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2화 (2/194)

(2)

다음 날.

아침부터 대청으로 오라고 하셨다는 말을 들은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청으로 향했다. 어지간하면 아침부터 부르시는 일이 없으셨는데 왜 부르셨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다 아마 일년 전에 수련을 한다고 떠난 누나가 돌아와서 그럴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가지 말아 버릴까?’

참 매혹적인 생각이었다. 그냥 못들었다고 하고 도망가면 나중에 붙들려도 크게 혼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누나에게 당할 생각을 하니 결국 한숨과 함께 대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대청에 도착한 유세운은 당황했다. 아침부터 아버지와 형 그리고 누나가 모두 나와 대청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누나가 수련을 떠나고 일년 동안 이렇게 가족이 전부 모인 적이 없었던지라 유세운의 느낌은 상당히 안 좋았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유세운의 생각은 아버지 유태청의 목소리로 인해 끊어졌다.

“그래 왔느냐. 이리와 앉거라.”

“예.”

오늘따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근엄하다고 생각한 유세운은 슬그머니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유세운은 형인 유청운의 옆에 가 앉았다. 혹시나 누나인 유주란의 옆에 앉았다가는 언제 손찌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청운은 그런 유세운을 보고 가볍게 미소 짓고는 차를 한잔 따라 주었다. 유세운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차를 받아서 분위기상 한 모금 마셨다.

‘쳇. 이렇게 쓰기만 한 것을 왜 그렇게들 마시나 몰라.’

유세운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고개를 들어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살피려 했다. 자신이 고개를 들자 모든 가족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고 불길한 생각이 다시 들었다.

유태청은 천천히 유청운과 유주란과 눈을 마주치더니 곧장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아버지의 눈빛이 오늘따라 상당한 부담감을 준다는 생각을 했다. 유태청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얘기를 꺼내듯 말을 했다.

“세운아. 어제 우리가 생각해본 결과…너에게 우리 가문의 현류십삼검이 잘 안 맞아 그렇게 무공에 진전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예. 그게 말이죠. 정말 저한테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유세운은 이게 웬 횡재냐는 식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어쩌면 다시는 무공 같은 것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마음에 서둘러 대답하는 유세운을 바라보는 유주란의 눈가에 미소가 맺혔다. 유세운은 그런 유주란의 눈웃음을 보자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유태청은 그런 유세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를 특별히 양의제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그의 말을 들은 유세운은 자신의 귀가 갑자기 이상해졌나 싶어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되물었다.

“저를 누구한테 부탁하신다고요?”

그의 되물음에 유태청은 미소 지으며 다시 한번 자상하게 답해줬다.

“그래. 너를 양의제에게 맡기기로 했다. 여기 내가 양의제에게 너를 부탁한다는 편지가 있으니 잊지 말고 가져가거라.”

유세운은 아버지의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며 입을 열었다.

“에!? 아버지 농담이시죠? 하필이면 강호에 그렇게 많고 많은 기인이사 중에 양숙부님이라뇨? 그분의 성격이 어떤지 뻔히 아시면서…”

유태청은 유세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리도 심사숙고 한 일이다. 그가 와서 너를 가르쳐 주면 고맙겠지만 그 또한 천룡문에 몸을 담고 있어 바쁘니 네가 가서 배우고 오도록 하거라.”

유세운은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이 정말처럼 되려고 하자 다급해져 유청운에게 웃으며 말했다.

“형! 이거 가족이 다 짜고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엉?”

유세운의 기대에 찬 초롱초롱한 눈빛에도 유청운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아니다. 세운아. 양숙부님께서는 너를 귀여워 해주시잖니. 그러니 가서 많은 공부를 하고 오너라.”

“그게 무슨 귀여워 해주는 거야! 툭하면 머리로 떨어지는 그 무시무시한 주먹은 형도 봤잖아!”

유청운은 안절부절 못하는 유세운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주란이 입가에 함박 미소를 지으며 참견했다.

“그 주먹에라도 맞아야 네가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하지 않겠니? 호호호.”

“누…누나!”

유세운은 아무래도 안 되겠던지 다시 유태청에게 사정했다.

“아버지 저 이제 정말 열심히 수련할게요. 네?”

유태청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내일 당장 출발 할 테니 준비를 하거라. 좋은 성과가 있길 빌마.”

유세운은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 분위기가 사실이고 자신이 결국엔 가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을 나갔다. 고개 숙인 채로 나가는 유세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청운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너무 한 걸까요?”

“호호호. 아니에요. 이번 기회에 뭔가를 얻어야지. 언제까지고 저희가 받아주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어요?”

“하지만…”

“그래. 주란이 말이 맞다. 그러니 청운이 너도 보다 무공 수련에 전념하고 세운이 일은 그만 신경을 끄거라.”

유청운은 조용히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단아한 방안. 하지만 탁자 위에는 책자들이 널려 있었고 침대에 또한 여기저기 책자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힘없이 들어온 유세운은 천천히 침대로 향해 걸어갔다.

‘역시 아까 그 이상한 기분이 들 때 도망갔어야 되는 거였어.“

유세운은 침대로 다가가 침대에 뒹구는 책들을 손으로 쳐서 옆으로 밀고는 드러누웠다.

“젠장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양숙부님이라니…아아…이 일을 어쩌지? 휴~”

한숨을 쉬며 돌아눕던 유세운은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청운을 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유청운은 동생의 힘없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조용히 다가와 유세운의 옆에 앉았다.

“세운아. 너도 알다시피 천룡문은 당금 강호 무림의 기둥 중 하나잖니…게다가 양숙부가 계신 외당에는 수많은 고수 분들이 계시 단다. 어쩌면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는 거야.”

유세운은 형의 위로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듯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휴~~알아. 형이나 가족이 날 걱정해서라는 건…하지만 그래도 에이~~~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뭐…”

유청운은 결국 체념하듯 말하는 동생을 보고는 손을 들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유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꺼냈다.

"성과가 있다면 돌아와서 형이랑 비무(比武)나 하자."

그의 말에 유세운은 피식 웃었다.

“무슨 수로 내가 형이랑 비무를 해? 됐어. 형이나 열심히 수련해.”

유청운은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향했다.

“그래. 그럼 내일 출발이니 갈 준비나 하거라.”

그말을 마지막으로 유청운은 유세운의 방에서 나갔다. 유세운은 형이 나간 방문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휴~그래. 어떻게 될거야. 설마 양숙부님이 날 죽이기야 하시겠어?”

“하긴 죽이진 않으시겠지.”

갑자기 들려오는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유주란이 미소 지으며 팔짱을 낀 채로 문에 기대 서있었다. 유세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었다.

“체~또 놀리러 온 거야?”

빠악!

“악! 왜 또 때려?!”

유주란은 뒤통수를 움켜쥐고 소리치는 동생을 보며 빙긋이 미소 지었다.

“내일 갈 준비 제대로 하고 있나 봐주러 온 거야…네가 갑자기 헛소리하니까 무의식중에 주먹이 나간 거고…”

“체~무공 배워서 고작 동생 패는 데나 쓰고 에이~”

유주란은 동생의 투덜거림에 가볍게 손을 들어올렸다. 유세운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유주란을 쏘아보았다.

“호호호. 이번에 가면 많이 배워서 한 번 피해보렴.”

그녀의 말에 유세운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당연하지. 두고 보자고…내가 누나를 봐서라도 반드시 무공을 배워 올 테니까.”

유주란은 피식 웃더니 보따리를 꺼내 방안에 굴러다니는 책들을 피해 옷들을 담았다. 그러면서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너 이런 식으로 방 정리 하다간 양수부님에게 정말 죽을지도 몰라.”

“그…렇겠지?”

“그~~럼.”

유주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처음 강호행이니 매사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비록 천룡문이 여기서 그리 멀지는 않다지만 워낙 위험한 곳이 강호니 말야.”

그녀의 말에 유세운은 피식 웃었다.

“훗. 내가 뭐 애야?”

빠악!

“그럼 니가 애지? 어른이냐?”

뒤통수를 잡고 웅크리고 있던 유세운이 고개를 들며 쏘아보자 유주란은 미소 지으며 꾸러미 하나를 내밀었다.

“자 대충 옷가지들은 챙겼으니 나머지는 네가 준비하고. 매사에 조심해라.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유세운은 꾸러미를 받아들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런다고 내가 갔다와서 봐줄 줄 알아?”

“호호호. 한번 그런 날이 왔음 소원이 없겠다. 잘 다녀와. 다치지 말고.”

“어떻게 안 다쳐? 양숙부한테 맞아서 다칠게 뻔한데…”

유주란은 유세운의 머리에 가볍게 알밤을 놓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번 충고했다.

“농담 아니야. 조심해야해. 알았지?”

“응. 걱정마.”

유주란은 그제야 밝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유세운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휴~ 누나한테는 어쩔 수 없다니까…하지만 두고 보자. 내가 안해서 그렇지 했다하면 설마 누나만큼도 못할까봐? 흥.”

유세운은 유주란이 주고 간 짐 꾸러미를 베개 옆으로 옮겨 놓고는 팔베개를 하며 드러누웠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뾰족한 수도 없으니…”

강호에 나가자 마자 겪은 일들(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