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7화 (7/194)

(7)

“광오문에 들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두통과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눈을 뜬 유세운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것을 본 유세운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크윽! 꼬박 하루를 잤나보군.”

머리를 움켜쥐고 일어난 유세운은 탁자 위에 놓여진 주전자를 들어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타는 듯한 갈증이 좀 가시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슬슬 출발해야겠군. 이렇게 작고 좁은 곳에서 놀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유세운은 자신의 짐을 들고 방문을 나섰다. 주루로 내려온 유세운은 점소이에게 부탁해 수리된 검을 받아들고 계산을 한 연후에 자신의 흑마에 올라탔다. 유세운은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말을 달렸다.

“이랴!”

다그닥. 다그닥.

흑마의 위에서 말의 흔들림을 느끼며 걷던 유세운은 앞에 보이는 작은 마을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저렇게 작은 마을에는 객잔도 없을텐데…”

투덜거리면서 흑마를 몰던 유세운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도 뜨지 않은 것을 보고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이곳은 그냥 지나가야겠다.”

유세운은 작은 마을의 앞에서 밭을 가는 노인을 보고는 말에서 내렸다. 노인에게 다가가던 유세운은 노인의 밭을 가는 모습을 보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저기 할아버지.”

유세운은 자신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릴만한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들은 척도 안하는 노인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들렸나?”

유세운은 앞으로 더 다가가 노인을 불렀다.

“저기 할아버지!”

하지만 역시 노인은 못들은 듯 밭을 갈고만 있었다. 유세운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유세운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더욱 다가갔다. 일장정도 앞까지 다가간 유세운은 큰 목소리로 노인을 불렀다.

“할아버지!”

유세운은 부름에 노인은 그제야 들은 듯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주변을 돌아보던 노인은 유세운을 보더니 물었다.

“자네가 날 불렀는가?”

“예. 할아버지.”

유세운의 대답에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잘 안 들려.”

유세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제가 불렀는데요.”

유세운의 말을 들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왜 불렀는가?”

유세운은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서 태산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죠?”

“태산?”

“예.”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이런 쯧쯧. 태산은 여기 와서 왜 찾아.”

“예? 이 길로 가면 태산이 나오지 않나요?”

노인은 유세운은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태산으로 가려면 북으로 북으로만 올라가면 된다네. 여기서는 한참을 더 가야하지.”

“북쪽으로 말인가요?”

노인은 허리를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마을을 지나서 조금만 가면 양쪽으로 갈라진 길이 나올거야. 그때 북쪽으로 잡고 쭉 따라 올라가게. 그럼 될 거야.”

노인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노인은 유세운이 돌아서려 하자 허리를 두들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허리는 아프고 밭은 갈아야겠고 에휴~”

“에?”

“에휴 나이를 먹으니 힘들어서 말이야.”

“저기…그럼 저는 이만…”

“이런 어떻게 된 녀석이 노인이 힘들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딴청이라니 너 대체 부모님에게 뭘 배운 거냐?”

유세운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유세운에게 곡괭이를 넘겨주며 나무 그늘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거기서부터 거기까지만 갈거라.”

“엑?”

유세운은 노인이 손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고는 절로 되물었다. 노인이 가리킨 범위가 사방 십장은 되어보였다. 노인은 허리를 두들기며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어서해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유세운은 노인을 한번 쏘아보고는 곡괭이를 높게 쳐들었다.

유세운의 흑마가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유세운은 자신의 앞에 보이는 갈림길을 보며 허리를 두들겼다.

“으윽. 허리아파.”

유세운은 허리를 두들기며 갈림길을 바라보았다. 두개로 나있는 갈림길에서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특별한 표식 같은 것이 없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쪽으로 가라고 했었지?”

유세운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이미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유세운은 해가 기우는 것을 보고는 흑마의 고삐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가자! 태산으로!”

이히히힝-

다그닥. 다그닥.

흑마에 몸을 싣고 천천히 걷던 유세운은 자신의 앞에 보이는 산을 보며 흐뭇해했다.

“드디어 태산이구나. 하하하. 여기를 찾아오는데 이 주일이나 걸렸다니.”

유세운은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고는 웃었다.

“후후후. 그래도 이제 술맛도 조금 알 것 같고…하지만 기루를 못 가본 것이 조금 아쉽군.”

혼자 즐거워하며 말을 몰아가던 유세운은 갑자기 스치는 생각에 말을 세웠다.

“워! 워! 이상하군. 태산이라면 분명히 장강 이북에 있다고 들었는데…장강을 건너지 않았는데…”

한참을 말을 세운 채 고민하던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흠. 아냐. 분명히 북쪽으로만 왔으니 그럴 리 없을 거야. 여기가 태산일 테니 천룡문을 찾아가자. 이랴!”

유세운은 자신의 앞에 보이는 칠십이 개의 봉우리를 쳐다보며 말을 몰았다. 한참을 달려가자 울창한 숲이 보였다. 유세운은 입맛을 다시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아무리 양숙부라도 오늘만큼은 잘 대해주시겠지.”

두 시진 후…

유세운은 천천히 흑마를 세웠다.

“워! 워! 뭐야 이거? 이놈의 숲은 두 시진이나 달렸는데 아직도 끝이 안보여…”

유세운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침낭에서 말린 고기를 꺼내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한참을 씹던 유세운은 하늘을 바라보고는 투덜거렸다.

“쩝. 젠장 이러다 노숙(露宿)하는 거 아냐? 에이~ 쩝쩝”

어느새 하늘에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유세운은 심한 갈등이 일었다.

“으~어쩌지? 천룡문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고개를 힘차게 흔든 유세운은 말고삐를 움켜쥐었다.

“에이~ 찾을 수 있을 거야. 노숙을 할 수는 없다고!”

힘껏 흑마의 배를 걷어찬 유세운은 다시 말을 달렸다.

다그닥. 다그닥.

유세운은 정말 화가 난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세웠다.

“워! 워! 이런 빌어먹을…”

유세운은 말에서 내려 침낭을 펼쳐 잠잘 준비를 했다.

“이놈의 빌어먹을 태산은 뭐가 이리도 넓어? 천룡문의 천자도 안 보이는구먼. 젠장!”

실컷 욕설을 내 뱉은 유세운은 흑마를 옆의 나무에 묶었다.

“어떻게 한 시진이나 더 달렸는데도 끝이 안 보이는 거야?”

아~우~~~~~~~~~~~~

어디선가 들려오는 늑대소리에 유세운의 안색은 확 변했다.

“이런! 늑대까지 있어? 빌어먹을…”

유세운은 급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았다. 하지만 양이 너무 부족해서 결국 검을 뽑아 들었다.

“아아. 왜 이리 되는 게 없을까? 검을 들고 고작 나무나 패야 하다니!”

유세운은 궁시렁 거리며 검을 휘둘러 잔가지들을 잘랐다. 한참을 씨름하고 나서야 간신히 원하는 만큼의 나무들을 모을 수 있었다.

유세운은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고 나뭇가지들을 들고 자신이 말을 메어 둔 곳으로 왔다. 나뭇가지들을 쌓아놓고는 누나가 챙겨준 화섭자(火燮者)를 꺼내 불을 붙였다. 잠시 후 불이 붙어 주위를 밝히자 유세운은 다소 안심한 듯 장작용으로 쓸 나뭇가지를 더 주워왔다. 나뭇가지들을 한 쪽에 쌓아놓고 앉아 불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유세운은 고개를 무릎사이에 파묻었다.

“흑! 젠장…에이…어떻게 해서라도 집에 있었어야 하는 건데…흑! 형…누나…아버지…흑흑.”

“참 내…어떤 놈이 겁도 없이 여기서 불을 때나 했더니 이거 완전히 애 아냐?”

갑자기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유세운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유세운의 왼쪽 삼장정도 떨어 진 나무 밑동에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앉아 있었다.

소년의 머리카락은 은은한 은빛을 발하고 있어 어둠 속에서 무척이나 신비하게 보였다. 그리고 눈썹 또한 은색을 발하고 있어서 아주 신비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피부는 뽀얀 것이 아주 탱탱해 보여 한번 잡아당기고 싶어졌다. 유세운은 다급히 소매를 들어 눈가를 닦고는 으름장을 놓았다.

“야! 나이도 어려보이는 꼬마가 무슨…콱!”

유세운은 주먹을 들어 보이며 겁을 주려고 하다가 생각했다.

‘아니지. 저런 꼬마 혼자 이렇게 숲 속을 헤매고 다닐 리 없으니까 분명히 아버지라든가 어른이 같이 있을 거야. 좋아 잘 구슬려서…’

“야! 꼬마. 너희 부모님은 어디계시냐?”

소년은 자신의 은빛 눈썹을 한 쪽을 치켜 올리며 어이없어 했다. 유세운은 자신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씹어대는 꼬마를 향해 다시 주먹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대답해. 부모님은 어디계시지?”

유세운이 주먹으로 겁을 주자 소년은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무공도 쥐뿔도 없는 게 어떻게 여길 들어왔냐?”

소년의 말투가 상당히 귀에 거슬렸지만 일단 자신이 부탁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자상하게 대답을 해줬다.

“흠. 태산에 있는 천룡문을 찾다가…”

“뭐야? 너 어디서 왔는데?”

소년의 건방진 물음에 잠시 화를 내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유세운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강서성에서 왔어.”

“뭐?”

소년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더니 잠시 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배를 움켜쥐고는 웃기 시작했다.

“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형산에 와서 태산의 천룡문을 찾아? 하하하.”

소년의 괘씸한 웃음소리보다 말의 내용에 더욱 놀란 유세운이 소리쳤다.

“뭐야! 여기가 형산이라고?”

소년은 눈가에 눈물까지 흘리며 웃다가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파하하. 잠깐! 그런데…”

“응? 뭐…”

빠악!

휘리릭!

퍼억!

“악!”

순간 소년의 몸이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유세운의 앞에 나타나 가볍게 주먹을 휘둘러 꿀밤을 때렸다. 하지만 꿀밤을 맞은 유세운은 허공을 이장이나 날아가 숲에 있는 나무에 허리를 부딪치며 떨어졌다. 유세운은 머리와 허리르 잡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벌써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불을 쬐다가 잠이 들었나보군. 이런. 이거 완전히 악몽이잖아. 으윽! 그리고 이렇게 실감나는 꿈이라니…’

하지만 유세운의 생각은 소년의 코웃음에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흥! 많이 잡아줘 봐야 열두 셋 밖에 안 되어 보이는 게 어디서 반말이야…”

유세운은 아무리 꿈이라도 저런 꼬마에게 무시 받는 것은 참을 수 없어 대뜸 소리쳤다.

“으윽! 뭐야? 이놈의 꼬마가!”

빠악!

휘리릭!

퍼억!

“으아악!”

다시 한번 똑같이 얻어맞은 유세운은 자리에 대자(大字)로 뻗어 꿈틀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 한거 아냐? 어떻게 맞은 자리만 골라 맞을 수 있는 거지? 게다가 부딪친 나무도 같은 것 에다가 허리도 같은 부위라니…젠장!’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끙끙대던 유세운을 바라보며 소년은 피식 웃었다.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아니. 저 빌어먹을 꼬마 놈은 분명히 처음 보는 놈인데 어떻게 내 꿈에 나타 난거냐!’

광오문에 들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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