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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21화 (621/624)

제621화

620화-패도(覇道)의 좌(座) (3)

거대한 충격에 공간이 비틀린다.

아니, 그렇게 느끼는 건가.

허리를 비틀어 주먹을 내질렀던 백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

웃음과 함께 튕겨 나오는 주먹을 움켜쥐며 백유는 몸을 비틀었다.

밀려난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거세게 움켜쥔 주먹에 힘을 더했다.

정확히 말하면, 주먹 위로 덧씌워진 패기의 주먹에 힘을 더한 거였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내 몸과 다를 게 없거늘.

아니, 내 몸과는 조금 다른가?

‘천위도 섞여 있고.’

한껏 당긴 주먹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대기가 타오른다.

칠흑 같은 불꽃을 휘감은 주먹이 내질러지는 것과 동시에 백유는 웃음을 터트렸다.

즐겁다……, 그런 감정은 아니다.

뭐랄까.

그래.

흥분.

전신이 오싹오싹하게 달아오르는 이 기분은 흔한 행복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는 얻을 수 없는.

파괴와 죽음의 열락.

눈앞에서 날뛰는 괴물 같은 강도의 꼬리를 주먹으로 후려치며 백유는 웃음을 터트렸다.

혼자라면 그저 좋고 말았을 지금 이 순간에.

“네가 있어서 더 좋구나!!”

“헛소리할 시간에 주먹이나 휘두르세요.”

자신과 똑 닮은 친구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좋은 기분이구나.

파괴와 죽음.

자신은 파괴에 집중했다면, 저쪽은 죽음에 집중한 느낌이다.

살기로 이루어진 칠흑의 팔.

그리고, 그 위로 솟아난 흐릿한 반투명의 소검.

타오르는 설천위의 불꽃마저 흐릿하게 바꾸는 그것은 살의의 극의(極意)이자 암살의 극치(極致)였다.

거침없이 꼬리를 자르고 태우는 그 손길은 옆에서 흘깃흘깃 보는 것으로는 그 시작과 끝 정도를 보는 것이 한계일 정도니까.

“진짜! 더럽게 강하네요!”

저기 떨어진 곳에서 흑랑의 뒤에 서서 이리저리 손을 흔들고 있는 연화의 외침에 백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봤자, 남의 남자나 탐내는 잡것이지!”

“……그거, 진짜 일부러 계속하는 건가요?”

살짝 짜증이 담긴 유예린의 목소리에 백유는 꼬리를 후려치며 그 반동으로 그녀의 옆에 붙었다.

“그야 우리는 이미 한배 위에 탄 사이잖아?”

“진짜…… 부끄러움을 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유예린은 달라붙은 백유를 튕겨냈다.

그리고 그런 유예린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그 반동에 몸을 맡긴 백유는 다른 꼬리를 향해 날아갔다.

콰득!

때리고, 부순다.

그 단순한 작업을 위해 여인의 꼬리를 또 붙잡은 백유는 웃음 지었다.

“천위가 깨어나기 전에 끝내자고.”

백유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반응한 건 안타깝게도 동료들이 아니었다.

[감히, 이, 이……! 천것들이…….]

분노로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

끊임없이 잘리고 꺾이는 꼬리를 재생해내고 있는 여인의 눈에는 이미 불신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꼬리의 개수는 일곱.

적의 숫자는 다섯.

거기에 설천위가 불러낸 잡것들이 몇 섞인다고 한들 자신의 우위에는 변함이 없어야 맞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감히 네깟 놈들 따위가……!]

나를 막아서는 것이냐!

분노를 씹어뱉는 여인의 목소리에 대답한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이었다.

“인간이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거다.”

가장 가까이에서, 둘이나 되는 꼬리를 받아내며 끊임없이 전진하는 철백은 두 팔로 앞을 가리고 있었다.

팔뚝 사이로 비치는 은색의 눈동자가 귀화(鬼火)를 머금고 일렁인다.

“그리고 이건 반대로 말하면, 혼자가 아니라면 살아갈 수 있다는 소리지.”

[그게 무슨 못 배워먹은 헛소리냐! 원인과 결과의 역이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기본도 모르는 것이냐?]

화를 토해내는 여인의 꼬리가 더욱더 거세게 철백을 압박했다.

하지만.

“논리와 이성, 그딴 거에 의존하고 있으면 이 자리에 안 서 있겠지.”

쾅! 쾅!

천지가 떨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철백의 두 팔은 물론이고 그 육체 또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천위가 있어서 내가 여태껏 살았고, 모두가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꼬리와 꼬리가 튕겨 나간, 절묘하기 그지없는 빈틈.

하던 말조차 끊은 철백은 단숨에 몸을 비틀어 앞으로 나아갔다.

다급하게 궤도를 꺾은 꼬리 끝이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몸을 할퀴지만 철백의 피부와 근육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모든 것을 튕겨냈다.

그리고 도달한다.

“천위가 살기 위해 우리 모두가 여기에 있는 거다.”

여인에게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

자신에게 파고든 꼬리 둘을 정확하게 한 팔로 붙잡아 옆구리에 낀 철백이 한껏 당긴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그릇을 휘두른 것처럼 일대의 공기 전체가 철백의 일격에 휘말린다.

압도적인 힘에 매몰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과 함께 철백의 주먹이 완전히 뻗어진 순간.

세상이 깨져나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여인이 몇 걸음이나 뒷걸음질 쳤다.

주륵.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낸 여인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철백을 바라봤다.

붉게 달아오른 주먹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손으로 흩트리며 철백은 다시 자세를 고쳤다.

“네 죽음으로 이 싸움이 끝난다.”

양팔을 앞으로 모으고, 다시 자세를 고친다.

시간을 끌면서도 확실하게 한 번의 타격을 넣을 수 있는 전략.

저런 조잡한 전략 같은 건 속도를 올려 주위를 돌기만 해도 얼마든지 파훼할 수 있다.

문제는, 눈앞에 있는 저 무식한 인간을 피한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다른 천것들을 상대하기 위해 자신의 꼬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탄생과 함께 만족을 느꼈던 탐스러운 털과 가죽은 이미 세는 것도 힘들 정도로 상하고 재생을 반복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된 거지?

세상을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이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인간 같은 건 얼마든지 찢어발길 수 있어야 할 터인데.

대체 어떻게?

눈앞의 저 인간들은 대체 어떻게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지?

이 철벽같은 인간은 대체 어떻게 내가 피를 흘리게 만드는 거지?

어떻게?

의문이 머릿속에 차오르고, 사고는 순식간에 가속한다.

천천히 다가오는 철백의 압박.

지독할 정도의 살기와 살의를 줄줄이 흘리며 싸우고 있는 유예린과 백유.

바람을 휘감고 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게 만들어 전장을 헤집는 서하영.

느리지만 한번 공격할 때마다 확실하게 꼬리에 타격을 가하는 연화.

[……하?]

느려진 인지 속에서 연화를 정밀하게 살핀 순간 여인은 깨달았다.

축생의 힘이, 갈라졌다.

[아아! 아아아아!]

깨졌다.

계산이.

오류를 찾아낸 순간, 인간의 한계에 도달해 있던 언여휘의 머리는 순식간에 결론을 도출해 냈다.

지금의 나는, 완전한 내가 아니다.

내가 계산하고, 내가 짜올린 완벽한 내가 아니다.

자신의 몸에 생긴 오류조차, 빈틈조차 깨닫지 못한 반푼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방법을 고심한 순간 여인의 눈에 표독스러운 살기가 일렁였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간단하지 않은가.

채우면 된다.

마침 그것을 채워줄 물건이 저곳에 있으니 채우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의문이었다.

지금 채운다고 원래의 계산대로 되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不可).

계산은 빨랐다.

이미 조합도, 가열도 전부 끝난 요리이기에 지금 와서 재료를 추가한다고 한들 원래 계획했던 완성품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태로 완성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말투는 그대로였으나, 행동거지는 언여휘보다 더 우아해졌다.

머릿속에 분명 수만 가지의 술법이 있으나, 그것을 사용하기보다는 육체를 사용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달기의 성격과 구복의 성격이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언여휘인가?

탄생의 순간부터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던 의문에 드디어 여인은 답을 내렸다.

아니.

나는, 언여휘가 아니다.

그렇다면 달기인가?

아니.

그렇다면 구복인가?

아니.

그렇다며 나는 무엇인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쩡!!!

공간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깨어난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철백의 주먹이 안면을 후려친다.

자신의 이변을 느끼고 과감하게 거리를 좁혀 내지른 일격이겠지.

무의식중에 움직인 꼬리의 격렬한 반항에 곳곳에 생채기가 난 것이 보였다.

코가 꺾이고, 눈이 찌그러진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고통과 함께 여인의 몸이 튕겨 나갔다.

허공을 몇 번이고 구르고 굴러 설천위가 만들어 놓은 벽의 끝에 도달했다.

여인을 끝내기 위해 도약한 철백이 거리를 좁히고, 덩달아 끌려 들어가 사라진 꼬리 덕에 여유를 되찾은 다른 이들도 여인을 압박하기 위해 땅을 박찼다.

완벽한 기회.

상황을 지켜보던 설천위조차도 이대로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완벽하기 그지없는 그 기회에서.

[아, 하.]

비틀린, 아니 꺾여 있는 목소리와 함께 여인이 일어섰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철백의 주먹을 보며.

[천것.]

눈웃음을 지었다.

부러졌던 콧대가 돌아오고, 어느새 완치된 아름다운 눈이 선명하게 빛났다.

그 안에서 번뜩이는 것은 오행의 이치를 담은 오망성.

천지와 만상을 품은 그 눈동자가 빛나는 것과 함께 철백의 몸을 휘감은 결계들이 빛났다.

단숨에 움직임을 봉인 당한 철백이 은빛의 기류를 휘감고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주먹이었다.]

칭찬의 목소리와 함께 철백의 복부에 거대한 말뚝이 꽂혔다.

아니.

정확히 말해, 거대한 짐승의 발톱이었던 것이 결계를 휘감고 철백의 몸을 꿰뚫었다.

여태껏 꼬리가 어떤 발악을 해도 뚫지 못하던 철백의 몸이 드디어 뚫린 순간.

[과연, 이런 거였구나.]

고개를 주억거린 여인이 손을 휘둘렀다.

달려들던 유예린과 백유의 발이 그대로 묶이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짐승의 앞발에 둘은 동시에 머리 위로 팔을 뻗었다.

굉음이 울려 퍼지고, 바람을 휘감고 허공을 누비던 서하영은 그 굉음에 놀랄 새도 없이 자신을 붙잡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비틀고 또 비틀며 몸을 움직인다.

바람을 휘감고 싸우던 그녀가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크르르르르!]

“이익!”

날뛰는 흑랑을 잠재우기 위해 연화는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힘을 끌어올렸고, 설천위가 만들어 낸 군세는 허공에서 나타난 꼬리에 쓸려나갔다.

[아아, 좋구나. 고작 육체 따위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는 이리도 자유로워지는구나.]

원래의 계획과 다르지만.

뭐 어떤가.

자신은 완전하고, 자유로운데.

[언려(彦麗)라 불러 다오.]

스스로를 정의한 여인, 아니 언려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언여휘의 지식.

달기의 격.

구복의 육체.

모든 것이 고루 섞여 완성된 존재로서 언려는 선언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라.]

영력이 요동친다.

이 세상의 모든 영력이 그녀의 손에 들어간 것처럼 그녀의 의지에 따라 요동치기 시작한 영력은 그녀의 적에게 협력을 거부했다.

타오르는 불길이 잦아들고, 모두의 공격이 하나둘 튕겨 나오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파괴력의 꼬리는 이제 허공에서 나타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기 시작했고, 세상의 이치를 비트는 술법이 모든 것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겨우 몸을 회복한 철백이 밀려서 백유와 유예린이 있는 곳까지 갔고.

날뛰는 흑랑을 겨우 잠재운 연화는 힘이 빠져 서하영의 품에 안겼다.

[자,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꾸나.]

무식하게 힘을 휘두르던 것을 버리고, 극에 이른 술법으로 막대한 효율을 뽑아내며 술식이 세상천지를 뒤덮었다.

압도적인 화력.

여태껏 싸우던 것은 어린아이가 보검을 쥐고 있었던 것임을 깨달은 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그 순간.

철백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노리고 파고든 꼬리를 막아 냈다.

피부가 갈라지고, 살점이 뜯어져 하얀 뼈가 드러났다.

절망적이기 그지없는 현실.

압도적인 힘의 격차.

그 앞에서.

“우리의 승리다.”

상처투성이의 팔을 늘어트린 채 철백이 웃었다.

모두가 한창 싸움에 열중하고 있는 이 순간.

연옥의 문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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