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단번에 두 조각을 내겠다는 듯이 떨어져 내리는 도끼의 위세를 보고 놀란 유세운은 있는 힘껏 앞의 탁자를 발로 차서 뒤로 넘어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마방의 도끼가 무지막지한 기세로 찍혔다.
콰직!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진 도끼는 그 커다란 날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점의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것을 바라본 유세운은 안색이 확 변했다.
“이런 미친! 대뜸 살수를 피는 놈이 어딨어!?”
“흐흐흐. 쥐새끼 같은 놈이 생긴 거답게 잘도 피했구나.”
유세운은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앉고 있던 의자를 집어 들었고 마방은 자신의 도끼를 다시 들어올렸다. 유세운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쥐…쥐새끼? 어디를 봐서 내가 쥐를 닮았다는 거야!?”
마방은 유세운의 외침에 얼굴 가득 조소를 지었다.
“흐흐흐. 아 비루먹은 당나귀인가? 뒤로 넘어지며 구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유세운은 손아귀가 퍼렇게 변할 정도로 의자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십이 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욕 한마디 못 들어 본 유세운은 자신이 해줄 욕을 모른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속이라도 시원하게 욕을 해줘야 이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풀릴 것 같았다.
마방과 유세운의 다툼을 바라보던 청년은 소녀에게 눈길을 보냈다. 소녀는 청년의 눈길을 받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청년은 주저 없이 앞으로 달려가며 마방을 향해 검을 날렸다. 그리고 소녀도 곧장 뒤를 따라 검을 뻗었다.
유세운을 한참 비웃던 마방은 자신의 옆에서 날아오는 청의쌍검을 바라보고는 눈이 상큼 위로 치켜떠졌다.
“이 애송이들이 겁도 없이…”
마방이 뒤로 돌아 청의쌍검의 합격술을 막으려는 찰나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세운은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내가 아까 쥐새끼라는 말에 흥분했던 것도 다 그 새끼라는 말 때문인 것 같아. 그렇다면…’
유세운은 들고 있던 의자를 있는 힘껏 마방의 뒤통수를 향해 던졌다.
“이거나 먹어라! 이 돼지새끼야!”
“뭐!?”
마방은 냉큼 저 쥐새끼 같은 놈을 두 조각을 내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청의쌍검의 검을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도끼를 옆면으로 휘둘러 청의쌍검의 검을 막아갔다.
챙! 챙!
빠악!
청의쌍검의 합격술을 막던 마방은 순간 날아온 의자를 막지 못했고 유세운이 던진 의자는 공중을 그림처럼 선회하며 정확히 마방의 뒤통수에 맞았다. 순간 마방의 두 눈에서 흉흉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크아악! 죽여 버린다!”
마방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도끼를 휘둘렀다. 워낙 위협적인 기세에 청의쌍검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그의 공세를 피했다. 마방은 청의쌍검과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고함을 지르며 유세운을 향해 돌아섰다.
“쥐새끼! 죽어랏!”
벼락처럼 달려드는 마방을 보며 청의의 청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피하시오! 어디를 신경 쓰는 거냐. 마방!”
청년은 다급하게 유세운에게 경고하고 검을 움켜쥐며 마방의 뒤를 쫓았고 소녀도 다급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유세운은 당황했다. 자신의 등 뒤로 날아오는 검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마방의 기세에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 누나! 형! 미안해. 나 이렇게 가나봐!“
유세운은 어금니를 깨물며 검을 검집에 꽂은 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씹어 뱉듯이 소리쳤다.
“이런 멧돼지 같은 새끼!”
“크아악! 이 쥐새끼가!”
유세운의 도발에 마방은 더욱 흥분하여 도끼를 바닥 쪽으로 내렸다. 코앞까지 들이 닥친 마방은 도끼로 단박에 유세운을 양단하려는 듯 위로 쳐올렸다.
바로 뒤까지 바짝 따라온 청의쌍검의 검이 마방의 등에 꽂혔다.
“크윽!”
마방은 등을 훑고 지나가는 검로를 따라 후끈한 열기가 전신을 할퀴었지만 어금니를 깨물며 휘두르던 도끼에 힘을 배가 시켰다. 유세운은 검을 들어 마방의 도끼를 막아갔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소녀의 놀란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악!”
유세운은 도끼가 검집에 부딪치는 찰나에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허공으로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그래도 여력을 견딜 수 없어 허공으로 떠오른 유세운은 천장을 스치고 지나가 바닥에 떨어져 미친 듯이 굴러갔다. 거의 일장이상이나 굴러가던 유세운은 누군가가 그의 등을 받쳐주자 입에서 피를 뿜었다.
“컥!”
전신의 근육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유세운은 그래도 고개를 들어 마방을 바라보았다. 마방은 유세운을 쳐다보다가 그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아 속이 탔다. 게다가 방금 그를 뒤에서 받쳐준 자의 기세도 범상치 않음을 느낀 마방은 다음을 기약했다.
“저놈의 쥐새끼! 두고 보자!”
마방은 등에 입은 검상에서 피를 흘리며 이층 창문을 뚫고 도망을 쳤다. 유세운은 깊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멈추게 한 인물은 그의 오른쪽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노인이었다. 유세운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읍을 했다.
“구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음. 아니다.”
노인이 가볍게 손사래를 치는 동안 청의쌍검이 다가왔다. 청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협. 괜찮으시오?”
청년의 걱정스런 물음에 유세운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안 괜찮아요…에구 무공도 없는 놈이 무슨…에구 죽겠다.”
전신의 근육이 아직도 미친 듯이 떨리는 것을 참아보려고 허리에 손을 받치는 유세운을 소녀가 예쁜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유세운도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보자 소녀가 물었다.
“이런…그런데 몇 살이야?”
소녀의 물음에 유세운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열둘이야. 넌?”
“나 열하나! 그럼 오빠네. 이름이 뭐야?”
“유세운.”
유세운의 답에 소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난 위지청이야.”
소녀가 이름을 말하자 옆에 서있던 청년도 입을 열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난 위지평이라 하네. 만나서 반갑군.”
위지평과 위지청의 스스럼없는 인사에 유세운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 지었다.
“하하. 만나서 반가워요. 위지형…그리고…”
위지청은 주저하는 유세운을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청아라고 불러.”
“그리고…청아. 하하”
쑥스러운 듯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유세운을 보고 위지남매는 미소 지었다. 그 때까지 가만히 그들이 하는 모습을 뒤편에서 바라보던 노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흠. 그래. 지켜보니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상당히 뛰어나던데. 유씨라면…혹 유가장에서 왔느냐?"
노인의 갑작스런 말에 놀란 유세운과 위지남매는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미소 지으며 유세운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세운은 떨리는 전신에 힘을 주어 최대한 떨림을 자제하며 대답했다.
“예. 저는 유가장의 막내인 유세운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노인은 어색하게 묻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흠. 역시 그렇구나. 난 장유현이라고 한다.”
그의 말을 들은 위지청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에? 장유현이라면 그 폭열장(暴熱掌) 장노선배님이 십니까?"
“허허 이런 젊은이가 노부의 이름을 다 알다니 기특하구나.”
장유현은 눈빛을 빛내며 유세운을 바라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노부를 따라오지 않겠느냐?”
“에? 그게 무슨 뜻이신지?”
장유현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유세운은 되물었다. 장유현은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내 제자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어떠냐? 노부에게 배우면 마방정도는 우습게 상대할 수 있다.”
“맞아. 장노선배님 이시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시죠.”
위지청이 맞장구를 치자 유세운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럼 충분히 방금 전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말이잖아? 이제 와서 생색내는 거야?’
유세운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읍을 했다.
“뜻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아버님의 말씀에 따라 무공을 배우러 가는 도중이라 호의는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유세운의 말에 장유현은 아깝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냐? 어쩔 수 없군. 나중에 맘이 바뀌면 나를 찾아오너라.”
“네. 노선배님.”
장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갔다. 유세운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내가 나중에 강해지면 저러지 말아야지. 이래서 항상 아버지가 옳으셨던 거야.’
강호에 나가자마자 겪은 일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