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문이 열리다(1)
(1)
“고생문이 열리다”
장강 이남의 강서성. 성도는 남창(南昌)시로 포양호를 끼고 있었다.
강서성의 유명한 무가중 하나인 유가장(柳家場).
강서성에서 정파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무가중 하나로 가주 유태청의 현류십삼검(玄流十三劍)은 무림의 일절로 손꼽히고 있었다. 또한 현 가주인 유태청은 협의를 지키기로 유명했다. 그의 뛰어난 검술실력보다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협의지심(俠義之心)이었다.
유가장 가장 안쪽에 위치한 연무장. 청석을 바닥에 깔아 튼튼하고 넓게 만들어진 연무장에는 바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슈앗!
"하앗!"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내뻗는 무수한 검의 잔영들이 연무장에 칼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은은히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뻗어가는 검로(劍路)에는 막힘이 없었다. 허공에 흐르는 듯한 검은 기운사이로 보이는 자는 상의를 벗고 있었다. 균형이 잘 잡힌 그의 건장한 상체에는 온통 땀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나이는 십오 세 정도 되어 보이는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검은 기운을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왔다. 검은 기운이 그에게로 모이자 힘차게 일검을 내뻗었다. 힘차게 뻗어나가는 기운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청년은 바닥에 내려서는 검을 세우고는 숨을 골랐다.
“휴우~”
짝짝짝-
“와. 역시 형이야. 멋져. 벌써 현류십삼검중 오검이나 익힌거야? 방금그거 현룡출검(玄龍出劍)을 펼친거지?”
연무장의 가장자리 담벼락에서 생긴 그늘에서 대략 십이 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웃으며 수건을 들고 박수를 치며 나왔다. 대체적으로 귀엽게 생긴 소년의 특징이라면 맑은 눈빛과 약간은 두터운 입술이었다. 소년은 수건을 들고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는 소년에게서 수건을 받아들고는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소년의 머리에 꿀밤을 놓았다.
“요녀석. 넌 언제까지 그렇게 무공수련도 안하고 지낼거냐?”
“헤헤. 그거야 형이 잘해서 나도 먹여 살리면 되지 뭐…”
소년의 말에 청년은 피식 웃더니 소년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소년은 형의 손짓에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청년은 미소 지으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때 연무장에 한 중년의 사내와 십사 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같이 들어왔다. 중년의 사내는 단정하게 머리를 넘겼고 허리에는 길이 삼척(三尺)의 검을 메고 있었다. 눈꼬리가 약간 쳐져 있어 전체적으로 순한 인상의 중년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청운아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느냐?”
“아버님 오셨습니까.”
청년의 인사에 중년인은 미소 지으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 현류십삼검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느냐?”
소년이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형이 벌써 현류십삼검의 제 오검 현룡출검까지 익혔어요.”
소년의 말에 중년사내는 흐뭇하게 웃었다.
“허허. 아직 배운지 이 년 밖에 안됐는데… 청운아 너의 성취가 놀랍구나. 하지만 자만하지 말고 계속 수련에 정진하여야 한다. 그리고…세운이 너는 어느 정도나 되었느냐?”
중년인의 물음에 세운이라 불린 소년은 머릴 긁적이며 씨익 웃었다.
“헤헤. 전 아직 일초도 제대로…”
빠악!
"악!"
중년의 남자 옆에 서 있던 소녀가 번개같이 손을 내밀어 유세운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유세운은 뒤통수를 감싸 안고서는 매서운 눈초리로 소녀를 째려보았다.
“으~~누나! 이렇게 쌔게 때리면 어떻게 해!”
“호호 그러게 누가 무공연마를 게을리 하랬니? 그게 다 네가 게을러서 그런 거야.”
유세운은 소녀를 째려보더니 속으로 투덜거렸다.
‘쳇. 누나는 나를 때리기 위해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게 틀림없어.’
중년의 남자가 그런 유세운을 바라보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유가장에서 너만큼 게으른 사람도 없을 꺼다. 별수 없지 않니…무공을 익히기 싫어서 안 익혔으니 맞아도 할말이 없을 수밖에…”
“아버지! 그렇다고 이렇게 뒤통수를 막 때리면 머리가 나빠져서 더 못 익히잖아요.”
유세운의 투정에 소녀가 허리에 양손을 얹으며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수련을 해서 안 맞으면 된다니깐…”
유세운은 그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뒤돌아 연무장을 총총히 떠나갔다. 나가면서도 한마디 중얼거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여자가 저렇게 주먹을 막 휘둘러서야 누가 데려가겠어?”
“뭐야?!”
유세운의 말을 듣는 순간 소녀는 아미를 찡그리며 몸을 날리려했다. 그것을 바라본 유세운은 바람 같이 연무장을 벗어났다. 그 뒷모습을 보며 중년의 남자가 혀를 찼다.
“쯧쯧. 어찌도 저리 무공을 게을리 하는 걸까?”
중년인의 한탄에 소년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아버님 혹시 세운이가 저희 가문의 무공이 적성에 안 맞는 게 아닐까요? 차라리 주란이처럼 다른 무공을 익히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청년의 말에 중년인은 청년과 소녀를 번갈아 돌아보더니 걱정스레 되물었다.
“정말 그런 걸까?”
청년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천룡문에 계시는 양숙부님에게 맡겨 보시는게 어떨지요? 그분은 무공도 고강하고 성격이 괄괄하셔서 세운이에게는 좋은 스승님이 될 것 같습니다.”
중년인은 청년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겼다.
천룡문에 있는 자신의 의제(義弟)인 양철심은 팔 척에 이르는 거구에 자신의 얼굴만큼이나 큰 주먹이 가장 인상적이다. 물론 무공은 자신보다 더욱 뛰어났다. 그의 커다란 양주먹에서 뻗어 나오는 강맹한 철영십권(鐵影十拳)은 권법가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배워보고 싶어 할 만큼의 유명한 권법이었다. 하지만 천룡문 외당의 향주로 있는 그가 과연 작은 아들 유세운을 맡아서 가르칠 시간이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양의제가 천룡문에 향주로 묶여있는 몸인데 괜찮을까?”
중년인의 고민을 들은 청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역시 지금처럼 가만히 동생 유세운을 뒀다가는 너무 나태해질 것만 같았다. 그에게는 양숙부 같은 엄한 스승이 있는 것이 좋을 것만 같았다.
“비록 바쁘시더라도 지금 세운이를 봤을 때는 양숙부만한 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중년인은 청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역시 그만한 스승도 없을 것 같군.”
중년인은 뒷짐을 진체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렇게 해야겠구나. 지금 세운이에게는 뭔가 자극이 필요한 것 같다. 어머니가 없이 저렇게 밝게 자라주는 건 고맙지만 무가의 자식이니 자신의 몸을 호신할 정도의 무공은 익혀야 겠지.”
중년인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소녀 유주란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 드디어 우리 세운이에게 고생문이 열렸군요.”
유주란은 자신의 등에 메어져 있는 검의 수실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역시 세운이도 더 이상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양숙부에게 무공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녀석도 힘들고 당분간 못 볼 우리도 힘들겠지만 그게 최선인 것 같구나.”
중년인의 말에 청년과 유주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인은 청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현룡출검까지 익혔다니 한번 펼쳐보아라.”
“예.”
청년은 다시 연무장의 가운데로 자리를 옮겨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뽑아들자 차분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 청년을 바라보던 중년인이 유주란에게 조용히 말했다.
“잘 보아 두어라. 어떤 검이든 무작정 펼치고 익히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처럼 검을 드는 순간의 자세나 호흡. 그리고 마음가짐이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니라.”
“예.”
유주란도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자신의 오빠인 청년을 바라보았다. 무공의 자질도 자질이지만 쉬지 않고 노력하는 자신의 오빠는 항상 그녀에게 믿음을 주었다. 자신이 집을 떠나 무공을 익히러 갈 때도 오빠는 믿음직한 미소를 지어주며 잘다녀오라는 말로 편안하게 보내주었다. 자신이 있으니 집은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그런 오빠를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자신도 일년간 스승님에게서 산검(散劍)의 요지와 검을 배우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수련을 보는 것은 처음일뿐더러 자신의 눈도 예전보다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청년은 어느새 평정을 되찾고 도약하며 힘차게 검을 뿌렸다.
은은하게 검에 어리는 검은 기운이 춤을 추듯 허공을 수놓았다. 마치 한폭의 그림을 그리듯 허공을 수놓던 검은 기운은 일시에 청년의 품으로 거두어 지는 듯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청년의 일검.
“하앗!”
슈악-
힘차게 뻗어나가는 일 검에 허공이 양단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유주란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이 배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척 보기에도 일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는 실력이 느껴졌다.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피부로 느껴졌다. 유주란은 그런 자신의 오빠를 보며 다짐했다. 자신도 더욱 노력을 해야 겠다라는 다짐을.
중년인은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정말 많이 늘었구나. 이대로 계속 나간다면 네가 이 애비를 뛰어넘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중년인의 칭찬에 청년은 검을 검집에 넣고는 미소 지었다.
“하하. 그럴리가요.”
“아냐. 훌륭했다. 세운이 일만 해결하고 나서 내가 다음 초식을 가르쳐 주마.”
“예.”
유주란은 자신의 오빠를 보다가 자신의 동생 유세운을 생각하고는 가볍게 한숨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양숙부님에게 맡기는 수밖에는 없겠어…“
고생문이 열리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