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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오문-9화 (9/194)

(9)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은빛으로 아름답게 부서지는 폭포수 옆의 목옥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왜 때려요!”

“언제까지 잘거냐! 일어나서 밥해와! 배고프다.”

“에이 씨!”

“허허.”

“아아악!”

잠시 후 목옥을 나서는 유세운은 머리에 난 혹을 어루만지며 궁시렁 대고 있었다.

“체! 그런데 뭐로 요리를 하지? 할줄 아는 것도 없는데?”

유세운의 뒤를 따라 목옥을 나오던 은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하긴 그렇군. 그럼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일 테니 잘보고 다음부터는 알아서 해라.”

“예.”

유세운은 단 한번이라도 자기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흐뭇해했다. 적어도 은태정이 폭포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기 전에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 절망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은태정은 폭포수 앞에 서서는 가볍게 일장을 날렸다. 하지만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의 일장에 폭포수 밑의 연못이 대번에 갈라지며 맨바닥을 보였다. 물고기들은 갑자기 물이 없어지자 바닥에서 파닥거리며 몸부림쳤다. 은태정은 여유 있게 허공섭물로 물고기들을 수거했다. 잠시 후 연못은 다시 채워졌지만 유세운의 인상은 구겨질대로 구겨져 있었다.

“으악! 저더러 어떻게 그렇게 잡으라는 거예요! 전 무공을 모른단 말이에요!”

“그럼 들어가서 잡아와. 그건 내가 알바 아니지.”

유세운의 말에 은태정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은태정은 가볍게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은빛의 강기가 맺히자 가볍게 물고기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능숙한 숙수의 솜씨인양 가볍게 내장을 꺼낸 후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뭐하냐? 가서 장작 좀 구해오너라.”

“알았어요.”

유세운은 근처 숲에 가서 작은 나뭇가지들을 모아왔고 은태정은 능숙한 솜씨로 고기들을 꼬챙이에 꿰더니 장작에 삼매진화로 불을 붙였다. 장작에 불이 붙자 꼬챙이에 꽨 물고기들을 바닥에 비스듬히 꽂아 느긋하게 굽기 시작했다. 은태정은 가만히 고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어제 자기 전에 생각해 봤는데 나 혼자일 때는 상관이 없었지만 이제 처음으로 문하를 두게 되어서 문파를 하나 세우기로 했다.”

“예?”

고기 익히는 모습을 옆에서 같이 쳐다보던 유세운은 갑작스런 은태정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은태정은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지은 이름이 광오문(狂傲門)이다. 네가 이 대 문주(二 代 門主)니라.”

“예? 하필이면 문파 이름이 미칠 광에 거만할 오가 뭐예요!”

사부의 작명 실력에 심각한 문제성을 느낀 유세운의 반발이 거세었다. 은태정은 가볍게 웃었다.

“하하. 그거 말이냐? 그야 내 무공이 모든 무림인들을 오시할 수 있으니 그런 거지. 하하하.”

“끄응~”

은태정은 구워지고 있는 고기를 살며시 뒤집으며 유세운에게 말했다.

“목옥에 가서 소금 좀 찾아오너라.”

“예.”

유세운은 목옥까지 가서 소금을 들고 나왔고 구워진 고기에 소금을 뿌린 은태정이 그중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내일부터는 다 네 일이다. 먹고 내일은 이 시간까지 아침 준비를 하거라.”

“예.”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중천에 걸린 것이 이만하면 집에서 있을 때보다 더 늦잠을 자는 거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체 고기를 한 입 배어 물은 유세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만히 입을 벌리고 고기와 은태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은태정이 유세운의 시선을 느끼고는 가볍게 눈을 부라렸다.

“뭐야? 그 눈빛은?”

유세운은 간신히 입을 다물고는 어이없어하며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단순한 물고기 구이에서 이런 맛이 나올 수가!”

“흐흐흐. 그것이 바로 백오십년을 넘는 전문가의 솜씨니라…흐흐흐. 인세에 보기 힘든 경력이지!”

은태정의 말에 유세운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급히 먹기 시작했다. 은태정도 오랜만에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지라 흐뭇해하며 맛있게 고기를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옥 앞에 공터에서 기다리거라. 내가 좀 다녀올 곳이 있느니라.”

“예.”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은 유세운은 포만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은태정은 신형을 뽑아 올리더니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정말 신법하나는 일품이군.”

유세운은 포만감 때문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장작불을 껐다. 배를 움켜쥐고 공터로 나가서 자리에 앉아마자 은태정이 돌아왔다. 품에는 푸른 대나무를 가득 안은 채 나타난 은태정은 유세운을 불렀다.

“흠. 오늘부터 바로 무공을 가르쳐주마.”

“예.”

유세운은 아직 배도 꺼지지 않았다는 말을 해주려고 하는데 바로 말이 끊겼다.

“우선 이걸로 눈을 가리 거라.”

대나무를 한쪽에 내려놓은 은태정은 품에서 작은 눈가리개를 꺼내 주었다. 유세운은 그것을 받아 눈을 가리고 서있자 은태정의 말이 이어졌다.

“흠. 사람에게는 오감이라는 것이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보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촉감으로 느끼는 것, 냄새를 맡는 것, 그리고 맛을 보는 것 등이 있지. 물론 이 감각들도 필요하긴 하다.”

“하긴 하다?”

“그래. 물론 무공을 펼침에 있어서도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지.”

“음.”

은태정은 눈을 가리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유세운을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헉!”

뒤로 반보를 물러나며 가슴까지 손을 들어올린 유세운이 소리쳤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잘 들어! 이젠 그런 것은 잊어라. 물론 살아가는 대는 필요하겠지만 수련 과정 중에는 필요 없다.”

“예?”

은태정은 유세운의 반문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절정고수 이상들이 그런 오감보다 더욱 믿는 육감(六感)을 익히게 해주마.”

“육감이요?”

“그래. 대부분 절정고수가 되는 도중에 스스로 깨닫게 되지만 그것을 알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으니 그걸 이 사부가 가르쳐주마.”

“으~~~~아함. 그래요?”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모습을 보고도 은태정의 얼굴에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문파에서는 문하들에게 먼저 내공심법(內功心法)을 가르쳐 준다만 그렇게 되면 다른 수련에 지장이 있으니 그건 천천히 가르쳐주마.”

“예? 한시가 급한 게 아닌가요?”

“내 방식에 토를 달지 마라.”

“예.”

목소리에 묻어있는 위압감에 꼬리를 내린 유세운을 보고 은태정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제 네가 할 이 수련은 육감과 함께 너의 반사 신경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줄 거다.”

“흐음.”

의문점이 생기고는 있었지만 유세운은 가만히 대답만 했다. 은태정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반사 신경과 육감을 가지고 있어야 팔각연환권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니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

“예. 예.”

귀찮은 듯 성의 없이 대답하는 것을 보며 은태정은 바닥에 내려놓은 대나무를 하나 집어 들었다. 가만히 대나무를 휘어보았다. 느껴지는 탄력이 아주 좋았다.

“자. 그럼 시작하자꾸나.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말고 느끼거라.”

“예…예? 뭘요?”

은태정은 아무 대답 없이 수중(手中)의 대나무를 휘둘렀고 대나무는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속도로 유세운을 향해 날아갔다. 더욱이 소리하나 바람 한점 일지 않았다.

짜악!

멋모르고 서 있다가 오른 쪽 어깨에 일격을 맞은 유세운은 일장이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며 비명을 질렀다.

“악! 뭐예요! 아이고 어깨야…”

“허허. 분명히 느끼라고 말을 해주었는데?”

은태정은 태연히 대나무를 휘어 탄성을 확인하며 천천히 유세운을 향해 다가갔다.

“그럼. 이번에는 신경을 집중해서 느끼거라.”

말을 함과 동시에 은태정의 손에 들린 대나무가 춤을 추었다. 그리고 유세운은 그 춤에 장단을 맞추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육감을 깨닫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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