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17화 (617/624)

제617화

616화-연옥 (3)

연옥의 문이 반으로 갈린 순간, 언여휘는 모든 것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달기와 구복의 혼이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올라올 거다.

설천위가 개입하고, 달기가 끼어든 순간부터 진행된 계획.

오로지 자신이 보아왔던 설천위의 능력만을 보고 실행한 계획이다.

자신의 계산상 아무리 설천위라고 한들 달기와의 전투 이후 연옥의 문을 막을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는데.

그걸.

‘천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틀어져 버렸다.

천마.

천마라니.

신화시대 때 활약했던 괴물이 왜 지금 이 순간에 망자의 형태로 자신의 존재조차 버려가며 설천위를 도운 것인지.

의문은 가득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의문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당장에라도 재구축을 시작하지 않으면……!’

완전히 일이 틀어진다.

자신이 유예린과 백유에게 심어놓은 독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 설천위라도 푸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예 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풀 수 있는 가망이 보여야, 설천위가 거기에 확실하게 시간을 쏟을 테니까.

풀 수는 있지만, 시간은 걸리는 형태의 주독(呪毒).

그렇기에 설천위는 해독 후 확실하게, 자유로워진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설천위가 유예린과 백유의 치료를 끝내는 순간, 설천위의 송곳니는 오로지 자신을 향하게 될 터.

그때까지.

‘해내야 한다.’

연옥을 완전히 이 세상에 불러낸다는 건 불가능해졌다.

천마에 의해 반으로 갈라져 버린 연옥의 문은 이미 윗부분이 소실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은 아랫부분을 통해 불러낼 수 있는 존재는 극히 한정적.

아마 제대로 된 자아를 가진 신(神)은 넘어오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 신에게 설천위를 떠넘기고 자신은 연옥의 힘을 있는 대로 긁어모은 뒤 도주해서 자신을 완성시키려던 계획은 버린다.

‘이 자리에서……!’

완전해진다.

찰나의 순간, 결정을 내린 언여휘는 손을 뻗었다.

구복과 달기의 힘을 끌어올린다.

그들의 혼에 끌린 육체가 연옥의 문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 두 번.

호흡을 내쉬는 것에 맞춰 시간이 흘러가고,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는 설천위의 시선은 더욱더 강렬해진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오존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저들은 뚫을 수 없으니까.

힘의 크기가 아닌 종류의 문제이기에,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에게 닿을 수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설천위.

저 녀석뿐이다.

설천위의 시선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언여휘는 연옥의 문에 모든 힘을 때려 박았다.

몇 호흡이 더 지났을까, 어느새 가까워진 육체가 느껴졌다.

거대한 여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육체.

콰득!

그 육체가 작디작은 문에 처박혀 섬뜩한 소리를 낸 순간 언여휘는 영력을 뿌렸다.

육체를 가르고 나눈다.

어차피 저 육체를 통째로 쓸 생각 따윈 없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육체를 잘라, 반으로 작아져 버린 문으로 통과시킨 언여휘는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잘 먹겠습니다.”

한참 남은 설천위의 해독 작업에 승리를 확신한 언여휘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 * *

까득!

“더럽게 단단하네!”

언여휘가 만들어낸 결계에 날이 부러진 단검을 등 뒤로 던져버린 살존은 새로운 단검을 꺼냈다.

경지에 이른 뒤, 힘 조절을 못 해서 무기의 날이 상하는 일조차 잘 없었는데 벌써 세 자루나 단검을 부러트렸다.

숨 쉬듯 해내던 힘 조절을 잊을 정도로 지금, 살존은 필사적으로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문제는 살존이 무기가 버텨낼 수 없을 정도로 과한 힘을 담아내고 있음에도 언여휘의 결계에는 흠집조차 없다는 거다.

“지독하군.”

살존의 옆, 주먹에서 흐르는 피를 가볍게 털어낸 사존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결계를 살폈다.

“철저하게 술사의 영역에 선 힘이란 건가.”

“무인의 힘은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계란 것이 있는 법이잖아.”

아무리 술법이라고 해도, 아무리 악귀라고 해도 실체를 가진 순간부터 완벽한 내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반대쪽에 손을 내민 순간 그 손이 붙잡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지금 언여휘의 결계는 그런 상식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언여휘의 술법이 강하다고 한들 인간이 펼친 것.

오존 중 셋의 협공을 받고도 흠집 하나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았다.

“이런 경우, 극단적으로 오히려 술법에 약한 경우가 많지만…….”

냉정함을 유지한 채 뒤를 돌아본 사존은 고개를 저었다.

“한계다.”

부족한 실력으로 억지로 언여휘의 술법을 틀어막던 백화단주는 조금 전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는 듯 꿈틀거리는 육체가 이따금씩 번개로 화해 파직거렸지만 거기까지.

도저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고작 단주 정도의 수준으로 이 전장에서 그녀가 보인 활약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을 칭찬해줘야 마땅했다.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고 패악질이다.

그렇기에.

“늙은것들이 뭐라도 해내야겠군.”

고개를 돌린 사존은 주먹에 흐르는 피를 내려다보고 있는 북존을 바라봤다.

“얼마나 얼릴 수 있나?”

“얼마나?”

사존의 물음에, 잠시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북존이 고개를 들었다.

사아아아아.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냉기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그 범상치 않은 기세에 그가 내공 이외의 것도 태우기 시작했음을 깨달은 사존은 입꼬리를 올렸다.

“젊은 만큼 호탕하구만!”

진원지기.

자신의 생명조차 태우기 시작하는 북존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사존은 자신이 두 주먹에 뇌전을 휘감았다.

“당신들……!”

망설임 없이 진원지기를 태우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살존이 둘을 말렸다.

“무식하게 그러기야?!”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오던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는데, 거기서 진원지기를 태운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살존의 만류에 먼저 냉기를 끌어올렸던 북존이 답했다.

“상관없다.”

이 목숨의 십 년을 태워서라도.

저 아이들에게 잠깐의 여유를 허락할 수 있다면.

자신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진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여유를 줄 수 있다면.

이 목숨 따위, 얼마든지 태워 세상의 모든 것을 얼려주리라.

쿵!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발을 내디딘 북존의 일보에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새 그의 발아래 깔린 얼음이 대지가 되어 그를 지탱했다.

허공을 쥔 그의 손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이 잡힌다.

위에서 아래로.

단숨에 얼음의 검을 휘두른다.

살존이 말릴 새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쥐어짜 힘을 토해낸 북존의 검이 전방의 모든 것을 휩쓴다.

신화시대에 나오는 눈보라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북존을 기점으로 그 앞의 모든 것이 얼음에 집어삼켜졌다.

쩌적! 쩌저저적!

언여휘의 결계는 물론 그녀의 발아래로 펼쳐진 황궁의 잔해와 그나마 아직 멀쩡한 황궁의 건물들 전부가 얼음에 뒤덮인 장관이 펼쳐졌다.

통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달은 살존은 한숨을 내쉬며 단검을 휘둘렀다.

“하여튼, 냉정해야 할 때 멍청해지고 멍청해야 할 때 냉정해지는 것들 같으니라고.”

남자란 것들은 언제나 그랬지.

수아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그 사람도.

항상 그랬다.

지켜야 할 것 앞에선 뜨거워져 이성을 잃고.

사소한 장난질에는 진심으로 달려드는.

그런 머저리들 옆에 서려면.

“이번에만 어울려 줄게.”

나도 멍청해지는 수밖에.

스산한 살기를 눈 속에 감춘 살존의 몸이 흐려졌다.

끌어올린 진원지기가 단숨에 그녀의 존재를 집어삼켜 완벽한 무(無)를 만들어낸다.

그런 살존의 모습에 입꼬리를 비튼 사존은 북존이 만들어낸 얼음 대지 위에 발을 내디뎠다.

“살 만큼 살았고, 세상을 볼 만큼 보았는데 무엇이 아까우리.”

양손에 휘감은 벼락이 무식할 정도로 거대해진다.

칠흑의 벼락이 사방으로 튕기며 그 존재를 뿜어내자 절로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찢어지는 소리가 세상을 집어삼킨다.

벼락의 중심.

사존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양팔을 뻗었다.

두 손이 동시에 언여휘의 결계에 닿는 순간.

글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아득할 정도의 굉음이 터져 나오며 고막을 찢는다.

모든 것을 때려 박은 탓에, 귀가 터져 피가 흐르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사존은 그대로 어깨를 비틀었다.

쥐어짜듯, 자신의 모든 것을 억지로 욱여넣는다.

결계가 굉음을 내며 요동치기 시작하고, 사존이 뿌려대던 벼락이 기어코 결계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미세한 바늘이 두터운 성벽에 박히듯.

극세(極細) 라는 말이 어울리는 벼락의 바늘이 언여휘의 결계 속으로 침투했다.

까득!

그것을 인지한 순간 사존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얼려라!!”

사존의 외침과 동시에 대지를 박찬 북존의 검이 언여휘의 결계를 덮쳤다.

파직!

기껏 침투한 사존의 벼락을 타고 북존의 냉기가 스며든다.

결계의 외부를 부술 수 없다면, 내부에서 움직이면 된다.

바위에 스며든 물이 얼고 녹아 거대한 석산을 쪼개듯.

벼락을 타고 스며든 냉기가 그 안에서 부풀어 올라 결계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읽어낼 수 없는, 정말로 극히 미약한 균열.

도저히 보는 것으로는 읽어낼 수 없는 균열이었으나.

모든 것의 죽음을 보는 살수의 눈은 그것을 보았다.

실낱같은 틈.

그 틈을 파고든 살존의 단검이 세상을 찢어발긴다.

언여휘를 휘감은 결계를 베고 가른다.

카가가각!

날이 망가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진원지기를 쥐어짜 만들어낸 강기는 끊임없이 재생되어 날의 무뎌짐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베고 또 벤다.

오로지, 죽이기 위해서.

극한에 이른 살수의 일격이 언여휘의 모든 결계를 찢어발긴 순간.

[땡.]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결계가 비틀린다.

비틀리고 비틀려, 끝내 한계에 도달한 순간.

[늦었어.]

산산이 부서진 결계 너머로, 화려한 궁장을 입은 여인이 손을 흔들었다.

달기와는 전혀 다른 외모지만, 그 아름다움만큼은 달기 그 이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아리따운 여인이 손을 흔들었다.

[너희는 항상 늦었지.]

칠흑 같은 머리가 길게 늘어져 마치 자신의 발아래 바닥이라도 있는 것처럼 흐트러진 여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못 말린다는 듯이.

[진즉에 목숨을 버리고, 내 결계를 뚫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여인의 손짓에, 언여휘가 연옥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완전히 움직임이 멈췄던 인형과 괴이들이 움직였다.

[할 만할 때는 목숨을 보전하려다가 실패하고, 이미 늦은 뒤에야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 결국 모든 것을 잃지.]

그것이 어리석은 인간의 본성이야.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은 여인이 다소곳하게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그렇기에, 조금 정도는 어울려주마.]

여인은 저 밑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설천위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네가 그 둘을 해독할 때까지, 이 늙은이들로 참아주마.]

완전히 승리를 확신한, 그 미소에 백유와 유예린을 붙잡고 있던 설천위는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노려봤다.

언여휘였던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언여휘라 불러야 할 존재인지 모를, 세상을 짓누르는 힘을 뿜어내는 괴물을.

그리고.

‘……다음은 맡긴다.’

사라져 버린 스승의 빈자리를.

유예린과 백유의 독을 해독하는 설천위의 두 눈은 차가울 정도로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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