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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오문-6화 (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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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이 어제 저녁 열어둔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자 유세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개를 돌려 햇살을 피해보지만 그 정도로는 역부족이었다. 유세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볐다.

“창문을 열어놓고 자서 그런가?”

가볍게 몸을 푸는데도 전신의 뼈마디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하게 눈곱을 제거한 유세운은 방을 나가 이층 주루로 내려갔다. 어제의 창가로 다가가며 보니 마룻바닥을 급히 손본 자국이 역력했다. 유세운은 태연히 의자에 앉으며 점소이를 불렀다.

“이봐.”

“예.”

귀엽게 생긴 점소이가 다가오자 유세운은 탁자에 팔을 얹으며 물었다.

“어제 맡긴 검에 대해 들은 게 있나?”

“예. 오늘 중으로 될 것 같답니다.”

“흐음. 그래? 그거 다행이군.”

‘젠장~ 한 이주일 정도 걸리지. 뭐가 그렇게 빨리 된데…쳇.’

유세운은 태연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주문을 했다.

“간단한 요깃거리하고 술을 내오게.”

“술 말씀이십니까?”

점소이가 다시 되묻자 유세운은 태연하게 그를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술.좀. 가.져.오.게.”

점소이는 유세운의 기세에 눌려 당황하며 되물었다.

“수…술이라면 어떤 걸로?”

유세운은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음. 조금은 달콤한 게 좋겠군.”

“그럼 죽엽청(竹葉靑)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래. 그걸로 내오게.”

주문을 받고 내려간 점소이를 바라보던 유세운은 이층으로 올라오는 노도인(老道人)과 소년을 보았다. 한손에 불진을 든 체 소년의 손을 잡은 체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마치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 같았다. 노도인은 얼굴이 대추처럼 붉었고 하얀 수염이 그와 아주 대조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소년의 나이는 자기 또래 정도로 보였다. 유세운은 가볍게 속으로 웃었다.

‘푸훗. 녀석 강호 초행인가보군. 그렇다고 저렇게 티를 내고 다닐 필요는 없는데…’

노도인과 소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도인은 점소이를 불러 소면 두 그릇을 시켰다. 유세운은 주변을 둘러보아도 주루에는 자신과 노도인 일행 밖에 없자 자연스레 시선을 그리로 향했다가 노도인과 눈이 마주쳤다.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자연스레 시선을 피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피했지만 뒤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직도 노도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한 유세운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노도인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소년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세운이 가볍게 웃어주자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싱거운 녀석이군.’

유세운은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점소이가 안주거리와 죽엽청 한 병을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점소이는 탁자위에 죽엽청과 음식을 내려놓고는 다시 급히 아래로 향했다.

유세운은 가만히 죽엽청을 바라보다가 향을 맡아 보았다. 은은하게 나는 대나무향에 가슴이 맑아지는 것 같아 급히 잔에 따랐다. 황금빛깔에 약간의 녹색이 섞여 있어 달콤해 보였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크흡!”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킨 유세운은 다른 안주거리를 급하게 집어먹었다. 오리구이를 가볍게 찢어 입에 넣어 씹기 시작하자 그제야 약처럼 쓴 기운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게 달콤하다고? 이놈의 점소이가…’

가만히 유세운이 하던 것을 지켜보던 노도인이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것 참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하하하하.”

노도인의 웃음소리에 잔뜩이나 구겨진 유세운의 안색이 더욱 찌푸려졌다.

‘아니 저 놈의 노인네는 갑자기 왜 웃고 그래. 속에서 열 불나 죽겠는데…읍! 쓴맛이 올라오려 그러네.’

노도인은 소년의 손을 잡고 일어나 유세운에게 다가갔다. 노도인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하하하. 자네 어린 나이에 주도(酒道)를 터득했군. 이런 아침부터 술을 하는 것을 보니 말야.”

“하하하. 뭐 이 정도를 가지고…같이 합석하시겠습니까?”

“그러지. 하하.”

태연하게 맞은편에 앉은 노도인은 소년을 자신의 옆에 앉히며 물었다.

“그래.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나?”

“예. 유세운이라고 합니다.”

“유세운이라…유가라면 혹시 유가장과?”

“예. 유가장의 막내아들입니다.”

“흠흠. 유가장주의 막내아들이라…그는 차(茶)를 즐긴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 이놈의 노인네가 아버지에 대해서 어찌 이리 잘 알지? 이거 혹시 이 일이 나중에 아버지 귀에 들어가는 거 아냐?’

유세운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예. 아버지가 차를 좋아하시지요. 그래서 저도 아버지를 본받아 볼까하고 이렇게 곡차를 마시는 중이었습니다.”

“허허. 그랬나? 이거 내가 미처 몰랐군. 그럼 나도 곡차 한 잔 주겠나?”

“예. 그러시지요.”

‘뭐? 도인이 돼가지고 술이나 얻어먹으려 하다니.’

유세운은 속에서 하는 생각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식은땀을 흘리며 점소이를 불러 잔을 하나 더 가져오게 했다. 노도인이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유세운은 정체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물었다.

“노선배님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시는지요?”

“하하. 빈도는 현요(玹擾)라하네.”

“아! 현요진인이셨군요.”

“허허. 자네 내가 누군지 아는가?”

“현요진인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태연하게 대답하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현요진인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만약 자신의 별호가 무림이기(武林二奇)라는 것을 안다면 저렇게 태연할 리가 없을 텐데 유세운은 모습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눈썹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현요진인은 가만히 속으로 유세운을 이리저리 재보다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까마득한 후배를 데리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자신의 벗인 또 다른 무림이기인 걸기(乞奇)에게 비웃음을 살 것 같았다. 현요진인은 태연히 옆에 앉아 있는 소년을 소개했다.

“이 아이는 빈도의 제자인 동철일세. 속가제자이지. 나이는 열둘이고.”

“아. 그렇군요. 반가워. 난 유세운이라고 해. 나이는 열둘이야.”

현요진인은 부끄러워하며 악수하는 자신의 제자인 동철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아니 어떤 놈은 열둘에 아침부터 술 퍼 마시고 있는데…이 녀석은 왜 이리도 부끄러움이 많은 거지? 자질은 뛰어나고 노력도 많이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 성격이 바뀌어야 할 텐데.’

현요진인이 안타까워하는 사이에 점소이가 소면 두 그릇과 술잔을 가지고 왔다. 유세운은 술잔 가득 죽엽청을 따라주며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노인네 한번 혼나봐라.’

자신이 당한 걸 생각하며 기분 좋게 따라준 유세운은 현요진인이 가볍게 술잔을 들이키는 것을 보고 안색을 찌푸렸다.

‘저렇게 얼굴이 붉어서는 티도 안 나잖아?’

현요진인은 가볍게 죽엽청의 끝 맛을 음미하다가 자신을 쳐다보는 유세운의 얼굴을 보고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하하. 곡차의 맛이 일품이군. 자네도 한잔 받게.”

“예? 아. 예.”

유세운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잔을 받았다. 넘치지 않고 찰랑일 정도로 따르는 현요진인의 모습에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만 같았지만 태연하게 잔을 받아 들었다. 현요진인의 하얀 눈썹 밑으로 보이는 눈빛을 본 유세운은 단숨에 들이켰다.

“카~”

뱃속에서부터 열기가 올라와 입 밖으로 뿜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응? 내가 왜 이러지? 하하 기분이 좋은데?’

유세운은 자신의 잔을 들어 동철에게 내밀었다.

“하하하. 동철 내잔 한잔 받아.”

동철은 더욱 얼굴을 붉히며 현요진인을 바라보았다. 현요진인은 가만히 유세운의 상태를 보더니 입가에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받거라.”

동철은 더욱 기가 막혔다. 이런 아침부터 엄하디 엄한 자신의 사부가 술을 마시라고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현요진인의 눈에는 장난기뿐만 아니라 진지함도 깃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자신만이 아는 작은 눈빛이었지만 거역할 수는 없었다. 동철은 결국 유세운의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크흡!”

“하하하. 이것 먹으면 좀 나아 질 거야.”

웃으며 오리다리를 찢어주는 유세운을 보고 동철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입안에 감도는 이 쓴 맛을 없애기 위해 오리다리를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얼마나 썼던지 눈에는 작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현요진인은 그런 동철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네가 조금이나마 낳아지면 좋겠구나.’

“하하하. 뭐 해? 다시 따라줘야지.”

유세운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동철을 닦달했고 결국 둘이서 열심히 주거니 받거니 하며 죽엽청 한 병을 다 비웠다. 흐뭇하게 보고 있던 현요진인은 술 취한 동철의 말에 붉은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끄 억! 사부님. 사부님은 어째서 저를 그렇게 항상 골탕 먹이시는 겁니까?”

“뭣이?”

현요진인은 잠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 이건 제자놈이 취해서 그런거야. 그리고 그건 내가 시킨 것이고. 참아야 해. 참아야 해. 무량수불…’

“저번에 그 삼청관에서…켁!”

“헉! 동철아!”

자신도 모르게 출수한 현요진인은 저 멀리 날아가 쓰러지는 동철을 급하게 끌어안았다.

“괜찮으냐? 응?”

하지만 동철은 이미 기절하여 정신을 잃고 있었다. 현요진인은 동철을 업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세운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제자 녀석이 기절해 있어서 이만 가보아야겠다. 나중에 무당파에 한번 들르거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요진인은 씁쓸히 웃으며 동철을 안고 급히 밖으로 향했다. 유세운은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지금은 성세가 많이 약해졌다지만 그래도 무당파 사람이었네. 어쩐지 동철을 날려버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어. 한두 번 패본 솜씨가 아냐.’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쌍한 녀석. 저런 사부 밑에서 얼마나 고생이 심할까?”

유세운은 곧 자신에게도 저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이 들어 더욱 동철이 안타깝기만 했다. 유세운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삼층의 자신의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하하. 이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나 보다. 끅~딸꾹.”

광오문에 들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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