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11화 (611/624)

제611화

610화-마지막 준비 (5)

제도의 한 구역.

민가가 밀집된 이곳은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인구 밀집 지역이었다.

“후우, 진짜 역하네.”

그곳에 선 귀령단주, 모윤은 한숨과 함께 코를 쥐고 움직였다.

“단주님.”

“엉?”

“찾았습니다.”

“어느 쪽인데?”

“북북동입니다.”

“좋아. 바로 움직이자.”

풀어놨던 부하들이 가져온 보고에 귀령단주는 즉시 그쪽으로 이동했다.

구역에 들어온 순간부터 코를 찌르던 악취가 이제는 코를 움켜쥐고 숨을 쉬기만 해도 역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더욱 강해졌다.

“단주님, 여기입니다!”

“너희는…… 에효, 됐다.”

내 밑엔 자질 없는 것들이 이렇게 많구나.

아니면, 내 뒤를 노리는 놈들이 많은 거거나.

뭐가 됐든 좋은 건 아니기에 한숨을 내쉰 귀령단주는 악취를 참아 가며 내부로 진입했다.

공간 전체에 흐르는 지독한 악취.

일반인들은 맡지 못하는, 영력이 부패한 것으로 인해 생긴 이 악취는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친 술법들이 발동될 때 발생했다.

제물.

산 제물을 바치는 경우, 이 악취가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애초에 산 제물을 바치는 현장에선 제물의 장기와 살이 썩어 가고 있기에 그쪽에 밀릴 정도로 옅다.

문제는 이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날 정도라면 단순히 제물로 바쳐진 게 끝이 아니라는 소리다.

[살…… 살려…… 줘…….]

[제, 발…… 누이만…… 은…….]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한 목소리.

희미하게 들려오는 혼들의 아우성에 귀령단주는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진짜 상종 못 할 망종이구나, 언여휘.

사파의 술사인 내가 제사를 맡게 될 줄이야.

악귀가 있다면 소멸을.

괴이가 날뛰어도 소멸을.

자비 따윈 없는 사파의 술사라면 대부분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혼을 위로하는 부적을 꺼낸 귀령단주는 한숨과 함께 주언을 외기 시작했다.

이미 흐릿해져 남은 것이라고는 마지막 순간에 품은 미련밖에 없는 혼들을 귀령단주의 영력이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끝없이 이어지던 살려 달라는 절규가, 누이만은 봐 달라는 애원이 사라진다.

누군가는 자신을.

누군가는 가족을.

누군가는 연인을.

각자가 최후의 순간에 품은 미련과 함께 서서히 흩어진다.

“극락왕생하기를.”

“네?”

“단주님, 요즘 불교에 관심 있으세요?”

“저기 밖에서 날뛰는 스님 때문인가?”

“아, 확실히 반할 만하지. 화끈하던…….”

“쫌!”

옆에서 눈치도 없이 주둥이를 놀리는 부하의 입에 이제는 종잇조각이 된 부적을 쑤셔 넣은 귀령단주는 깔끔하게 영력을 뿌렸다.

“다 나가. 싹 무너트릴 거니까.”

“넵.”

“우브우븝!”

“닥치고 나가라고.”

이놈들이 빠져 가지고.

백유가 맹주가 된 뒤로 느슨해진 맹 전체의 분위기에 맞춰 좀 봐줬더니 아주 그냥 기강이 해이해지다 못해 사라졌지?

이 일이 끝나면 돌아가서 싹 다 정수리와 흙바닥의 기나긴 만남을 주선해 주겠다고 다짐하며, 귀령단주는 공간을 비트는 술법으로 술법의 근간이 되는 건물과 법구들을 무너트리고 부쉈다.

“일단, 한 곳은 정리.”

이런 곳이 몇이나 될까.

질척하게 흐르던 영력이 그 생성이 끊겨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귀령단주는 걸음을 옮겼다.

“뭐가 됐든 그놈이 이쪽을 견제하기 전에 하나라도 더 처리해야지.”

아! 아니다.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려나?

* * *

“아미타불…….”

이 제도에 도착해 몇 번째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며 무해는 두 손을 모았다.

합장.

상대를 향한 예를 표하며, 깊게 허리를 숙였던 무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비통하고, 또 비통합니다.”

가슴이 아리고 흐르는 눈물에 옷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찌 악(惡)이란 것은 끝나지 않는 것입니까.”

답은 알고 있다.

그것은 악(惡)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선(善)도, 악(惡)도 전부 인간의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악(惡)은 끊이지 않고, 끝없이 절망을 만들어 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처럼.

살점과 내장이 널브러진 바닥.

몇 개나 되는 피의 웅덩이.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도축된 짐승처럼 매달려 있는 인간의 시체.

끔찍하다.

끔찍하고, 또 끔찍하다.

불법을 닦으며 맑은 것만을 입에 담기로 다짐하며 수련해 온 무해의 어휘력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나도 끔찍해서.

“저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공간의 한가운데서 열심히 무언가를 움직이던 인형의 흔적을 앞에 두고 무해는 비통함을 삼켰다.

아니, 인형이었던 것을 앞에 두고 슬픔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악의(惡意)를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당신은?”

붙잡은 언여휘의 인형은 무해의 불법에 닿는 순간, 태양 아래 드러난 그림자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안에 담긴 혼뿐만이 아니라 그 육체마저도 악(惡)으로 가득 차 있던 흉물(凶物).

이런 흉물을 세상에 뿌리는 인간은 대체 어떤 인간인가.

그 존재가 품은 악의는 대체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

절규하는 혼들과 이 대지를 잠식한 썩은 영력을 자신의 불법으로 정화한 무해는 등을 돌렸다.

“아미타불…….”

이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자신이 하나라도 더 많은 혼을 구할 수 있기를.

그리 바라며, 무해는 다른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멈춰라!!”

성벽의 전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그곳에서 양쪽에 장수를 거느린 운주가 악을 쓰며 외치고 있었다.

“짐이 이곳에 있느니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며 전장을 누비는 운주의 외침은 본디 공허하게 허공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설령 황제라 할지라도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장에서 한 인간이 쏟아 내는 외침이 파급력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퍼진다면 어떨까.

전장 전체를 휩쓰는 바람이 그 목소리를 실어 나른다면.

과연 그때도 그 목소리가 허망하게 흩어질까?

“창을 내리고 검을 놓아라!! 하늘을 우롱하는 악귀에게 속아 제 목을 향해 칼을 들이밀어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전장의 한복판.

무림맹주, 정존의 호위를 받으며 전장을 누비는 운주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속지 마라! 폐하는 역도들에 의해 궁에 유폐되어 계신다!!”

구복과 언여휘가 준비해 놓은 장수들이 악을 쓰며 병사들을 이끌었지만, 운주의 목소리가 닿는 곳에서 하나둘 병장기를 놓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전장의 일부가 누군가의 외침만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

이것이 들불처럼 번지는 순간, 이 전투는 끝난다.

그것을 직감한 장수들은 더욱 악을 쓰며 전투를 유도했고, 그런 적들에게 맞춰 운주 또한 악을 쓰며 전장을 누볐다.

“짐이!! 바로 이곳에 있느니라!! 그대들의 적은 그대들의 뒤에 선 장수의 탈을 쓴 무뢰한들이니!!”

피가 튀기고, 죽음이 날뛰는 전장에서.

헛된 희생을 강요당하는 병사들을 막기 위해 피를 토하며 외치는 운주의 목소리에는 점차 위엄이라는 것이 깃들고 있었다.

* * *

“과연, 완전 머리가 없는 건 아니네.”

점점 더 줄어드는 영력 수급에 언여휘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이렇게까지 읽고 움직일 줄은 몰랐어.”

“네가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상, 준비를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주현운과 연화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움직인 시점부터 언여휘를 견제하기 위한 준비는 당연히 이루어졌다.

지금 이 제도의 혼란을 만들어 낸 인간이다.

어떤 준비를 해 놨을지 모르니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진행하는 건 당연했다.

“응, 그래서 솔직하게 칭찬해 주고 싶어.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거든. 솔직히 지금 좀 위기야.”

아직까지 영력의 수급은 되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인형은 계속해서 부서지고 있고, 점점 더 줄어드는 영력으로 인해 회복에도 한계가 찾아올 것이다.

저주로 발을 묶어 두는 것도 성화린이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따라와 붙잡으니, 오존 세 사람에게는 잘 통하지도 않았다.

뭐, 그 셋을 노리는 게 목적이 아니니 그거야 그렇다고 쳐도.

“길게 버티긴 힘들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한 소리를.”

언여휘의 말에 코웃음을 친 살존은 단검 끝으로 설천위가 갇혀 있는 달기의 영역을 가리켰다.

“저 녀석에게만 계속 의존할 순 없는 노릇이지. 나이를 먹어서 낯짝이 두꺼워졌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거든.”

“흐으음, 글쎄.”

턱을 쓸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언여휘는 깡마른 손가락으로 갈라진 자신의 피부를 두들기며 웃었다.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

너희가 천위에게 기대지 않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 * *

나아간다.

달려드는 위호를 찢어발기고, 발버둥치는 장수를 짓이기고, 기어오르는 망자들을 짓밟고.

설천위는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중간에 잠시 멈추는 일도 있었지만, 설천위는 어떻게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베고, 찢고, 짓밟으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설천위를 달기가 비웃었다.

[네깟 놈이 그런다고 한들 닿을 수나 있을 것 같으냐?]

불가능했다.

자신의 영역은 절대적이다.

제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천것이라면 자신의 앞에 설 수 없다.

인간은커녕 신조차도 저급한 자라면 자신의 앞에 설 수 없다.

도달할 수 없는 지고(至高)의 존재.

그것이 바로 자신이고, 그렇기에 자신의 고귀함은 더욱더 빛난다.

[네놈 같은 천것이 천년을 달려와도 닿지 못할 곳이 본녀의 앞이다.]

단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위엄마저 서려 있는 그 목소리에 눈앞에서 날뛰는 장수를 찢어발긴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달기, 네가 까먹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쿵!

묵직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황제가 된 인간들 중에 거지 출신도 있다는 거 알아?”

천것으로 살아도 세상의 정점에 도달하는 인간들이 있다.

세상일이란 그토록 앞을 모르는 것이고, 그렇기에 재미있는 것이다.

[흥,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네놈이 그런 존재라는 것이냐? 거지로 길거리를 꽤나 떠돌았나 보구나?]

“아니, 거지는 아니었는데, 비슷하게 낙제생 같은 걸 했지.”

계급(癸級)이라고 들어는 봤나?

완전 바닥에서 시작했지.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히죽 웃으며, 발에 달라붙는 망자의 머리를 살짝 비틀어 내디딘 발로 으깨 버리며 설천위는 앞으로 나아갔다.

쿵!

“세상일이란 게 모르는 것투성이더라고. 황제란 것들도 흙바닥에 내던져지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

[감히 나를 황제 따위와 비교하려는 것이냐?]

“거, 참 대화하기 힘드네. 그냥 좀 들어라.”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

“좋아.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이번엔 아예 문제를 내주지. 한 나라의 수장이, 그 땅의 지배자가 흙바닥에 나뒹구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쿵!

[어떤 상황이냐니, 그야 당연히 역모에 의해…….]

순간 말끝을 흐리는 달기.

말문이 막힌 달기의 모습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쿵!

“아니면 적에게 성이 함락됐거나.”

쩌적!

설천위가 한 걸음 더 내딛는 것과 동시에 달기와 설천위 사이에 무수히 많이 존재하던 전각 하나에 균열이 생겼다.

“오만한 군주는 적의 창끝이 자신의 코앞에 도달했음에도 눈치채지 못하는 법이지.”

쩡!!

기어코 완전히 부서져 흩어지는 건물.

파편이 되어 흩어진 건물 너머로 아까보다 확연히 가까워진 달기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패도(覇道)를 걷는 광인이니.”

자기암시에 가까운 말을 내뱉으며, 설천위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 끝에 나는 세상의 절대자로 기록될 것이다.”

달기라는 괴물을 짓밟고, 그 목을 효수한 절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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