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610화 (610/624)

제610화

609화-마지막 준비 (4)

저주로부터 해방.

너무나도 은밀해 그 존재를 눈치채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저주였지만, 사라지는 순간 현경의 감각은 날카롭게 그 변화를 잡아냈다.

“쉽네.”

머저리처럼 움직이는 망가진 제군들을 베어 내고, 언여휘의 인형들마저 하나둘 베어 내기 시작한 살존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라는 거, 생각보다 더 까다롭네.”

백화단주 아니었으면 한참은 더 고생했겠어.

고개를 저으며 단검을 움직이던 살존은 아직도 많이 남은 인형들과 삐걱거리는 제군들을 보며 웃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네.”

히죽이는 것과 함께 달려 나가는 살존.

그런 살존의 뒤를 사존이 따랐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싸우던 북존은 그들을 따르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만약을 대비해 부상자들을 지킬 수 있는 위치를 고수한 것이다.

각자 전투에 돌입하고, 전황은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저주에서 해방된 살존과 사존은 화끈하게 적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고, 몇몇 전투력이 뛰어난 놈들을 제외하곤 그들의 일격을 받아 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후우, 이제 좀 낫네.”

날뛰기 시작하는 오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란은 세 사람에게 몰리는 적들 덕에 생긴 여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느라 솔직히 꽤 지쳤는데,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진짜…… 너무 힘드네요.”

물론, 그녀보다 경지도 낮고 익힌 무공도 호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백수아는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래도 일단 상황은 상당히 좋아졌어.”

백수아의 어깨를 토닥여 준 설란은 차분한 눈으로 전체를 둘러봤다.

거듭되는 싸움으로 이젠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조차 몇 채 되지 않는 황궁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싸움이 끝나고, 수습과 재건에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까.

절로 고개가 저어졌지만, 설란은 이내 잡생각을 털어 냈다.

미래 걱정은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조금 더 멀어지자. 올케들의 상태가 꽤 안정된 것 같으니까.”

“그러는 게 좋겠어요.”

나도 저 올케들에 들어가나?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 백수아는 백유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꽈악!

“……아니.”

“엑?!”

어떻게 일어났대?

백유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은 순간, 자신의 옷을 붙잡는 백유의 행동에 놀란 백수아가 당황했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마찬가지로 설란의 손길을 거부하며 눈을 뜬 유예린은 당연하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지켜보겠습니다.”

“나도.”

유예린의 말을 받은 백유는 힘겹게 일으킨 몸으로 바닥을 짚었다.

기어코 낮은 벽에 붙은 백유는 자신의 옆에 도착한 유예린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뭐 끝까지 웃음을 지우지 않겠다며?”

“기절했으니 무효예요.”

“거, 내뱉은 말을 그렇게 어기면 쓰나.”

장난스럽게 웃으며 벽에 머리까지 완전히 기댄 백유는 저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달기와 설천위가 들어가 있는 영역.

그 아래에서 싸우고 있는 오존들.

자신은 싸움조차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누워 있는 현실.

까득.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를 향한 분노가 뜨겁게 가슴을 불태운다.

“일각. 일각이다. 그 뒤에 움직인다.”

희미한 내공을 쥐어짜서 피를 활성화한다.

이를 악문 백유의 몸 위로 칠흑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패기.

내공, 영력 등등 그 모든 것 이전에 백유가 품은 천성.

그것이 아지랑이가 되어 육체에 깃들었다.

그리고.

“우연이네요. 저도 그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검붉은 아지랑이를 몸에 휘감은 유예린은 숨이 멎을 듯한 살기를 품고 있었다.

살수의 기술을 익히는 가문에서 태어난 절대적인 재능.

천재(天才)냐 천재(天災)냐의 기로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에 의해 연심(戀心)이라는 탈을 뒤집어썼던 그것이 탈을 벗어던지고 정체를 드러낸다.

살성(殺星).

죽음의 별을 타고 태어난 유예린의 시야는 이미 회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딱, 그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저년의 멱을 딸 수 있을 것 같아.”

서로 합이 맞는 것처럼, 똑바로 언여휘를 노려보는 두 사람에게서 패기와 살기가 뒤섞여 일렁였다.

“히끅.”

곁에서 그 살기와 패기를 마주한 백수아가 기어코 딸꾹질을 시작했고, 손에 배어 나오는 식은땀을 옷에 닦아 낸 설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애들이 이렇게까지 고전할 정도의 싸움이 있었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이쪽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화경에 오른 자신조차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무시무시한 기세를 뿌려 대는 저 아이들이 저런 중상을 입을 정도의 전투라니.

새삼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이곳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전장인지를 자각한 설란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희, 진정하렴.”

지금 극한의 의지로 육체를 강제로 수복하는 두 사람에게 진정하라는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당장 그녀들에게 영향을 받은 성화린이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으니까.

“성 언니가 힘들어하잖니?”

“……죄송합니다.”

“미안.”

순순히 사과하는 유예린과 백유.

그 둘을 보며 부드럽게 웃어 준 설란은 성화린의 곁에 앉아 기세를 일으켜서 그녀를 보호했다.

“진정했다면 회복에 집중하렴. 싸울 상태가 아니라면, 절대로 전장에 다시 보내지 않을 거니까.”

* * *

“흐음, 까탈스러운 고양이들이 눈을 떴네.”

노골적으로 자신을 노리는 살기에 입꼬리를 올린 언여휘는 슬슬 정리되어 가기 시작하는 전장을 바라봤다.

과연 오존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하나하나가 강했다.

전투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성화린의 도움이 있다곤 해도 저리 쉽게 저주를 극복해 내다니.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힘든 시대를 거쳐 저 자리에 오른 절대자들다웠다.

문제는.

“고작해야 인간일 뿐이지.”

그래.

인간일 뿐이라는 거다.

옛날의 기억을 떠올린 언여휘는 히죽 입꼬리를 비틀었다.

진짜를 보고 싶어서 가문을 벗어났고, 진짜를 본 뒤에 확고한 목표를 정했다.

그러고 몇 년이던가.

이젠 세는 것도 까먹을 만큼 기나긴 시간을 거쳐 현재에 도달했다.

운이 좋았다.

몇 번이고 입맛을 다셨던 기회가 있었지만, 설천위라는 매력적이면서 위협적인 존재 때문에 참았다.

참고 또 참아서.

“히히.”

지금에 도달했다.

지금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최후, 그리고 최고의 기회다.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화린아, 화린아. 너는 언제나 그리 안일하구나.”

앞뒤가 없는 웃음을 흘리며, 언여휘는 손을 뻗었다.

성화린의 개입?

예상치 못했으나,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대응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설천위를 적으로 상정한 시점에서 준비한 것들로 대부분의 변수는 차단할 수 있었다.

설천위는 거의 모든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괴물이 됐으니까.

그렇기에.

“막는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있다간 결국 도태될 뿐이란다.”

언여휘는 저주를 비틀었다.

사방에 퍼진 저주가 비틀리고 맞물려 힘을 토해 낸다.

언여휘의 주력은 인형술.

인체 혹은 사체를 이용해 만든 인형들을 조작하고 다루는, 세간의 지식으로 말하자면 식령을 다루는 형태의 술사다.

그렇기에 언여휘는 당연하게도 본인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적을 약화시키는 저주에도 상당히 능통하다.

특히.

“낙위(落位).”

적을 약화시키는 종류의 저주에는 통달해 있다.

은밀함이 의미를 잃어버린 순간부터, 이미 다른 형태로 준비를 진행하고 있던 언여휘의 술법이 일변한다.

노골적으로 적을 짓누른다.

“흡!”

대놓고 노리니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존들이 반응하고, 설란을 비롯한 이들도 반응했다.

내공 혹은 기세를 일으켜 저주에 저항하고, 강한 경우 튕겨 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파스으으으.

“어머, 어머, 무식하기는.”

저주를 아예 집어삼키거나 죽여 버리는 패기와 살기에 언여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너무 궁금하다니까.”

저 아래에 있는 녀석들도 그렇고, 설천위는 이런 애들을 어떻게 모아서 이렇게 재능을 개화시킨 걸까?

고개를 갸웃하며, 언여휘는 손을 휘둘렀다.

“음?”

순간 기이한 감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을 느낀 사존이 손을 움직였다.

빡!

스스로의 안면을 후려치는 주먹.

“너 뭐 해?”

“……감각이 꼬였다.”

마지막 순간에 힘을 빼서 붉게 달아오른 피부 정도로 그친 사존은 분노가 뚝뚝 흘러나오는 눈으로 언여휘를 노려봤다.

“네년, 무슨 짓을 한 거냐?”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던진 사존이었지만, 언여휘 또한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뭐긴, 저주의 중첩이지? 쟤가 막는 건 아까 전까지 펼쳐 놨던 거. 지금 건 새로운 거.”

히히 웃으며 손뼉을 친 언여휘는 파들파들 떨리는 두 팔을 펼쳤다.

“궁금하지 않아? 내가 새롭게 펼치는 게 빠를까? 저 아이가 막는 게 빠를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 같은데.”

언여휘의 도발 아닌 도발에 성화린은 겨우 표정을 가다듬었다.

언여휘의 말대로이니까.

자신의 주력은 술법을 이용한 직접 전투.

이런 저주 공방전은 언여휘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설마 이런 대규모 저주를 몇 번이고 거듭해서 펼칠 수 있을 줄이야……!’

현경급 고수에게도 은밀하게 영향을 끼칠 정도의 저주라면 웬만한 인간은 펼치는 것조차 어려운 초고위 술법일 게 분명한데, 그런 술법을 유지한 상태로 또다시 이런 대규모 술법을 펼칠 수 있다니.

인간에게 가능한 기예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영력의 총량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당장 오존의 손발을 막고 있는 인형들은 전부 언여휘가 조종하고 있는 거니까.

여기에 더해 몇 번이나 광범위한 지역 내에 있는 모든 강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저주를 펼친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외부 조력이 없다면.

“제물!”

“어머, 눈치가 빠르네?”

성화린의 외침에 히죽 웃은 언여휘가 술법을 펼쳤다.

“내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자리에 섰을 리가 없잖니?”

성벽에서 싸우다 죽는 병사들의 피는 물론이고, 도시 몇 군데 설치해 둔 제물 수급처가 있다.

그 창고들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까지 언여휘의 영력은 끊임없이 재생되는 수준.

‘내 힘으로는……!’

그 연결 자체를 끊을 수 있다면 막을 수 있겠지만, 성화린의 역량으로는 그런 기예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언여휘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으니까.

절망적인 성화린의 표정과 기세등등하게 웃는 언여휘의 모습에 대충 상황을 파악한 살존은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니까 이 도시 어딘가 혹은 저 성벽 밖의 황군을 제물 삼아 계속해서 힘을 뽑아내고 있다는 거네?”

“과연, 그런 건가.”

살존의 정리에 고개를 끄덕인 사존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양팔에 뇌전을 휘감았다.

“그렇다면 문제없겠군.”

그런 사존의 옆까지 다가온 북존은 차가운 냉기를 흩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곁으로 다가온 북존의 합류에 잠시 뒤쪽을 바라본 살존은 기세등등한 제자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저 정도면 걱정할 필요 없겠네.

“자, 문제. 우리는 병력을 대거 이끌고 넘어왔는데 말이야. 과연 전부가 성벽에만 몰려 있을까?”

히죽 웃는 살존의 웃음과 함께, 술법을 펼치던 언여휘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연결 하나가 끊겼다.

한순간 바뀐 언여휘의 눈빛에 히죽 웃은 살존은 달려드는 인형을 베어 넘겼다.

“정파 술사의 수장인 백화단주가 이곳에 있는데, 그럼 사파 술사의 수장인 귀령단주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거기에 추가로 설천위 휘하의 괴물 같은 신인들은 전부 이곳에 있는데, 딱 한 사람.

이곳에 없는 그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딱딱하게 굳은 눈빛의 언여휘와 마주 보며 살존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리라고 준비를 아예 안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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