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폭열장 장유현이 떠나고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한 후 유세운과 위지평과 위지청은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위지평은 품에서 자그마한 옥병을 꺼내들었다. 옥병의 마개를 열자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유세운이 한참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안 위지평이 다시 뚜껑을 닫아 옥병을 건넸다. 유세운이 옥병을 받아들며 눈빛으로 이것이 뭔지를 물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위지청이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건 우리 청의문에서 만드는 청심환(靑心丸)이라는 내상약이야. 아까 유오라버니가 무리해서 내상을 입은 듯해서 특별히 주는 거야.”
“하하하. 그런가? 하긴 몸이 아직도 여기저기 쑤시는게…”
위지청은 귀엽게 웃으며 유세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호호호. 거봐요. 왜 그렇게 무리한거에요?”
“커헉! 어깨가… 어깨가 으윽!”
유세운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에 깜작 놀란 위지청이 놀라 소리쳤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유세운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괜찮아. 죽을 정도로 밖에 아프지 않으니까.”
“오라버니. 빨리 청심환을 먹어요.”
유세운은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손을 들어 옥병의 뚜껑을 열었다. 다시 한번 향긋한 냄새가 올라오자 유세운은 그 중 한 알을 꺼내들었다. 총 다섯 알이 들어있었는데 그 중 한 알을 꺼내든 유세운은 그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프흡!”
유세운의 다급한 신음에 위지청이 웃음을 지었다.
“호호호. 그걸 그렇게 갑자기 먹으면 어떻게 해요. 어서 물 마셔요.”
위지청이 권해주는 물을 벌컥거리며 마신 유세운은 조금 진정이 되는지 투덜거렸다.
“켁! 아니 이렇게 향긋한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이렇게 쓸 수가 있는 거지?”
위지평도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니 그렇겠지.”
유세운은 그런 위지평과 위지청을 한차례 쏘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그렇게 쓴 약이었으면 빨리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네요?”
위지청은 계속 웃으며 답했다.
“호호호. 그게 너무 서둘러 먹느라 말을 못했지 뭐예요.”
유세운은 위지청의 말을 못 믿겠다는 듯이 그녀를 쏘아보았다. 위지청은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위지평은 그런 둘을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어떤가? 많이 좋아지지 않았나?”
“예?”
유세운은 갑작스런 위지평의 물음에 되묻다가 깜짝 놀랐다. 아까 전부터 쑤시던 몸이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유세운의 표정을 보던 위지청이 거보라는 듯이 말했다.
“거봐.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니깐.”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했다.
“하하. 이거 엄청난 영약이군요.”
위지평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사례를 쳤다.
“아닐세. 자네가 우리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이었으니 당연한 것이니까.”
“하하. 그래도 감사합니다.”
위지평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점소이를 불렀다. 귀엽게 생긴 점소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위지평은 점소이를 향해 물었다.
“흐음. 그래 혹시 용정차(龍井茶) 있는가?”
귀엽게 생긴 점소이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 주루에서는 용정차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점소이의 말을 들은 위지평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네. 그럼 오룡차는 있는가?”
점소이는 위지평의 말에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저희 주루에는 오룡차중에 으뜸이라고 불리는 대홍포(大紅袍)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오! 그런가. 그럼 그것으로 해주게.”
“예.”
점소이는 밝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점소이가 떠나가자 유세운은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위지형님. 형님은 무슨 맛으로 차를 드시는 겁니까?”
“응? 그야. 당연히 그 차만의 깊은 향을 느끼느라 그런 것이지.”
유세운은 역시나 아버지랑 같은 대답이 나오자 심각하게 위지평의 나이를 의심했다.
‘이거 어쩌면 위지형은 아버지처럼 나이가 많은 게 아닐까? 생각보다 동안(童顔)일수도 있잖아?’
유세운이 인상을 굳힌 채 혼자 생각하고 있자 위지청이 걱정스레 물었다.
“오라버니. 아직도 아픈 거야?”
“응? 아하하. 아니야. 이제 정말 다 나았어.”
어색하게 웃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위지청이 못미덥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유세운은 태연하게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좀 치워주고 어서 차나 내오게나.”
“예.”
점소이는 빠르게 다가와 과연 혼자 다 들 수 있을까 싶을 만큼의 접시들을 양손에 다 들고 내려가는 점소이를 보며 일행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유세운은 곧 귀엽게 생긴 점소이의 손에 들려오는 차 주전자와 찻잔을 보고는 가볍게 혀를 찼다.
‘젠장. 아무 생각 없이 내 것까지 가져오게 했군. 으 생각만 해도 쓴데…“
하지만 금세 다가온 점소이가 찻잔을 놓고 가자 유세운은 태연한척 자세를 바로 했다. 위지청이 차 주전자를 들어서 찻잔에 차를 따랐다. 위지평과 위지청은 태연하게 차를 음미하며 마시기 시작했고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조금 맛을 보고는 다시 찻잔을 내려놓았다. 위지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차향이 깊은데…좋군.”
‘그래. 위지형은 사실 형이 아니라 위지 아저씨였던 거야.’
조금은 존경스런 눈으로 위지평을 바라보는 유세운은 정말 동안이라고 생각했다. 비결을 알아내서 아버지에게도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이 잠깐 아주 잠깐 들었다. 잠시 가벼운 얘기를 나누며 차를 마신 위지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흠. 그럼 유소제(柳小弟) 우린 이만 바빠서 가보야만 하니 담에 보지. 언제한번 청의문에 들르게.”
유세운은 위지평의 손을 맞잡았다.
“예. 나중에 꼭 들르도록 할게요. 문전박대하시면 안 돼요.”
“오라버니. 걱정하지 말고 꼭 와야 해~ 그리고 천룡문에 가서 많은 성취 있길 바래.”
“응. 걱정 하지마.”
‘살아서 볼 일은 없을 거야. 만약 살아있다면 엄청난 고수가 돼 있을 거야.’
유세운의 얼굴에 비장함이 어리는 것을 보고 위지평과 위지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낙화루를 떠나갔다.
유세운은 그들이 가고 나서 바로 점소이를 불렀다.
“아. 여기 차 좀 빨리 치워주고 방으로 안내해주게.”
“예. 그럼 저를 따라 오십시요.”
점소이는 먼저 앞장서 걸어가며 귀엽게 생긴 점소이에게 눈짓으로 상을 치우라고 말했다. 유세운은 자신의 부서져 버린 검집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들고 점소이를 따라갔다. 점소이를 따라 방 앞까지 간 유세운은 점소이에게 검을 들어보이며 물었다.
“혹시 근처에 대장간 있는가?”
유세운의 물음에 점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근처에 작은 병기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럼 이것 좀 부탁하네. 언제까지 되는 지 알아봐서 알려주게.”
“예.”
점소이는 부서진 검과 검집을 같이 가져갔다. 유세운은 방안으로 들어가서는 짐보따리를 집어던지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던 유세운은 작게 미소 지었다.
“비록 죽을 뻔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군.”
유세운은 가만히 품에서 옥병을 꺼내 들었다. 가만히 옥병을 돌려보던 유세운은 아차 싶었다.
“제길. 위지 아저씨에게 물어본다는 것을 깜빡했군.”
옥병을 품에 다시 집어넣은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바깥의 풍경을 바라본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은 이만 잘 시간이군. 내일은 잊지 말고 술이라는 것을 마셔봐야 겠다. 후후.”
유세운은 침대를 향해 가볍게 몸을 날렸다.
강호에 나가자마자 겪은 일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