바람 한점 일지 않았고 소리 또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깨에 맞고 날아가다가 다시 반대쪽에서 날아오는 대나무를 맞고는 제자리에 떨어졌다. 유세운은 신음을 하며 소리쳤다.
“으~아니 그렇게 연속으로 공격하면 어떻게 느껴요!”
“아니 몇 개를 휘두르더라도 느껴야 하는 거다.”
“으아! 좋아요. 다시 한번 해요!”
“그래.”
다시 한번 대나무가 허공을 가르자 유세운은 눈을 가린 체 대나무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갸웃거렸다. 은태정이 놀라는 순간 유세운은 다시 한번 가슴에 맞고는 일장(一丈)이나 날아갔다. 유세운이 가슴을 움켜쥔 체 기어오며 말했다.
“음. 어쩌면 알 것도 같네요. 다시 한번…”
은태정은 그런 유세운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허허. 저놈 의외로 재능이 제법이군. 일주일 만에 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니…그래도 쉽게 잡혀주면 무안하니까…”
은태정의 양손에서 대나무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폭풍같은 기세로 순식간에 유세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역시 일지 않았다. 유세운은 갑자기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안색이 확 변하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의 몸짓은 무의미하게 대나무에 의해 정말 셀 수 도 없을 만큼 난타(亂打)를 당했다. 유세운은 이를 갈며 일어났다.
“아악! 젠장! 죽일 셈이에요!?”
은태정은 태연히 그러나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 설마 하나뿐인 제자를 죽이기야 하겠느냐? 강호에서는 이런 일도 다반사니 경험 삼으라고 한번 해 본거다. 앞으로도 적절히 섞을 테니 잡아 보거라.”
“에잇! 젠장! 알았어요.”
은태정은 미소 지으며 다시 한번 대나무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휘둘렀지만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유세운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안색이 변하며 서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대나무 쪽을 향하여 몸을 틀었다. 은태정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손에 들린 대나무를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휘둘렀다. 유세운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휘말려 올라 갈 만큼 강맹한 공격을 피하자마자 천천히 날아오던 대나무에 맞고 뒤로 훌쩍 날아갔다. 유세운이 끙끙대며 일어났다.
“이런 걸 어떻게 잡아요. 감이와도 잡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잡을 수 있을 때까지라고 했잖느냐?”
“으아!”
은태정은 신경질을 부리며 앉아 있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허허.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한번을 피해냈군. 점점 놀람의 연속이야.’
은태정의 생각을 끊는 유세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알았어요. 해요!”
은태정은 흐뭇해하며 다시 한번 가차 없이 대나무를 휘둘렀고 유세운은 최대한 애를 쓰며 피했지만 결국 금세 허공을 날아올랐다.
“으~악!”
육감을 깨닫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